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교수가 된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십여차례 정도에 걸쳐 교수 채용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학과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혹은 교수 채용을 주도하는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사람의 이력서를 보고 면접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후보자가 좋은 평을 받는지, 어떤 후보자가 나쁜 평을 받는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교수 임용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가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나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일하고 있지만, 첫 직장을 구할 무렵,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지역, 그리고 한국에서도 면접을 본 경험이 있는데, 전체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하나빼고 다 떨어짐, 거절의 아이콘

면접

원서를 내고 심사를 거쳐서 학교 방문 면접(campus interview) 초청까지 받았다고 하면, 사실 딱히 준비할 것은 없다. 교수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Be yourself’이기 때문이다. 몇 시간의 준비로 자기 본 모습을 바꿀 수는 없다. 방문 면접은 적어도 하루 종일, 대부분 1박 2일, 어떨 때는 2박 3일처럼 아주 길 기 때문에, 본 모습이 어디에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 보러 갔다가 오면 된다.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다 했으니언제?, 이제 내가 관찰한 바를 이야기 해 보려한다.

나는 내가 교수 후보자가 되어 면접을 보러 다닐 때는, 왜 면접을 보는지 잘 이해하지 못 했었다. 교수가 되고 나서 면접의 반대편에서 관찰해 보고 나서야, 면접이 정말 중요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면접을 보러가서는 모든 후보자가 준비한 것을 잘 이야기 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잘 포장해서 적절히 잘 전달하고, 겸손하면서도 즐거운 모습을 보이고, 멋진 사람 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후보자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루 이상의 면접 일정에서, 후보자는 학과 내의 모든 교수와 개별적으로 30분 이상 면담하게 되고, 학장도 따로 만나고, 학과장도 따로 만난다. 학생들을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고, 학과 내의 직원들도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다. 어떨 때는, 다른 학과의 관련 분야 교수들도 만난다. 아주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후보자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보여준다. 나중에 후보자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학과 내의 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여서 회의 한다. 그 회의에서 각자 그 후보에 대해 받은 느낌과 생각을 서로 교환하고 토의한다. 만약 한 축으로 치우친 의견이 있다면, 다른 교수가 그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그 후보자에 대해 공정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상황 에서, 후보자가 아무리 자신의 장점은 더 내세우고, 단점은 감추려고 노력해 봐야, 결국엔 대부분 본 모습이 다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앞서 말 한 것 처럼, 별로 면접을 준비할 것은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오면 된다.

교수 임용에 성공하려면 우선 운이 좀 좋아야 한다. 운이 더 좋은 사람은 교수 임용에 관심이 없… 아무리 자기가 훌륭한 연구 업적을 쌓았다고 한 들, 연구 분야가 학과에서 채용하고자 하는 분야와 다르다면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비슷한 연구 업적을 쌓은 두 후보자가 있다면, 학과의 발전 방향에 부합하는 후보자를 뽑으려고 할 거다. 그러니까, 이런건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Be yourself’의 범주 안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별로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교수가 된다

내가 수년간 교수 임용 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점이다. 내가 겪어 본 교수 채용 과정은 대체로 신임 조교수 채용을 위한 것이어서, 교수 임용 면접에 오는 후보자들은 대체로 박사학위를 받은지 2년 이내, 혹은 곧 박사학위를 받을 분들이었다. 박사과정 혹은 박사 후 과정 중이거나, 연구소 같은 곳에 연구원으로 있거나, 학교에 강사로 있는 분들이었다. 경력이 길건 짧건 무관하게 제가 볼 때는 두 부류의 후보자들이 있었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후보자들과 그렇지 않은 후보자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라고 하면, 강압적인 표현을 한다거나 잘난 척 하는 행동을 한다는 식의 뜻으로 받아들일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괴수’아니고 ‘교수’

두 후보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던 채용 과정이 있었다. 두 후보자 모두 아직 박사학위는 없는 박사 마지막 학기 중이던 박사학위 임용 예정자였다. 연구 실적도 비슷 비슷 했고, 학과 입장에서 연구 분야의 호불호도 없었다. 서류 상으로는 두 후보자 모두 학과에 좋은 후보자였다.

한 후보자는 자신이 교수로 만일 임용 되었을 경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인지, 그 연구를 하려면 어떤 실험 장비들이 필요한 것인지, 어떤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찾을 것인지, 어떤 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지, 어떤 연구재단에 어떤 제안서를 제출할 것인지, 어떤 교수들과 협업할 것인지 등에 대한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고 잘 정돈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보자와 대화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꾸린 연구실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고, 우리 학교에서 이미 몇 년 간 지냈던 사람 처럼, 학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단순히 직장이 필요해서 교수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박사과정 학생과 교수는 그저 자기가 하는 연구의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선 위에 있는 다음 단계였던 것 뿐이다. 이 후보자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이미 교수가 된 사람에게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였다.

반면에 다른 후보자는 면접에서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면접에 와서 본인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했다. 앞의 후보자가 가지고 있었던 계획을 이 후보자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이 후보자는 면접에서 깨달았던 것이 많았는지, 집으로 돌아간 뒤 며칠 뒤에, 학과로 전화를 걸어와서는 자기는 지도교수님 밑에서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 지내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아직 마지막 후보자가 면접을 보러 오기도 전의 일이었다.

앞의 잘 준비된 후보자는 결국 학과에서 교수 임용을 제안 했지만,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한 다른 학교에서 교수 생활 중이다.

똑같이 박사학위 임용 예정자일지라도 후보자 마다 보여주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후보자는 누가 봐도 그냥 ‘학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반면에 어떤 후보자는 함께 이야기를 해 보면, 학생과 대화하는 것 같지 않고, 동료 교수와 대화하는 것 같다. 결국 교수로서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본 사람이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고, 교수가 된다. 교수가 하는 여러가지 일들, 즉 연구, 강의, 학생지도, 다른 교수들과 교류 등을 즐길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Be yourself’가 의미하는 것의 범주 안에 들어가고, 결국은 따로 준비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교수가 되는 것이 그냥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거다. 교수라는 직업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너무 잘 맞아서 학생이지만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많이 고민해 본 사람이 있을 거다.

하지만, 모든 교수가 임용 전부터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건 아니다. 분명 어딘가 중간 쯤 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나처럼 헤메고 계실 분들을 위해 교수 면접 준비를 위한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교수 임용 면접을 잘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잘 못 된 질문이다.

‘교수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까?’가 내가 볼 때는 옳은 질문이다.

가장 가깝게는 지도교수님께 여쭤 볼 수 있을 것이고, 다른 멘토 교수님이 있으시다면, 그 분께 여쭤 보아도 좋을 것이다. ‘advice for new assistant professors’ 따위로 검색을 해 보고 여러 글을 읽어 봐도 좋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책을 (미리) 읽어 보고 고민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교수 채용 과정

방문 면접 이전의 절차에 대해 궁금한 분들을 위해 교수 채용 과정을 간략히 소개한다.

예를 들어 2020년 1학기에 강의를 시작하는 교수 자리에 원서를 낸다고 가정하자. 중요한 시기는 2019년이다. 전공과 대학,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수 채용 공고가 일찍 나오는 곳은 2019년 1학기를 시작하자마자 나온다. 물론 아주 늦게 2019년 2학기 중반, 혹은 끝나갈 때 나오는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2019년 1학기 중반 즈음에는 공고가 나온다. 2019년 1학기의 연구 실적을 갖고 평가 받기 되므로, 박사과정 졸업 1년여 전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박사 졸업 후에 바로 교수가 되지 않고 박사후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인 분야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원서를 내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다음과 같다.
1. 커버레터 (Cover Letter)
2. 이력서 (CV)
3. 연구 계획서 (Research Statement)
4. 강의 계획서 (Teaching Statement)
5. 추천인 명단 (List of References)

각각을 준비하는데에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미리미리 알아보고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 여러 정보들이 많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 글에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소개한다.

커버레터는 논문으로 치자면 초록(abstract)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체 원서 패키지의 요약본이라 생각하면 된다. 원서의 다른 부분에서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을 여기서 말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이 교수 자리에 왜 지원을 했으며, 왜 내가 적합한 후보자인지를 아주 직접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교수 채용 공고가 간략하게 나오는 곳도 있지만, 채용 공고가 설명글 형식으로 나오는 곳이라면 그 공고문을 수 차례 읽어보기를 권한다. 학과에서 교수를 채용하기 위해서 공고문을 쓸 때 굉장히 공을 들인다. 원하는 분야에 좋은 사람을 뽑고 싶기 때문에, 우선 공고문에 그 사항을 쓴다. 공고문을 수차례 읽다보면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지 어느 정도 느낌이 온다. 만일 내가 그 분야에 맞는 사람이라 생각되면 그 사항을 강조해서 커버레터를 준비하면 되겠다. 이런 의미에서 커버레터는 일종의 자기 소개서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저는 … 아.. 안돼…

이력서는 학계에서 통용되는 형식을 써야한다. 지도교수님께 보여드리고 조언을 얻자. 연구 계획서는 말 그대로 내가 박사과정 동안 어떤 연구를 해왔으며,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를 쓴다. 강의 계획서에서는 강의와 관련된 경력이 있으면 간략히 쓰고, 강의철학(Teaching Philosophy)을 간략히 쓰기도 한다. 또 어떤 과목을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어떤 과목을 새로 만들어서 강의하고 싶은지도 쓴다. 추천인 명단에는 학과에서 추천서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 근무지, 연락처 등을 쓴다. 추천인은 대체로 3인 이상이어야 한다. 지도교수 이외에 좋은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 사람 2~3명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체로 박사 논문 심사위원들이다.

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혹은 제출하기 전에도, 해당 분야의 큰 학회가 있으면 직접 그 학과의 교수와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학과입장에서 후보자를 학회에서 만나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당연히 후보자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고, 원서에서 알 수 없는 사항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두번째는 학과에서도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지 그리고 학과와 학교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더 자세히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서다. 학과에서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있다면 학과에서도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후보자의 연구 분야에 맞는 공동 연구자를 추천하기도 하고, 관련 연구 시설이 학교에 얼마나 잘 마련 되어 있는지 자랑도 한다.

