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뒤쳐질 수 있는 행복을 허락하라

먼저 사과의 말씀과 함께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세 명의 저자가 매주 폭탄돌리기(?)를 하며  글을 써왔던 대.좋.들. 블로그는 지난 한달동안 새 글을 발행하지 못했었다. 내 차례에서 새로운 글을 생산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바빴다는 건 적절한 핑계가 되지 못할 듯 하고, 무엇보다 쓰고싶은 글감이 잘 떠오르지 않았기에 글을 섣불리 쓰지 못했었다. “오늘은 꼭 쓸게요”라며 글을 쥐어짜내 보았다가 완성하지 못한 글만 5개쯤 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내 순서를 넘기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좋.들. 공간이 나의 설익은 아무말을 조언으로 포장시켜도 되는 그런 만만한 공간은 아니었기에 부담이 참 컸다.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의 폭탄을 안고 살아갔고(ㅠ), 그 사이에 권창현 교수님은 논문 하나씩을 preprint 하였으며, 최윤섭 박사님은 “나는 그렇게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 책을 발간하셨다. 이러니 나 혼자 바빴다고 징징대지 못하는거다..ㅠㅠ 나는 늘 바쁘고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살지만, 불만족스러운 나의 퍼포먼스를 보면 늘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이고, 교수님께 죄송하고, 필자 분들께 죄송하고, 독자분들께 죄송하고, 그저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일 뿐이다.

그렇다. 인생은 늘 괴롭다.

개롭다.. 개로워…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하고있단건 아니지만…

하지만 문득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며 지금 나를 가장 괴롭히는건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사실 교수님도, 대.좋.들. 필자분들도, 그리고 아마도 독자분들도, 세상 그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진 않는다. 오히려 독려하고 응원해주시는 마음으로 곁에 있을 뿐… 결국 계속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적은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난 언제부터 이렇게 자학하는 인간이 되어버린걸까…?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그 채찍질이 꼭 “나의 부지런함”의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끊임없이 채찍질을 맞으며 살아왔단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렸을 땐 그 채찍질의 주체가 부모님 혹은 선생님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그 채찍은 우리 자신의 손에 쥐어졌고, 우린 때론 돈까지 써가면서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왔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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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롭다.. 개로워….

 

우리가 휘두르는 채찍질은 아마도 두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상대적 기준에서 비롯된 채찍질, 다른 하나는 절대적 기준에서 비롯된 채찍질.

상대적 기준의 채찍질

내 주변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엔 나보다도 훨씬 능력이 뛰어나고 훨씬 스펙 짱짱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MIT, Stanford 등 세계적 명문 대학을 나왔다거나, 논문 인용수가 벌써 몇백, 몇천이 된다거나, 이미 국내외 유명 대학의 교수이거나, 혹은 Google, facebook과 같은 글로벌 기업 연구소에서 몇억씩 연봉을 받으며 사는 친구들처럼 말이다. 지인을 넘어 눈을 외국으로 돌려보자면, 딥마인드 같은 곳에서 쩌는 논문들을 양산하는 연구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을 볼 때면 ‘과연 이들에겐 열등감이란게 있기나 할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들도 끊임없이 열등감과 싸우고 있다.

OOO로 유학을 갔던 내 친구는 주변의 천재들을 보며 한없이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끊임없이 괴로워해야 했다고 한다. 나에겐 늘 천재같이 보였던 친구인데 말이다. 누구나 미래의 직장으로 꿈꾸는 곳인 OOO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늘 자신의 부족한 영어를 탓하며 능력도 좋고 원어민이기까지 한 다른 직원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들에 밀리지 않기위해 집에까지 집에 일을 싸들고 와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상상이지만, 딥마인드에 있는 연구자 아무개도 아마 엄청난 실적을 쏟아내며 주목을 받는 동료 연구자를 보며 자신이 그러지 못함에 조급함과 괴로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필자 본인 역시도 타인에겐 그런 오해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서울대에 처음 들어갔을 땐 주변 친구들이 ‘야, 너가 무슨 걱정이 있냐. 진짜 배가 불렀다 불렀어.’라고 얘기했었는데, 그건 참 내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었다. 내가 서울대에서 여러 천재들에게 치이며 살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의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어떤 분들은 나를 보며 부러울 것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내가 주변의 실력자만큼 술술 논문을 읽고 구현을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참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언젠간 드러날 나의 빈 깡통에 대해서도 늘 죄책감을 갖고있고 말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내가 깨달았던 점은, 상대적인 비교는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딜 올라가더라도 늘 내 위에 사람이 있고, 늘 내 밑에도 사람이 있다.

