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성장을 도와줘라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금까지 필자가 했던 이야기들은 대부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거나, 갓 대학원에 들어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글은 고년 차 대학원생, 혹은 박사후연구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바로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열심히 연구하다 보면, 어느새 고년 차 대학원생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처음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는 선배들이 마냥 하늘 같아 보였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선배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내가 어떤 선배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때다. 그것이 후배 혹은 연구실의 연구 성과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나의 커리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선배의 유무

필자는 학제 간 연구 과정으로 두 개의 연구실에서 대학원 생활을 동시에 했다. 한 연구실은 우리 학교 개교 직후에 만들어져서 20년이 되어가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었다. 이 연구실의 선배 중에 이미 국내외 대학에 교수로 부임하신 분도 많았다. 반면 다른 연구실은 미국에서 갓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귀국하신 교수님이 시작하신 신생 연구실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첫 지도 학생들은 연구실을 세팅하면서 들여온 책상과 의자의 포장을 함께 벗겨내기도 했다. 당연히 연구실의 고년 차 선배는 아무도 없었다.

이 두 연구실에서 동시에 연구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구실의 분위기와 문화 등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신생 연구실과 오래된 연구실은 다른 점이 많았다. 내가 느꼈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내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배의 유무였다.

분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보통 사수-부사수의 관계로 실험을 배우게 된다. 연구의 큰 줄기는 교수님께 지도를 받지만, 실제로 매일 함께 생활하면서 실험을 배우는 것은 선배인 경우가 많다. 사실 실험을 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세부적인 스타일은 사람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학원 신입생의 입장에서는 어떤 선배, 어떤 사수를 만나느냐가 자신의 연구 인생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 신생 연구실에 필자가 합류한 것은 사실 학부생 5학년 (필자는 복수전공을 하느라 학부를 5년 다녔다) 봄이었다. 교수님을 제외하고 필자는 세 번째 멤버였는데, 그나마 두 명의 대학원생도 그 해 들어온 신입생들이었다. 이 연구실에서 학부생 연구참여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물어볼 선배가 딱히 없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이 계시기는 하지만, 자질구레한 부분들까지 일일이 교수님께 물어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에 많은 부분을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필자가 결심했던 것 한 가지는 내가 선배가 되면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제일 아쉬웠던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한때의 후배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선배가 된다. 지금의 선배들도 한때 미숙한 후배 중의 한 명이었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후배들이 성장하고, 그 이후에는 또 다른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나는 이렇게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주는 것이 일종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실도 하나의 작은 사회이며, 그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좋은 선후배 관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선배는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힘과 책임이 있는 존재다.

좋은 선배가 되는 방법

좋은 선배가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자신이 후배였을 때 선배로부터 받고 싶었던 것을 떠올려보자. 자신이 후배였을 때 받고 싶었던 것을, 내가 선배가 되어서 후배들에게 해주면 자연스럽게 좋은 선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받기 싫었던 것은 후배들에게 해주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게 단순히 실험 테크닉적인 면이든, 논문을 쓰거나 발표를 하는 방법이든, 아니면 연구실 생활에 관한 것이든 이 황금률에 따르면 크게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선배가 되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사실 매우 많다. 작게는 내가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실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다. 박사 후에는 보통 취업을 하거나 박사후연구원으로 해외 등의 다른 연구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자, 그러면 내가 원래 진행해오던 연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연구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연구라는 것이 칼로 무 자르듯 뚝 잘리는 것이 아니어서, 논문 몇 편 내고, 박사를 취득했다고 해서 내가 그동안 지속해오던 연구가 거기서 절대 끝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제대로 연구를 했다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하고 원리를 밝혀내면 낼수록, 흥미로운 새로운 질문이 더욱 생길 것이다. 이건 왜 그렇지? 저건 왜 그렇지? 이걸 이렇게 더 발전시키면 어떨까? 저걸 저렇게 더 연구해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아마 고구마 줄기처럼 새로운 가설과 질문들이 더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취업을 해서, 외국으로 박사후과정을 나가서 이 프로젝트의 맥이 끊겨버리면 너무 아쉽고 안타깝지 않은가.

만약 내가 진행해오던 연구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을 후배가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나는 내가 애착을 가져오던 일이 끊어지지 않고 후배에게 계승 발전될 수 있어서 좋고, 후배는 백지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면서 연구할 수 있지 않아서 좋다. 후배가 내 연구 주제를 이어받은 후에는 내가 원래 머릿속에 그렸던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건 또 그것대로 좋지 않은가.

또 한 가지의 이점은 내가 연구의 리더로서 지도학생이나 팀원을 이끄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고 해서 갑자기 진정한 박사로서의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수가 되어서 연구실을 차리고, 기업에 들어가 팀장으로 팀을 맡는다고 해서 갑자기 교수 혹은 팀장의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직책을 맡는 것 이상으로, 진짜 연구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연구를 리딩해본 경험이 필요하다. 이런 경험은 부족하나마 대학원 선배로서 후배들을 지도하면서 쌓을 수 있다. 연구실에 있다보면 선배가 되어서도 부사수(후배)를 잘 맡지 않고, 혼자서면 계속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혼자 연구를 하는 것이 논문을 한 편 더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연구실을 차리고 자기 연구팀을 성공적으로 운영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런 태도는 장기적으로 그리 바람직한 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교수님 대가 만들기

후배가 성장하도록 도와주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더 장기적인 이점은 연구실에 대물림되는 일종의 유산(legacy)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우리 지도교수님 대가 만들기’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느 연구 분야든 그 바닥에서 일가를 이룬 소위 대가들이 있다. 네이처, 사이언스에 밥 먹듯이 논문을 내고, 국제 학회에 기조 연자로 초청을 받고, 이 분이 무심코 날린 코멘트 한 마디가 새로운 연구 주제가 되기도 한다. 이런 분들은 어마어마한 연구비를 가지고 있으며, 박사후연구원들은 이 대가들의 연구실에 너도나도 들어가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이런 연구실에서는 연구비 걱정을 하지 않고 연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대가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력으로 인정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가의 연구실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대가들은 처음부터 대가로 태어났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대가로 인정받는 그들도 처음에는 박사후연구원 한 명 없이 신생 연구실을 차린 신참 교수였을 것이다. 그도 처음에 대학에 자리를 잡고 책상을 들여와서 포장지를 벗기면서 첫 번째 대학원생을 데리고 시작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대가인 사람은 없다. 대가는 우수한 연구 성과가 쌓여가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연구를 직접 진행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이다. 지도 교수가 직접 실험하고 논문을 작성하지 않는다. 그 교수의 지도를 받아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이 연구하고 좋은 논문을 출판하면 그것이 곧 교신저자로 참여한 교수와 연구실의 업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가의 연구실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하나가 있다. 바로 대를 걸쳐서 대물림되는 핵심적인 연구 주제다. 이런 곳에는 대학원생이 졸업해도, 일하던 박사후연구원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자기 랩을 차려서 독립해버린 이후에도 대를 걸쳐서 내려오는 연구 주제가 있다. 그 주제의 연구는 대학원생이 바뀌어도 대를 걸쳐서 내려오면서 계승 발전되게 된다. 대학원생이 새로 들어올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연구 주제로 연구를 해서는 결코 지도교수가 대가가 될만한 연구 성과가 축적될 수가 없다. 이는 교수 본인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그 연구실에서 후배를 키워내는 선배의 몫이기도 하다.

사실 박사를 하고 필드에 나와보면 알겠지만, 해당 분야에서는 어느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박사를 하고 박사후연구원을 했는지가 현실적으로 여러모로 크게 작용한다. 특히, 세부 연구 분야로 가면 그 바닥이 그리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국 내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연구실이 계속 발전하고 연구 성과가 좋아야, 졸업생들도 빛나게 된다. 나만 잘하고 나와버리면, 연구실에 장기적으로 발전이 없고, 이는 나에게도 결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후배가 공헌할 기회를 줘라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후배를 키우면 될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후배에게 내 연구에 공헌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앞서 자신만의 특기를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협업을 활발하게 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협업할수록 연구 성과에 대한 전체 파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이미 잘 하고 있고, 지속해서 반복해온 일이라면 슬슬 후배에게 기회를 줘보는 것도 괜찮다. 아니면 내가 현실적으로 시간의 제약 등등으로 다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디어나 가설을 후배에게 던져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주의할 점은 후배를 단순히 이용하거나 부려먹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내 연구에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과 그냥 후배를 부려먹는 것은 종이 한 장의 차이일 수도 있다. 내 연구를 위해서 단순 반복적인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은 후배를 부려먹는 것이지만, 후배가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사고할 수 있게 하고, 자신의 특기를 계발할 수 있게 한다면 이는 후배를 성장시키는 일이다. 후배가 내 연구에 기여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여유를 주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후배가 기여한만큼 연구의 결과물에 대해서도 공유하는 것이다. 작게는 (다른 글에서 강조했듯이) 내가 랩미팅 발표할 때의 후배의 공헌이 있었다는 acknowledge를 잊지 않는 것도 그러하고, 더 중요하게는 논문의 저작권, 즉 authorship이다. 내가 준 연구 주제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논문에 대한 후배의 공헌이 나보다 더 클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당연히 authorship도 후배가 더 크게 가져가야 한다. 이렇게 후배가 내 연구에 기여하고 성장하면서, 혹은 이를 계기로 자신의 연구를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면 결국 나와도 윈윈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필자의 경험

부끄럽지만, 내가 나름 자랑스러워하는 경험 하나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적이 있듯이, 필자가 학부 5학년 때 ‘신생 연구실’에 학부 연구생으로 합류했을 때의 소박한(?) 목표 중의 하나는 SCI급 논문 하나를 내는 것이었다.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 1점짜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 논문 서브밋까지 하긴 했었지만, 결국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필자의 실력 부족과 함께 또 다른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연구실의 선배 중에 논문을 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박사 졸업을 하고 난 뒤에 연구실에 한동안 계속 머물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 한성규라는 학부생이 연구실에 연구참여 학생으로 들어왔다. (자꾸 후배의 실명을 써서 미안하지만, 어차피 PubMed에 들어가면 다 나오니까…ㅋㅋ) 성규는 컴퓨터공학과에서 생명과학과를 복수전공했던 나와는 반대로, 생명과학과에서 컴퓨터공학과를 복수전공하는 후배였다. 즉, 몇 년 전 내가 학부생 연구참여를 시작했을 때의 상황과 비슷했다.

이 후배를 보면서 떠올렸던 것이 연구실 선배 하나 없이 연구참여를 시작하던 학부생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진행하던 연구에 성규를 참여시킬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당시 예전에 출판했던 다른 논문의 자그마한 후속 연구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 연구에서 필요한 요소 중에 내가 굳이 하려면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성규도 할 수 있는 일 같아서 “이 부분은 네가 한번 해봐라. 잘 되면 너도 논문에 이름 넣어 줄 테니까” 하고 맡겨보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해서, 결과적으로 내 연구를 더 발전시켜버린 것이었다. 나는 매우 기쁘게 성규에게 논문의 공동 제1 저자를 줬다. 그 논문은 Nucleic Acid Research 라는 당시 SCI 임팩트 팩터 7점의 저널에 실리게 되었다. 이는 사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높은 임팩트 팩터였다. (이번에 2016년의 임팩트 팩터를 찾아보니 10점으로 더 올랐다) 더구나 내가 학부생이었을 때의 목표, 즉 SCI급 저널에 논문을 내는 것을 성규는 이를 달성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내가 연구 커리어에서 그리 많은 논문을 낸 것은 아니지만, 이 논문은 후배를 성장시키는 논문이었다는 점에서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논문 중의 하나다.

앞서 나는 ‘역사적 의무’라는 오글거리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선배들에게 이런 지도를 받은 후배는 본인이 선배가 되었을 때 자신의 후배에게도 이런 전통을 물려주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 후배는 또 그 후배의 후배에게 그런 선배가 될 것이다. 이런 전통이 생기려면 누군가는 그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만약에 당신의 연구실에 그런 전통이 없다면 당신이 그 시작점이 되면 된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필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운이 좋으면 그 후배가 어떤 좋은 사고를 쳐서 당신의 논문 임팩트 팩터를 더 높여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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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혼자 일하지 마라

이번에는 대학원생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져야 할 자세와 몇 가지 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특히 이번에 논의하고자 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 즉 협업(collaboration)과 공동연구에 관한 내용이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 일할 수 없다. 이는 일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연구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물리적으로 연구실 내에서 팀을 이루거나, 지도교수-지도학생 혹은 사수-부사수 관계를 맺고 일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연구실 간에 협업을 하거나, 다른 학교 사이에서 혹은 학교와 기업 간 공동 연구를 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 같이 연구 분야별 경계와 장벽이 허물어지는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좋은 저널에 나오는 논문을 몇 개만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논문의 저자가 한 명, 혹은 (교신저자까지 포함하여) 두 명인 경우는 근래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저자의 수가 10명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고, 저자들의 소속을 찾아보면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하나의 논문을 쓰는 경우도 많다.

즉, 좋은 연구는 많은 경우 여러 연구자들의 협업을 통해서 완성된다. 한 명의 연구자가 모든 것에 전문성을 가지기 어렵고, 학제간 연구가 향후 더욱 활발해질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공동연구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공동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려 깊은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다.

자신만의 특기를 개발하라

우선 좋은 공동연구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나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연구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이 가지지 않은 전문성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하는 것보다 상대방과 함께 하는 것에서 무엇인가 나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 즉, 내가 전문성이나 특기를 가지고 연구팀에 기여할 수 있어야만 공동연구라는 것 자체가 성립한다.

대학원생 입장에서 전문성이나 특기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최소한 “이 주제, 이 기술만큼은 내가 국내에서는 최고다” 정도는 되어야 한다. 국내 정상급 실력자가 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인기 있는 분야를 제외한다면) 구체적인 세부적인 주제에 대해서 연구한다면, 좁은 국내 바닥을 통틀어도 연구팀이나 연구자의 총 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인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는 당연히 수위에 있어야 한다.

또한 굳이 ‘세계 최고’를 기준으로 하지 않은 점은 너무 어렵거나 또 막연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서 내가 어느 수준인지는 1년에도 여러 번 열리는 학회나 포스터 발표 정도만 보더라도 감이 오는 경우가 많다. 비교 대상을 보고서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그렇다면 무엇을 특기로 해야 할 것인가? 연구실과 연구 주제를 정할 때에도 필자가 강조했던 것이지만, 무조건 자신이 재미있고, 하고 싶고, 열정이 있고, 평생 공부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주제를 골라야 한다. 그것이 특정 기술이든, 특정 주제이든 장기적으로 본인만의 키워드를 잡고 공부해나가야 한다.

대학원생이 해당 주제에 대해서 처음부터 본인의 논문을 펑펑 써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최신 논문이 어떻게 나왔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 팀은 누가 있고, (논문으로 아직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이 다음번에 연구가 발전되어갈 방향이 어디인지는 맥을 잡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인의 실력도 발전시켜나가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비로소 자신의 논문도 쓸 수 있다.

얼마나 재미있어야 하는가

자신이 ‘재미있는’ 연구 주제를 골라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얼마나’ 재미있어야 할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연구실에 빨리 출근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정도여야 한다. 어제 못 다 읽은 논문이 너무 재미있고, 후속 연구에서 어떤 식으로 해당 주제가 발전되어 갈지 너무도 궁금한 것이다. 내가 어제까지 실험하던 결과가 오늘 어떻게 나올지, 내가 세운 가설을 빨리 검증해보고 싶고, 내가 이 분야에 의미 있는 기여하는 것이 전 세계 연구자 커뮤니티에 속한 일원으로 자랑스러울 수 있는 주제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변태 같은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연구자 생활을 하면서 신기하게도 내가 존경하고 좋은 연구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서 이와 관련된 공통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모교인 포항공대 교수님이나, 잠깐 연구했던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수님들,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에게서도.

나는 200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드릭 맥키넌 교수님께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러 포항공대를 방문하셨을 때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박사 수여식이 끝나고 당돌하게 학생 몇 명이서 “박사님, 포항공대 내에 통나무집이라는 맥주펍이 있는데, 저녁에 시간 되시면 저희 학생 몇 명과 함께 맥주 한잔 하시지 않으시겠어요?” 하고 당돌하게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통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맥키넌 박사님께 ‘위대한 과학(great science)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박사님은 우문에 현답으로 답하셨다. ‘위대한 문제(great problem)를 찾아야 한다’ 는 것이었다. 본인은 자신의 흥미를 찾아서 그 위대한 문제를 찾으셨다고. 내가 ‘박사님은 지금도 연구가 즐거우세요?’ 라고 물었더니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지금도 매일 아침 연구실에 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고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도 그런 문제를 찾아보자.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지 않은가.

남들과 차별화하라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유니크한 특기를 가지면 좋다. 앞서 ‘국내에서는 최고’ 라는 기준을 제시했고, 세부적인 주제에 대해서라면 국내에서 연구 팀이 사실 몇개 없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만약에 해당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국내에서 본인밖에 없다면, 당연히 내가 국내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다.