원서 마감일이 지나면 전화 면접을 하기도 한다. 전화 면접은 대체로 20분 내외로 짧게 진행 된다. 학회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와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오가지만 조금 더 평가의 측면이 강하다. 왜 지원했는지, 향후 계획은 어떤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간략하지만 핵심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후보자가 학과와 학교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물어볼 기회도 있다.

전화 면접이 끝나면 대체로 1~2주 정도 후에 방문 면접(campus interview)이 진행 된다. 대체로 1박2일 혹은 2박3일 정도의 일정이다. 한국에서는 1박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떤 경우에든 하루 이상의 시간을 온전히 면접에 쓰게 된다. 방문 면접에서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서 1시간 정도 세미나 발표를 진행하고, 학과 소속 각 교수들과 따로 30분 정도 시간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고, 학교 캠퍼스의 이곳 저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학과의 대학원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러가지 대화를 하기도 한다. 손님을 모시는 입장이므로 학과에서는 여러가지 일정으로 가득 채워둔다. 맘편히 똥누러 갈 시간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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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의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학생들의 질문에 항상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주시고, 학생들의 요구에 항상 기대 이상의 것을 해 주시는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시고 있다면, 복 받았다. 학생 시절 내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많은 교수님은 그러시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논문을 쓰다가 부딪힌 문제에 대한 물음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지도교수에게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아주 허다했으며, 어느 정도 진척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동안 작성한 논문을 지도교수에게 보여줬더니, 책상 위 귀퉁이 어느 한 곳에서, 혹은 받은 편지함 어느 깊숙한 곳에서 교수의 관심을 잃곤 했다.

왜 교수님은 학생들의 질문과 요구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시지 않을까? 이 글의 첫 문장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써보겠다. 자신의 질문에 지도교수님이 항상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시고, 자신의 요구사항에 기대 이상의 것을 지도교수님이 해 주신다면, 질문과 요구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도교수님이 학생 지도에 얼마나 열의가 있느냐와는 무관하게, 학생의 관점에서 지도교수에게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하는 것이다.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를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이메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메일을 어떤식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지 한 번 생각해보자.

“교수님, 제가 현재 작성하고 있는 논문을 보내드립니다. 괜찮은지 한 번 봐주십시오.”

아주 높은 확률로, 교수님은 괜찮은지 봐주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논문의 논리나 내용이 아니라 그저 기계적으로 글쓰기 자체에 대한 제안만 해주기도 한다. 논문이 완성되어 가고, 어느 시점이 되면, 지도교수가 학생의 논문을 전체적으로 꼼꼼히 읽어 보고, 여러 가지 문제점 및 개선안을 알려줄 필요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저렇게 이메일을 보내면, 안 읽어본다.

문제점이 뭘까? 일단 교수는 바쁜데, 학생이 연구한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하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위와 같은 식으로 질문/요구를 한다면,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생각해 내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다. 교수는 아마 그 일을,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중의 여유시간으로 미룰 것이다. 그리곤 잊을 거다.

학생이 작성하고 있는 논문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학생은 대체로 이미 알고 있다. 교수가 더 잘 알고 있다면, 학생이 논문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논문을 그저 도와주고 있을 확률이 높다. 공부를 안 해서 불안한 내용에서, 꼭 시험 문제가 출제되고, 프로젝트 발표를 하는 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자신이 없어 불안한 곳에서 꼭 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온다. 자신 없는 부분은 본인이 이미 알고 있다.

논문 전체를 던지는 대신, 자신 없는 부분에 대한 것을 콕 찍어, 질문을 쪼개서 간단하게 만든다. 그 리스트를 만들고, 그 리스트의 각각의 항목의 핵심적 질문을 쓴다. 그리고는 그 리스트를 논문과 함께 이메일로 보낸다.

아니다.

그 리스트의 항목 한 개, 혹은 두 개, 아주 많이 양보해서 세 개 정도만 보낸다. 질문이 얼마나 대답하기 쉬운 질문인지에 따라 달렸다. 질문을 쪼개고 쪼갰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답하기에 생각을 꽤 해 봐야 하는 질문이면 한 번에 한 개만 보낸다. 이메일로 질문하는 경우에, 그 이메일에 대답하기 위해 오랜 생각이 필요한 경우라면, 교수는 어쩌면, 나중의 여유시간으로 대답을 미룰지 모르고, 아마 그리곤 잊을지도 모른다.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보내면, 교수가 질문 하나에 대한 대답은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해서, 답장을 미루다가, 그 하나의 대답마저 못 듣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교수마다 반응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답장을 미뤘다가, 결국은 학생에게 답장하는 것을 잊은 경험이 있다.

물론, 연구라는 것이 아무리 단계를 쪼개고 쪼개도, 더는 간단해질 수 없을 때가 있고,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생각을 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을 거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여전히 질문의 단위를 쪼개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얻을 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질문하는 방식

쪼개진 물음도 질문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비교해보자.

  1. ABC 방법으로 접근했더니,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ABC 방법으로 접근했더니,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ABC 방법이 def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def 요소를 고려하는 DEF 방법이나, GHI 방법을 사용해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어느 방법이 더 나을까요?

1번의 질문도 교수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번 질문이 훨씬 더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다. 아주 간단하게는, 1번 질문은 주관식이고, 2번 질문은 객관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번 질문이 답변자가 생각해야 하는 길을 간략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학생이라면, ABC 방법으로 접근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왜 문제가 생겼는지, 어떤 대안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을 거다. 1번 질문에서는 학생의 그 고민을 질문에 포함을 시키지 않았고, 2번 질문에서는 그 고민을 질문에 포함했다. 교수는 학생의 고민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고, 학생이 이미 해 본 고민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면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기가 쉽게 된다.

2번과 같은 질문에서도, 교수의 답이 반드시 DEF, GHI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답이 아닐 수도 있다. 발생한 문제가, 실제로는 문제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도 있고, def 요소가 핵심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JKL 방법을 제안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1번 질문보다는 2번 질문이 훨씬 나은 질문이다.

물론 2번과 같은 방식으로 질문 할 경우에도, 이메일을 너무 길게 쓰면 안 된다. 핵심만 추려서 질문해야 한다. 이메일을 너무 길게 쓰면, 교수가 읽는 것조차 미룰지도 모른다. 핵심 내용을 도저히 간단하게 추릴 수 없을 경우에는, 간단하게 설명하고 언제 만나서 의논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자.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 만나서 해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 질문을 작은 단위로 쪼개다 보면,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 학생 스스로 해답을 얻을 가능성도 많다. 해답을 얻지 못해 질문하는 많은 경우는 본인 스스로 질문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일 수 있는데, 이 경우 질문 쪼개어, 질문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된다. 파인만 알고리즘(Feynmann Algorithm)에 대한 앞의 글을 참고하자.

지도교수는 대체로 학생들의 일을 도와주고 싶어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교수는 자신의 학생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학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혹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해야 할 때에는 도와주고 싶으나, 도와줄 수 없을 수도 있다. 교수에게 질문하고 요구 할 때, 만족스러운 대답과 반응을 원한다면, 교수가 대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여 줘야 한다.

그리고 이메일의 제목과 내용은 일치해야 한다. 잊고 있던 학생의 질문이 생각이 나서, 검색했는데,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제대로 찾기는 굉장히 어렵다. 실험 내용에 대한 대화를 하는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면서 학회에 보낼 초록에 대한 질문을 같이 보내지 말자. 새로운 이메일을 새로운 제목으로 쓰는 것이 옳다.

이 글은 사실, “하나의 이메일에는 하나의 질문/요구만을 담아야 하고, 될 수 있는 한 짧게 보내야 한다.”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이메일 예절을 쓸데없이 길게 쓴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가 대학원 진학 전에 참석했던 한 모임에서 접한 “교수의 시간을 아껴주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다.”라는 짧고도 함축적인 조언을 역시 쓸데없이 길게 쓴 것에 불과하다.

이메일 형식과 예절

이메일을 문자 메세지처럼 쓰지 않기를 바란다. 이메일은 사실 굉장히 “보수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많은 경우에 원래 종이에 써서 우편으로 보내던 것을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것으로 바꾼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도교수와 자주 교신하는 경우에는 그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문자 메세지만큼 캐주얼하지는 않다. 그래서 최소한의 형식을 지키는 것이 좋다. 영어로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를 살펴보자.

Dear Dr. <교수의 Last Name>, —- (1)

<본문> —- (2)

Thanks, —- (3)
<내 이름> —-(4)

이 정도가 최소한의 형식이다. 받는 사람과의 친밀도에 따라 1번, 3번, 그리고 4번을 어떻게 쓰느냐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라, 학교, 학과의 분위기에 따라서 지도교수를 First Name으로 친밀하게 부르는 경우도 있고,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잘 모를 때는 위의 예에서 처럼 정중하게 쓰도록 하자.

재미있게도 3번과 4번 항목에도 여러가지 선택 사항이 있다. 3번에서 자주 사용되는 맺음말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Best Regards
  • Regards
  • Best Wishes
  • Best
  • Sincerely Yours
  • Sincerely
  • Thanks

상황에 맞게 잘 써야 할 것이다. 판단이 잘 안 될 경우에는 정중한 표현인 “Best Regards”가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학생의 경우에는 자신의 First Name을 4번 항목 <내 이름>에 쓰면 된다. 예전에 어떤 직장인이 비행기에서 이메일을 쓰는 모습을 뒷자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일이 있었는데, 이메일 내용은 제법 빨리 채우더니 4번 자기 이름을 쓰는 곳에서 수십번을 쓰고 고쳐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메일 받는 사람들이 아마 상급자와 하급자, 그리고 외부 인사들로 섞여있었던 복잡 미묘한 상황이 아니었나 추측한다. 예를 들어 이름이 Donald J. Trump라면 굉장히 많은 선택 사항이 있다.

  • Donald Trump
  • Don Trump
  • Trump
  • Don
  • DJT

이메일을 같은 주제로 여러번 주고 받는 경우 답장을 보낼 때는 다른 부분을 다 생략하고 본문만 쓰기도 하고, 본문에 마지막으로 내 이름만 덧붙여 쓰기도 한다.