상대적 비교의 승자는 제한된 조건 상에서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반 1등’이라고 한다면 그 반에서만 1등이 승자일 뿐, 전교로 따지자면 꼭 승자는 아닐 것이다. 전교 1등도 전국으로 보면 마찬가지일 것이고, 전국 1등도 다른 나이들의 전국 1등들과 세상에 나와 경쟁한다면 꼭 승자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눈을 세계로 돌려보더라도 분명 본인을 패자로 만들어 줄 사람이 있고 말이다.

세상에 강자는 많다. 이 세상은 강동원도 “정말 못생겼다. 잘 생겼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라고 말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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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굴이냐… 못생겨가지고…(…)

비교에 있어 세상에 절대승자가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면, 사실 그 누구도 패자라고 괴로워할 필요없다. 상대적 비교의 그룹, 상대적 비교의 분야, 상대적 비교의 근거 모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기준들이기 때문이다.

“더 뛰어난 사람이란건 존재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건 그냥 “이 세상에 사람 졸라 많아요”와 동치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패배감이 자신을 이끌어 줄 동력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동력은 우리 자신을 사랑할 때 나오는 것이지, 쓰레기로 매도한다고 초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만 불행해질 뿐이지…

(여담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줄세우기 교육은 참 잘못되었다. 줄세우기 교육, 줄세우기 대학 서열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들만을 양산할 뿐이다. 왜 청소년들이 반에서 1등을 못한다고 구박받아야 하고, 왜 많은 대학생들이 일류대를 못다닌다고 사람취급 못받아야 하는가.)

절대적 기준의 채찍질

어쩌면 나를 채근하는 것이 상대적 비교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너 왜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니’라든지, ‘너 왜 그렇게  게으름을 피운거야’와 같은 절대적 기준에서의 채찍질일지도 모른다. 이 경우는 그나마 상대적 기준의 채찍질보단 나은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팩트폭행이 꼭 필요하다거나 아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참 많이 나 스스로를 채찍질 했는데, 만일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더라면 ‘거 보소, 그만 좀 갈구시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 살면서 마지막 힘까지 다해 쥐어 짜내야하는 순간들이 참 많다. 당장 내일인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그럴 수도 있고, 그보다 더 큰 시험인 수능이 그럴 수도 있고, 어떤 공모전과 같은 대회에서의 도전 순간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잠 자는 시간마저 모두 짜내 최고의 성적을 내야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순간들에서 소위 “쥐어짜기”를 시전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쥐어짜기 혹은 자기극복의 순간들이 꾸준히 쌓여 궁극적으로 발전한 나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작용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혼신의 힘으로 쥐어짜내어 내 평소 가진 실력 이상의 것을 얻게된다면, 나는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얻은 최고의 성적을 자신의 ‘평균수준’으로 인식하고 난다면, 나는 그 수준을 재현하지 못함에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이고, 다음 관문에서도 지난번과 같은 또다른 요행을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짜내기”를 반복한다면 마치 내 인생을 막판 스퍼트하듯 달려야 할텐데, 사실 인생은 그렇게 막판 스퍼트를 자주 할 만큼 짧은 순간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순간순간에 “최선” 혹은 “무리”를 하여 가랑이 찢어가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더 높은 확률은 결국 내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다. 가랑이가 찢어지고 나면 나는 절뚝절뚝 아픔을 안고 올라가야 할 것이며, 결국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서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 길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멀리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달리는 사람이 멀리가는 것이다. 그리고 멀리 가려면, 우선 즐겨야 한다. 극한의 괴로움 속에서 짜냈을 때 기쁨을 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기쁨은 대부분 성취에서 오는지라 ‘성공이냐 실패냐’와 같은 외부적 잣대에 좌우될 때가 많다. 만약 최선을 다한 그 자체로 즐겼다면 OK, 하지만 실패했을 때 괴로워할 것이라면 굳이 그렇게 가랑이를 찢지는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 잠깐, 근데 나는 말이 아니자나.