사실 이는 연구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직장인이나 기업 수준에서도 통하는 조언이다. 경영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어떻게 하면 자신을 경쟁자와 차별화(differentiation)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역량, 혹은 계발하고 배우고 있는 역량 중에 그런 것이 있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항상 던져야 한다.

유니크한 특기를 가진 사람은 조직에서 대체 불가능(irreplaceable)하다. 그 특기가 조직에서 유용하고 필수적인 요소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유용하고 필수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유니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 대체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저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슬프게도 많은 경우에 전문가들조차도 대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다른 전문가들과 차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별화되는 전문성은 공동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연구실 내에서, 혹은 연구실 간에 차별화된 특기를 저마다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자연스럽게 공동연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진행하는 연구에서 상대방의 특기인 부분이 있다면 그에게 맡기고, 그가 진행하는 연구에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해준다. 그리고 그 과실은 서로가 공유한다. 자신만의 특기가 있다면 이러한 관계가 성립하기가 쉽다. (만약 나와 상대방이 모두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같은 값이라면 후배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이것은 다음 글의 주제이다)

내가 모셨던 PI 중에 한 분은 항상 “두 사람이 각각 논문을 한 편씩 쓰지 말고, 두 명이서 함께 논문을 세 편 써라” 고 강조하셨다. 이것이 바로 시너지 효과이며, 우리가 팀을 이뤄서 연구하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너지 효과는 각자가 서로 차별화된 특기를 가지고 있을 때에 일어날 수 있다.

프로페셔널의 제1원칙: 기브 앤 테이크

자신만의 특기를 바탕으로 공동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공동연구를 이제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필자는 공동연구에 있어서 한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싶다. 바로 “상대에게 어떻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라” 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그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타적인 자세가, 결국 나 자신에게도 더 큰 혜택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프로페셔널의 제1원칙은 바로 기브 앤 테이크이다. 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주고(give), 받는다(take)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에 대해서 “내가 도움을 줬으니, 이제는 당연히 나도 네 도움을 받아야 해”, “지난번에 네가 나한테 빚졌으니, 이번에는 당당히 네 도움을 요구할 권리가 있어” 정도로 이해서는 곤란하다. 프로페셔널들 사이에서 기여는 돈을 빌리고 갚는 것과 같은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기브 앤 테이크’란 상대방에게 먼저, “혹시 뭐 필요한 것 없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줄게” 하고 ‘먼저’ 다가가는 것을 말한다. 즉, 향후에 테이크할 것을 바라지 않고, 우선적으로 먼저 기브하는 것이 프로페셔널의 ‘기브 앤 테이크’이다. 당장은 나에게 과실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어도, 장기간에 그 기여의 고리가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과실이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생각해보라. 모두가 이렇게 “뭐 필요한 것 없니? 내가 도와줄게” 라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연구실, 연구팀, 조직을 생각해보라. 그런 이상적인 조직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그런 연구실에서 연구를 했던 행복한 경험이 있다.

사실 아직 철들지 않은, 연구자로서는 미숙한 대학원생들이 이러한 자세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 못지 않게, 지도 교수나 PI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아기가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듯, 대학원생은 교수의 사소한 모습까지도 보고 배운다. 교수라면 이러한 이타적이고, 기브 앤 테이크가 잘 작동하며, 결과적으로 장기적인 시너지가 창출되는 조직을 목표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좋은 연구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교수 탓만을 해서는 곤란하다)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는 경영학적으로 연구도 많이 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은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책의 일독을 권한다.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주고 싶어 하는 기버(giver)가 왜 ‘주는 만큼 받는’ 매처(matcher)나,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는’ 테이커(taker)보다 왜 더 성공적인지에 대해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오리지널스’로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애덤 그랜트의 전작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오리지널스보다 이 책이 더 좋았다.

연구자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라

어른들은 흔히 ‘일만 잘하면 뭐하냐,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말을 하시곤 한다. 필자는 이 말씀이 공동연구에 있어서는 핵심을 꿰뚫는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수정하자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공동연구도 잘할 수 있다’ 정도로 이야기 하고 싶다.

연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공동연구는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가장 큰 기쁨도, 가장 큰 아픔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온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업무적으로도 그렇다. 공동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실력이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가진, 인간적으로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인성이 실력보다도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다른 사람들이 같이 일해보고 싶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좋은 공동연구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실력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같이 일하기에 즐겁고, 유쾌하며, 서로 학문적으로 토론하기에 좋은 상대이며,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함께 일하고 싶지 않겠는가.

반대를 생각해보자. 주위에는 왠지 좀 재수 없고,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즐겨하는 인간은 실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함께 일하기가 꺼려지게 된다. 나는 특히 뒷담화를 즐겨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뒷담화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그 대상이 되는 것도 싫다. 연구하는 바닥은 매우 좁기 때문에 동료들에 대한 험담은 결국에 그 사람의 귀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에게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자리에 가서 내 험담을 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과 공동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함과 동시에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품평을 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도록 하자.

결국 평판(reputation)의 관리가 핵심이다. 평판은 연구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하다. 사회 생활에서는 이런 평판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만약 나에게 누가 A라는 사람을 소개해줬거나, 나에게 무엇인가 요청하는 콜드콜을 보냈을 때, 나는 이 A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만한 사람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먼저 한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좋은 사람인지를 내가 신뢰하는 분께 여쭤보는 것이다.

만약에 제 3자가 나를 아는 사람에게 ‘이 사람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물어보았을 때 나에 대해서 어떤 평이 나올지를 한번 더올려보라. 이때 “그 사람 한번 만나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예요”, “그 사람 함께 일하기에 좋은 분이예요” 하는 평판이 나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좋은 평판은 억지로 만들거나 관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모습에서 배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평판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며, 이는 매우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나쁜 평판을 만드는 일은 매우 쉽다. 그리고 한 번 쌓인 나쁜 평판을 없애기란 정말 어렵다.

의도와 범위, 보상을 명확히 하라

연구 초심자로서 공동연구를 시작할 때 조언해주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의도와 범위, 그리고 보상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다. 흔히 한국의 연구실에서는 상하관계가 있고, 교수나 선배들이 소위 ‘까라면 까야하는’ 문화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공동연구에 있어서는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고, 부려먹는다기 보다는 서로 평등한 연구자로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인이 그럴 마음이 있다면, 공동연구자에게 자신이 공동 연구가 필요한 이유와 이 일을 당신에게 요청하는 이유, 요청하는 일의 범위, 그리고 이를 통한 어떤 보상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하고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일을 진행할 때 공동연구자가 이에 대해서 명확히 알지 못하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면 그냥 ‘상대가 나를 부려먹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실 간의 공동연구에서는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는 사람과 실제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이 다르게 된다. 이런 경우에 연구의 초기 제안자와 실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과가 잘 나올 경우에, 논문의 저작권(authorship) 등을 공유할 것임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공동연구가 수월하게 진행되는 경우, 그리고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는 바로 공동연구자가 이 연구에 얼마나 흥미를 가지며 주인의식을 가지느냐에 달려있다. 즉, 내가 제안한 주제라면 나는 당연히 이 연구가 중요하고, ‘내 연구’ 라고 여기게 되지만, 공동연구를 제안받은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동연구자가 이 연구가 (비록 다른 사람에게서 처음 나온 아이디어지만) ‘내 연구’ 라고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절대 acknowledgement를 잊지 마라

이 부분은 사소한 팁이지만, 매우 중요하다. 학회 등 외부 발표에서 뿐만이 아니라, 랩미팅 등 연구실 내부 발표 등 결과 공유를 하는 자리에서 공동연구자 등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은 분들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이러한 도움과 기여에 대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acknowledgement는 발표자료의 가장 마지막 장에 모두 몰아넣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과 더불어서 필자는 해당 슬라이드에 (슬라이드의 오른쪽 하단에) 명시적으로 누구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기록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의 실험 결과를 도출할 때에나, 이 데이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누구에게 받은 것이 있다면, 해당 부분의 발표자료에 (주로 슬라이드의 오른쪽 하단에) 명시적으로 누구의 도움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발표 중에 “이 아이디어는 A가 가장 먼저 제시해주셨습니다.”, “이 실험은 B 연구실의 C 박사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고 밝히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동연구는 결코 나 혼자 진행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에서도 나 혼자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이 부분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만, 또한 흔하게 잊어먹는 일이기도 하다. 의도적이든, 혹은 실수이든 공동연구자의 기여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면, 윤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피해를 본인이 입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유의하지 않으면, 의도치 않게 본인이 나쁜 평판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연구실 내부적으로 랩미팅하는 것이고, 모든 구성원들이 내가 A라는 사람과 공동연구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말 안해도 다들 잘 알고 있겠지…” 하고 그냥 넘어가다가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A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한 실험의 결과를 보면서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면, 마치 성과를 도둑맞은 것처럼 느끼 수 있다.

“내가 기껏 시간을 내어서 도와줬더니, 자기가 연구 다 한 것처럼 이야기하네? 내가 다시는 저 인간을 도와주나 봐라.” 하면서 속으로 화를 낼 수도 있다.

절대 acknowledgement를 잊지 마라: 나의 경험

이 부분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서 필자 본인의 부끄러운 기억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이 내용은 필자가 슬라이드쉐어에 올린 “내가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연구 노하우” 초판본 때부터 들어 있던 내용이다. 필자 본인도 그 중요성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후 시간이 흘러서 필자가 대기업에서 팀장으로 일할 때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우리 팀의 사업기획에 대해서 몇 달간 작업을 하였고, 그 계획에 대해서 처음으로 필자가 팀을 대표하여 임원 보고를 하는 날이었다. 특히 그 사업 계획을 세우는 것과 발표 슬라이드 제작은 기획 전문가인 팀원 한 분께서 담당 하셨다.

내가 대표로 상무님께 슬라이드를 보여드리며 발표를 하였고, 팀원들도 함께 그 발표를 들었다. 몇 달간 준비한 발표이고, 나도 많이 긴장했지만 다행히 나름대로 발표가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표 후 그 기획 전문가께서 “팀장님, 잠깐 이야기 좀 따로 나누실 수 있을까요?” 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나에게 무거운 표정으로 “팀장님, 어떻게 그 발표를 팀장님 혼자 준비하신 것처럼 말씀하실 수가 있으신가요? 그 슬라이드의 내용은 대부분 제가 만든 것이지 않나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내가 기억을 되살려보니, 내가 발표에서 팀원들이 이러저러한 기여를 했고, 특히 기획안 작성 전체에서 그 기획 전문가 팀원의 기여가 컸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내가 너무 긴장을 했기 때문이든, 연습이 부족했든, 그냥 까먹었든지 간에 그 발표에서 그 팀원은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 지적은 매우 타당했다.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을 깨달은 나는 그 팀원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결코 공을 내가 독차지하거나, 그분께서 기여한 바를 내가 사소하게 생각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서. 결국 내가 진심으로 거듭 사과하자 그 팀원께서도 오해를 풀고 화를 거두시기는 하셨지만, 이 실수에 대한 교훈은 지금까지도 내게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내가 나의 부끄러운 경험까지 공개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공동연구자의 기여를 acknowledge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과,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그 노력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감사를 표하는 것을 잊어버리기가 쉽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부디 나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프로페셔널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팁을 몇 가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리는 프로페셔널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동연구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 중의 하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프로젝트 진행과 시간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프로젝트 진행과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시간을 아껴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방해가 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메일을 보낼 때에 대해서 강조하고 싶다. 상대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에는 단순히 안부 인사가 아니라, 어떤 문제나 이슈에 대해서 나의 의견이나 답을 듣기 위해서 보낸다. 이러한 메일에 대해서 가능한 빨리 답장을 해주자. 내가 답장을 보내줘야만 상대방이 그 답에 근거하여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만약에 내가 답장을 해주지 않고 질질 끌게 되면 그 시간 동안 상대방은 답장을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고, 이는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차질로 이어진다.

만약에 내가 메일로 받은 내용이 바로 답변을 해주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최소한 언제까지 답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먼저 알려주기만 해도, 상대방에게는 크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이 요청에 대한 실험은 제가 다음주 목요일까지 끝내고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만 보내주면, 상대방이 프로젝트 진행 계획을 세우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만약 이런 말도 없이 그냥 나 혼자 ‘다음주 목요일까지 기다렸다가 메일을 줘야지’ 하게 되면 상대방은 그저 하염 없이 기다리거나, 메일을 못 받은 것은 아닌지 재차 확인을 할 수밖에 없다.

공동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흐르게 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가장 힘든 공동연구자는 ‘묵묵부답’인 연구자였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답장을 주지 않는다. 그저 본인의 스케쥴대로 (그리고 이 스케쥴에 대해서는 본인만 알고 있다) 연구를 진행한다. 때가 되면 답장과 데이터를 보내주지만, 그 답이 언제 올지에 대해서 나는 알 수 없다. 이런 경우는 공동연구를 진행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이메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자

사실 공동연구에서 이메일만큼 커뮤니케이션에 중요한 것도 없다. 조금 더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메일에 대한 팁도 몇 가지 주려고 한다. 경쟁력은 작은 부분에서 판가름 나고, 악마는 디테일에 살고 있다. 보통 상대방이 보내온 메일만 딱 보더라도, 이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많은 부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니 이메일 한 통을 보낼 때에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 부분은 연구자뿐만이 아니라, 일반 직장인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이메일의 제목만 보고서도 메일을 보내는 명확한 의도, 결론, 정보가 담겨져 있도록 쓰자. 연구를 활발히 하는 사람일수록 하루에도 수많은 메일을 받는다. 그 쏟아지는 메일 중에서 중요한 정보를 쉽게 가려낼 수 있고, 또 시간이 흐른 뒤에 상대가 이메일 검색으로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려면 제목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의 예시를 참고하자. 좋은 예시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겠지만, 제목만 보고서 판단할 수 있는 정보, 의도, 목적 등에 크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나쁜 예: “데이터입니다” (무슨 데이터인지 알 수 없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목적을 알 수 없다)
  • 좋은 예” “7월 17일 최윤섭 랩미팅 슬라이드 보내드립니다”, “A연구실 정기 미팅 공지 (7/17 @대회의실)”

또한 첨부파일 제목과 양식에도 신경을 쓰자. 실험 결과나 데이터를 보낼 때에는 첨부파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이 첨부파일을 받았을 때 어떤 상황이 될지를 상상해보면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데이터가 무슨 실험에서 나온 데이터인지, 누구의 데이터인지, 언제 나온 데이터인지가 파일에 들어 있어야 한다. 메일에는 해당 내용이 있어도, 첨부된 파일의 제목에 그 내용이 없으면, 수신자가 또 그 파일을 찾아서 직접 제목을 고치는 수고를 해야 한다.

  • 나쁜 예: “data.xlsx” , “제목없음.txt” (무슨 데이터이며, 누가 언제 만든 것이 알 수 없다)
  • 좋은 예: “digital_health_global_trends_2017_2Q_최윤섭_170717.pdf”

마지막으로 메일에 답장을 보낼 때에는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체크해라. 특히 참조 수신인(cc)이 있는 메일인지를 확인해라. ‘참조’라는 것은 해당 메일의 직접적인 수신자는 아니지만, 메일의 내용이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 되는지를 알 필요가 있는 관계자들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전체 답장’으로 답장을 보내야 한다.

예를 들어, 공동연구하는 연구실의 학생 A가 나를 수신인으로 메일을 보냈는데, 그 연구실의 교수님 B와 우리 연구실의 교수님 C 를 참조로 하여 메일을 보냈다고 해보자. A는 이 메일의 내용과 그 답장에 대해서 교수님 B, C도 알아야 한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메일에 대해서 ‘전체 답장’을 해서 A뿐만 아니라, 교수님 B, C 에게도 역시 참조로 답장의 내용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답장’을 보내면 A에게만 메일이 가기 때문에, 교수님 B, C 는 해당 내용에 대해서 팔로업을 하지 못하게 된다.

 

PS.
쑥스럽지만, 이번에 제가 책을 한 권 출판하게 되어서 이 자리를 빌어 홍보(?)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연재하는 글을 읽으면서 ‘근데 저 인간은 뭐하는 사람이지?’ 하고 궁금해하신 분도 계실텐데요. 저는 의과대학 연구소, 대기업, 대학병원 등을 거쳐서 지금은 독립하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라는 1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과 철학,독립하게 된 과정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정리하여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 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생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지만, (책의 본문에 언급되듯) 저는 대학원생일 때부터 저 스스로를 하나의 기업, 혹은 연구소로 여기면서 연구해왔습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독립적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러한 삶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 교보문고: https://goo.gl/SvddEh
– 알라딘: https://goo.gl/mB3rnV
– 인터파크: https://goo.gl/jAnx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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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해라.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아주 중요하다. 대학원 생활에서 ‘연구’라는 측면 하나만 놓고 본다면 필자의 이번 시리즈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대학원생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지식 근로자(knowledge worker)라면 누구나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대학원에 갓 입학한 분들이라면 이것이 별로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연차가 올라가서 연구 경력이 쌓이고, 사회에 나와서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면서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게 될 것이다. 사실 필자는 지금도 이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글은 조금 길지만 찬찬히 읽어보기 바란다.