한글로 보내는 경우에는 비슷하게

홍길동 교수님께,

<본문>

감사합니다.
아무개 드림 (혹은 올림)

정도면 대부분의 경우 괜찮을 듯 하다.

이메일의 실제 예

다시 이메일 본문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로 돌아가서, 내 학생에게 받았던 이메일들 중에서 좋았던 이메일과 그렇지 않았던 이메일을 예로 들어보겠다. 이메일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익명성을 위해 다른 이름을 사용하였다.

Title: quick question for XXXXX case study

Hi Dr. Kwon,

I’ve asked Barrack Obama for the data of XXXXX network. But there is no data for link accident probability associated with each commodity (since your paper on generalized bounded rationality doesn’t need that data).

I am wondering how I can generate this type of data. I’ve checked your worst case CVaR routing paper and found a formula to calculate accident probability (only related to link distance). In that paper, there is no emphasis on multi-commodity. Does that make sense to provide all four kinds of hazmat for XXXXX network with same link accident probability in our model?

Thank you!
Michelle

제목도 비교적 명확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것을 시도해보았는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쉽게 답을 줄 수 있었다. 물론 내 대답은 간단한 예/아니오는 아니었고, 학생이 고려하지 않았던 점들을 알려줘야 했지만, 질문과 이메일 내용이 명확했기 때문에 손쉽게 학생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답을 줄 수 있었다.

다른 예를 보자.

Title: Figure

Hi Dr. Kwon,

Please check the diagram. It’s not the same as we expected.

Best regards,
Donald

학생과 미팅을 했을 때 컴퓨터로 계산 실험을 하기로 했고, 그 결과를 그래프로 그려서 이메일로 보내왔다. 학생이 보기에 그 그래프가 이상했고 미팅 시간에 이야기 하면서 예측했던 결과와 달라 보였기 때문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보내온 그래프에는 여러가지 메세지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 중 어떤 점을 말하는 것인지 나는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고, 게다가 미팅 시간에 어떤 것을 기대했었는지 잊어버렸다. 이 놈의 기억력 결국 어떤 점이 이상한지를 묻는 이메일을 다시 보내야했다. 학생의 이메일이 짧고 간결한 것은 좋았으나, 제목과 본문 모두 지나치게 간결했다.

다음 글을 참고하자.

 

 

 

사족. 같은 주제로 자주 대화를 주고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이메일이 사실 그리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Slack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그룹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학생과 연구에 대한 논의를 주고 받기 위해서 Slack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나도 학생도 아직 익숙하지 않다. 학교나 연구소에서 Slack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는 다음 글들에 잘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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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장비병

사진을 취미로 하시는 분들은 ‘장비병’에 대해서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내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괜시히 내 카메라와 렌즈가 저렴한 제품임을 탓하게 되고, 훌륭한 사진을 보면 괜히 어떤 장비를 썼는지 부터 확인하고 싶어지고, 수백만원을 들여서 좋은 장비를 갖추고 나면 정말 엄청난 사진을 매일 찍어 댈 것 같은 그 마음 말이다. 결국 통장에 남은 돈을 긁어 모아 갖고 있던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고 사진을 찍어 보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복잡한 기능을 다 익히기도 어렵고 무겁기만 하고 괜히 조작만 어려워진 느낌이다.

이런 거 집에 하나씩은 다들 있잖아요

연구를 할 때도 비슷한 욕구와 욕망이 생긴다. 같은 연구문제를 다뤄도 더 어렵고 복잡한 ‘방법’을 쓰면 내 연구가 더 멋져 보이고 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새로 나온 최신 수학 이론과 요즘 잘 나가는 컴퓨터 이론을 쓰면 내 연구를 더 빛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고 마음을 빼앗긴다.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것은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이지 고급 장비를 쓰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비싸고 좋은 카메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때에 맞는, 그리고 사진을 찍는 목적에 맞는 카메라와 장비가 필요하다. 어두운 실내에서는 그에 맞는 장비가 필요하고, 풍경을 찍을 때와 인물을 찍을 때는 필요한 장비가 다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의미 있는 순간을 찍으려면 폰카메라 처럼 작고 휴대 하기 편리한 카메라가 필요하다.

연구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질문에 답을 하고 싶은 건지,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가 첫번째로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지, 최신 방법론을 쓰는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궁금하던 물음에 적합한 답을 할 수만 있다면, 그 답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방법이 최신의 것인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아주 오래된 평범한 것인지는 그 다음 문제다.

박사학위로는 부족하다(원제: A PhD Is Not Enough!)’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가진 책에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신기술, 난해한 테크닉, 새로운 시약, 새로 동정한 미생물 등을 이용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인 연구생산성이나 생존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기술지향적(technic-oriented)인 것보다는 문제지향적(problem-oriented)인쪽이 훨씬 유리하다. ‘문제지향적’이란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학적 과제를 명확히 세운 다음, 때로는 기술을 새로 배우거나 개발해야 하더라도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기술에만 관심을 쏟으며, 이 기술이 적용될 수 없는 과학적 문제는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지향적 연구자는 학문적 리더로 오랫동안 살아남을 확률이 거의 없다. 문제지향적이라고 해서, 문제해결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터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신은 학문적 리더가 되고자 하는 것이지 기술적 리더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마다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해서 연구를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는 곧잘 “내 기술로 이젠 또 뭘 손대볼까?”하는 식의 나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표현해 주었다. ‘장비병’에 걸린 사진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의 한 기계설비를 만드는 업체에서 기계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미세한 소음을 잡지 못 해 애를 먹고 있었단다. 국내 유수의 전문가들에게 이 어려운 문제 해결을 부탁했더니 음향 분석, 영상 분석, 진동 분석, 열 해석 등의 기술을 동원해 그 원인을 찾고자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해외에서 주목받던 최신 신기술로도 해결을 못 해 전전긍긍하다가, 일본의 한 전문가에게 부탁을 했고,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 전문가가 한국의 그 업체에 사용한 도구는, 놀랍게도 청진기였다. 소음이 나는 곳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청진기로 소리를 들어가며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지 찾아낸 것이다. 사용한 도구는 고급 도구가 아니었지만,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그럼에도 새로운 연구방법과 신기술은 여전히 중요하다. 훌륭한 연구 결과물은 새로운 연구 방법론 개발 혹은 새로운 연구 방법론의 응용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연구자들이 기술지향적인 접근을 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연구 주제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방법론 개발 및 응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예 새로운 연구 방법을 만들든, 아니면 다른 연구 분야에서 개발된 연구방법을 가져다 응용을 하던 말이다. 좋은 연구 주제는 여려 가지 상황 변화로 인해 새롭게 나타나고 발견된 문제이거나, 보편성을 가지고 널리 알려진 문제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문제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문제이므로 자연스럽게 그 문제에 적합한 방법론 개발이 필요하다. 아예 바닥부터 새롭진 않더라도, 새로운 문제에 맞는 변형이 필수적이다. 보편성을 가진 문제는 이미 수많은 연구자가 다루었던 문제이므로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려면 새로운 연구 방법을 개발하거나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경우에는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사용했더라도 여전히 기술지향적이 아닌 문제지향적인 접근이다.

물론, 연구에는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문제지향적인 접근이 기술지향적인 접근보다 항상 낫다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그러하단 말이다. 기술지향적인 접근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연구 결과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말이야, 새로운 기술이 세상에 나왔길래, 심심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한 번 내 연구 주제에 적용시켜봤지. 그랬더니 있자나, 헐, 대박” 이런 경우 말이다. 깜짝 놀랄 만한 연구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결론은 “뭐, 재밌긴 한데, 잘 안 되네”일 가능성이 높다. 저런 넘치는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박사과정 학생의 중심 연구 주제로 삼기에는 위험하다. 그래서 보통 이런건 교수들이 석사 학생에게 시킨다. 아 미안.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기교가 끝나는 순간 예술이 시작된다.”

클래식 음악 예술계의 누군가가 한 말인 것 같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대체로 기교를 익히고 익혀서 완전히 능숙하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예술을 표현할 준비가 되었다라고 이해한다. 기교를 완전히 마스터 하지 않고서는 예술가가 될 준비도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연구에도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연구 방법을 확실히 마스터 해야 한다.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필요한 기초 수업들에 나오는 내용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진다.

기교를 마스터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한 위의 말은,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기교 자체가 예술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을 위해서는 기교가 필요하지만, 기교가 예술의 본질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물음에 답을 하고자 하는 지이지, 어떤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썼다는 사실이 아니다. 최신 기술을 사용해서 연구를 하는 경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이지 최신 기술을 사용해 봤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기술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기술이 연구의 본질이 아님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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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가, 아닌가?

지금 대학원에 와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연구인가, 아닌가?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연구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은 연구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하는지 알아보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If we know what it was we were doing, it would not be called research, would it?”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우리말 부분은 내가 적당히 번역한 것이다. 여러가지로 음미할 수 있는 말이지만, 우선 ‘모른다’에 주목해보자.

다음 어학사전은 ‘연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어떤 일이나 대상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이치나 진리를 밝힘’. 구글과 메리엄-웹스터사전에서는 ‘research’를 각각 ‘the systematic investigation into and study of materials and sources in order to establish facts and reach new conclusions’과 ‘careful study that is done to find and report new knowledge about something’이라고 정의한다. 뭔가 조심스럽고 깊이있게 접근해서 결국 새로운 이치나 진리를 얻는다.

아인슈타인의 말과 한 번 조합해보면, 연구란 뭘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 열심히 하다가,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인 것 같다.

이 정의는 말은 잘 되지만, 조금 뜬구름을 잡는 듯 한 느낌이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연구가 아닌지 알아보자. 좀 더 정확히는 무엇이 연구의 ‘목표’인지 아닌지 알아보자. 내가 연구 제안서를 쓸 때 아주 큰 도움을 받은 글이 있다. 미국 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의 공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신 George Hazelrigg의 ‘Honing Your Proposal Writing Skills’라는 글이다. 구글에서 ‘NSF CAREER Proposal Writing Tips‘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경전처럼 생각하며 종종 다시 읽어보는 문서이다.