채찍 맞는 말은 오래 달리지 못한다

우리는 참 다양한 채찍질을 맞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그러한 채찍질에 길들여졌으며, 이제는 채찍질이 없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단계까지 이르른 것 같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마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이 자신을 채찍질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는 방향이다. 그 누구도 나를 채찍질 할 순 없다. 나에게 채찍질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고, 그렇기에 더더욱 나를 향한 채찍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삶에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단건 너무나 잘 알려진 격언이다. 하지만 우리의 채찍질이 정말 “방향”을 위해 쓰여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면, 사실 대부분이 “속도”에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될 것이다. 다시말하면, 우리는 “속도”에 대한 채찍질이 과한 반면, “방향”에 대한 채찍질은 그만큼 적게 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방향에 대한 고민에 대해 채찍질을 가하라는 말씀은 아니다. 방향이란건 자주 고민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방향만 자주 고민하다보면 머뭇머뭇 거리기만 하다가 제자리만 맴맴 돌 가능성이 크며, 이도저도 이루지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방향에 대한 고민이나 채찍질도 그렇게 자주 하시길 권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저 최대한 즐기시라.

사람은 경주마가 아니다. 채찍을 맞아 수동적으로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채찍 맞는 말에게 오래 달리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열심히 쥐어짜내면서 올라가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풍경을 천천히 즐기면서 올라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시험 성적과 같은 단기적 성과로 스스로를 구박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번에 성적이 조금 안좋았다 하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 결과가 좀 안좋았다 하더라도, 수고했다며 조금씩 토닥여주자. (사실 이건 나 자신에게 충고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좋은 성적 받기? 많은 논문 쓰기? 졸업에 성공하기? 졸업 후 좋은 곳에 취직하기?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현재를 흘려보내는 이 순간을 잘 즐기는 것만큼 중요한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적을 잘 받든 못받든, 논문을 많이 쓰든 못쓰든, 심지어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든 못하든 간에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가 지금 떠나보내는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저 모든 것을 즐거움 안에서 찾아가시길 바란다. 너무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쥐어짜지 마시고, 너무 자신의 못남을 부각시키며 채찍질하지 마시고, 오늘을 즐기시고, 조금은 게으름을 허락해주시고,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을 만끽하시며 즐거운 인생여행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의 발전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내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이 아닐까 싶다.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그대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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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가고 싶어요

대학원에 가려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은 ‘이제야 내가 하고싶은 전공을 찾았다’며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제가 가려는 분야 쪽으론 아는 것도 거의 없고 논문 실적 등은 당연히 없는데, 어떻게하면 전공을 바꿔 그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을까요?’

이쯤되면 당신은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교수는 자신의 전공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석사로 뽑고 싶어하지 않는다. 반면 본인은 다른 전공에 속해 있었기에 가려고 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교수님, 경력이 없는 나, 과연 나는 새로운 전공에 도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새로운 전공에 도전하는게 과연 맞는 선택일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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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근데 전공을 왜 바꾸려고 하시는데요?

전공을 바꾸려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음의 두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1) 지금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가려고 하는 전공이 좋아보인다.

먼저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본인의 몇년의 시간을 재투자해야하는 매우 비싼 선택이라는 점을 유념하자. 따라서 그 비용이 큰 만큼 전공을 바꾼다는 선택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혀 상관없는 전공으로 변신을 꿈꿀 땐 말이다.