생각해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먼저 독자들에게 한 번 질문을 해보겠다. 어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떠올려보자. 지난 한 주를 통틀어도 상관없다. 그중에 내가 그 누구의 방해도,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실험을 하거나, 발표 슬라이드를 만들거나, 논문을 읽거나, 논문을 쓰거나, 운전을 하거나, 회의에 참석하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과 단절된 채 온전히 나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서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말이다.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연구라는 것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도 무슨 문제를 풀 것인지를 정의해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 접근할 것인지, 그러한 방향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가설, 논리와 근거가 필요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항상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은 모두 ‘생각’ 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우리가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산다는 말인가요?”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머릿속이 백지장인 채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저것 되는대로 떠오르는 잡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연구에 집중해서 몰두하는 ‘생각’이다. 내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고 나무와 숲을 모두 보는 생각을 말한다. 실험을 하거나, 논문을 쓰거나, 논문을 읽거나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생각만을 하는 시간이다.

흔히 하는 착각은 아래의 세 가지 시간이 모두 동일하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 연구실에 앉아 있는 시간
  • 연구를 하는 시간
  • 생각을 하는 시간

연구실에 앉아 있다고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는 또한 연구실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연구실에 앉아 있다고,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서 꼭 반드시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세 가지는 동일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경우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대학원에 있으면서 너무도 많은 것에 쫓긴다. 연구 내적으로나, 연구 외적으로나. 어찌 보면 느긋하게 앉아서 생각이나 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랩 미팅, 팀 미팅, 저널 클럽 등 수많은 미팅에 참석해야 하고, 다음 주면 교수님께 당장 보여드려야 할 데이터와 발표 슬라이드, 과제 보고서를 써야 한다. 교수님께 내가 연구실에 그냥 앉아서 시간만 보내면서 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드려야 하니까. 일단 뭐라도 보여드려야 하니까.

이렇게 하다 보면 한 달이 금방 가고, 1년이 정말로 금방 간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 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너무도 멀리 떠내려왔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이미 늦다.

스스로를 한 번 되돌아보자.
지금 이렇게 되는대로 떠밀려 다니면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연구를 진행하면서 내가 그 흐름 속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고,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생각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당장 하나의 데이터를 더 뽑아내고, 발표 슬라이드 한 장을 더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정작 중요한 연구의 흐름과 의의, 큰 그림을 놓치고 있어서는 지금 당장 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연구의 흐름과 의의, 큰 그림이라고 한다면, 예를 들어서 아래와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흐름, 상태, 방향에 대한 고민
  •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의 중요성, 해결 방법과 이를 검증하기 위한 논리의 타당성
  • 원 데이터(raw data)를 분석하기 위한 가설과 분석 방법
  • 데이터와 분석 결과가 어떠한 의의를 가지는가
  • 그 결과를 어떤 방식(그래프, 표)으로 보여줄 것인가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은 대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를 선정하고, 가설을 세운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고, 논리를 위한 데이터와 근거를 만들어낸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가설을 검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결론이나 발견을 하고, 혹은 새로운 가설을 세운다. 이 전체 과정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이끌어낸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깊은 사고와 통찰이 필요한 과정이다. 예를 들어서, 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 어떠한 논리와 방향으로 이 데이터를 분석해야 가장 효과적일까. 내가 얻은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표면적으로 쉽게 드러나는 것 이외에 내가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그 어떤 것이 있지 않은가? 이 데이터에서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그다음에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더 세부적으로는 매우 재미있는 데이터를 얻었는데, 이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린다면, 혹은 표를 그린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까. 실제로 동일한 데이터와 결론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이를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표현할지에는 매우 큰 자유도가 존재한다. 좀 과장하자면 이 부분을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따라 논문의 impact factor가 바뀌기도 한다.

사람은 동일한 데이터를 보고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대가’ 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데이터와 현상을 보면서도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 좋은 과학을 할 수 있다. 좋은 데이터를 얻고서도 충분한 의미부여와 (좋은 의미로) 포장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 연구 결과가 주목받지 못한다면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도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에 온전히 집중했을 때가 언제이던가?

생각을 넘어, 몰입하라

생각한다는 것을 넘어서 몰입을 할 수 있으면 좋다. 몰입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하지만 이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몰입이 어떤 것인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어떤 주제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서, 주위의 환경, 시간, 어떤 경우에는 나 자신도 완전히 잊어버린 채 몰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태가 되면 묘한 희열과 흥분, 그리고 엄청난 효율과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완전히 몰두해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느 순간 시계를 보면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타임슬립을 한 것처럼 오랜 시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버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몰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내가 몰입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일과 연구가 잘 될 때에는 자신도 신나서 몰입이 저절도 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서 빨리 연구실에 가고 싶고, 잠을 자면서도 연구 생각을 한다. 꿈도 연구하는 꿈을 꾼다. 오히려 연구에 대한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정도다.

일이 잘 되기 때문에 몰입이 되는 것인지, 혹은 몰입이 되기 때문에 일이 잘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 둘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고, 상승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몰입에 관련해서는 서울대 황농문 교수님의 ‘몰입: Think Hard’ 등의 저서를 읽어보라. 이 책에서 나오는 모든 방법론에 동의하거나 따라할지의 여부는 독자들 개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몰입에 대해서 황농문 교수님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상당히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참고할 부분도 많다. 몰입(flow)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처음 제시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저서들도 읽어보면 좋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라

하지만 현실적으로 몰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몰입은커녕 내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하게 혼자 있을 시간도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결국 단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내가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몰입이 잘 되는 환경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는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누구든 과거에 스스로도 놀랄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나, 연구에 대해서 중요한 통찰력을 얻었거나,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시간, 그 장소, 그 상황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보자.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그러한 상태로 들어가는지를 스스로 파악해보자.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상황에서 생각에 잠기고 몰입이 되고,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유는 모른다. 뭔가 뇌와 관련된 심오한 과학적인 원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원리보다 ‘생각에 잠기게 된다’는 결과이다.

  • 아침에 샤워할 때: 샤워를 하는 도중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불을 끄고 샤워하는 경우에 더욱 효과가 좋았다. 아마도 오감 중에 시각이라는 한 가지를 차단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학원 시절 기숙사에 살면서 공용 사워 실을 쓸 때에는 불을 끄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필자가 따로 집을 얻었을 때 가장 좋았던 부분이 이 점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필자는 불을 끄고 샤워했다.
  • 걷거나 산책할 때: 아침에 연구실로 출근하면서 걸어가는 조용한 길이 생각하기에도 좋았다. 뭔가 생각이 계속 떠오르면, 그 생각을 이어가기 위해서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갈 때도 있었다. 요즘에도 생각이 막히면 무작정 걸을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에 생각을 위해서 걸을 때의 속도는 매우 느리고, 겉으로 보기에도 좀 이상할 수 있다. 내가 기업 연구소에 근무하던 시절, 생각하기 위해서 연구소 뒤쪽 길을 천천히 걷고 있는데 이를 본 다른 직원이, ‘팀장님 어디 안 좋으세요?’라고 물었던 적도 있다.
  • 화장실에 있을 때: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 앉아 있으면 치 x의 원인이 된다)
  •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필자는 대학원 시절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매주 포항에서 부산까지 버스를 탔다. 2시간 정도 걸리는 그 시간이 연구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매우 중요했다. 스마트폰, 랩탑도 없던 시기여서 그 버스에 있는 동안은 완전히 제한된 공간 속에서 내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옆자리에서 크게 노래를 듣는 사람이나, 버스에서 텔레비전을 틀어주는 폭력적인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3M 귀마개를 구비하고 다녔다. 귀마개는 지금도 내 가방 속에 항상 준비되어 있다.
  • 지하철 역에 서 있을 때: 생각하기에 특히 좋은 시간이다. 이때 좋은 논문 Figure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아래는 내가 부산의 지하철 역 플랫폼에 서 있다가 떠올린 논문 그림으로, 실제로 퍼블리쉬 하였다.
  • 다른 사람의 세미나가 재미없을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세미나를 들을 때가, 내 연구에 대한 생각을 하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세미나를 들을 때는 연자에게 집중해야겠지만, 내용이 너무 재미가 없거나, 나의 의사와는 달리 대학원생으로써 어쩔 수 없이 관객 알바로 동원되었거나 할 때에는 그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내 연구에 대한 생각에 집중해보자. 무엇인가 연구에 대한 내용을 들으면서 한 귀로 흘리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 누워서 잠들기 직전: 꿈을 꾸면서 무의식을 활용해서라도 생각을 유도해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몰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면, 반대로 몰입에 방해가 되는 환경도 있다. 몰입은 커녕 생각을 하기 어려운 환경은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할 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래의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
  •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

특히 나는 생각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벗어나려고 했다. 심리적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니터를 꺼놓아도 이상하게 컴퓨터 앞에 있으면 생각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럴 때는 잠깐 산책을 다녀오거나, 연구소 앞 벤치에서 자판기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생각을 하고자 했다. 스마트폰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지금도 일할 때면 스마트폰을 꺼두는 때가 많다.

무의식을 활용해라

한 가지 추가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꿈속에서 나의 무의식까지도 활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하다 하다 이제는 무의식이냐” 하고 질려하거나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대학원 시절에 그만큼 절박하고 진지했다. 내가 가진 의식, 무의식을 모두 활용하고 내가 가진 잠재력의 120%를 사용하고 싶었다.

나는 일과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와 누워서 잠들기 전에 데이터에 대한 분석법이나, 논리 전개, 논문 그림 디자인 등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실제로 꿈에 문제가 나와서 무엇인가 명확해지기도 한다.

사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과학자들이 꿈에서 자신이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발견했던 사례는 너무도 많다. 케큘레가 벤젠(C6H6)의 구조식을 발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케큘레는 탄소 6개와 수소 6개로 이루어진 벤젠의 구조식을 아무리 해도 만들 수가 없었다. 꿈에 자신의 꼬리를 문 뱀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보고서 육각형 링(ring)으로 이루어진 벤젠의 구조식을 발견한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대학생 시절에 수업을 듣다가도 교수님들께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더러 있다. 학부 1학년 시절 프로그래밍 입문 수업을 들을 때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김종 교수님은 “코딩하다가 디버깅(프로그램 오류 해결)이 잘 안 되면 밤새서 하지 말고, 그냥 잠을 자라. 자고 일어나서 코드를 다시 보면 해결될 것이다” 고 언급하셨다. 코딩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경험적으로 이해가 되는 말일 것이다.

디지털 개론 수업을 하셨던 서영주 교수님의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교수님 본인이 대학원 말년 차에 박사 디펜스를 불과 며칠 앞두고 있던 때였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만 디펜스를 진행할 수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아무리 해도 디버깅이 잘 되지 않았다. 며칠 안으로 끝내지 못하면 다음 학기로 디펜스를 미뤄야 할 판이었다. 며칠 밤을 새워도 버그가 잡히지 않아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다음 학기에 졸업하자.’ 고 포기하고 잠을 청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잠을 잤더니 꿈에서 자기도 모르게 디버깅을 계속하다가 ‘혹시 이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꿈속에서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벌떡 잠에서 깨어나 실제로 그 부분을 고쳤더니, 마침내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필자도 연구를 하면서 꿈의 도움을 받은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꿈을 꾸는 도중에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우도 있다. 혹은 잠을 자다가 뒤척이며 잠깐씩 깨는 그 몇 초의 순간에 내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의 답이나 논리의 오류, 예전에 떠올랐다가 잊어버리고 있던 좋은 아이디어가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필자가 출판한 논문 중에 그림 몇 개는 그렇게 자다가 한 밤중에 잠에서 잠깐 깨어난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로 만들게 되었다. 그 원리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짧은 순간에도 내가 가진 화두가 떠오를 만큼 간절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사고 패턴을 파악해라

다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의 사고 패턴을 파악해보라는 것이다. 많은 과정에는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이 있듯이,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좋은 인사이트를 얻게 되는 과정에도 패턴이 있을 수 있다.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몰입에 몰입을 거듭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고 과정의 결과로 그러한 생각이 나오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강양약 강강강약 강중약

이때 중요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는 나와 그러한 과정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분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 아이디어는 어떠한 사고의 과정 끝에 나오게 되는가? 내 자유로운 사고와 아이디어의 생성을 막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였는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특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말이다.

예를 들어, 필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경우가 있다. 대학원에 가면 보통 저널 클럽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서로 돌아가면서 중요한 논문을 선정하고 이 논문의 내용과 결론, 연구에 사용된 방법, 좋은 점과 부족한 점 등을 토론하는 것이다.

이런 미팅에서는 그 주에 선정한 논문에 대해서 “아… 데이터라면 이런 결론을 내면 대박인데, 왜 저자는 이걸 놓쳤을까?” 혹은 “이런 가설이라면 오히려 이런 데이터가 필요했을 텐데, 아쉽게도 이 논문에는 그게 없네” 하는 식으로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토론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거듭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남의 논문이 아니라) 내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서도 무의식 중에, “아… 이런 데이터가 있으면 진짜 대박인데, 아쉽게도 그게 없네” 하는 생각이 저절로 스쳐 지나간다. 내 연구인데도 마치 다른 사람의 연구를 대하는 것처럼 제3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드는 생각이기 때문에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의 생각을 잘 포착해서, 바로 그 데이터를 만들면 된다. 아래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고, 그림까지 만들어뒀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필자가 산업계로 넘어오게 되면서 결국 이 주제를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어떻게 시작할까

지금까지 연구에 있어서 생각하고, 몰입하고, 때로는 무의식까지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강조했다. 다소 추상적이고,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스스로 고민해본다고 할지라도, 어떤 문제를 풀고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오로지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아두자. 

이 모든 것을 오늘부터 한 번에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금씩 실천해보자. 가장 좋은 출발점은 하루의 일과를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최소한 아침에 일어난 순간부터 샤워하고, 출근을 준비하고, 출근하는 동안만 계속 생각에 집중해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진행하는 연구의 전체 흐름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래서 그 맥락 속에 오늘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절대로 아무 생각 없이 관성으로 출근해서, 연구실 책상에 앉은 후에, “자… 이제부터 뭐 할지를 생각해볼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면 페이스북 좀 하고, 인터넷 기사 좀 찾아보고, 커피 한 잔 마시고, 하다 보면 점심시간 금방 오고, 하루가 또 금방 간다. 큰 변화라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가능한 만들어보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분명히 적지 않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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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의 시간 관리

이번에는 대학원생의 시간 관리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더 나아가서,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노하우 몇 가지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한다.

시간은 우리 인생에서 모든 재화를 통틀어서 가장 귀중한 것이다. 한 번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다. 필자는 대학원 생활을 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거의 강박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대로 “인생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아껴라. 인생은 시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억만 금을 줘도 시간을 살 수는 없다. 사실 돈을 좀 주면 남의 시간과 노력을 살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월급을 주고 실험을 대신해줄 테크니션을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학원생에게 테크니션을 구할 돈은 없을 것이고, 또 연구하고 실험을 배우면서 한 사람의 독립된 연구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원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다음 두 가지 명제에 대해서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 대학원생에게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 연차가 올라갈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른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대학원생에게 시간은 항상 희귀하고 부족할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뭔가 이상하게 좀 여유가 있는 때가 생긴다면, 다음 두 경우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거나 (해야할 중요한 일을 까먹었다든지), 혹은 앞으로 폭풍우가 닥쳐올 것의 전조이거나. 마치 쓰나미가 본격적으로 몰려오기 전에 해변가에 물이 사라져서 파도가 멈추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리고 시간은 연차가 올라갈수록 더 빠르게 흐른다. 필자는 앞선 글에서, 연구실 선배들 중에 졸업 못하고 10년 가깝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이 실력이 없거나, 게을러서 그렇게 졸업을 오래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오래 연구실에 남아 있고 싶었겠는가. 자기도 모르게 시간이 점점 더 빨리 흘러서, 그 급류에 휩쓸려 가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그렇게 흘러버린 것뿐일 수도 있다.

연구실에 생각없이 몇 년 있어보면 시간이라는 급류에 휩쓸려서 하염없이 떠내려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은 같기는 한데 어디로 가는지는 전혀 모른 채 말이다. 물론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시간을 철저하게 활용함으로써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참고로 이번에 이야기할 시간 관리에 대한 원칙은 대학원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인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금도 이런 원칙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솔직히 나도 잘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시간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다 한다는 것이 불가능 때도 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내게 주어진 일은 계속 다이나믹하게 바뀐다. 열심히 일해서 해야 할 일 목록 중에 몇 가지를 끝내면, 그동안 새로운 일이 추가적으로 생기거나, 혹은 해야 했던 일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사실 우선 순위를 어떻게 몇 단계로 매길 것인가는 자기 계발서마다 약간씩 다르다. 예를 들어, 필자가 대학생 신입생 시절 많이 참고했던 하이럼 스미스의 “성공하는 시간관리와 인생관리를 위한 10가지 자연법칙”이라는 책에는 우선순위를 3단계, A-B-C 로 나누라고 이야기한다.