이 문서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There are many words that, to reviewers, mean “not research.” These include “develop,” “design,” “optimize,” “control,” “manage,” and so on. If your statement of your research objective includes one of these words, for example,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develop….,” you have just told the reviewers that your objective is not research, and your rating will be lower.

무엇인가를 개발(develop), 설계(design), 최적화(optimize), 제어(control), 관리/조종(manage) 등을 하는 것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거다. 재미있다. 공학 분야에서는 저런 것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하는 논문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고, 심지어 연구 제안서에서도 저런 것이 목표라고 하는 연구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그것이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한다. 순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국과학재단에서 수십년간 일해오신 분께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이 분이 더 재미있고 더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해주신다. 공학 연구의 목표를 기술하는 방법은 자신이 알기로는 단 4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1.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test the hypothesis H.” (가설 검정)
2.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measure parameter P with accuracy A.” (측정)
3.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prove the conjecture C.” (추측 증명)
4.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apply method M from disciplinary area D to solve problem P in disciplinary area E.” (학제간 융합 연구)

사회과학과 공학이 어렴풋이 겹쳐지는 분야를 연구하는 내가 보기에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저 4가지 범주 이 외의 일반화된 연구 목표 기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법도 하다.

내 분야의 NSF 프로그램 담당자께서 해주신 조언이 있다. 어떤 연구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그 결과로, ‘지금은 우리 인류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비교적 명확히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NSF에서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처음의 사전적 정의와 일맥상통한다. 아인슈타인의 말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인슈타인 본인도 연구 제안서를 쓸 때 즈음 되서는 목표가 비교적 명확해졌을것이라 (내 마음대로) 추측해본다.

그럼 위에서 언급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무엇일까? 이런 단어를 언급하는 연구 논문과 연구자들이 아주 많은데,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하니 그 실체가 궁금해진다. 내가 볼 때 이것들은 어떤 연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활동들이다. 언급한 활동들 자체가 연구는 아니지만, 저 활동을 하지 않고 연구를 할 수는 없다. 저런 행위들이 연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작업(task)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박사학위를 받았을 당시만 해도 나는 저런 행위들이 연구 그 자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Hazelrigg의 글을 읽었을 때는 많이 놀랐다.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는 ‘연구’는 지도교수님께서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일을 도우면서 연구에 필요한 여러가지 활동들, 즉 개발, 설계, 최적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구가 뭔지도 모르면서 연구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았던 걸 보면, 나만 그랬던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연구의 목표와 작업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연구에 필요한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었으니,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틀린 말은 아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자. 예를 들어 어떤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을 생각해 보자. Hazelrigg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연구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일 수는 없다.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은 분명 중요한 연구 행위이지만,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연구의 목표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만일 그 알고리듬이 동물 사진 중에서 고양이 사진을 골라내는 알고리즘이라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것이 목표이지, 알고리즘 개발이 목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차이는 명확하다.

심지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는 분들도 단지 고양이 사진 구분만이 연구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잘 인지하고 있을 거다. 고양이 사진, 개 사진을 넘어선 그 너머 어딘가에 ‘목적’이 향하고 있을 거다. 작업과 목표, 그리고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자.

작업(task): 일정한 목적과 계획 아래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일을 함
목표(objective): 활동을 통하여 이루거나 도달하려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목적(goal): 이루려고 하는 일이나 방향

작업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며, 목표는 그 작업이 이루려는 대상이며, 목적은 궁극적으로 내 연구의 목표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다.

연구에서 처음부터 목적과 목표가 명확한 경우는 잘 없다. 처음부터 목적과 목표가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라면 운이 좋다. 지도교수님이나 연구실의 다른 선배들이 이미 갈 길을 잘 닦아 두었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1단계 ‘문제를 쓴다’ 부분이 해결 되었기 때문에, 이제 다양한 연구활동 및 작업을 하며 ‘진짜 열심히 생각’하면 되겠다.

자신의 연구 방향을 잡고 싶은 학생, 혹은 지도교수님이 하라고 시킨 이 연구의 방향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은 학생은, ‘연구 주제에 대해 삼단계로 말해보기’ 방식을 이용하면 좋겠다. ‘A Manual for Writers of Research Papers, Theses, and Dissertations‘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음의 예를 보자.

(당신은 무엇에 대해 공부하고 있나요?)
1. 저는 X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그 주제를 공부하고 있지요?)
2. 왜냐하면, 저는 왜 Y인지 알고 싶거든요.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3. 그러면, 제가 다른 사람들이 왜 Z인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거든요.

1단계는 연구에 필요한 활동 혹은 작업(task)이다. 개발, 설계, 최적화 같은 것들 말이다. 2단계는 연구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지식이며 연구의 목표(objective)이다. 3단계는 연구의 목표를 이룸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목적(goal)이며 연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대학원생일 때는 주로 1단계에 모든 시간을 쓰고,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하지만, 2단계와 3단계, 그러니까 연구의 목표와 목적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보면서 연구를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에서 묻는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을지 모른다. 대신 내가 하는 연구활동과 내가 세운 연구의 목표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좋은 연구를 하는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학생 시절 그랬듯이, 논문의 다른 부분은 다 잘 쓸 수 있는데, 첫번째 서론(Introduction)부분을 잘 쓰지 못하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연구의 방향을 잘 파악하고 이해한다면 적어도 서론 부분은 조금 더 명확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음 후속연구에서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도 잘 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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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비법: 파인만 알고리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연구를 잘할 수 있는 비법이 있다. 내가 만든 비법은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문제 해결법이다 1.

Feynman Algorithm
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real hard.
3. Write down the solution.

파인만 알고리즘
1. 문제를 쓴다.
2. 진짜 열심히 생각한다.
3. 답을 쓴다.

참 쉽죠?
참 쉽죠?

나는 이 알고리즘을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 처음 접했다. 황당하다고 생각했고, 파인만 같은 천재들에게나 해당하는 문제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후 시간이 흘러서, 대학원생일 때 이걸 다시 봤을 때는 2번 항목에 감명을 받았었다.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방법 중에, 저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도대체 뭐가 있을까를 생각 했다. 열심히 생각하는 것 이외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답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 본다 따위가 있을 수 있겠으나, ‘직접’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다. (물론, 답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 보는 해결 방법에서도, 누가 답을 알고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 봐야 한다.)

여전히 2번에 대해서는 강한 동의를 하고 있지만,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은 1번 항목이다.

‘문제를 쓴다.’

이것은 내가 풀어야 할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하다. 문제가 뭔지 모르는 데, 문제를 어떻게 쓸 수가 있을까?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가 풀고 싶은 문제가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풀어야 할 문제를 정확히 알고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 봐야, “문제”를 풀지도 못 하고, 소위 ‘삽질’만 하게 된다.

파인만이 제시한 문제 해결 방법 1단계, 2단계, 3단계는 같은 크기의 중요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단계가 가장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첫번째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려우며, 세번째도 어려움으로는 뒤처지지 않으며 비슷한 수준으로 중요하다.

파인만의 문제 해결 방법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일반적인’ 문제에 모두 적용된다고 생각하지만,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에 국한시켜 이야기 해 보자.

공부를 하면서 만나는 많은 연습 문제들과 시험 문제들은, 1단계를 누군가가 잘 해 놓은 것이다. 문제는 아주 잘 씌여져 있다. 그래서 1단계가 필요없다. 대신, 이런 경우에 1단계는, 문제를 ‘잘’ 읽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지’ 해야 한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알고 있었는데, 문제를 잘 읽지 않아서, 잘못된 답을 해 본 경험이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런 경우에는 조금만 조심하면 1단계는 비교적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내가 1단계를 직접 해서, 문제를 써야 하는 경우는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 연구를 해서,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많은 연구 초심자들은 도대체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모를 때가 많다. 연구라는 것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아예 감도 잡지 못 한다. 석사과정 학생들에게, 혹은 박사과정 학생들 까지도, 지도교수가 논문 주제를 던져주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다. 어떻게 해야 도대체 ‘문제’ 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지를 모른다.

조금 감을 잡았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를 정확히 기술 하는 1단계를 통과하기에는 많은 과정들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서, ‘대형 지진 발생 이후의 대처법’ 이라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서 연구를 하기로 했다고 하자. 이것은 ‘연구 분야’가 될 수는 있을 지언정, ‘문제’는 전혀 아니다.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대형 지진 발생 이후의 적절한 구호 물자 운송방법’ 에 대해서 연구를 하기로 했다고 하자. 많이 좁혀졌지만, 아직 ‘문제’는 아니다.

이제 범위를 좁혔으니, 무엇이 정말 ‘문제’가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만들어낸’ 문제와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는 전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Financial calculus: an introduction to derivative pricing” 이라는 책의 서문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문제에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서 헛수고를 하고 있다고 나온다 — finding precise answers to the wrong questions. 파인만 문제 해결법의 첫번째 단계에서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지진 발생 이후의 물자 운송방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있을 법한 문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A 라는 빈도로 z 라는 지역에서 구호 물자에 대한 수요가 발생할 때, 얼마나 자주 x 지역에서 z 지역으로 물자를 수송해야 할까?

이것은 ‘문제’ 이다. Problem 혹은 question 이긴 하지만, wrong question 일 수는 있다. 예를 들어서, 실제로 B 라는 지역에서 수요는 A 라는 빈도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AA 라는 빈도로 발생한다고 하면, 이것은 wrong question 이다.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를 하다가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결국 포기 했던 것들도 꽤 많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거의 모두가 실제로는 문제를 찾을 수가 없을 때였다.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을 때는, 열심히 하면 —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 대부분 문제가 풀렸다. 논문은 아니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한 것이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 소위 버그가 있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제대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는 좋은 문제가 아니다. 좋은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단계로 나누어야 한다. (1) 어떤 결과가 제대로 나오고, 어떤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가? (2)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은 잘못된 코드 때문인가, 혹은 잘못된 알고리즘 때문인가? 더 나아가서, 알고리즘이 풀려고 하는 문제 자체가 잘 못 된 것인가? 등으로 나누어서 문제를 정의 하고, 열심히 생각하면, 대부분 해결 된다.

연구는 사실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 혹은 질문을 찾는 과정이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가장 첫번째에 ‘문제를 쓴다’가 오게 된 것은 깊은 통찰력의 결과물이라고 믿는다1.