(1) 나는 왜 지금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마 ‘애초에 선택이 잘못됐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고3 때 진로탐색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했고, 점수에 따라 학교를 맞춰가다보니 지금의 전공에 오게되었다는, 그런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스토리.

하지만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전공이 나중에 다시 꼭 만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점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데, 여러분의 전공은 적어도 개똥보다는 더욱 자주, 그것도 더욱 심각하게 그 필요와 함께 미래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전공을 떠날 결심을 하셨다 하더라도 절대 현재의 전공을 헛것으로 만들지는 말자. 만약 지금의 전공을 헛것으로 만들었다가 두번째 전공마저 헛것이 되어버린다면 그땐 정말 멘붕에 빠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캘리그래피로 뭔가 쓸모 있는 것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당시의 경험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캘리그래피 기술을 적극 활용했으니 매킨토시는 그 기술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셈이죠. 만약 그 때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이처럼 다양하고 독특한 서체(font)를 개발해 내지 못했을 겁니다.” –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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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리드대학의 캘리그래피 수업

우리의 인생은 생각지도 못했던 A와 B가 만나고 이를 예상치 못했던 C가 도와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A,B,C 모두를 내 것으로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버리려고 하는 자신의 전공이 바로 그 A,B,C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니 현재의 전공을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거나 불성실한 태도로 낭비해 버리지 말고, 잘 갈무리 하셔서 미래의 무기로 가지고 있으셨으면 좋겠다. 당신의 지금 그 전공이 미래 스티브잡스의 ‘캘리그래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99.999%로 당신은 스티브 잡스가 되지 못할 것이다ㅠㅠ

(2) 나는 왜 옮기려는 전공이 좋아보이는가?

여기선 다음 두가지의 바이어스(bias, 편향)에 대해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게 내 적성처럼 느껴진다‘라는 바이어스와 ‘이 분야가 유망하다‘라는 바이어스.

먼저, 가려는 전공이 내 적성처럼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현재 내 상태가 매우 불만스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새로운 전공에 돌입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즐겁진 않을 수도 있다. 어떠한 취미도 본업이 되면 스트레스가 되고만다고 했던가. 곁다리로 introduction 강좌들을 들을 땐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던 새로운 전공도, 막상 전문적으로 파고들다보면 이곳 역시 노잼의 벽과 난이도의 벽, 그리고 극한 노가다 노력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이전 전공이든, 새로운 전공이든, 많은 인내로 배움의 과정을 견뎌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6개월만 배우면 프로그래머로 일할 수 있다.’, ‘1년 코스로 전공을 세탁한다.’ 등에 혹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단기코스도 오랜 기간의 학습결과를 따라잡을 순 없다. 그러니 허니문에 빠져 금사빠처럼 새 전공에  마음을 뺏기기보단, 새로운 전공에서도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존재할 것이란 예측 하에 전공 전환의 판단을 고심하셨으면 좋겠다.

노오오력을 하란말야 (출처)

그리고 ‘유망하다’라는 전망도 사실 ‘나에게 유망하다’ 혹은 ‘미래에도 유망하다’란 말은 절대 아니란 점을 명심하자. 비유를 하자면, 지금 유망하다는 전공을 쫓아가는 것은 주식을 살 때 오늘 뉴스에서 ‘이런 종목이 유망합니다’란 소식을 보고 묻지마 주식구매를 하여 10년 뒤 그 결과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다. 이미 현재 레드오션이고, 그 미래는 알 수 없으며, 사실 ‘유망하다’는 정보의 신뢰성마저 의심스럽다.

그러니 ‘유망하다’라는 전망은 철저히 무시하셔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전공을 선택한다면 아마도 10~15년 뒤에나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가 열릴텐데, 그 때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참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 땐 내가 페북 중독이 될 줄 몰랐지. 10년전인 2007년, 미국 US News에서 뽑은 최고 유망직종은 다음과 같았다.