A 레벨은 오늘 반드시 해야 하는 중요한 것, B 레벨은 오늘 하면 좋은 것, C레벨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정도이다. 이 책에서는 이걸 프랭클린 플래너에 그 목록을 쓰고… 등등 의 과정을 거치는데 몇 년 하다가 필자도 더 이상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정도의 기본적인 원칙은 필요한 것 같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다. 프랭클린 플래너에 쓰는 A 레벨의 일을 미리 생각해놓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서 책상에 앉으면서 이 질문을 스스로 나에게 던지곤 한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시작하기 위함이다.

예전에는 모든 집에서 책장에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한 권쯤은 꽂혀 있었다. 필자도 이 책을 몇 번 읽었는데, 기억나는 몇 안 되는 원칙 중의 하나가 바로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는 것이다. 시간 관리나 자기 관리에 관한 여러 책을 보아도 이와 비슷한 원칙은 항상 등장한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혹은 날마다 다를 수 있다. 실험하는 것, 논문을 읽는 것, 아니면 교수님이 시킨 일을 하는 것, 혹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연인에게 헌신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해야 할 일 목록 (To-do-list)에 포함되어 있는 과업 중에서 아무런 우선 순위 없이 머리 속에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과, 중요성에 따라서 처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에 따른 결과와 생산성의 격차는 장기적으로 더 커지기 마련이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일 중에서도 시급성이 다른 일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5분 내로 바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고 (교수님이 시킨 일), 오늘 내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으며 (내일 있을 랩미팅 발표 준비), 아예 데드라인이 없는 일도 있다 (논문 읽기, 영어 공부, 부모님께 효도하기 등등).

이렇게 “중요하다 or 중요하지 않다”, “급하다 or 급하지 않다”의 두 가지 기준을 기반으로 아래와 같이 4사 분면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제 1사 분면: 중요하면서, 급한 일
– 제 2사 분면: 중요하지만, 급하지는 않은 일
– 제 3사 분면: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
– 제 4사 분면: 중요하지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

조금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매우 간단하다. 이 중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제 1사 분면에 있는 “중요하면서 급한 일” 이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가 중요하다. 별다른 생각이 없이 움직이면,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게 마련이다. 즉, 제 3사 분면의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급한 일에만 집중하다보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실행의 우선순위가 낮아지는 일들이 생긴다. 즉, 제 2사 분면의 “중요하지만, 급하지는 않은 일”이 계속 뒤로 미뤄지는 것이다. 당장 급한 미팅 준비하고, 교수님이 시킨 일 하고, 이메일 답장 보내고, 수업 시간에 숙제하고, 학부 수업 조교(TA)하면서 숙제 검사하고, 시험지 채점하고…등등을 하다보면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하염없이 뒤로 밀리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원생에게는 과학자로서 근본적인 역량을 올리고, 연구를 한 걸음씩 진전시키며, 무엇보다 ‘졸업’에 가까워지게 해주는 일은 대부분 “중요하지만 급하지는 않은 일” 들에 포함된다. 이런 일들의 공통된 특징은 데드라인이 없고,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효과가 당장 눈에 띄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계속 미루기가 쉽다.

예를 들어, 논문 읽기가 그렇다. 내 연구 주제와 관련된 최신 논문을 읽지 않아도 당장은 크게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내 근본적인 실력을 올리고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거듭나기 위해서 중요한 일이다. 연구에 꼭 필요해서 “언젠가는 통계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워야지”, “프로그래밍을 배워야지” 하는 것들도 당장 필요로 하지 않으면 뒤로 밀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어 공부가 이에 해당될 수도 있다. 포닥을 나가서 외국에서 연구를 하거나, 자리를 잡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연구에 관해서 의사소통하기 위한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실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급하지 않으니 계속해서 뒤로 밀리기 쉽다.

이러한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의식적으로 시간을 따로 할애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급한 일을 처리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중요한 일의 우선순위가 계속 낮아진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필자는 지금도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서 급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하면 장기적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의 전체 목록 중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급한지는 사람들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추구하는 가치와 미래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날마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그 목록이 다이나믹하게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 특히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의식적으로, 장기적으로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몇 개의 프로젝트를 할 것인가

이번에는 연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법, 특히 멀티 태스킹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대학원에 있으면 보통 하나의 주제만 연구하지 않는다. 실험 아이디어나 관심 있는 주제가 여러 개 있을 수 있고, 내가 메인으로 참여하는 연구와 다른 동료의 연구 주제를 내가 보조적으로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두 가지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하나만 진행하기에는 일단 나의 리소스가 남는다. 예를 들어, 생명과학 실험에서는 어떤 실험 장비를 돌리면, 그 기기가 다 돌아갈 때까지의 시간이 걸린다. 즉, 기기를 돌리기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게 된다. 이렇게 실험 중간에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또한 하나의 주제에만 내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몰빵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프로젝트를 하나만 하고 있는데 그 실험이 잘 되지 않거나, 불운하게도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연구실에서 내가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서 논문을 앞질러서 내버렸거나 하는 경우에는 매우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이 먼저 논문을 내버리는 경우를 흔히 “scoop 당했다 (특종을 빼앗겼다)”고 하는데, 실제로 왕왕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주식 투자를 할 때에도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러면 최대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이상적일까? 개인의 연구 역량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대 세 개 정도인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세 개 이상의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 노력과 관심이 너무 분산되게 되어서 오히려 비효율적이었던 것 같다.

멀티 태스킹 노하우

이렇게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프로젝트별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제한적인 리소스를 가지고서 적절히 멀티 태스킹을 통해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일종의 저글링을 한다고나 할까.

특히 최대한 일을 병렬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실험의 순서를 잘 만들면 좋다. 일을 병렬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의 속성과 수행하는 주체를 고려해야 한다.

일의 속성이라는 것은 초기에 투입되어야 하는 시간과 그 이후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시뮬레이션을 위해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초기에 투입하는 시간”이란 내가 코드를 쓰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프로그램을 완성한 이후 시뮬레이션을 시작한 이후 결과 값이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일을 수행하는 주체는 결국 나 혼자 처리해야 하는 일인가, 혹은 다른 연구자의 힘을 빌려야 하는 일인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설명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래의 연습 문제를 풀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연습 문제 (1)

철수는 (A) 실험 데이터 분석과, (B) 단백질 분석 프로그램 코딩 및 실행을 모두 해야 한다.
(A) 는 하루 정도 시간을 투입하면 즉시 결과가 나오는 일
(B) 는 5시간 프로그래밍을 하고, 컴퓨터를 2일 정도 돌려야 결과가 나온다.


일 순서를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일까?

만약에 A-B 의 순서로 하게 되면, 하루+5시간+2일이 된다. 하지만 B-A의 순서로 하게 되면 5시간+2일이 된다. 왜냐하면 컴퓨터를 2일 돌리고 있는 동안에 하루를 투입해서 실험 데이터 분석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소 간단한 예시이긴 하지만, 단순히 일의 순서를 바꾸었을 뿐인데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복잡한 문제를 보자. 이제는 다른 동료의 힘을 빌리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연습 문제 (2)

윤섭이는 학회 발표 준비도 해야 하고, 논문에 들어갈 그림도 그려야 한다.
(A) 발표 준비는 직접 해야 하는데, 이틀이 걸린다.
(B) 그림을 그리는 데는 영은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 일단 그림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반나절
     – 영은이가 그림을 그리는데는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순서는?

A-B의 순서로 하게 되면 2일+반나절+7일이 걸린다. 반면에 B-A로 하게 되면 내가 먼저 생각을 정리하고 영은이에게 위임한 이후, 영은이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나는 발표 준비를 진행할 수 있으니 반나절+7일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이렇게 연습 문제 두 개를 풀었지만 현실에서는 각종 변수들이 많아지므로 더욱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서, 당장 데드라인이 있는 일이 있으면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고, 일을 시작할 때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처음에 세웠던 계획과는 또 많은 부분이 틀어지게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의 속성과 주체를 고려해서 최대한 병렬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보도록 하자.

내일의 나에게 메시지 보내기

마지막으로 필자가 즐겨했던 팁 한가지를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는 다른 선배님께 들었던 조언인데, 나도 많은 효과를 보았다.

연구가 한창 잘 진행될 때에는 머릿속에서 계속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연구를 앞으로 어떻게 진행시킬 것이며, 지금 하는 단계 다음에는 어떤 실험을 하고, 어떤 논문을 참고할 예정이며, 이 데이터를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하고… 등등의 생각이 끊임 없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하루 일과를 열심히 연구하고서 보내고 나면, 내 머리속에 생각의 흐름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시간은 이미 늦어서 퇴근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연구가 계획대로 잘 풀리는 경우에 이런 날들이 많아진다) 이런 경우에 “내 머리 속에 아이디어와 계획이 다 들어 있으니, 내일 출근해서 다시 이어서 A, B, C를 하면 되겠지” 하고 그냥 퇴근해버리면 좋지 않다. 간밤에 아이디어를 잊어먹는 경우도 있고,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책상에 앉으면 “음… 어디 보자… 어제 내가 어디까지 생각을 했더라…” 하고 가물가물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창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고, 연구 진행에 탄력을 받는 시기인데 내 기억력을 과신했다가 흐름이 끊기면 매우 아깝다. 사라져 버린 아이디어는 돌아오지 않고, 끊겨버린 연구의 흐름을 다시 이어가려면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하다. 퇴근하기 전에 포스트잇으로 내 연구 노트 앞 면에,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했고, 내일은 A, B 실험을 하고, C 분석을 하면 된다” 정도만 간단하게 정리해서 붙여 놓으면 된다. 그러면 다음 날 출근해서도 내 생각을 어디서부터 이어가야 할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정도라고나 할까. 간단하지만 매우 효과적이다. 그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쓰는데 1분도 안 걸린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시라. 꽤 효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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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논문을 최대한 빨리 써라

지난 글에서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첫 번째 연구 주제를 어떻게 선정하고, 그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서 다뤄보았다. 이번에는 그 연구가 진행되어 첫 번째 논문을 쓰는 것의 중요성과 그 방법에 대한 부분을 강조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연구라는 것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새로운 과학적인 발견을 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이전에 인류가 닿지 않았던 미지의 지적 영역을 확장시켜나간다. 알지 못했던 보다 근본적인 원리를 파악해내고, 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으로 우리가 하는 연구의 결과물은 논문이라는 형태로 귀결된다. 열심히 연구한 결과를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한 문서의 형태로 학계에 발표하는 것이다. 보통 논문으로 연구 결과를 출판했다고 하는 것은 연구 결과의 타당성, 중요성과 신규성에 대해서 학계에서 최소한의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제대로 된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꽤나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에서 심사위원(리뷰어)들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연구, 중요하지 않은 연구, 그리고 기존의 연구 대비 새로울 것이 없는 연구 결과들을 걸러내게 된다.

사실 우리가 연구하는 목적을 논문으로 한정 짓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다. 논문은 연구의 결과물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연구하는 이유는 보다 숭고하고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논문은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의 중요성과 가치, 그리고 나의 연구 역량을 증명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대학원생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논문을 내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다.

첫 논문을 무조건, 최대한 빨리 써라

나는 대학원에 갓 입학한 후배들에게 최대한 첫 번째 논문을 빨리 써보라고 조언한다. 되든 안 되든 그렇게 노력을 해봐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논문을 출판하는 전체 과정을 일찍 경험해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실험을 하는 능력과 논문을 출판하는 능력을 비슷할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매우 다른 영역이다.

보통의 경우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대학원 생활 내내 실험하고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박사 말년 차가 되어서야 졸업을 해야 하니 그제서야 논문이라는 것을 써보려고 처음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실험에 숙달되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논문을 출판하는 것에도 능숙해지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박사 말년 차가 되어서야 논문을 처음 써보려고 하면, 집필과 출판 과정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입장에서는 이게 한 번에 잘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졸업은 더욱 기약이 없어진다.

실험을 마무리하는 것과 논문을 마무리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초보 연구자가 으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계획했던 실험이 끝나고 원했던 데이터를 모두 얻었다고 해서 연구가 마무리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부터는 논문의 작성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험이 적은 사람이 상상하는 연구 과정
실제 연구 및 논문 출판 과정

논문 쓰기: 글을 써야 한다.

자. 우리가 열심히 연구해서 원하는 모든 데이터를 얻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제 논문을 써야 한다. 같은 실험 결과와 데이터를 놓고도 우리가 이를 어떻게 풀어내고 의미부여를 하며, 학계의 동료들을 설득할 것인지는 그 데이터를 얻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서 그 데이터 자체의 의미와 중요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고등학생 때는 논술고사가 있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나의 주장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논문을 쓰는 것도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므로 논술과 비슷하다. 한국의 교육과정을 거친 많은 학생들은 글을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조리 있게 표현한다는 것인데, 우리 교육 과정에서 이러한 부분을 습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교과 과정에서는 객관식 보기 중에 답을 골라내는 훈련을 받지만, 주관식에 서술형으로 답할 기회는 별로 없다. 고등학교 때 논술 고사를 어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비춰보면 논문이라는, 논술 고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논리적 완결성, 설득력, 타당성을 지닌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원했던 데이터를 모두 얻은 다음, ‘자, 이제 논문이라는 것을 한 번 써볼까?’ 하고 MS 워드를 켜놓고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의 그 막막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아마도 더 큰 문제는 한글로 써도 어려운 이 글을 영어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학교에서는 졸업 요건으로 SCI 급 국제 저널에 출판하는 것을 요구한다. SCI 급 저널이라면 대부분 영어로 작성해야 한다. 논문에 들어가는 영어는 일반 영어회화에 쓰이는 표현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사실 이 논문에 필요한 영어 표현은 그리 다양하지 않고, 다소 정해진 표현들이 있어서 경험이 쌓이면 좀 익숙해진다. 하지만 역시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와 같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영어를 모국어가 아니라 학교에서 후천적으로 배운 외국어로 사용할 것이다. 그런 경우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어색한 표현이 없을 수 없으므로, 논문 작성 마지막에는 원어민에게 영문 표현을 첨삭 받는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

논문 쓰기: 그림도 그려야 한다.

글을 쓰는 것이 다가 아니다. 논문에 들어갈 그림이나 그래프, 표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논문은 단순히 글로만 내 연구 결과를 설명하지 않는다. 내 결과와 주장을 효과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림과 그래프의 역할이 매우 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며, 아무리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논문 전체의 컨셉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림 하나가 더 큰 임팩트가 있다.

같은 데이터를 놓고도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해서도 무수히 많은 방식이 존재하듯이, 같은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림이나 그래프를 그리는 방식에도 무한히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얻은 결과와 내가 하고 싶은 주장을 좀 더 효과적으로 그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또한 디자인에 대한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한 일이다. 논문에 글을 쓰기 위해서 작가가 되어야 한다면, 그와 동시에 우리는 미술가도 되어야 한다.

논문 그림(figure)을 그리기 위해서는 엑셀 등의 간단한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보다 전문적인 컨셉이나 멋진 그래프를 그리기 위해서 일러스트레이터 등 더 고난도의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과학자이지 디자이너가 아니므로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선배들의 연구실 책장에 일러스트레이터 책들이 한 권씩은 다 꽂혀 있는 이유를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참 쉽죠….?

서브밋과 리비전하기

열심히 글을 쓰고 그림과 그래프를 그려서 논문을 다 작성했다고 하자. 이제는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논문을 저널에 투고(submit)하고 심사위원(reviewer)들에게 심사를 받아서, 논문의 부족한 점들을 수정(revision) 해나가는 과정이다. (투고, 심사위원, 수정이라는 표현보다는 서브밋, 리뷰어, 리비전이라는 표현이 더 일상적으로 쓰이므로 이 표현을 쓰도록 하겠다.)

논문을 서브밋 하려면 무엇보다 어느 저널에 도전해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좁은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주제를 폭넓게 다루는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정상급 유명 저널을 노려볼수도 있고, 보다 더 세부적인 분야를 다루는 저널에 도전할 수도 있다.

저널의 중요도는 흔히 임팩트 펙터(impact factor)라고 불리는 인용지수에 의해서 결정된다. 쉽게 말하면 합격자의 수능 점수에 따라서 국내 대학의 서열이 대략 정해지듯이, 저널들 사이에서도 임팩트 팩터에 따라서 대략적인 순위가 정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 인용이 많이 되는 논문일수록 임팩트 팩터가 높아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점수에, 즉 저널들 사이의 등수에도 약간씩의 변동이 생긴다.

논문을 서브밋할 때 보통은 내 연구의 실질적인 중요도보다 약간 높은 저널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안 되더라도 한 번 문을 두드려보자는 마음도 있고, 혹시나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만약 논문의 퀄리티가 해당 저널의 수준에 턱없이 모자라면 저널의 편집자 (에디터)가 며칠 내로 거절(reject) 답장을 준다. 에디터가 이 논문 정도라면 한 번 심사해볼 필요는 있겠다고 하면 학계의 전문가들을 심사관으로 하여 세부적인 검토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만약 에디터가 리젝하든, 심사위원이 리젝하든, 리젝(개제 거절)을 당하면, 이번보다 약간 낮은 저널에 다시 서브밋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혹은 리젝을 당하지 않고, 리뷰어들이 논문에 부족한 점들을 알려주면서 수정(revision) 후 다시 서브밋하라는 연락이 올 수도 있다. 수정을 요구하는 부분은 완전히 새로운 실험을 추가하라는 것부터 단순한 철자 오류에 이르기까지 폭넓고도 다양하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리비전 기간은 보통 두 달 정도인데, 이 기간 동안 다시 보충 실험을 하고, 결과를 얻어서, 다시 논문을 서브밋하면 다시 재심사를 받게 된다. 리뷰어들이 지적한 사항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대응했다면 이제 논문은 수락(accept)이 된다. 반대로 수정한 한 결과가 충분하지 못하다면 추가적인 리비전을 요구 받거나 심한 경우에는 (그렇게 공들여서 리비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리젝을 당할 수도 있다.