파인만은 위대하다.

(‘연구의 비법’편은 글 세 편 정도의 시리즈로 묶어볼 예정입니다.)

1. 사실은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이라는 동료 물리학자가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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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구하기

박사과정을 하다 보면,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히 하는 데, 지도교수는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고, 교수가 졸업 준비를 시켜주지 않는다.”

혹은 조금 더 자세히 “나는 교수가 하라는 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교수가 자꾸 논문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기만 하고, 논문 진도는 안 나가고, 도대체 교수는 생각이 있는 건지, 이 교수 밑에서 배울 게 있는 건지, 내가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놀라울정도로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이런 말을 하는 순간을 맞는다. 지도교수가 정상적으로 연구생활을 지속해 나가고 있는 분임에도 그런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 분의 연구 결과물이 세상을 놀래킬만큼 뛰어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교수도 연구 활동을 계속 하고 계신 분이고, 그렇다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흉폭한 ‘갑질’을 일삼는 분도 아니고, 학생은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일단, 교수가 하라는 대로 했기 때문에 문제다. 정확히는 교수가 뭘 하라고 말하게 놔둬서 문제다. 박사 학위 논문은 학생 본인이 쓰는 거다. 물론, 처음에는 지도교수가 이런 거 저런 거 하라고 하는 거 해 보면서, 연습도 하고 실력도 쌓고 논문도 읽으면서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박사 말년차 때 까지 계속 된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 진다. 교수는 일단 기본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면 성과를 내서 졸업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연구해서 졸업할 수 있을만한 (대체로, 출판할 수 있는) 논문을 쓸 수 있는지 안다면, 그건 이미 연구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일단 가슴 속에 명심하자. “교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물론 지도 교수 말고, 다른 교수들도 아무 것도 모르고, 이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모른다. 알기 위해서 연구를 하는 거고, 그래서 박사학위를 주는 거다.

박사 과정에 들어간지 2~3년차가 되면, 일단 어느 정도 연구가 어떤 건지 감은 잡았다고 보고, 그 단계에 들어서면, 더 이상 논문의 주인이 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 본인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이 주인이 되기를 꺼려하고 있다면,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무언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이것 저것 시켜보기 시작한다. 학생이 감을 잡고 연구 주제를 정하고 연구 방향을 정하고 연구 방법을 정하기 어려워 하는 것 같으면, 지도교수는 도와주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이것 저것 시도를 해보게 한다. 그러다가 학생이 언젠가 주인임을 선언하고 나서기를 기다리며. 그런데 이 시도라는 게 그야말로 시도다. 앞서 말했듯이, 교수도 뭔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이는 몇 가지를 시켜볼 거다. 근데 당연히 안 될 가능성도 많다. 그래서 연구하는 거니까.

학생이 이 몇가지 시도를 해 보고 나서, 잘 안 되었을 경우에는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첫번째는, 관련 논문들을 읽어 보고,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보고, 대안을 생각해서 교수에게 말한다. “이렇게 이렇게 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교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아예 말이 안 되는건 아닌지를 따져 줄 거다. 이건 좋은 경우.

두번째는, 교수가 시키는 (사실은 시킨 게 아니고,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를 한 것) 대로 “열심히” 해 보고 안 됐기 때문에, 다시 교수를 만났을 때, “잘 안 되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 본다. 아주 안 좋은 경우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뭔가 질문이 들어오면 대체로 대답을 해 준다. 왜냐하면, 학생의 질문에 답을 주려고 노력 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사 수준의 연구에서 교수의 대답이라는 건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왜냐하면, 교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답이 아니다. 아마 “잘 안 되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보면, 교수는 또 뭔가 이것 저것 말 해 줄꺼다. 그러면 학생은 또 돌아가서 시킨 대로 열심히 해본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당연히 논문은 진도가 안 나갈 것이고, 학생은 초조해 지기 시작할 것이다. 교수가 이런 말을 할 지도 모른다. “이 상태로는 졸업이 어렵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학생은 교수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맨날 했던 말을 “뒤집고”, 방향을 “바꾸고” 했던 것은 교수인데 왜 졸업을 못 시켜주겠다는 건가? 학생은 불평 불만이 아주 많을 것이고, 화도 날 것이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기분일 것 이고,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교수는 “뒤집고”, “바꾸고” 했던 적이 없다. 학생의 도움 요청에 반응을 했을 뿐이다.

학생의 연구 내용은 그 학생이 가장 잘 안다. 연구의 큰 줄기는 지도 교수가 파악하고 있을 수 있으나, 세부적인 사항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향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학생이다. 지도교수는 그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줄 뿐이다.

지도교수가 자기 논문을 쓰게 만들면 안 된다. 자기 논문은 자기가 써야 한다. 물론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고 방향을 정하고 여러가지 결정을 내려도, 졸업 후에 돌아보면, 결국 자기 논문은 지도교수가 기여한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그래도 어쨌든, 학생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자기 논문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졸업할 수 있다. 그렇게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 박사학위 이며,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졸업논문을 완성할 가능성도 매우 낮을 것이다.

최종발표 때 지도교수를 놀라게 하지 말자.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지도교수를 연구에서 배제하고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지도교수는 학생이 어떤 주제의 연구를 어떤 흐름을 가지고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지도교수를 주기적으로 만나서, 자기가 어떤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연구를 하고 있고, 지금 상황은 어떤 상황이며, 졸업 논문 전체의 구성은 어떻게 될 것이며, 앞으로 시간 계획은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업데이트를 시켜줘야 한다. 만일 교수가 생각하기에 문제가 될법한 것들이 있다면, 조금 더 자세히 물어 볼 것이며, 그것이 정말로 문제가 된다면, 교수가 지적을 해 줄 것이고, 어쩌면 해결 방법이 될 수도 있는 여러가지 대안들을 알려줄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교수는 학생의 연구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지도교수가 학생의 연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면, 당연하게도, 학생 본인이 준비가 되었다 안 되었다를 어떻게 판단하든, 지도교수는 학생이 졸업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 할 것이고, 아마 뭐가 잘 못 됐다면서 연구를 다시 하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끊임 없이 업데이트를 시키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최종발표를 하려고 하는 내용에 지도교수가 놀랄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안 된다.

간단하게만 업데이트 시키는 경우에도, 만날 때 마다 했던 이야기 또 해야 한다. 매주 혹은 2주마다 지도 교수를 주기적으로 만나는 학생의 경우에도 이런 불만을 터트릴 수 있다. 교수가 지난 미팅 때 했던 이야기를 전혀 기억 못 하고, 했던 이야기 또 해야 한다. 당연하다. 교수는 원래 학생 연구를 자세히 기억하지 못 한다. 학생은 교수랑 일대일로 만나는 거지만, 교수는 만나야 할 학생도 많고, 자기 연구 생각하는 것만 해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교수가 학생 연구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면, 아마 그건 학생 연구가 아닐 거다. 교수 연구를 학생이 도와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 연구하기

많은 경우에, 특히 이공계 그 중에서도 생물학과 관련이 있는 분야에서, 지도교수가 전체 연구를 지휘하고 있는 가운데, 포닥과 박사과정 학생들이 어우러져서 몇 몇 부분의 실험과 분석을 맡아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도교수와 박사과정 학생이 일대일로 연구할 때도, 지도교수가 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에 박사과정 학생이 그 연구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지도교수가 잘 알고 관심있는 분야의 연구 주제로 연구 제안서를 써서 연구재단 등으로 부터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하고 있는 경우다. 그야말로, 위에서 말한 교수 연구를 학생이 도와주고 있는 경우다. 이 상황에서 학생이 자신의 연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지도교수가 지난 수년간의 연구해온 분야이니 이 연구 주제에 대해서 만큼은 지도교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을터이니 지도교수가 시키는대로 실험해보고 그 결과를 보고 하는 것 이 외에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있으니까 묻겠지…

실제로 내가 ‘교수’로써 겪은 경험도 대체로 비슷하다. 내가 직접 연구 제안서를 써보니, 제안서가 완성이 되고 연구비를 받게 될 때 즈음이면, 이미 내 머리 속에서는 대체로 그 연구의 결말이 보인다. 제안서가 자꾸 떨어지다 보니 제안서 수정해서 반복해서 제출하는 시간 동안 연구가 끝났… 이런 문제를 이렇게 저렇게 해서 풀면 흥미로운 연구가 되겠지.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직접 조금 해보기도 하고 그 방향이 희망적으로 보이면 제안서를 쓰게 되고, 그 제안서를 읽는 사람들도 방향이 희망적이라고 생각되면 연구비를 주기로 결정하는 것이니, 내가 제안서에 써 놓은 그 방법대로 열심히 실험하고 분석하면 끝날 일이 아닌가. 교수가 모든 부분을 다 할 수 없으니, 연구비로 학생을 고용하는 것이고, 그 학생이 내가 제안한 방법을 열심히 실행하면 되는 것이겠지.

그런데 왠 걸, 연구비를 받고 실제로 연구를 진행 해 보니, 생각지 못 했던 문제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마 전체적인 연구방향은 잘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충분히 경험 있는 교수가 A->B 라는 길이 되는 길이다 라고 생각했고 심사하는 사람들도 그 길이 말이 된다라고 동의했으면 웬만하면 그 길이 되는 길이리라. 하지만 B라는 최종 목적지에는 예상했던대로 도착하더라도, 실제로 A에서 B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다를 수 있다. 그 길을 찾아가는 동안 학생이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심지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아주 새로운 연구가 탄생하기도 해서 A에서 출발했더니 B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M에 도착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A라는 조건 아래에서 B라는 가설이 옳음을 보이는 것이 연구 프로젝트의 방향이라고 하자.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교수는 아마 제안서에 여러가지 가능한 방법을 제시했거나, 그 가설이 옳다는 신호를 보내는 몇 몇 선행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방법을 적용해서 실제로 연구를 해 보면, 그 방법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했더니 그 생각대로 다 잘 되는 연구는 아마 ‘뻔한 연구’일 수도 있고, 누군가 이미 다 해서 새로운 것이 별로 없는 연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재밌는’ 연구는 대체로 생각했던 대로 잘 안 된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면, B라는 가설을 세운 것은 교수의 연구이지만, 그 가설을 실제로 테스트하는 것은 학생의 연구일 수 있다.