내과의사 보조, 공인 간호사, 펀드레이저, 직업관리사, 교육심리학자, 시스템분석가

위의 리스트가 10년 뒤인 2017년 최고의 직종이라는 것에 과연 동의하는가? 예를 들어 ‘직업관리사’는 2000년대 꾸준히 유망직종이라며 리스트에 올랐던 직업인데, 10년이 지난 지금 ‘직업관리사’는 과연 모두의 예상만큼 유망직종이 되어있는가? 그렇다면 현재 유망직종이라 불리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나 ‘인공지능 전문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 10년 뒤에도 여전히 유망할까? 안돼 내 직업..ㅠㅠ

미국 유망 직종들의 연평균 수입
2007년 US News가 꼽은 미국 유망직종들 (출처)

이제껏 여러분들의 ‘새로운 전공 세탁에 대한 환상’을 깨려 여러 각도로 말씀드려봤다. 요약하자면,

  •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비싼 선택이기에 신중해야한다.
  • 현재의 전공도 미래의 무기가 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
  • 재밌을 것만 같던 새 전공 역시 고생길과 노오력이 함께할 것이다.
  • 새 전공이 미래에 유망하다는 썰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결국, 전공을 바꾸든 안바꾸든, 나를 성공으로 이끌 키워드는 “HOW”이지 “WHAT”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보통 ‘저 사람은 뭐를 했어도 잘했을거야’란 생각을 종종 갖게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훌륭한 사람에겐 주제를 가리지 않고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태도가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공 바꾸길 포기하란 얘기?

전혀 그런 말씀이 아니다. 사실 필자는 오히려 ‘현재의 전공에 얽매이지 말고 본인이 하고픈 길을 선택하세요’란 조언을 많이드리는 편인데, 미래에 지나고보면 현재까지 배웠던 지식이란게 참 보잘 것 없었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현재까지 뭘 배웠든 그것은 단지 “교양”일 뿐이기에 미래 선택에 영향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고등학교 때 단지 OO 과목을 조금더 잘했단 이유로 가고픈 학과 대신 현재의 학과를 선택해 후회했던 분들이라면 이 말 뜻을 잘 이해하실 것 같다. 내 선택은 내가 하고픈대로 하는 것이다. 컨설팅 결과처럼 하는게 아니라 말이다.

다만,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현재 전공을 실패로 규정해 버리기 앞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고, 새로운 곳에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자감을 경계하며, ‘유망하다’와 같은 근거없는 말들에 흔들리지 않는 선택을 하시라는 바람에서 드려본 말씀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으시다면 하시라. 방법에 있어 현실에 발을 딛고 위대한 꿈을 꾸는 것만이 여러분의 가랭이를 찢어줄 것이다 포부를 실현시켜 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여러분은 지금의 전공 말고도 두세개의 “전공”을 더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전공 전환 고민 역시 이러한 필요에 따라 느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 버리려는(?) 현재의 전공, 새롭게 시작하려는 미래의 전공 모두 내가 인생을 살면서 어차피 정복해야할 몇가지 전공 분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또하나의 전공을 배우는데 너무 주저하지 마라. 드디어 글에 모순 발견. 새 전공으로의 도전은 너무 주저하지도, 너무 성급하지도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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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기하면 편해’란 짤도 있지요…(…)

이 글을 제목을 보고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합격하는 팁’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많이들 실망하셨을 것 같다. (사실 이 블로그의 취지가 얕은 팁을 공유에 있진 않다.)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대학원 선발의 딜레마를 깰 방법은 사실 많지 않다. 학부 때 필요한 관련 “경력”을 쌓지 못했다면, MOOC(온라인 공개강좌)가 되었든, 개인적인 GitHub 프로젝트가 되었든, 연구실 인턴이 되었든, 회사 경력이 되었든, 다양한 방법으로 관련 연구 경력을 쌓고 기록을 남기는 방법 외엔 뚜렷한 왕도가 없다.