간단히 순서도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이론적으로는 서브밋->리젝->서브밋의 무한루프에 갇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무한루프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경우 한 큐에 서브밋을 하고 리비전이나 리젝 없이 어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만약 리비전도 없이 한 큐에 어쎕되면, ‘에이 한 단계 더 높은 저널에 서브밋해볼껄…’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논문 심사와 리비전 과정의 순서도

특히 리비전을 하는 이 기간이 정말 피를 말린다. 내 논문의 논리적인 허점이나 부족한 데이터를 리뷰어들이 속속들이 지적하고 (특히 내가 숨기고 싶은 약점들을 리뷰어들은 귀신 같이 찾아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데이터를 제한된 시간 내에 빠르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뷰어의 날카로운 지적에 어떠한 논리와 실험으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전략도 중요하다. 이런 부분은 상당히 전략적이고 테크니컬한 측면이 있다.

전체 과정을 경험해보기

이렇게 실험을 끝마친 이후에도 논문을 쓰고, 제출하고 리비전을 하는 완전히 새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는 실험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역량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는 직접 겪어봐야만 비로소 체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첫 논문을 빨리 써보라는 조언에는 이런 전체 과정을 최대한 빨리 겪어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는 운 좋게도 이러한 과정을 남들보다 빨리 했다. 학부 때 이미 했기 때문이다. 학부 연구 참여를 하면서 나는 Bioinformatics라는 당시 임팩트 펙터 6점 정도짜리 저널에 학부 졸업 논문을 출판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나름대로 학부 마지막 학년을 열심히 연구해서 논문을 쓰고, Bioinformatics 저널에 내 논문을 서브밋하고, 리뷰어 세명의 심사까지 받았다.

그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리젝이었다. 나는 그 리젝 메일을 받을 때의 그 큰 실망감을 아직 기억한다. 너무도 자세하고 신랄하게 내 논문이 가지는 약점을 지적해놓았는데 당시에는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내상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보기에도 턱없이 낮은 수준의 논문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학부 때 이렇게 연구하고, 그것을 정리하여 논문으로 쓰고, 리뷰까지 받아보는 경험을 한 것은 나중에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대학원에 있다 보면 이런 경험을 박사 말년 차에나 하게 된다. 그때 가서 이 경험을 하는 것은 너무 늦다.

방귀도 자꾸 뀌어야 똥이 나온다

이런 경험을 빨리 해보라는 또 다른 이유는 연구를 일단락하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이다. 진행하는 연구는 어딘가에서 끊고 마무리를 한 다음에 넘어가야 한다. 한동안 연구했던 주제에 대해서 논문을 출판하면서 내 연구의 한 부분을 일단락하고, 후속 연구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다. 연구를 잘 마무리하는 것도 실력이며 경험이 필요하다.

연구 결과가 조금씩 쌓일 때마다 그 결과를 (임팩트 팩터가 아주 놓은 저널이 아니라도) 논문으로 차곡차곡 출판하는 사람이 있고, 작은 논문 몇 개로 나갈 결과들을 차곡차곡 모아 놓았다가 소위 빅 저널에 큰 것 한 방을 터뜨리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연구를 처음 하는 입장에서 첫 논문으로 네이처나 사이언스를 쓰기는 극히 어렵다. 작은 논문을 계속 차근차근 출판하면서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 큰 것 한 방을 노려볼 수도 있는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고, 방귀도 자꾸 뀌어야 똥이 나온다. 방귀도 안 뀌고 바로 큰 똥을 싸기는 실로 매우 어렵다.

리비전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지적을 받더라도, 그 지적에 어떤 방식으로 우리 논리를 방어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테크닉적인 부분이 있다. 즉, 요구하는대로 다 고스란히 다시 데이터를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가래로 막을 일이라도 더 작은 호미로 영리하게 막는 방법을 떠올릴 수도 있다. 리비전도 자꾸 하다보면 실력이 늘어난다.

첫 논문을 내고 나면

장담하건대 논문이 나오는 시기는 당신의 계획보다 훨씬, 훨씬 늦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변수를 고려하고 보수적으로 계획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특히 첫 논문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도 그랬다. 나도 내가 실험 계획부터, 리비전까지 전체 과정을 주도했던 논문이 결국 출판되기까지는 계획보다 2년이 넘는 시간이 더 걸렸다. 여러 저널에서 차례로 리젝트를 세 번 당했고, 출판한 저널에서도 세 번에 걸친 리비전으로 추가 실험과 논문 수정에만 장장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는 내가 생각했던 계획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그렇게 긴 세월이 걸릴 줄 알았으면 그 과정을 과연 시작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일단 논문을 한 번 내보고 나면 연구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아… 이게 이런 거구나’, ‘이 바닥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을 자꾸 써보면 전체 과정에 대해서 갈수록 익숙해지기 때문에 그 과정이 보다 수월하게 느껴진다.

더 좋은 것은 실험 계획을 세우고, 연구의 전체 구조를 만들 때에도 논문으로 마무리할 것을 고려하면서 하게 된다. 어떤 스토리가 논문으로 쓰기에 좋을 것인지를 알게 된다. 또한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만들면서도, 혹은 논문에 문장 표현을 쓰면서도 내가 만약 리뷰어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를 가늠하게 된다. 연구를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이미 논문을 마무리할 것까지도 능숙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에 익숙해지게 되면 내가 원래 세웠던 논문 출판 계획보다 늦어지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연구자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내가 첫 번째 논문에 대한 수락(accept) 메일을 받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길고 길었던 리비전 기간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이번에도 안되면 어떡하나 고민하던 나날이었다. 연구실에서 늦게 기숙사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 메일만 한 번 더 확인하고 자야지…하고 무심코 메일함을 열었는데 교수님께서 포워딩해주신 수락 메일이 띵 하고 떴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면서 만세를 불렀다. 내 첫 번째 논문이 세상에 나오던 순간이었다. 임팩트 팩터도 별로 높은 논문도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지난했던 논문 작성과 리비전 과정이었던 만큼, 그 이후에는 나도 연구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아무튼 논문을 쓰는 것에는 실험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역량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 역량과 기술은 논문을 직접 출판해볼 때만 체득할 수 있으며, 이후 논문을 내면 낼수록 더 능숙해진다. 이런 경험을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 최대한 빨리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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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구 주제를 어떻게 정하고 접근할 것인가

그렇다면 내 인생 첫 번째 연구 주제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대부분의 대학원 신입생들은 연구다운 연구를 해본 경험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주제를 잡는 것부터가 막막할 것이다. (대학원 신입생에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원하는 주제를 무엇이든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더라도 아직은 분야 자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므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러려고 대학원생이 되었나 싶어,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수도 있다.

이번에는 그러한 자괴감을 줄이기 위해 첫 번째 연구 주제를 어떻게 잡아야 하고, 어떻게 시작해볼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큰 테두리는 이미 정해져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특정 학과의 특정 연구실에 들어왔다면 이미 연구할 수 있는 주제의 큰 범위는 이미 정해져 있다. 지도 교수님의 주 연구분야가 그것이다. 연구실 이름에도 그 주제가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필자는 신호전달 실험실(Signal Transduction Lab), 구조생물정보학 실험실(Structural Bioinformatics Lab)에서 대학원 생활을 했다. 이름만 봐도 세포나 분자들 사이의 신호 전달을 연구하거나, 구조생물학을 생물정보학적으로 연구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외국의 경우에는 교수님의 성함을 붙여서 Ferrell Lab, Chen Lab 과 같이 부르기도 하지만, 한국은 대부분 연구실 주제로 이름을 붙인다)

일단 내가 특정 연구실로 진학한 이상, 이 연구실의 연구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연구는 할 수 없다. 본인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짜내어서 그 범위를 약간은 벗어나는 연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지도 교수가 그 연구 주제를 허락하지 않거나 (혹은 눈 밖에 나거나),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필요한 적절한 수준의 지도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교수라고 해서 모든 분야를 다 아는 것도 아니며,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주제까지 잘 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대한 찾아야 한다.

사실 대학원 신입생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본인 스스로 첫 번째 연구 주제를 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기존에 연구실에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있기 마련이므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는 주제를 맡는 것은 지도를 받는 사람이나 지도를 하는 사람 모두 부담이 된다.

현실적으로 첫 번째 연구 주제는 지도 교수님이 지정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도제 관계가 중시되는 분야의 경우에는 선배의 연구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어받기도 한다. 선배로부터 실험 기법 등을 배워야 하는 생명과학 등의 분야에서는 선배의 연구를 옆에서 보조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 연구 주제에서 파생되는 주제를 받는 것이다. 처음에는 선배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보고 들으면서 배우다가, 남는 시간에 자기 실험을 조금씩 해보면서 서서히 독립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대학원 신입생이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처음부터 마음껏 고를 수 있는 여건이 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도 자기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 꼭 풀어보고 싶은 질문, 자신이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소재를 선택하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어떤 주제가 구체적으로 주어지더라도, 적어도 세부적인 연구 기법이나, 추후 연구를 이끌어 나가는 방향에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대학원에 진학할지 말지 고민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대학원에 왜 들어가야 하는가? 나에게 박사가 왜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답했던 것이 기억 날 것이다. 가능한 조금이라도 그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정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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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서, 내가 기초 연구에 관심이 있는지, 혹은 응용 연구에 관심이 있는지로 구분해볼 수도 있다. 만약 연구 사업화 쪽으로 관심이 있다면, 가능하면 기초 연구보다는 기업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를 잡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제약 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너무 기초적인 매커니즘의 규명보다는 신약 후보 물질 발굴로 잡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내가 궁극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는 다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사용될 실험 기법이나 장비 사용법을 이번 연구에서 익히도록 연구 계획을 세워볼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내 연구의 주도권을 내가 조금이라도 쥘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리뷰 논문 읽기

대략의 연구의 방향을 잡았다면, 주제를 좀 더 세부적으로 잡기 위해서 리뷰 논문을 읽을 것을 권한다. 논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보통 우리가 특정한 세부적인 주제에 대해서 실험하고, 연구해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하게 되면 연구 논문(research article)을 쓰게 된다. 반면 리뷰 논문은 새로운 연구를 해서 쓰는 논문이 아니라, 특정 주제와 관련된 기존의 여러 연구들을 리뷰하고 정리한 논문이다. 즉, 리뷰 논문은 최근 연구들에 대한 일종의 요점 정리집이라고 할 수 있다. (논문의 형식에는 이외에도 좀 더 간결한 형식의 연구 논문이나 주장을 정리한 레터(Letter)도 있고, 의학 분야에서는 한 명의 환자에 대한 특수한 사례를 다룬 증례 보고 (case report) 등도 있다)

연구 주제를 잡을 때에는 전후 맥락의 파악이 중요하다. 어떤 주제이든 기존의 다른 연구의 결과를 기반으로 하기 마련이며, 그 연구를 기반으로 또 후속 연구가 나오기 때문이다. 즉, 내가 하려는 연구 주제는 과거에 전세계 연구자들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논문을 쓰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해온 연장선 상에 있다. 이러한 맥락과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이 바닥이 어떤 연구자들에 의해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이 주제에 대해서 어디까지 밝혀졌으며, 어디까지는 아직 미지의 세계인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연구를 시작해서는 내 주제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최근의 연구 흐름과 너무 동떨어진 주제를 잡거나, 기존에 이미 동일한 주제로 진행된 연구가 있는데도 그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진행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기

이렇게 지난 몇 년간의 주요 연구들을 정리해놓은 리뷰 논문을 읽으면, 이 바닥의 주요 이슈는 무엇이며, 어떠한 세부 주제들로 나뉘어지고, 각 세부 주제마다 주요 연구자들과 그 연구자들의 논문은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리뷰 논문에는 관련 논문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는 리뷰 논문 자체에는 인용된 각 논문들에 대해 몇 문장으로 간략하게만 소개되어 있으므로, 해당 연구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리뷰 논문을 통해서 전반적인 연구의 흐름을 파악한 다음, 인용된 논문들 중에서 내가 관심이 생기거나,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논문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기 시작해야 한다.

일부 리뷰 논문에는 감사하게도 레퍼런스에 중요도에 따라서 별표까지 매겨져 있고, 이 논문이 중요한 이유까지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친절한 별점과 해설을 참고해서, 다음 순서로 읽을 논문을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논문을 읽어나가면 서서히 이 주제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관련된 논문을 읽고 전후좌우의 맥락을 파악하는 목적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그러하듯) 단순히 배경지식을 수동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는, 기존 연구들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연구를 수행할 한 사람의 연구자로서 나름의 체계적인 지식체계를 갖추고 ‘자신의 질문’과 ‘자신의 가설’을 가지기 위한 것이다.

선배들에게 ‘이 주제를 왜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어떤 연구들이 있었고, 이 주제는 그 연구들과는 어떤 관련이 있어요? 이 주제는 기존 연구가 풀지 못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하고 물어보라.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으면 그 연구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논문을 읽는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기 위함이다.

따라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논문을 읽으면서 항상 화두처럼 머리 속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기존 연구의 흐름 속에서 내가 풀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나는 어떠한 가설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존 연구들의 관계와 맥락을 파악하며,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체계적인 지식 체계를 갖게 되면 이제 스스로 연구를 진행할 준비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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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목록에 별점과 해당 연구의 의의에 대한 추가 해설까지 붙어 있는 리뷰 논문도 있다.

필자가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도 선배들로부터 ‘리뷰 논문을 우선 몇 개 읽어보라’ 는 조언을 들었다. 학부 3학년 여름방학 때였는데,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나는 그때 리뷰 논문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그것을 어떻게 찾는지도 솔직히 잘 알지 못했다.

리뷰 논문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논문을 키워드로 검색할 때, 검색어에 review 라는 단어를 함께 포함시키면 리뷰 논문 위주로 검색되게 된다. 생명과학 분야의 경우 Pubmed 에 검색어와 함께 review 라는 단어를 넣어서 검색을 해보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검색된 논문들 뒤에 Review 라는 것이 붙어 있어서 리뷰 논문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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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에 review 를 추가하면, 리뷰 논문을 검색할 수 있다. 검색 결과에도 리뷰 논문이라는 것이 별도로 표시된다.

리뷰 논문은 일반적인 연구 논문집(저널)에서 포함되어서 출판될 때도 있지만, 저널 자체가 리뷰 논문 만으로 구성된 것도 있다. 생명과학 분야를 예를 들면, ‘Nature Review Drug Discovery’, ‘Nature Review Genetics’ 등 네이처의 여러 자매지나, ‘Current Opinion in Structural Biology’, ‘Current Opinion in Microbiology’ 등의 저널이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떤 저널에 좋은 리뷰 논문이 많이 실리는지 선배들께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인용 관계를 통해서 후속 연구 알아보기

논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어나가면서 자신만의 배경 지식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또 한 가지 있다. 이 특정 “논문이” 인용한 기존 논문뿐만 아니라, 내가 읽고 있는 이 “논문을” 인용한 후속 연구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달에 나온 따끈따끈한 논문이 아니라,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지난 논문이라면 그 이후에도 후속 연구가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서, 내가 2016년 1월에 출판된 논문을 읽었다고 치자. 이 논문의 레퍼런스 섹션에 들어 있는 논문들의 리스트는 당연히 2016년 1월 이전의 연구들이다. 그렇다면 이 논문이 출판된 시점 이후의 후속 연구들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이 논문을 기반으로 출판된 가장 최근의 연구 결과까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전반적인 맥락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 논문을 인용한 후속연구’ 의 목록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구글 스칼라(https://scholar.google.co.kr/) 등의 논문 검색을 사용하면 된다. 검색된 논문마다 ‘Cited by 000’ 하는 문구가 있다. 바로 이 논문을 인용한 후속 연구가 몇 편이 있는지를 알려주고, 이를 클릭하면 그 후속 논문들의 목록을 띄워준다. 이렇게 해당 논문이 인용한 논문을 참고하여 ‘이전의 맥락’ 뿐만 아니라, 이 논문을 인용한 후속 연구를 통해 논문 ‘이후의 맥락’까지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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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스칼라에서 ‘Cited by 000’ 부분을 보면 이 논문을 인용한 횟수와 후속 연구를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해당 연구가 후속 연구들에서 몇 번이나 인용되었는지는 그 연구의 중요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이다. 연구가 흥미롭고 중요할수록 더 많은 후속 연구가 진행되고, 더 많은 논문이 인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연구 업적이나, 대학교의 연구 역량을 따질 때에도 이 인용 빈도가 매우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이다) 내가 읽고 싶은 수많은 논문들 중에 무엇을 먼저 읽을 것인지를 정할 때에도 인용 빈도가 높은 논문의 우선순위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면, 논문 제목은 그럴듯해 보여도 몇 년 동안 인용 빈도가 너무 낮으면 논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봐도 좋다.
이번에는 내 인생 첫 번째로 연구 주제를 선택하고, 그 주제에 대해서 배경 지식을 쌓기 위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첫 연구 주제를 결정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같은 값이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를 정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접근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다음 주제로는 첫 번째 논문을 쓰는 것의 중요성과 그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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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들어왔다. …이제 어떡하지?