제안된 방법으로 연구를 하다가 잘 안 되었을 이 때가,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학생에게는 자신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좀 더 정확히는 자신만의 연구 문제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이다. “(지도교수가 제안서를 쓸 때도 고민을 했었고, 제안서를 심사했던 전문가들도 그에 대체로 동의를 했으니) 잘 될 것 같아 보이는 이 방법이 실제로는 왜 잘 안 될까?”를 묻고 그 이유를 알아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보고 테스트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굉장히 흔하게 발생한다. 이 전까지는 지도교수의 연구를 학생이 도와주고 있었지만, 이제는 역전이다. 학생의 연구를 지도교수가 도와줄 차례이다.

내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혹은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이 단계에서는 말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답을 준 적이 없는 물음에 내가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니 그 자체로 중요하다. 행여나 답을 찾아내는 데 성공이라도 했다하면,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달라 보일 것이다. 나의 작은 꺠달음이 이 세상을 달라 보이게 한다. 나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이 그 얼마나 흥분되는 순간인가!

물론 잘 안 된다. 연구에서는 잘 되는 경우보다 잘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한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고 나면, ‘안 되는 것’ 혹은 새로운 문제점들이 몇 개는 더 생긴다. 아우 썅, 내가 진짜 한 번에 되는 꼬라지를 못 봤다.

잘 안 되면 지도교수와 의논하자. 지도교수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지도교수에게 물어보면 아마 또 몇가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방안을 말해주겠지.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당연히 논문은 진도가 안 나갈 것이고, 학생은 초조해 지기 시작할 것이다. [무한반복] 지도교수가 ‘시키는’ 일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시키는 것 이 외의 길을 찾지 않을 때와, 나의 작은 연구 주제를 찾아서 그 연구를 하기 위해 지도교수에게 조언을 구해 ‘제안받은’ 일을 해보는 것은 모든 것이 전혀 다르다.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를 해 나가는 동반자가 된 것이고, 이 때 지도교수와 학생의 차이는 경험 말고는 없다.

이런 식으로 ‘내 연구’가 쌓이면 지도교수와 만나는 면담 혹은 회의 시간은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아니라, 학생이 지도교수를 ‘개인교습’하는 시간으로 점점 바뀌게 된다. 교수는 몰랐던 문제에 대한 답을 학생이 알아내는 게 많아진다. 하산할 때가, 졸업할 때가 다가 온 것이다.

내가 길게 말 한 것이 정리가 잘 안 된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교수도 잘 모른다.” 교수가 멍청해서 잘 모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잘 모른다. 그래서 연구다. 한 가지를 더 기억할 수 있다면, 이 점을 명심하자. “그런데, 교수가 잘 알게 돼야, 학생이 졸업한다.”

이 글은 제가 이전에 썼던 글, “박사과정 학생이 유의해야 하는 점”“박사과정… 교수… 덧붙이는 글”을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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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학생, 나쁜 학생, 이상한 학생 (2편)

지난 글에서는 박사과정 기간을 제법 훌륭히 보낸 학생 A를 만나봤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학생들을 만나보자.

학생 B

학생 B는 지도교수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며 존중할 줄 아는 심성을 가진 학생이었다. 지도교수는 학생보다 대체로 경험이 많고 연구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분명 학생이 지도교수의 말을 존중하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학생 B는 그 정도가 지나쳐서 지도교수가 말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시간을 보내거나 의견을 내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거나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학생은 매주 정해진 미팅시간 이 외에 지도교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서류처리 따위를 위해서 지도교수의 서명이 긴급히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미팅시간에는 주로 학생과 교수가 몇가지 아이디어에 대해서 의논하다가, 그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보고, 한 번 간단히 시도해보고 잘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해보자라는 식으로 마무리짓곤 한다. 학생 B는 ‘그 괜찮아 보이는 한가지 아이디어’에 대해서 ‘미팅 시간에 의논했던 그 간단한 시도’를 적당히 해 본 뒤 그 다음 미팅시간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가 걸렸건, 실패를 했건 성공을 했건 상관없이 말이다. 자신이 직접 판단해서 무언가 모험적인 시도를 하는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 학생과는 2년 정도를 그렇게 보냈다. 연구가 진척이 있었을리 없었고, 학생과 나 모두 지쳤다. 결국 이 학생은 박사과정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둬야했다. 이 학생이 그만두게 되는 과정에서 학과의 대학원생 지도를 총괄하는 교수님과 면담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지도교수의 의견에 ‘아니오’라고 해도 된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놀랐다고 했다.

학생 C

학생 C는 중도에 지도교수에게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중간에 지도교수를 바꿔야 했던 학생이다. 학생 C는 수업 성적도 좋았고, 연구와 관련된 여러가지 일들도 제법 잘 하는 학생이었다. 지도교수와 여러가지 연구 및 개발 프로젝트를 했고, 그 일을 바탕으로 논문도 출판했다. 다만, 중간 중간 갑자기 연락이 안되고 사라지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한 번은 논문 제출 기한을 한 달여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차에 이 학생과 연락이 안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논문 제출 기한을 넘겨서 다시 나타났다. 화가 난 지도교수가 추궁을 하니, 인터넷 및 전화가 되지 않는 산악 지대에 있는 국립공원에서 야영장 관리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고 했다. 학생 C는 더 이상 그 지도교수와 일할 수 없었고, 다른 지도교수를 찾아야했다.

학생 D

학생 D는 수업 성적이 아주 좋은 학생이었다. 학과 내 다른 대학원생들과 비교했을 때 수업 성적으로는 최상위 5% 내에 들어가는 학생이었다. 학부과정과 석사과정을 좋은 대학에서 보내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이 학생이 박사과정 1년차 때 들었던 수업에서는 모두 최고 성적을 받았으며, 이 학생을 가르쳤던 교수들은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이 학생은 무사히 졸업 하긴 했으나, 이 학생과 함께 했던 연구가 썩 즐겁진 않았다. 정해진 연구 회의 시간을 미루는 일이 잦았고, 연구가 진행되는 속도도 더뎠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었겠으나, 내가 의심컨데 학생 D는 전형적으로 ‘강의실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만 연구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답이 있음이 잘 알려진 연습문제를 교수가 알려주는 방법으로 ‘열심히’하기만 하면 잘 되는 수업에서는 정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공부하지만, 연구는 그렇지 않음에 어려움을 느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연구에 집중하지 못 하고 결국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연구에서는 답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다. 동기부여도 부족했고 그로 인해 시간 관리도 잘 하지 못 한 것 같다.

학생 E

학생 E도 학생 D와 비슷했다. 수업시간에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었다. 해야 하는 연구가 있음에도 불구 하고, 연구보다는 수업 성적에 더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학생 D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듯 했으나, 그보다는 훨씬 더 좋은 연구를 했고 더 좋은 성과를 냈다. 내가 판단컨데 가장 큰 차이점은 학생 E는 지도교수의 연구실에 자주 찾아와서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의논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학생 D는 연구와 관련된 궁금증으로 지도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학생 A만큼 자주 왔던 것도 아니고 질문이 잘 정리되어 있지도 않았지만, 학생 E는 자주 찾아와서 연구와 관련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면서 자기 연구를 해나갔다. ‘강의실 모드’에서 ‘연구실 모드’로 바뀌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 지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학생 F

학생 F도 중간에 지도교수를 바꿔야했다. 처음 만난 지도교수와는 1년 정도를 같이 보냈는데, 그 지도교수가 불같이 화를 내며 이 학생과는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음을 통보했다고 한다. 상심 끝에 새로운 지도교수를 찾는 과정에서 나와 연락이 되었고 함께 해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학생과의 연구를 굉장히 즐겼다. 학생 A만큼 독립적인 학생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나의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였다. 연구 성과가 나왔을 때면 다음 주의 미팅 시간 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이메일로 소통을 했고, 때로는 내 연구실에 찾아와서 연구 진행 사항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을 내기도 했다. 미팅 시간에 정한 ‘이번주에 해보기로 한 것들’을 마치자마자 그 다음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판단으로 여러가지 실험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또, 내가 ‘참’이라고 믿었던 몇가지 생각의 오류를 발견해 내기도 했다. 물론 자신의 생각에 대한 오류도 자기 스스로 발견해내기도 했다.

이런 학생은 교수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된다. 나는 이 학생을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생각했다. 교수의 의견을 적절한 선에서 존중하여 말을 귀길울여 듣되,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교수의 생각을 의심할 줄 알았다. 내가 제안했던 방법이 잘 되었을 경우에는 그 다음 단계를 미리 보고 자신 만의 로드맵을 만들어 나갔으며, 내가 제안한 방법이 잘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자신만의 대안을 만들고 시험할 줄 알았다. 연구는 그 누구도 답을 갖고 있지 않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교수라고 다 알 수는 없다. 언제나 100% 확신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수도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스스로 오래 반복해서 생각해보거나, 혹은 주위의 동료 연구자의 의견을 물으면서 검증해나간다. 그 ‘동료 연구자’가 내 지도학생이라면 아주 큰 힘이 된다. 나는 학생 F가 굉장히 자랑스럽고, 이 학생을 지도하면서 많은 기쁨을 누렸다.

이 학생이 왜 첫번째 지도교수에게 이별통보를 받아야만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학생이 성장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단지 그 지도교수와 잘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학생 F는 성공적인 박사과정 기간을 보냈다.

내가 바라는 박사과정 학생

내 생각에 박사과정 기간을 가장 훌륭히 보냈던 학생은 학생 A와 학생 F인 것 같다. 다른 학생들이라고 지금 인생을 잘 못 살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박사과정 기간에서만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새로운 박사과정 학생을 뽑을 때 바라는 학생 유형은 역시 학생 A 또는 학생 F이다. 그러면 그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었나를 돌아보면 나는 두 가지로 정리한다. 호기심과 책임감.