그래도 한가지 기억하셔야 할 점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준비해야할 것은 다양한 입시조건 충족이 아니라 실제 그 일을 하는 것이란 점이다. 예를 들어 딥러닝과 관련하여 대학원을 진학하고 싶다면 경쟁자들보다 더 높은 학점, 더 높은 영어점수, 더 훌륭한 인터뷰 스킬에 신경쓰기보다, 실제 딥러닝을 공부해보고 이에 대해 호기심을 키워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준비 방법이다. 시간을 투자해 실제 이론들을 공부해보고, 그것을 텐서플로우 등을 가지고 구현해보며, 이러한 공부 과정을 블로그든 GitHub든 기록을 통해 잘 보여줄 수 있다면, 해당분야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일 역시 크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여러분이 실제 그 일을 해본적이 없다는 점이다.

“전공을 바꾸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하시라. 다만 새 분야에 대해 그만큼의 열정을  보여주시라. 당신을 빛나게 하는 것은 당신의 조건이 아닌, 당신의 의지와 노력과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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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리가 대학원 생활의 전부다

학부와 대학원의 차이

대학원 생활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분들은 대학원 생활을 단지 학부 공부의 연장으로 보시는 것 같다. 학부를 졸업해도 아는게 없으니 세부분야의 수업들을 더 들으며 자신만의 전문성(specialty)을 키워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전문성이 키워지는 거였다면 진작에 학부 4년동안 키워졌어야 했을 것이다. 팩트폭행ㅠ 다시말해, 학부 생활을 2년 연장한다고 당신이 4년동안 얻지 못했던 것이 갑자기 얻어지진 않는다는 말이다. 팩트폭행투ㅠ 석사생활 2년의 시간연장 후, 당신은 여전히 2년 전에 하던 취준고민을 다시 꺼내 하고있을 것이며, 2년 동안 무언가를 배운만큼, 무언가는 이미 당신의 머리속에서 잊혀져 있을 것이다. 팩트폭행쓰리…ㅠ

대학원 생활에서 얻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지식”이 아니다. 여러분이 배웠던 지식은 5년 후면 금방 구닥다리가 되고 말 것이며, 따라서 단지 지식만을 위해 대학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 비효율적인 시간 교환일 것이다.

또한, 만약 지식을 쌓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어쩌면 고3 생활이나 재수생 생활처럼 공부하는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대학이나 대학원은 학생을 그런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고등학교보다 대학에서, 대학보다 대학원에서 우리는 학교로부터 더 많은 자율을 부여받는다.

그렇다. 자율. 가방끈이 늘어나며 여러분이 얻게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자율”을 관리하는 방법이며, 구체적으로, 목표를 향해 주어진 자원을 분배하고 시간을 관리하여 자신 스스로를 자가발전하는 과정을 배운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라는 격언은 모두가 아는 너무 식상한 격언이지만, 아마 다들 그렇게 코웃음을 쳐놓고는 여전히 대학원에서 “물고기(지식)”에만 집중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식이 안중요하다는건 아니고, 학문과 학문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둘 다 중요하다.

과연 지금 당신은 대학원에서 물고기 잡는 법을 잘 배우고 있는가? 혹시, 자신에게 열려있는 많은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게을리한 채, 그저 졸업을 하기위한 무거운 숙제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하기싫은 숙제 + 학위와 나의 소중한 청춘을 바꾸이 위해 대학원에 왔던 것일까? 대학원은 단지 지식을 배우기 위한 곳이 아니다.  5년짜리 말고,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어야한다.

자유.자율.자발.책임.관리.자립.독립.