축하한다. 당신은 대학원에 가야 할 충분한 이유도 스스로 찾아냈고, 박사 학위가 가지는 의미도 이해했으며, 좋은 지도 교수님도 현명하게 선택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어엿한 대학원생이 되었다.

시작이 반이다. 그러니 “드디어 대학원생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이제 당신에게 고생문이 훤히 열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웰컴 투 더 헬!” 이라고 조금 과장을 섞어서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당신의 기분을 조금 나아지게 할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대학원에 입학한 직후가 힘들 것이다. 학부 때 연구 참여나 인턴을 해보지 않았다면 난생 처음 처해보는 환경과 역할, 교수님과의 관계, 선배들과의 관계, 과중한 업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연구 등의 상황과 한꺼번에 마주하는 것이 힘들 것이다. 내가 주위에서 보았던 바에 따르면, 대학원을 끝까지 마치치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저년차 때 그만둔다.

jdd대학원..아니 마션의 첫문장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처음 적응할 때에 대한 팁을 몇 가지 드리려고 한다. 혹은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쉽지 않을 테니 일단 이 악물고 가드 올리고 복부에 힘주고 각오를 단단히 하자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이야기들이 대학원 신입생 시절을 버텨내기 위해서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바래본다.

1년차 때는 연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대학원 신입생 때에는 자신의 연구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아직 성숙한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연구에 할애할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여유나 정신적인 여력이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대학원 1-2년 차에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 석사를 먼저 하는 경우도 그렇고, 석박 통합과정을 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일단 학점을 따서 학위 과정을 수료해야 하니 수업이 있으면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과제나 팀 프로젝트를 적지 않게 내어주는 경우도 있다. 수업에 들어가는 시간, 숙제하는 시간만 하더라도 일과 시간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게 된다.

학부 수업의 조교로 들어가야 한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진다. 필자의 경우에는 다행히도 조교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진학한 학과가 대학원에만 있었기 때문에, 조교를 할 학과가 학부에 없었다) 만약에 학부 조교를 해야 한다면 수업을 준비하고, 숙제나 시험을 채점하는 등의 활동에 피 같은 내 시간을 추가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또한 생명과학과처럼 기본적인 실험 기법을 익혀야만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전공이라면, 실험 테크닉을 배우고 숙달되는 것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이런 경우 보통은 도제 관계로 특정 연구실 선배를 내가 따라다니며 (이렇게 도제 관계의 선배와 후배를 보통 ‘사수’-‘부사수’ 라고 부른다) 연구를 보조해주면서 조금씩 어깨너머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초반에는 사수의 연구를 도와주다가 점차 자신의 주제를 얻어서 독립적인 실험을 하게 되는 방식인데, 이 역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또한 연구실에서 파생되는 온갖 잡무들도 (연구실마다 차이는 있지만) 저년차들이 도맡아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과제 관리, 각종 서류 작업, (운이 없으면) 교수님의 심부름이나 기타 잡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주어진 수업, 숙제, 조교, 시험 배우기, 잡무…를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 중 일과 시간은 지나가고 저녁이 되어 있거나, 어느새 한 주가 지나가고 주말이 되어 있을 것이다. 대학원생들이 밤늦게까지 혹은 주말에 연구실에 남아 있고 싶어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프지만 그때가 아니면 내 스스로 연구할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확보해라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해라’ 고 조언하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임은 필자도 잘 알고 있다. 필자도 대학원 신입생 때 논문도 좀 읽고 싶고, 내 연구도 얼른 하고 싶고, 선배들이 다들 하시는 실험도 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그렇게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특히 연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다른 지적인 작업과 마찬가지로) 연속적인 시간의 확보가 아주 중요하다. 필자는 이에 관해 피터 드러커가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했던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 지식근로자에게는 30분씩 따로 6번 일하는 것은 소용없고, 3시간의 연속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대학원에서, 특히 1년차 때는 수업, 숙제, 조교, 랩미팅, 저널클럽, 각종 연구실 행사에 시간을 쓰다 보면, 연속적인 시간의 확보가 매우 어려워진다. 논문을 좀 읽으려고 하면 처리할 일이 생기고, 실험을 좀 해보려고 하면 수업에 가야 할 시간, 데이터 좀 들여다보려면 랩미팅에 들어가야 하고… 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것이 결코 쉽지는 않고, 이를 위해서 모든 상황에게 적용될 수 있는 조언은 없겠지만, 어떻게든 발버둥 치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너무 무책임한 발언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필자도 신입생 때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을 고백하고 싶다.

필자는 대학원 1-2년 차 내내, 나는 마음껏 달리고 싶지만, 온갖 잡무를 처리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려고 준비자세를 취할 때마다 또 다른 잡무가 생기면서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채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그때는 얼른 고년차가 되어서 잡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내 마음껏 연구를 하기가 쉽지 않은 시기다.

방학은 연구를 위한 절호의 찬스

신입생 때 ‘연구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라’ 는 조언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바로 “방학”이라는 절호의 찬스이다. 신입생 때 연구를 조금이라도 진전시키고 싶다면, 방학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기회이다. (이는 비단 신입생 때뿐만이 아니라, 연차가 올라가도 마찬가지이다)

학부생 때 방학은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알바를 할 수도 있는 등 자신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다. 설마 대학원생이 되어서 방학을 자유롭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자면 1년 차 여름 방학은 아마도 대학원 생활 처음으로 연구에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실 방학이라고 해서 대학원생들의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아침이면 출근해야 하고, 랩미팅에도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크게 바뀌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수업, 숙제, 학부생 조교라는 요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 요소들만 없더라도 내가 연속적으로 시간을 확보하여, 연구에 할애할 수 있는 여력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므로 학기를 보내면서 방학이 되면 내가 가진 시간과 노력을 총동원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자. 연구에 열정이 있다면 방학이 가까워 온다고 좀 더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더 빡세게 연구에 몰입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학기 중에는 논문을 자세히 읽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체계를 갖춰서 정리해놓고, 연구에 관한 가설이나 실험 아이디어들도 학기 중에 정리해놓자. 그러면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망설임 없이 바로 내 리소스를 투입하기가 좀 더 용이할 것이다. 필자는 대학원생 때 방학이 가까워 오면, 이제야 내가 그동안 계획해오던 연구를 좀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명이 나던 기억이 난다.

연구실의 인간관계

연구실도 하나의 작은 사회이다. 그리고 사실 매우 특수한 사회이고 왜곡되기 쉬운 사회이다. 연구실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교수님이라는 절대 권력자를 중심으로 연구실은 돌아간다. 하루 종일, 어떨 때는 주말까지 선후배들과 마주쳐야 한다. 선후배 사이에서도 위계질서가 엄격한 곳도 많다.

연구실 구성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대학원 생활에서의 삶의 질을 위해서도, 안정적인 연구의 진행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모든 사회 생활이 그렇듯이 가장 큰 고민과 갈등은 불편한 인간 관계에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구실 구성원과 불편한 관계가 되면 서로 불행해지고, 연구에도 지장이 커진다.

사실 좋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대학원뿐만이 아니라, 이후 사회에 나가서 직장 생활을 하든, 외국에 포닥을 가든 마찬가지다. 다만 대부분의 대학원생이 대학원에 오면서 학생 신분을 벗어나 작은 사회 생활을 처음 한다는 점, 사회 생활을 처음 한다는 것은 사실 선배들도 마찬가지라는 점, 구성원이 많지 않고 서로 열악한 환경에서 지낸다는 점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 인간관계가 왜곡되기 쉽다는 점이 위험 요소이다.

실제로 주변의 연구실들을 보면 많은 경우에 선후배, 혹은 동기들 사이에서 사이가 좋지 않고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직접, 간접 경험했던 국내외 연구실에는 최소한 절반 가까이 구성원들 사이에 사이가 좋지 않거나, 서로 편 가르기를 하는 곳이었다. 슬프게도 그 작은 사회에서도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나 또라이가 심심찮게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연구실을 그만두는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연구실 별로 분위기가 다르고, 본인의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최소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선후배 사이에서,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선배가 후배에게, 교수가 학생에게도 마찬가지다) 예의있게 상대방을 대하고, 인간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연구에 대한 진지하고도 프로페셔널한 자세와 순수한 열정도 필요하다. 사실 이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일단 신입생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들은 이러한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값이면 회식이나 야유회, 엠티, 대청소 같은 연구실의 행사에도 되도록이면 잘 참여하도록 하도록 권하고 싶다. 필자도 술을 잘 마시지 못하고, 즐겨하지 않는 편이어서 (지금도 그렇지만) 회식은 질색이었다. 그래도 가능한 열심히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신입생 때는 연구실이라는 사회에 내가 첫 발을 내딛는 시기이고, 연구자 인생의 처음으로 학문적인 동료들을 가지게 되고, 그 동료들에게 나의 첫인상을 남기게 되는 때이다. 그 동료들은 어쩌면 앞으로 평생 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학문적인 동반자가 될지도 모른다.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과 처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보자.

허드렛일도 중요하다

연구실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신입생들이 연구실에서 실험을 위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청소는 기본이고 실험에 일상적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준비들을 하는 것이다.

생명과 연구실을 예로 들자면, 세포를 배양할 수 있는 배지를 만들거나, 많이 사용되는 시약이 부족하지 않게 만들어서 보충해 놓거나, 실험 폐기물이 모이면 정해진 곳에 버리거나, 실험 기기를 관리하는 것 등이다. 컴퓨터 공학과 연구실이라면 서버 유지 관리 같은 것들이 그러한 활동일 것이다. 어떤 연구실은 이를 위해서 테크니션이나 알바를 따로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실은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않으므로) 내부 인력을 통해서 해결한다.

이는 사실 귀찮은 일이다. 연구를 위해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고 하다. 하지만 좋게 보자면 이 또한 실험의 기초가 되는 일이므로 장기적으로는 피가 되고 살이 될 수도 있다. 만약에 내가 박사를 하고 포닥을 한 다음에 드디어 내 연구실을 차리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완전히 새로운 연구실을 세팅하기 위해서는 아주 기초적인 것들도 알아야만 할 것이고, 새로 들어온 학생들을 지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것, 하찮은 허드렛일 등을 등한시하고 익히지 않았다가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왠지 변명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허드렛일을 피할 수 없다면, 이렇게라도 좋게 생각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하자.

 

이번 글을 쓰다 보니, 왠지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빙빙 돌아서 이야기를 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앞서 언급했듯,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원에 처음 적응하기란 꽤나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첫 연구 주제를 어떻게 정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원래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이 주제인데.. 글이 길어지다 보니 별개의 포스팅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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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교수를 어떻게 골라야 할까

필자는 후배들의 진로 상담을 꽤 많이 해주는 편이다. 사실 진로 상담을 해준다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과 관련된 진로 상담 요청을 받을 때, 단연 가장 많은 질문은 (앞서 다룬 바 있는), “제가 대학원을 가야 할까요?” 와 함께 “어느 교수님의 연구실로 진학해야 할까요?” 하는 것이다. 오늘은 후자의 질문에 대해서 조금 다뤄보려고 한다.

대학원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역시 그다음 단계는 교수님과 연구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수능을 보고 대학을 진학할 때에는 학교의 네임 밸류가 영향을 크게 미치지만,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선택할 때에는 지도 교수님이 누구인지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박사후연구원을 할 때에는 학교의 네임 밸류보다 오히려 PI (Principal Investigator = 지도교수 = 보스)가 누구인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지도 교수를 정한다는 것은 내가 대학원에서 연구할 세부 분야를 정하는 것과도 맞물리는 결정이다. 지도 교수는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하게 될,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0년에 가까운 세월까지 나의 목숨을 틀어쥐고 있을 절대 권력자이자, 싫든 좋든 평생 나와 때려야 땔 수 없는 나의 학문적 아버지이자, 스승님이다. 그리고 그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분야가 나의 연구 분야가 된다.

단연코 장담하건대, 대학원 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가 지도 교수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그 교수님이 진짜 어떤 분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연구실에 지원하고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 진학하고 보니 (외부에서 봤거나,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얼굴을 한) 지도 교수를 만나서 대학원 내내 시달릴 것인지, 내가 평생 동안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존경하면서 내가 독립적인 또 한 명의 연구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을 만날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지도 교수를 선택할 수는 있다.

기준 1: 나의 열정이 어디에 있는가

지도 교수와 연구실을 고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도 교수와 연구실을 선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연구 분야’라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를 연구할지 먼저 정한 이후에, 그 분야에 어떤 교수님의 어떤 연구실이 있는지 범위를 좁혀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정한 연구 주제는 내가 평생 동안 연구자로서의 뿌리를 내리는 분야가 된다. 추후에 포닥을 하거나 취업을 하면서 세부적인 주제는 바뀌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내가 박사를 했던 분야와 완전히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결국 내가 평생 동안 써먹을 전문성의 근간이 될 분야를 고르는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내가 정말 이것이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인가?” 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원에서 우리는 많은 고생을 할 것이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하고. 연구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많은 고뇌를 겪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이 분야에 종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정말로 연구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주제를 골라야 한다. 이것에 비하면 “지도 교수님이 얼마나 네이처에 논문을 잘 내는 사람인가”, “이 분야의 박사를 하면 얼마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 “이 분야의 전망은 어떠한가” 와 같은 것은 모두 부차적이다. 당신의 열정과 흥미만큼 연구 주제를 고르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는 없다.

문제는 학부생 수준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흥미나 열정도 그 주제에 대한 단순한 이미지나 어깨너머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지를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내가 A라는 분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열정과 흥미가 부족한 정보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나중에 실제로 그 분야를 연구하게 되었을 때, “이건 내가 기대했던 거랑 완전 딴판인데?” 하고 깨닫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정보가 부족하더라도 큰 틀에서 자신에게 맞는 분야의 범위를 좁혀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응용 과학에 관심이 많은지, 아니면 순수 과학에 관심이 많은지는 구분 가능하다. 내가 연구를 한 결과물이 산업에 응용이 되고 머지않은 미래에 사람들에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 혹은 보다 순수하게 나의 지적 호기심을 좇고 학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맞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또는 책상에 앉아서 프로그램을 짜거나 문제를 풀면서 머리를 쓰는 것이 더 맞는지, 몸과 시간을 쓰면서 실험을 하는 것이 더 맞는지를 구분해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구분들은 대학원 생활을 하는 방식에 큰 차이를 만들게 된다.

미리 겪어봐야 한다

해당 분야를 알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연구실에서 미리 일해보는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학부생 때 반드시 대학원 연구실에서 미리 연구에 참여해보는 것이 좋다. 이러한 과정은 지도 교수와 연구 주제를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학원에 진학할지 여부 자체를 결정하기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나의 모교 포항공대를 포함한,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학부생들이 졸업 전에 연구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거나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학교마다 그 과정의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흔히 ‘연구 참여 (포항공대)’, ‘학부생 인턴 (서울의대)’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포항공대에서는 학부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3학점짜리 “연구 참여 A”, “연구 참여 B” 두 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학기 중이나 방학 때 연구실에 들어가서 실제 대학원생처럼 스스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야만 졸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학부생 수준에서 한, 두 학기 연구실 생활을 한다고 해서 얼마나 위대한 연구 결과가 나오겠냐만, 이는 진학을 고민하는 학부생의 입장에서는 놓쳐서는 안 될 귀중한 기회가 된다. 내가 정말 대학원에서 잘 버틸 수 있을지, 내가 연구하고 싶어 했던 이 주제가 나의 기대와 일치하는지, 교수님은 어떤 분이고 연구실의 선배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연구실 문화는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 학기 정도의 시간을 써서 대학원이 혹은 이 특정 연구실이 나와는 도저히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큰 이득이다. 더 큰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부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거의 매학기 연구참여를 했다. (복수전공을 해야했기 때문에, 졸업하려면 이수학점 상으로도 다른 학생들의 두 배를 의무적으로 해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구참여를 하면서 그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분야와 대학원생들의 생활을 면밀하게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그 연구참여했던 연구실 중의 하나로 진학하게 되었다.

자신의 학교에서 이러한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없다면, 개인적으로 교수님께 찾아가서 한 학기 정도 미리 연구실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먼저 요청을 하면 된다. 사실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적극적인 학생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교수의 입장에서도 자기 연구실 멤버로 우수한 학생, 적응을 잘할 수 있는 학생을 뽑는 것은 큰 숙제이다. 미리 상호 간의 궁합을 맞춰볼 수 있으므로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더욱이, 자신이 졸업한 학부와 다른 학교의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경우라면, 특히 방학 때 운영하는 해당 학교의 연구 참여 프로그램이나 인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공식 프로그램이 없어도, 그냥 무대뽀로 교수님께 요청드려보는 방법도 있다. 적극적인 학생들의 경우 이런 기회를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의 타대 출신 친구의 경우에도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없음에도 포항공대 교수님에게 ‘겨울 방학 동안 랩에서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하고 무작정 연락하여 성사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타대 대학원 지원 시에, 자대 출신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포항공대 출신의 학생이 카이스트 대학원 연구실에 지원한다면 카이스트 학부 졸업생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동일한 조건이라면 교수는 당연히 카이스트 졸업생을 선호할 것이다.