교수들마다 박사과정 학생에게서 보고자 하는 점들이 다르겠지만, 나는 ‘호기심’ 있고 ‘책임감’ 있는 학생을 바란다. 글에서 계속해서 학생이 지도교수를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를 강조했다. 연구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지도교수를 찾아오지 않고 무작정 다음 미팅 시간을 기다리는 학생을 볼때면 ‘궁금해서 어떻게 기다리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지도교수가 제안한 방법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이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보지 않는 학생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지도교수의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은 이유가 왜 궁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나는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며 해결책을 찾아내거나 이유를 알아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학생을 바란다. 책임감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자신의 연구는 자신의 것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다 보면 없던 호기심도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은 그 다음 문제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지만, 모든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기는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다른 학생들

위에 소개한 학생들은 내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학생들이다. 다른 분들의 글 속에서도 참고할만한 사례가 있으니 소개한다.

먼저 “Applying to Ph.D. Programs in Computer Science”라는 글에 나오는 사례다.

Student X comes from famous school Y in country Z, where he was ranked 5th out of over hundreds of thousands of students and #1 in his college graduating class. The student comes to graduate school expecting to be the best and starts working very hard on research. By the end of his first or second year, the student realizes that he has not yet published any papers. His friends and family from home start asking what’s wrong with him. He feels frustrated and ashamed. He blames his advisor, he blames his department, he blames his school. Finally, he grows up and accepts the fact that maybe he’s not the best, but he can still do well if he works hard. He starts listening better, works harder, and ends up quite successful.

이 문서의 두 번째 장은 “Do I really want a Ph.D.? What does a Ph.D. entail?”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박사과정을 고민하거나, 이미 박사과정에 들어온 학생들이라면 꼭 한 번씩 읽어 보길 권한다. 단어 하나 놓칠 것이 없다.

두 번째 참고할만한 사례는 “So long, and thanks for the Ph.D.!”이라는 글에 나온다.

At UNC, there is a famous anecdote about a former UNC graduate student named Joe Capowski. Many years ago, UNC got a pair of force-feedback mechanical arms to use with molecular visualization and docking experiments. The problem was how to move them to UNC. These mechanical arms were large, heavy beasts, and were in Argonne National Labs in Chicago, IL. Unfortunately, there was a trucker’s strike going on at the time. Joe Capowski, on his own initiative (and without telling anyone), flew out to Argonne, rented a truck, drove the mechanical arms all the way back to North Carolina, and then handed the computer science department the bill! Many years later, Joe Capowski ran for the Chapel Hill city council and won a seat. Prof. Fred Brooks gave him an endorsement. I still remember the words Dr. Brooks said: “I may not agree with his politics, but I know he’ll get things done.” (Thanks to Jim Lipscomb for corrections to this anecdote.)

While the Joe Capowski anecdote is perhaps a bit extreme, it does show that it is often better to ask forgiveness than permission, provided you are not becoming a “loose cannon.” Certain universities (e.g. MIT) are good at fostering a “can do” attitude among their graduate students, and therefore they become more assertive and productive. One of the hallmarks of a senior graduate student is that he or she knows the types of tasks that require permission and those that don’t. That knowledge will come with experience. Generally, the senior graduate students have the most freedom to take initiative on projects. This privilege has to be earned. The more that you have proven that you can work independently and initiate and complete appropriate tasks, the more your professors will leave you alone to do what you want to do.

이 문서 역시 읽어보고 음미할 부분들이 많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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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학생, 나쁜 학생, 이상한 학생 (1편)

지난 수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다양한 배경과 성격의 박사과정 학생들을 만나봤다. 내가 지도했던 학생들도 있고 내가 강의했던 수업을 통해서 그리고 박사논문 심사위원으로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학생들도 있다. 그 중 몇몇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학생 A

이 학생은 석사과정 중에 처음 만났다. 내가 강의했던 — 대체로 박사과정 학생들이 듣는 — 수업을 통해서 만났다. 그 학생은 수업 중에 그리 빛나는 학생은 아니었다. 시험 성적이 아주 우수하지도 않았고 수업 중에 나를 애먹일만한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학생과 함께 일하고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석사과정 학생이든 박사과정 1년차 학생이든 수업 중에 눈에 들어오고 지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학생은 주로 시험 성적이 좋거나 수업 중에 질문과 토의를 통해서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학생이다. 그런데 왠일인지 나는 이 학생과 일하고 싶었다.

이 학생은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 틈에서 공부하는 것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던지, 내 사무실로 종종 찾아와서 여러가지 질문들을 했다. 나는 이 학생과 강의실이 아닌 내 사무실에서 만나면서 호감이 생겼다. 이 학생은 나를 만날 때, 궁금한 질문의 목록을 미리 작성해서 왔다. 차례대로 숫자가 매겨진 목록이였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내가 강의한 내용의 중심 줄거리가 되는 부분의 맥을 정확하게 짚는 것들이었다. 비록 내가 가르치고자 했던 바를 순식간에 알아듣거나 그것을 넘어서서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내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묵묵히 자기만의 페이스로 정확히 맥을 짚어가며 공부를 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험성적은 여전히 좋지 못했고, 나는 최종적으로 이 학생에게 ‘B-‘를 줬다. 대학원에서는 아주 나쁜 평점이다. 그러나 나는 이 학생이 마음에 들었다.

그 수업이 열렸던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 학생에게 함께 연구할 것과 석사 학위 논문을 쓸 것을 제안했다. 거절당했다.

자신은 연구에 큰 관심이 없고 수업석사과정에 필요한 학점을 채워서 최대한 빨리 졸업하는 것이 목표라는 이유였다. 박사과정에 갈 일도 없으니 석사 학위 논문이 필요하지도 않단다. 하지만 한 번 생각은 해보겠다고 했다. 수업과 관련된 질문 때문에 내 사무실에서 만날 때 종종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연구주제에 대해서 소개해주기도 했다. 학기가 끝나고나서야 연구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지 내가 말한 연구주제로 석사 학위 논문 연구를 해보겠다고 했다. 연구주제에 대해 꽤 자주 이야기해왔던 터라 당장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던 도중 첫번째 걸림돌은 데이터였다. 필요한 데이터는 정부 웹사이트에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채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데이터 수집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 학생은 자신의 연구에 이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노가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엑셀 스프레드시트 한 페이지에 불과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 두어달을 꼬박 보냈다.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연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주기적으로 만났는데, 여전히 잘 정리된 질문 목록을 가지고 다녔고, 내가 이야기 해주는 것들을 미팅 중에 요즘을 잘 파악하여 정리해 노트에 받아쓰곤 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음에 해야 할 일도 명확히 해서 노트에 정리했다.

나는 이 학생이 마음에 들었기에 석사 학위 논문 연구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박사과정 진학을 제안했다. 거절당했다.

여러 개인 사정에 대한 이유도 있었지만, 아직 연구라는 것에 ‘박사과정’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할 확신이 없다고 했다. 석사 학위가 끝날 즈음에 연구가 꽤 재미있는 것 같다면서 박사과정 진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기뻤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나는 이 학생을 지원할 연구비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학과에 요청했더니 다행스럽게도 수업조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박사과정에 들어와서 첫 연구는 석사 연구의 후속연구였다. 중간 중간 몇몇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알고 있는 연구 주제였기 때문에 큰 탈 없이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석사 연구와 박사과정의 첫 연구는 이 학생의 많은 노력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나는 그 두 논문을 이 학생의 논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논문으로 생각한다. 두 사람의 공동연구이기는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말이다. 기본 아이디어 구상부터 실제 글쓰기 까지 많은 부분이 내 손을 거쳤다. 대부분의 박사과정 학생의 논문이 이런식이다. 지도교수의 손과 머리를 많이 거친다. 전공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전공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이 학생A의 박사학위 논문은 좀 달랐다.

박사과정 첫 연구를 마무리 할 때 즈음, 이 학생이 자기는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에 흥미가 생겼고 그 쪽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학생에게 연구 주제 전환의 장단점을 이야기 해줬다. 주로 앞으로 벌어질 어려움에 대한 단점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지도교수인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세세한 지도는 어렵다는 점과 연구가 어려움에 빠졌을 경우 내가 좋은 해결 방안을 가지고 있지 못할 수 있다는 점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학생의 새로운 연구 분야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고, 결국 그 분야로 연구를 진행했다. 다행히 몇 몇 학회 참석에서 주워들은 것들이 있었기에, 나도 처음에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었다.

연구를 시작하고 연구 방향을 어느정도 잡았을 즈음, 또 다시 데이터 수집에 대한 문제가 생겼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 학생은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 알아봤다. 주변의 연구센터에 문의하기도 했고, 여러 관련 연구자에게 연락을 취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결국 직접 수집하기로 했다. 이번엔 웹사이트 몇 군데 돌아다니면서 수집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실험을 해서 그 결과를 발표한 논문을 하나씩 찾아서 읽어보고 보고된 수치 한 두개를 기록해야 하는 일이었다. 천편이 넘는 논문을 검토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사한 연구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선 수많은 학부생 연구원을 고용해서 한다고 들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수많은 학부생 연구원을 고용할 수 있는 연구비가 없었던 터라, 학생A는 혼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1년 정도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수학적 모델을 손보고 연구 방향을 수정하는 등 많은 일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데이터 수집에만 1년이 걸린 셈이다. 수학 모델을 바탕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고 실험에 들어갔다. 2년 정도가 더 지나서 이 학생은 학위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학회에서는 최우수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이 학생은 내가 만난 학생 중 박사과정을 굉장히 성공적으로 잘 보낸 학생들 중 한 명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박사과정을 지낼 분들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곰곰히 생각해 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이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라는 것이다. 내가 이 학생의 개인적인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나, 적어도 박사과정, 연구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만은 절대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은 방향대로 이끌어 나갔다. 자신의 연구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학생의 박사 학위 논문에 내가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으나, 나는 이 학생의 학위 논문은 온전히 그 학생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박사과정 학생이 성공적으로 학위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가늠해 보는 잣대로 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지도교수와 얼마나 자주 연락을 취하고 싶어 하고 의사 소통을 하고 싶어하는지이다. 나는 학생들과 매주 정기적으로 개별 미팅을 갖고 있다. 어떤 학생은 그 사이에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메일을 보내지도 찾아 오지도 않는다. 하던 일이 끝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하거나 막힌 부분이 있어서 같의 의논해야 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음 주에 있을 정기 미팅 시간 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미팅을 갖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오거나 다시 찾아온다. 미팅이 끝난 뒤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뭔가 정리가 덜 된 부분이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다음 주 까지 기다리지도 않는다. 연구를 진행하다가 좋은 결과가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혹은 또 다시 걸림돌이 생기면, 그에 대한 대화가 필요해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이메일이 오거나, 추가적인 개별 미팅을 요청 하기도 하고, 지나가다 내 사무실로 불쑥 찾아 오는 일도 있다. 자신의 연구를 진행해야 되는데, 막힌 부분이 생겼고 자신의 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니 지도교수의 도움 혹은 의견이 필요한 일이 생겼고, 다음 주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학생A가 바로 그랬다. 지나가다가 내 사무실의 문이 열려 있으면 불쑥 찾아와서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구하는 일이 많았다. 횡설수설하는 경우는 없었다. 잘 정리된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고, 충분히 생각을 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연구를 했다. 처음 시작의 아이디어가 자신의 아이디어였든, 지도교수의 아이디어였든, 자신의 연구를 했다.