대학과 대학원은 학생을 주입의 대상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 완성시켜주는 교육의 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당신의 대학원 생활이 오직 온갖 타의로만 점철되어 있는 환경에 처해있다면 당신의 대학원 생활을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마치 프로젝트의 노예처럼 느껴진다거나, 혹은 별로 존경하지도 않는 사수의 수족으로만 이용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꼭 한번 대학원 생활을 되돌아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주체가 되려고 대학원에 왔지, 누군가의 수족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 오해가 있으실까봐 덧붙이는데, 프로젝트가 무조건 나쁘고, 사수의 실험보조를 하는게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 제품에 적용될 수 있는 실전적인 연구를 하고, 또 실험보조 활동을 통해 뛰어난 선배의 사소한 장점들을 내 것으로 가져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제 뜻은, 본인이 프로젝트나 사수의 노예처럼 느끼고 있다면 본인의 자세든 처한 환경이든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주인공으로 살기도 바쁜 세상, 어찌 남들만을 좇다가 끝날쏘냐…

자신이 주체가 되는 일은 대학원 생활에서 너무나도 중요하다. (사실 이것은 대학원 생활 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에서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모든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지만 대학원에서도 내가 내 연구의 주체가 될 수 있고, 흥미로운 연구들과 함께 ‘참 재미있게 대학원 생활 했어’라며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대학원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이제까진 남이 내준 문제를 풀어 남이 채점해주는 삶을 살았겠지만, 앞으론 내가 문제를 내고 내가 풀어 내가 스스로 채점하는 삶을 살게될 것이다.

그 누구도 당신이 하고픈 방향을 제시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당신의 만족을 채점해 줄 수 없다.

“교수님 저는 어떤 연구를 하면 되죠?”라고 묻는 것은 “교수님, 저는 무얼 궁금해하죠?”라고 묻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마찬가지로, “교수님 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풀까요?”라고 묻는 것 역시 내 행동의 주체가 나임을 부정하는 미성숙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도교수는 영어로 supervisor이기도 하지만 advisor이기도 하다. 지도교수를 내가 돕는게 아니라, 교수가 나를 돕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대학원 생활이란 것은 supervisor 밑에서 시작해 advisor의 곁에서 끝마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지도에 따라야겠지만, 결국엔 스스로 우뚝 서야한다.

나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역시 내가 결정해야한다. 시간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따라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여러분 대학원 생활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고, 반대로 얘기하면, 대학원 생활을 통해 여러분은 시간관리 방법을 배우셔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대학원을 통해 배운 “지식”보다도 더 오래남는 “지혜”일 수 있기 때문이다.

IT기업가였던 안철수에게 의학 대신 공학이나 경영학을 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겠냐는 질문에, 안철수 왈,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땐 다른 학문을 하고 있었지만 새벽엔  V3를 만들고 낮에는 의학연구를 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지식은 나중에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이 그 때 가졌던 태도는 오래도록 여러분에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

돌아와요 촬스… 기회를 줄게…

자기관리가 대학원 생활의 전부다

대학원마다, 연구실마다 천차만별이기에 각자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의 정도는 모두 다를 것이다. 필자 같은 경우는 출근시간도 없고, 퇴근시간도 없는 자유로운 연구실만 나왔어서, 주로 오후에 출근했었고, 종종 학교를 안가기도 하고 그랬었다. (요즘에도 일주일에 한번쯤 미팅을 위해서만 학교에 간다.) 반면 9 to 9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와 같이 정말 빡빡한 규율 속에서 생활하는 대학원생들도 매우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리됐건 저리됐건, 어쨌든 소비되는 것은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다. 그리고 (간섭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고 쓰느냐에 대해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공부만 하고 연구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원 생활 동안 보컬 레슨을 받기도 하고, 헬스를 해 몸을 만들기도 하고, 사진에 취미를 들여 작품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성친구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 역시 결코 무시되어선 안되는 인생의 ‘대소사’이다. 한창 청춘에 벌어질 수 있는 이 다양한 일들 중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할 것이냐, 그리고 한다면 얼만큼의 시간을 들일 것이냐, 이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주체가 ‘나’일 것이고, 대학원 생활에선 이러한 자기관리를 배우게 될 것이다.

(어떤 분은 ‘공부할 나이에는 공부에 집중해야해’라고 하시고, 어떤 분은 ‘다양한 경험이 중요해’라고 하시는데, 본인의 성향에 잘 맞고, 그러면서도 같은 시간 분배에 대해 최대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결정을 하도록 하자. 정답은 없다.)