경쟁에서 밀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성적증명서와 지원서만 봐서는 완전히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교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르쳤고, 몇년 동안 익히 지켜봤던 자대생을 놓고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타대생을 선발하는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미리 방학 때 연구 참여생으로 교수님과 연구실 대학원생과 이미 안면을 트고 좋은 인상을 남겨 놓았다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기준 2.1: 지도 교수의 학문적 역량

내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좁혔다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교수님께 지원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나는 지도 교수에 대해서 두 가지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실력과 인성이다.

실력은 연구에 대한 열정, 연구 성과, 지도 방식 등을 포함한다. 연구에 대해서 얼마나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임하며, 대학원생들을 또 다른 후세대 연구자로서 잘 성장시키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연구 지도 스타일은 어떠한지 하는 것이다. (본인의 연구 역량과 후세대 연구자를 양성하는 역량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단 좋은 대학에서 교수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면 연구에 대한 실력은 어느 정도 검증된 것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판단하려면 최근 연구 실적을 보는 것이 좋다. 연구실 홈페이지나 구글 스칼라, PubMed 등의 검색을 통해서 그 교수가 최근 3년 혹은 5년간 어떠한 논문을 냈는지를 꼭 살펴보도록 하자.

특히, 어느 저널에 논문이 나갔는지, 출판 빈도는 어떠한지, 예전보다 지금 논문이 더 잘 나오는지, 과거에는 네이처, 사이언스에 많이 나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지… 등등을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저자 목록에서 지도교수가 단순히 공저자(co-author: 저자 목록 중간에 이름만 들어간 것)인 논문은 제외하고, 연구에 전반적으로 책임을 지는 교신저자(corresponding author)인 것들만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냉정하게 말해서 교수들 간에도, 연구실 간에도 연구 역량에 차이가 존재한다. 나라는 개인이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그 연구실의 역량을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네이처 논문도 내본 놈이 계속 내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만약에 그 연구실로 진학한다면, 그 연구실 홈페이지의 연구 성과 목록에 수록된 저널 중의 하나에 내 졸업 논문도 나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년간 네이처, 사이언스 논문을 하나도 못 낸 연구실이라면, 내가 졸업할 때가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과거에 비해 최근에 나온 논문이 없거나, 연구 실적이 현저하게 좋지 않다면 그 이유를 조금 더 알아보는 것이 좋다.

교수님의 지도 스타일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매니징(micro-managing), 즉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지시하고 지도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그냥 학생을 믿고 자유방임을 하는 분도 있다.

전자는 피곤하고 짜증 나지만, 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연구나 논문 작성의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역시 연구 자율성은 현격하게 떨어지고, 삶의 질도 나빠진다. 후자는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이 적으니 편하고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의 연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독려하고 세세하게 지시해야만 움직이는 스타일의 학생의 경우라면, 방임하는 교수 아래에서 넋 놓고 있다가 영원히 졸업을 못하게 되는 수도 있다.

훌륭한 리더라고 하더라도 세부적으로 리더십의 스타일은 다르듯이 훌륭한 지도 교수의 경우에도 스타일은 상반되는 경우가 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 것처럼, 어떤 스타일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스타일과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지도 교수님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세세하게 간섭하거나, 학생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매우 싫어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스타일을 가진 보스 아래에서 일할 때가 더 편했고 연구 성과도 좋았다.

00PItype2참고로, 매우 현실적인 그림이다.. (출처 1, 2)

기준 2.2: 지도 교수의 인성과 태도

지도 교수를 고르기 위한 두 번째 기준은 바로 인성과 태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실력보다도 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좋은 대학에 교수로 자리를 잡고, 연구실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실력은 보장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성은 그렇지 않다.

언론에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인격적인 장애가 있는 소위 ‘또라이’ 교수나, 연구비 횡령 등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수, 데이터 조작 등 연구 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교수 등의 예시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인격적으로도 내가 존경할 수 있고, 더욱 중요하게는 나를 한 사람의 인간이자 연구자로서 (존경이 아니라) 존중해주는 스승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 정신 건강과 자의식에도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내가 나중에 한 사람의 독립된 연구자로서 어떠한 스타일의 교수/보스/리더가 될 것인지”에 지도교수의 지도 방식과 태도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새내기 대학원생으로서는 지도교수가 실질적인 인생 최초의 보스가 된다. 그 지도교수는 내가 싫든 좋든 수년 동안 매일매일 내가 보고 들으며 참고할 수밖에 없는 롤모델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은 대학원을 그만두는 것보다 더 어렵다.

대학원생으로서 연구실에서 한 해, 두 해를 보낼수록 자신도 모르게 지도 교수와 닮아가는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연구실 선배들 중에서 지도 교수의 지도 방식에 대해서 그렇게 비판하면서도, 본인도 어느새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곁에 있는 사람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고, 연구실에서 보고 배울 것이 지도 교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그렇게 되지 않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지도 교수를 잘 골라야 한다.

필자가 즐겨보는 JTBC 썰전에서 여러 번 나온 말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즉, 견제 세력이 없는 권력은 결국에는 어디엔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연구실의 교수들은 견제 세력이 없는 절대 권력자이다. 연구실은 그들의 왕국이고 지도 교수는 연구실의 학생들과 연구원 위에 군림하는 절대 군주이다. 교수가 혼자서 폭주하더라도 연구실의 학생이나 다른 동료 교수들이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전무하다.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현명하고 어질게 나라를 다스리는 성군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권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정을 휘두르는 폭군도 있다. 나는 슬프게도 주위에서 후자에 해당하는 교수를 적지 않게 보았다.

좋은 대학에서, 학문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루고, 존경받는 학자인 분들이 연구실 내에서는 학생들에게 인간다운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적인 업무를 시키거나, 입에 담지 못할 쌍욕과 폭언을 하거나, 학생들을 인격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가혹하게 대하거나, 연구비 운용에 문제가 있는 경우다. 학문적으로는 존경하고 싶은 분들 일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결코 상종하고 싶지 않은 분들이다.

반드시 교수와 학생들을 미리 만나봐라

문제는 교수의 인성이나 태도는 연구실의 내부인이 되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외부 활동을 하거나 학부 강의에 들어올 때는 어느 교수나 멋지고 쿨한 척이라도 하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서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앞서 관심 있는 연구실이 있으면 진학 전에 잠깐이라도 미리 일해보라고 한 이유는 사실 이런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한 번이라도 그 연구실을 방문해서 교수님을 만나보자. 만약 기회가 된다면 랩 미팅에도 들어가서 참관을 해볼 수 있으면 좋다. 랩 미팅에서 교수가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연구 결과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코멘트,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어떤 식으로 질책을 하는지 주의 깊게 잘 살펴보자.

결과에 관한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프로페셔널한 비판과 토론이라면, 연구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혹은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 학생에 대한 비난이나 인격 비하, 폭언, 비이성적이거나 감정적인 지적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외부인이 참관할 때 또라이짓을 할 교수는 없을테니, 행간을 잘 읽어야 할 것이다)

이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대학원생들의 표정이다. 랩 미팅에서 다들 주눅이 들어있고, 교수의 코멘트에 수동적으로 무조건 수긍하기만 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교수의 지적이나 지시에 ‘예, 예’ 만 반복한다면, 아마도 그동안 교수가 디스커션에 응하지 않거나, 학생의 반론을 허용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스타일일 가능성이 있다. (이런 환경이라면 대학원생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교수님과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서로 수평적으로 질문과 답이 이어진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좋다. 교수와 대학원생이 서로 학문적인 동료로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보자. 연구실에 앉아 있는 대학원생에게 “이 연구실에 지원을 고민하고 있는데, 혹시 잠깐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하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대학원생에게 “만약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이 연구실에 진학하겠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YES/NO 답변이 아니라, 그 답변의 이유이다. 그 이유에서 묻어 나오는 교수의 실력, 인성, 연구실 분위기 등등이 나에게는 어떻게 해당될지를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

유학을 고려하는 경우도 이 원칙은 그대로 해당된다. 약간의 돈과 시간이 들겠지만, 가능하면 직접 한 번 가서 교수와 학생을 직접 만나보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더 큰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의치 않으면 홈페이지에 나오는 학생들에게 무작정 이메일이라도 보내서 교수의 스타일과 연구실 분위기에 대해서 물어봐야 한다. 만약 한국인 유학생이 있으면, 특히 친절하게 답해줄 것이다. 역시 외부인에게 이메일로 답변하는 것은 상당히 유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니, 행간을 잘 읽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반드시 파악해보아야 할 것은 연구실 내의 자대생 비율이다. 연구실에 유난히 자대 출신의 대학원생이 적다면, 지도 교수의 인성이나 주변 평판에 대해서 한 번쯤 심각하게 의심을 해봐야 한다. 자대 졸업생들은 교수들의 평판을 직간접적으로 익히 알고 있다. 인성이 X 같은 교수의 연구실에는 자대생들은 진학을 꺼리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타대 출신의 대학원생으로 채워지게 된다. 반대로 자대 출신이 많은 연구실이라면 지도 교수의 인성 및 평판에 대해서 평균은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주: 이 단락은 태웅님의 페북글을 보고 추가한 것입니다. 저도 평소에 생각해오던 것인데 처음 글에는 빠뜨렸네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가면 대학원 생활 내내 몸과 마음이 고달프다. 더 큰 문제는 그 사람들을 내가 닮아갈 수도 있다는 것에 있다. 물론, 개인의 감수성이나 비합리적인 상황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분이라도 인격적으로 내가 존경할 수 없고, 나를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지 않는 보스 아래에서는 일하기 싫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하는 주된 원인이 바로 이 것인 경우가 많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반드시 팩트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내가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굴 속에 호랑이가 있는지, 몇 마리가 있는지, 얼마나 또라이 호랑이인지는 미리 파악해놓아야 한다. 그냥 ‘굴이 뭐 거기서 거기겠지…’ 하고 아무 굴에나 들어갔는데 갑자기 미친 호랑이와 마주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기준 3: 분야의 전망

마지막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분야의 전망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개인적인 열정이나 지도 교수님의 스타일이라는 요소와 비교했을 때에 분야의 전망이라는 요소의 중요도는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보통 후배들이 질문을 할 때에는 ‘A 분야가 앞으로 유망해질까’, ‘B 분야의 박사를 하면 취업이 잘 될까’라는 것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큰 의미를 두기가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과 같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연구 성과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는 어떤 분야가 유망할지, 혹은 아예 분야 자체가 사라져 버릴지에 대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를 하고, 포닥까지 마친 후라면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경기장의 본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아득한 세월 이후에 어느 분야가 뜰지, 어느 분야가 연봉이 높을지 예측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보더라도 내가 대학원 시절에 핫하다고 했던 분야들 중에 지금까지 유망한 분야는 사실 별로 없다.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인 인공지능과 같은 분야도 흔히 ‘AI winter’라고 불리는 오랜 암흑기를 겪었다. 지금 인공지능 전문가로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은 그 인공지능의 암흑기에도 묵묵하게 자신의 열정에 따라서 연구를 지속했던 사람들이다. 지금 인공지능 혹은 딥러닝 분야의 호황’만을’ 보고 진학한 사람이라면, 10년 뒤에 이 분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앞서 강조한 나의 흥미와 열정을 따라가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분야의 전망이 좋지 않아도, 그 분야가 아예 통째로 사라져 버리지 않는 이상은 실력이 좋은 전문가라면 입에 풀칠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 분야가 아무리 주목받고 연구비가 많이 몰린다고 하더라도, 실력이 없는 사람까지 몸값이 높아지라는 법은 없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특정 분야에 몸담은 이후라면, 그 분야의 흥망성쇠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도 일부분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세계적인 천재라서 그 분야를 혼자서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적어도 해당 분야의 발전에 대한 1/n 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대학원에서 혹은 졸업한 이후에 내가 좋은 연구를 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낸다면 나라고 그 분야의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나라고 선도적인 연구자와 오피니언 리더가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뜻을 품은 연구자라면 이 정도의 자각과 자신감은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내가 즐겁고 흥미 있는 분야를 연구한다면 설사 그 분야가 아주 핫하거나 촉망받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나는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흥미도 없는 분야를 장래에 유망한 분야라는 이유만으로 전공했다가, 그 예측이 빗나가면 무척 암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전망은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나 자신의 소리에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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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라는 것의 의미

박사 학위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힘든 대학원 생활을 거치면서 기어이 받으려고 하는 그 박사라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 목표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생각만으로 목표를 추구했다가는 정작 그것을 달성한 후에, “어? 이 산이 아닌가벼?”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박사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학원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디펜스의 추억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모두 이수해야 한다. 논문 프로포잘을 통과해야 하고, 일정한 조건 이상의 연구 실적을 내야 한다. 대부분 논문의 편수,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와 내가 몇 번째 저자인지(authorship)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은 바로 “디펜스(defense)” 라고 불리는 과정이다.

디펜스는 내가 지난 대학원 생활 동안 진행했던 모든 연구를 종합 및 요약해서 그 정수(?)를 발표하고 주변 동료들과 교수님께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마지막으로 검증받는 과정이다. 이 관문이 ‘디펜스’ 라고 불리는 이유는 (모르긴 몰라도) 말 그대로 내 연구에 대해서 학위 심사 위원회 교수님들의 온갖 공격과 태클과 딴지를 끝끝내 방어하는 데 성공해야만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디펜스가 진행되는 구체적인 형식은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의 모교 포항공대 생명과학 분야의 학과에서는 공개 발표 형식으로 디펜스를 진행했다. 누군가 디펜스 일정이 잡히면, 발표 제목과 요약문(초록), 일정과 장소가 학과 구성원에게 전체 메일로 뿌려진다. 우리 연구실 구성원뿐만 아니라, 내 연구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교수님, 학생, 연구원 등 누구든 내 발표를 들으러 올 수 있는 것이다. 꽤 많은 사람이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 연구실은 보통 강당에서 디펜스를 진행했다.

발표는 보통 20분 내외로 이뤄진다. 내가 수년 동안 진행했고 수십 장의 논문들로 발표했던, 혹은 발표할 예정인 여러 연구의 배경과 결과, 의의를 모두 20분에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결과를 기라성 같은 교수님들을 앞에 놓고 발표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꽤나 무대 체질이고, 예전부터 크고 작은 무대에 서본 경험이 많았다. 학부 시절 밴드 보컬도 했고, 학교 축제 공연의 단골 사회자로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도 여러 번 섰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에서 레크레이션 게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사 디펜스를 할 때에는 솔직히 정말 많이 떨렸다.

“네가 왜 박사를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

준비한 발표를 끝낸 이후에는 학생들을 포함한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이렇게 공개 질의 응답이 끝나고 나면, 박사 학위 심사 위원 교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강당 밖으로 퇴장한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어려운 과정이 시작된다. 교수님들과 내가 5 대 1로 공격과 방어를… 아니 질문과 답변을 하는 비공개 세션이 진행되는 것이다.

사실 디펜스를 통과하지 못해서 박사 학위를 못 받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과정이 호락호락한 것은 절대 아니다. 본래 완벽한 연구라는 것은 없는 법이라 빈틈을 찾거나 딴지를 걸려고 하면 얼마든지 걸 수 있다. 더구나 디펜스는 대학원생에게 학교와 지도 교수의 이름을 걸고 박사 학위를 부여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에 일종의 신고식처럼 호되게 학생을 다루기도 한다.

나는 그때 하도 긴장하고 정신이 없어서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렇게 진땀 나는 5:1의 공격과 방어가 거의 끝나간다고 느낄 때쯤, 그때까지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으셨던 한 교수님께서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윤섭, 네가 왜 박사를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

… 이 질문을 듣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원 생활에서 겪었던 많은 일 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정말로 박사 학위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나는 정말로 내 나머지 인생을 박사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나?

이 질문을 던지셨던 분은 바로 국가과학자 남홍길 교수님이셨다. 세계 식물학계를 이끄시는 석학 중의 한 분이실 뿐만 아니라, 학부생 코흘리개 시절부터 나를 지켜봐 주셨던 분이시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학부 연구 참여도 했고, 교수님이 만드신 대학원에 1기로 입학해서 (디펜스만 무사히 통과한다면) 첫 번째로 박사를 받게 되는 사람도 나였다. 내 짧은 연구 인생의 아버지와 같은 분 중의 한 분이셨다. (지금은 포항공대를 떠나 대구과기대로 옮기셨다)

그 질문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내가 정말 박사를 받을 자격이 없어서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닐 것이다’ 는 생각과 함께, ‘이건 박사 학위라는 것의 가치에 대한 내 철학을 묻는 질문이다’ 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라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는가?