박사과정은 학생이 자신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 지도교수의 경험과 시간을 빌리는 곳이다. 이 학생A는 아주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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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개구리가 올챙이에게

본격 꼰대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대학원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글과 책은 언제고 쓰고 싶었지만, 공동 집필 프로젝트에 덥석 참여하기로 하고 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꼰대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박사학위를 마친지가 어느덧 8년이나 지났고, 나는 내가 박사과정 학생일 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것이 힘들었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흐려진 기억 속의 즐겁고 아름다웠던 젊은 20대 시절이었다는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나는 올챙이적 기억을 하지 못하는 개구리가 되어 버렸다. 내가 쓰는 글들은 어쩔 수 없이 내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일지 언데, 결국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질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글 쓰기가 조심스럽고 겁난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숨길 수 없는 꼰대 본능 독자가 알아서 잘 판단하고 흘려들어 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집필 프로젝트에서 세명의 저자가 공통적으로 할 이야기는 아마도 “니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잘 사세요” 일 것 같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할 이야기는 그렇다. 안 그래도 고달픈 대학원 생활인데,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 — 모든 부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겠지만 — 더욱더 괴로운 생활이 될 것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기만의 생각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이 잘 전달되기만 한다면, 꼰대질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독자들께서 지나가는 말로 흘려들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굳이 몰라도 되는 것까지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다. 불필요한 정보로 불필요하게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다. 때로는 생각을 단순화시켜서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가리는 것 역시 독자께 맡기기로 한다.

대학원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지도교수이다. 나는 이미 지도교수의 입장에서 지내온지 벌써 8년이나 되었다.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보낸 5년의 기간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학생의 반대쪽 입장에서 있었기 때문에, 내가 줄 수 있는 조언은 그다지 생생하진 못 할 것이다. 어쩌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대학원 선배로써 해줄 수 있는 생생한 조언은 공동 집필을 하시는 두 분께서 잘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대학원생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 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역설적이게도 지도교수의 시각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다른 두 분이 지도교수를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신다면, 나는 교수들은 어떤 학생을 지도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학생과 지도교수의 관계는 굉장히 오묘한 것이어서 흔히 결혼에 비유되기도 한다.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단순하다면 단순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쌓이는 불만은 아주 여러 형태가 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의 일부에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교수들의 생활은 어떠한지, 교수는 어떤 고민을 하며 사는지와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교수의 입장과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해서, 좀 더 잘 이용해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 대학원은 사실 학생이 교수를 이용해 먹는 곳이다, 아니 이용해 먹어야 하는 곳이다. 자신이 바라는 연구를 위해서 부족한 경험과 지식을 교수에게서 빌려오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훈련을 해 나가는 곳이다. 나는 내 글이 학생들에게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2011년부터 ‘잡생각 전문 블로그‘라는 이름으로 개인 블로그에 글을 가끔씩 써오고 있다. 그중 ‘박사과정 학생이 유의해야 하는 점‘을 포함한 글 몇 편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면서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하게 되었다. 윤섭 님께서 ‘슬라이드계의 강남스타일’이라 불리는 슬라이드에 내 글을 추천해주셨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원래 잡스러운 개드립을 날리는 블로그를 꿈궜으나… 아아…

‘박사과정…’ 글이 많이 읽히는 걸 보면서 좀 놀랬다. 따지고 보면 그 글에서 내가 한 말은 딱히 특별할 것도 없고 둘러보면 여기저기서 많은 분들께서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한 것뿐이다. ‘자기 주도의 자기 연구’라는 당연하게 들리는 말을 했다. 수업 듣고, 필기하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등 주어진 문제를 잘 풀어야 하는 ‘공부’라는 것과, 문제조차, 그것도 이 세상에서 아무도 푼 적 없는 문제를,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연구’라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많은 이들이 공부와 연구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 속에서 내 글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한 것이 여러 번 읽힌 이유가 아닐까 추측한다.

또 한편으로는 댓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가 하는 비슷한 고민들이고, 끝날 때 즈음이면 대체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글을 읽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마음에 큰 위로와 용기가 된다. 학위 과정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용기,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되고, 학생 지도에 더 힘을 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박사과정…’ 글을 쓴 것이 벌써 2011년, 5년 전의 일이다. 그 글을 읽었던 박사과정 학생들이 졸업을 했고,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그 글을 읽었던 학생들은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몇몇 분들께서 시작할 때 내 글을 읽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몇 년이 지나 다시 댓글로 남겨주셨다. 내 글이 그분들의 성취의 이유였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박사과정 하다 보면 고민들이 쌓이고 그 고민들 속에서 비슷한 결론들에 도달했을 것이고, 비슷한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내 글이 없었어도 원래 다 잘 되었을 일들이다. 진리의 될놈될 다만, 내 글이 그분들께 ‘그래 네 생각이 맞아. 우리 모두 다 같은 의견이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봐. 네 연구잖아.’ 라며 등 떠밀어 준 역할은 어느 정도 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고자 한다.


아이엠 그라운드… 나는 카이스트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생산공학을 전공하는 연구실에서 석사과정 학생으로 한 학기를 지냈다. 수많은 고민들 속에 첫 해 여름을 보냈고, 결국 석사과정을 휴학/자퇴하고 웹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자바 프로그래밍 일을 했다. 많은 고민 속에서 가져온 작은 이 변화들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수학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수학을 좋아했었다.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할 용기는 없어서, 수학을 비교적 많이 쓴다고 하는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택했었다. 석사과정 첫 해 가을학기를 시작하고 몇 주 후에 휴학을 했었는데, 휴학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광학’ 수업 중에 수학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마음에 아쉬워서 필기하다 말고, sin x, cos x를 노트에 몇 번이고 끄적였던 기억이 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교과서 밖의 세계를 처음 경험했고, 자연스레 ‘사람’ 혹은 ‘인간’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간공학’ 전공으로 산업공학과에서 더 공부하고 싶었다.

미국에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의 산업공학과에 인간공학 박사과정 학생으로 입학했다. 웬일인지 첫 학기에 인간공학과는 별 상관이 없는 선형계획법(Linear Programming)이라는 최적화 수업을 듣게 되었다. 선형대수학 등의 수학을 제법 많이 쓰는 수업이다. 그리고 나는 최적화와 관련된 운영 과학(Operations Research)이라는 분야를 내 전공을 택했고, 그중에서도 지도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교통(Transportation) 분야의 연구를 했다. 결국 수학을 이용해서 뭔가를 하는데 흥미를 느꼈고 그걸 좋아해서 지금껏 즐겁게 연구하고 있다.

박사학위 후에는 미국 뉴욕주 버팔로라는 도시에 있는 뉴욕주립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 혹은 버팔로대학교(University at Buffalo)라고 불리는 곳에서 7년간 교수로 근무했다. 버팔로는 눈이 아주 많이 오는 곳인데, 기껏해야 눈 좀 내리는 블리자드 마법 공격에 몬스터들이 쓰러지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곳이었다. 2015년부터는 플로리다주 탬파라는 도시에 있는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University of South Floria)로 옮겨서 근무 중이다. 여름이면 아주 습하고 더워서 에어컨 없이는 생활 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곳이다. 두 곳 모두 산업공학과이다. 두학교에서 그동안 석사과정 학생 6명, 박사과정 학생 7명을 지도 혹은 공동지도했다. 지금 현재는 박사과정 학생 4명을 지도하고 있고, 다음 학기부터 새로운 박사과정 학생 2명을 더 지도할 예정이다.


이 책을 쓰는 세 명 모두 공학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순수 자연과학 분야나, 인문사회 분야, 예술과 체육 관련 분야에서는 또 다른 상황이 있을 수 있고,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가 서로 다르게 설정될 수도 있겠다. 내 전공에서는 대체로 교수와 학생이 1대 1로 만나서 논문 지도를 하고 논문을 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내 분야에서 박사 후 과정(포닥)은 흔한 일이 아니다. 나는 5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운이 좋게도 바로 교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박사 후 과정이 수년간 계속되는 것이 당연한 전공과 그렇지 않은 전공 사이의 간극은 분명히 존재한다. 생긴지 수천 년 된 학문과 생긴지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은 학문 사이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라는 행위의 본질은 그리 다르지 않을 터이니, 우리 세 명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한 번 들어봐 주길 바란다.

사실 나는 내 블로그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할 만큼 했다. 다른 이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몇몇 관련 글을 모아두기도 했다. 이 책 중간중간 그 글들을 다시 정리하고 재구성하여 쓰는 일도 있을 것이다. 같은 요지의 글이 반복되는 일이 있더라도 이해 바란다. 세 명의 저자 사이에서도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겹쳐서 하는 경우도 있을 터이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것이니 한 번 기대를 갖고 봐주기를 바란다.

이 책이 완성되었을 때 어떤 책이 되어 있을지, 굉장히 궁금해진다. 남의 대학원 생활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꼰대서가 될 것인지, 아니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던져주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한 번 두고 볼 일이다.

밑밥은 깔만큼 깔았으니 다음 편부터는 본격적으로 대놓고 꼰대질을 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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