박사에 대한 흔한 오해들

박사라는 사람들에 대해서 흔히 가지는 잘못된 생각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잘못된 답을 보다 보면 박사 학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해당 분야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 이건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 ‘분야’ 라는 것의 정의를 아주 좁히고 좁혀서 매우 세부적인 주제로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다음에 나오는 두 번째 이유에서라도 불가능하다.
  • 최고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 특정 순간에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 박사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무섭게 인류의 지식이 발전하는 시대에는 논문을 한두 달만 읽지 않아도 금방 뒤처지기 마련이다. 내가 박사를 딴 주제에 대해서도 하루에도 수십, 수백 편의 논문과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전문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급류를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비슷하다. 열심히 발버둥을 치면 겨우 제자리에 머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쉬려고 하면 금세 휩쓸려 내려가고 만다.
  • 최고의 실험 기술을 가진 사람: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실험 테크닉이 좋은 (소위 ‘손이 좋은’) 것이 큰 의미를 가진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몇 가지 종류의 실험을 마르고 닳도록 하기 때문에 대게 능숙한 실험 스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는 직업적으로 특정 실험만을 평생 반복해서 수행하는 테크니션 (technician) 선생님들을 따라가기 힘들다. 테크니션은 본인의 연구 주제를 가지고 실험하기보다는 다른 분들의 실험을 보조하는 역할이지만, 그분들이 수없이 반복해서 얻게 된 ‘손의 깔끔함’은 장인의 수준에 이른 경우도 많다. 혹시 생명과학에 배경지식이 있다면 아래 그림을 참고해보자.
    technician
  • CNS (Cell, Nature, Science)에 논문을 낸 사람: 생명과학을 비롯한 많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장 저명한 학술 저널이 바로 Cell, Nature, Science 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논문을 낸 사람은 진정으로 박사의 자격이 있을까? 이런 저널에 논문을 출판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논문은 우유와 같다.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이다. 논문의 유통기한은 대게 5년 정도라서, 일반적으로 새로운 직장에 지원하거나 과제 지원서를 쓸 때는 “5년 이내의 연구 업적”을 쓰게 된다. 필자도 Science에 공동 제 1저자로 논문을 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나서 필자의 이력서에 그 논문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박사 학위의 의미가 아니라면 그럼 뭐란 말인가?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를 넓혀 간다는 것

초중고를 거치며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공부해왔는지 떠올려보자. 보통 교과서를 기본으로 학교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기도 하고, 참고서의 문제를 풀기도 한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체계적으로 누군가 과거에 정립해놓은 지식을 차근차근 배우는 것이다. 이는 대학에 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하면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연구하려는 주제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면 과거에 이미 연구가 된 내용이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은 이미 연구가 아니다.

우리가 대학원에서 주제를 잡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는 내용은 교과서의 마지막 페이지 그 이후의 내용이다. 만약 내가 하는 연구가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학계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그 내용이 이제 교과서에 한두 줄로 실리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동안 배웠던 교과서라는 것도 그렇게 조금씩 쓰여 온 것이었다. 태초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제 교과서 대신에 우리는 논문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내가 어떤 논문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내 연구 주제에 대한 지식의 체계는 이제 나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몇몇 논문은 다른 동료 혹은 교수님과 함께 읽고 토론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다수의 논문은 나 스스로 읽고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초-중-고-대학교를 거치며 해왔던 ‘공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이유에서 초-중-고에서 과외를 받으며 남이 떠먹여주는 공부를 해왔던 사람일수록, 대학원에서 받는 문화 충격은 더 커지는 것 같다)

박사 말년차이던 어느 날,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논문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누구도’ 라는 말은 우리 연구실이나 학교뿐만이 아니라,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전 인류의 누구도…라는 말이다.

이제 이 주제에 대해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한 해답은 교과서에도, 논문에도,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은 현재 지구상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이제 적어도 내 연구 주제에 관해서는 인류가 가진 지식의 최전방에 도달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탐험가가 지도를 보고 열심히 정글을 헤쳐왔는데, 지도의 가장자리에 나오는 끝까지 왔음에도 여전히 내 앞에는 끝없는 정글이 펼쳐져 있는 형국이었다. 이제 내가 가는 곳은 이 지도를 그린 사람도, 아니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다. 이제는 다름 아닌 내가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내딛으면서 앞에 절벽이 있는지, 강이 있는지 스스로 지도를 그려가야 한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개척해나가는 것과 같다. 이제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은 다름 아닌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 질문에 대한 ‘정답’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가설과 실험을 거쳐서 논리적으로 학계에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논문이 되고 인류의 새로운 지식이 될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 경계를 넓혀간다는 것은 내게 아주 숭고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 지식의 경계를 미증유의 세계로 넓혀가는 탐험가였다. 아마 평생을 다 바쳐도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내가 넓혀갈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은 정말 미미한 것일테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였다.

이후에 내가 보았던 이 그림은 내가 그때 느꼈던 그 깨달음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역시 그런 생각은 나만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가 박사 학위를 받고, 평생 연구를 한다는 것은 결국 인류 전체의 지식을 미지의 세계로 조금씩 넓혀가는 일이다. 그 경계를 조금이라도 더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연구실에서 그토록 많은 밤을 새우고, 수많은 실험을 날려 먹으며, 네거티브 결과에 머리를 쥐어뜯고, 수없는 불면의 밤을 보내며, 논문을 또 다시 고쳐 쓰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알게 된다면 아래의 우스갯소리도 약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학사: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안다.
석사: 나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박사: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

맨땅에 헤딩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나의 디펜스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남홍길 교수님의 질문을 듣고서, 아득해진 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생각들은 바로 이러한 나의 깨달음이었다.

나에게 박사 학위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졌거나,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박사 학위의 의미는 바로 내가 그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를 앞으로도 평생 스스로 넓혀갈 수 있을 만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이제 독립된 연구자로서 스스로 연구를 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거기에 맞는 가설을 세우고, 논리적으로 사고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더 쉽게 풀어쓰자면 대략 이런 것이었다.

“이제는 지도 교수님이 연구와 실험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알려주시지 않아도 제가 주도적으로, 독립적으로 연구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연구라는 게 맨땅에 헤딩하는 건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영리하게 이마가 덜 까지면서, 효과적으로 헤딩을 하는지 좀 알 것 같습니다”

특히 나는 박사 학위가 가지는 큰 의미 중의 하나가 논리적인 사고 방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인생 전체에서 보면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한) 대학원에서 몇년간 연구했던 바로 그 주제가 아니라, 또 다른 문제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한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실 박사 학위를 받은 주제만으로 평생을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몇년이 지나면 내가 전공했던 분야가 없어져버리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가 하루 아침에 대두되기도 한다. 아니면 포닥을 가서 연구 주제를 바꾸는 경우도 있고, 자기 연구실을 차리거나, 기업에 들어가서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도 현재 연구하는 주제는 대학원에서 연구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피땀을 흘려가면서 갈고 닦은 그 논리적, 비판적 사고능력, 문제 해결 능력,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이 스킬들을 일을 하는 순간마다 사용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에 내가 받은 혹독한 트레이닝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능력이다.

디펜스, 그리고 그 이후

디펜스에서 받았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 내가 했던 그 말과 이러한 생각들이 교수님께서 바라던 답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박사 학위에 대한 가장 최선의 답이다. 그리고 이 답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는지, 나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디펜스에 성공했다.

나는 아직도 디펜스가 끝나던 그 마지막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질의응답이 끝난 후 나는 강당 밖으로 나와서 굳게 닫힌 문 앞의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강당 안에서는 심사위원 교수님들끼리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마도 내가 어떤 학생이었고, 어떤 연구를 했으며, 박사 학위를 줘도 되겠는지 최종 결정을 내리시는 것일 테다.

우두커니 혼자 앉아서 가슴 졸이면서 기다리던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던지. “설마 여기까지 와서 박사 안 주지는 않겠지… 혹시 내가 뭐 병신 같이 대답한 것은 없나…” 하는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강당 문이 덜컥 열리고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걸어 나오시며 한 분씩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최 박사, 축하하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만감이 교차해서 속으로 좀 울었던 것 같다. 그 ‘최 박사’ 라는 호칭을 듣기 위해서 나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왔던가. 지금은 그저 너무도 익숙한 호칭이지만, 그 때는 그 표현이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이 순간을 생각하면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 나를 지칭할 때 붙일 수 있는 호칭에는 교수, 소장, 대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며, 내가 불리기를 원하는 호칭은 역시 최 박사다. 가장 많은 노력을 들였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얻은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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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대학원에 가야 하는 걸까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삶과 연구의 노하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대학원을 꼭 가야만 하는 걸까? 어떤 사람이 대학원에 가야하고, 대학원에는 대체 왜 가야 하는 것일까.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특히 내가 어떤 분야를 전공하고, 어느 학교의 어떤 교수님의 연구실에 지원할 것인지에 앞서, 가장 먼저 근본적으로 해야 할 질문이다.

형, 저 대학원 가야 할까요?

필자는 예전부터 후배들에게 진로 상담 요청을 자주 받는 편이었다. 특히 학부생들이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면 누구든지 취업 등의 여러 옵션과 함께 대학원 진학에 대해서 한 번쯤은 고민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요즘과 같이 취업이 잘 되지 않는 시대에는 말이다.

후배에게 대학원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곧바로 되묻는 질문이 있다. 바로, “네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뭔데?”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후배들은 당황한다. 자신이 (대학원 진학과는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아래의 유명한 구절을 좋아한다.

앨리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알려 줄래?
고양이: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렸지.
앨리스: 난 어디든 상관 없어.
고양이: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상관 없잖아?

대학원은 결코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박사를 딴다고 해서 인생이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며,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취업의 문은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솔직히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해서 모두가 박사학위를 따는 것도 아니다. 내 주위에도 많은 동기와 선후배들이 박사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더 행복한 삶을 위한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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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더 행복하지도, 더 많은 돈을 번다는 보장은 없다. (출처: Nature 2011)

나는 결코 모든 사람에게 박사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고,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하며, 큰 기회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본인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목표에 박사 학위가 꼭 필요하다면 당연히 대학원을 가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그 목표가 박사 학위를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라면 굳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박사 학위는 그 자체로 숭고한 목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수단으로써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평생 학문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에게는 박사 학위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박사 학위는 끝없는 진리 탐구의 길에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내가 교수가 되거나, 국책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 (적어도 그 자리에 지원을 하기 위해서), 혹은 특정 업계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적인 원칙은 그러하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보자. 내가 이루고자 하는 직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누구도 대신해줄 수는 없다.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도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막연히 주위 친구들이 대학원에 가니까 나도 따라서 간다거나 (실제로 이런 학생들이 꽤 많다), 넋 놓고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군대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해서 간다거나, 취업이 되지 않아서 좀 더 시간을 벌기 위해 별다른 고민 없이 진학한다면 필연적으로 불행한 대학원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내렸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니면 이 지옥 같은 대학원 생활을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말이다.

나 자신만의 굳건한 이유가 필요하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 목표를 위해 박사 학위가 꼭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다면 대학원을 가는 자신만의 명확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 이유는 결코 거창할 필요도 없고, 굳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 스스로가 굳게 믿고 있으며,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이면 된다.

필자의 경우에는 “IT 분야와 생명과학 분야를 융합한 유니크한 전문성을 가지고 싶다” 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전문가로 살아가고 싶었다. 학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전공했지만, 그것만으로 융합적인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라고 하기는 부족했다.

특히 신약 개발이나 헬스케어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 받으며 연구하고 이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박사가 필요했다. 대학원 진학하기 전에 내가 만나고 조언을 구했던 선배들, 전문가들은 대부분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문가가 되어서 이 바닥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누가봐도 박사는 최소한의 입장권처럼 느껴졌다. 매우 막연한 이유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 자신은 굳게 믿고 있는 이유였다.

대학원에 가기 위해 그런 굳건한 이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대학원에서 끝까지 버텨내고 살아남기 위함이다. 앞으로 대학원에서 얻게 될 많은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결코, 결코 쉽지 않다.

이 부분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언급하겠다.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과 외국을 막론하고 정말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당신이 한국에서 초중고를 거치고,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여태껏 겪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종류 조직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며 새로운 종류의 어려움과 고난, 고뇌를 겪게 될 것이다.

사실 대학원생은 사회 전반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매우 특수하고도 어정쩡한 역할을 하는 중간인과 같다.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며, 교수도 아니고 정식 연구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대기업처럼 잘 만들어진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잘은 몰라도) 노동법에 의해서 보호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도 많으며, 역할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어떤 역할이라도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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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왜 힘든지는 대부분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되기도 한 이야기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목표로 연구한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빨라도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4-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길게는 8-9년이 걸리기도 한다. 어느 연구실에 가더라도 박사 학위를 제때 따지 못해서 연구실에서 거의 화석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초 고년차 대학원생을 한 두 명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연구를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실력이 없어서, 혹은 게을러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대학원에서 보낸다고 할 수도 없다. 바로 당신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 터널을 빠져나오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터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불확실한 미래: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마찬가지다.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의사 면허, 약사 면허, 변호사 자격증, 회계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게 되면 그런 자격이 없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이 생기게 된다. 하물며 운전면허를 따도 보장되는 것이 생긴다. 박사 학위를 한다는 것이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 등의 자격을 가지는 것보다 결코 노력과 시간이 적게 들어간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고 해서, 박사만이 할 수 있다고 보장되는 것은 없다. 교수 등 특정 포지션에 지원할 수 있는 최소 요건 정도를 충족시키는 것 밖에는 말이다.

월화수목금금금: 황우석 박사가 써서 유명해진 말로 알고 있다. 대학원에 가게 되면 수업, 과제, 연구, 조교와 그 외 잡일 등으로 쉴 새 없이 바쁘게 된다. 특히 온갖 잡무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실험하고 논문 쓰면서 내 연구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주말에도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게으르거나, 워커홀릭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여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한국의 많은 연구실에서 랩미팅은 토요일 오전에 한다 (내가 스탠퍼드에 있을 때 친구들에게 한국에서는 토요일 아침에 랩미팅을 한다고 하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탠퍼드의 우리 연구실이 금요일 오후에 랩미팅을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상황이었다) 한국의 대학원생은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주말이 있는 삶을 살기도 쉽지 않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연구: 우리 지도 교수님이 실험이 잘 풀리지 않아서 좌절하고 있는 나를 위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실험은 원래 디폴트가 꽝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연구라고 하는 것은 결코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연구 과정에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항상 더 많은 시간이 (보통 두 배 이상) 들어간다. 그렇게 연구가 풀리지 않는 과정이 한 달, 두 달… 1년, 2년이 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8년, 9년씩 연구실에서 썩는 초 고년차가 되는 것이다.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도 교수: 존경할만한 지도 교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아마 3대에 걸쳐서 (혹은 30대에 걸쳐서) 덕을 쌓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뛰어난 학문적 실력과 리더로서 존경할만한 인성을 모두 갖춘 지도 교수는 불행하게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도 교수는 대학원생들의 삶과 미래, 월급을 모두 틀어쥐고 있는 절대 권력자이다. 하지만 학문적 역량 이외에, 여러 사람들을 이끌 리더로서의 자격이 있는지는 검증 받지 못한 사람들이며 (교수 채용과 테뉴어 심사에서 인성이나 리더십의 검증은 없다) 연구실 내의 절대 권력에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싫든 좋든 대학원 생활을 하는 내내, 그리고 어떤 경우는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대학원생들은 지도 교수의 절대적인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다. 장담하건대 지도 교수를 잘못 만나거나, 지도 교수와 궁합이 맞지 않거나,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문자 그대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쥐꼬리만한 월급: 사실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많은 경우 대학원생은 학부생 수업 조교를 겸하기 때문에 장학금 형식의 월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월급이라고 하더라도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하고, 별도로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30대 초반을 여유 자금 없이, 저축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박사를 받게 되는 30대 초중반에 모아놓은 돈이 천만원도 없으면 참 암울하다. (따로 과외 알바라도 뛰지 않고 연구만 열심히 한다면 천만원 모으기 쉽지 않다) 더 운이 나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면서 대학원 생활을 해야할 수도 있다. 이는 대학원에 가지 않고 취직한 주위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큰 격차를 실감하게 된다.

기회비용: 사실 위의 모든 이유를 합한 것이 바로 기회비용에 관한 것이다. 기회비용은 내가 대학원 진학이라는 선택을 함으로써 잃어버리게 되는 많은 기회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업에 취업해서 벌 수 있었던 (상대적으로) 많은 경제적 수입을 대학원에 진학하면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직업 전선에 먼저 뛰어들어서 경력을 쌓아 나가거나, 사회 생활을 일찍부터 시작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인맥 역시 대학원 생활의 기회 비용이다.

 

대학원 생활과 연구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 겁을 주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면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 중의 몇 가지는 반드시 겪게 될 것이다. ….좋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당신은 이 어려움의 대부분을 (많은 경우에는 전부) 겪게 될 것이다. 이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서라도 박사 학위를 반드시 따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던져야 한다는 그 질문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대학원에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사실 그렇게 험난한 과정과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고 얻은 박사학위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끝까지 견뎌내고, 도중에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서 누누이 강조한 자신만의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어둠 속에서 당신에게 한 줄기 빛이자, 마지막까지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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