일주일 넘게 종일 실험실에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종일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험과 동시에 미드를 시작했다. 실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보기에는, 한 회에 20분 정도인 미드는 매우 적절하다. 게다가 영어로 되어 있어 놀고 있지만 놀고 있지만은 않은 느낌도 준다. 물론, 한글 자막을 늘 깔아 놓지만. 미드를 보다보면 시간은 20분 단위로 흘러갔다. 때로는 실험이 끝나고 나서도 한 편만 더, 한 편만 더, 하느라 1시간이나 늦게 결과를 확인한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보는 예능 프로그램도 늘었다. 긴 실험에 좋다.

눈 뜨고 바로 실험실로 향하는 것도 맞긴 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11시쯤일 따름이다. 시간이 애매해서 샌드위치를 사오는 것뿐이다. 샌드위치를 그냥 먹긴 아쉬우니 예능을 틀어놓고 먹기 시작하면 바로 1시간이 흐르고, 실험 결과를 잠시 확인하다가 페이스북을 좀 하다보면 학교 식당 점심시간이 이미 지나있다. 그래서 라면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 에이, 관두자. 동정이 부담스러운 건 둘째 치고 너무 쪽팔린다. 아니, 그보다, 만에 하나 교수님이 보실라

– 김창대님의 소설,  “과학 논문 과정에 관한 고찰” 중에서…

나도 이런 모습은 아닐까 한번 반성해보자.

사실 이 글은 내 스스로에게 말하는 글이다. 나는 공부에만 집중하기도 버거운 박사과정 생활 속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 주제넘게 이런 꼰대글들도 쓰고 말이다. 내가 해야할 일도 너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난 페북에 흘러가는 소식들을 읽고 이에 반응하는데 몇시간을 소모하고 만다. 오늘이 지나가면 잊혀질, 결국 몰랐어도 될 그런 떡밥들에 대해서 말이다.

나 정말 잘하고 있는걸까…?

나는 늘 이런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박사과정, 나는 아직도 그 정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근데 아마 졸업을 하고 나서도 인생 내내 그 정답을 찾고 있을 것 같다. 결국 모두 내가 결정하고 내가 평가해야할 내 스스로의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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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못해도 논문 잘 읽는 법

‘그 발번역 정말 못읽겠더라. 차라리 원서 읽어.’

‘맞아맞아~ 어떻게 한글이 영어보다 어렵니? 원서가 훨씬 쉬운 듯’

대학생 초년 시절, 영어가 너무 벅찬던 내가 운좋게 번역본이라도 구해 들고 있을지면 친구들은 항상 내게 이런 말을 건냈다. 번역본이 훨씬 어렵지 않냐면서 말이다.

‘당연하지… 그냥 원서 읽을 걸 그랬어…!’

나도 이렇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번역이 발번역이라면 내 번역은 똥번역인걸…ㅠ 적어도 번역본을 읽으면 하루에 한페이지 이상은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아무튼 나는 영어를 무지 못했고, 지금도 못하며(…ㅠ),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ㅠㅠ팩트폭행ㅠㅠㅠㅠ)

하지만 결국엔 그 어떤 대학원생들도 영어를 피해갈 순 없었다. 최신 지식은 영어로 되어있고, 대부분의 지식공유(=논문)도 영어로 되고 있으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영어도 읽지 못하고 ‘누군가의 번역본’만 읽는 본인 역시 독립적인 연구자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어에 까막눈인 나, 어떻게 하면 논문을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을까?

논문, 보기만해도 울렁거리는 그것이여...
논문, 보기만해도 울렁거리는 그것이여…

논문 영어, 겁먹지 마라

먼저 말하고 싶은건, (적어도 이공계) 논문 영어는 일상 영어보다 훨씬 쉽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냥 논문만 읽기도 어렵고, 영어만 읽기도 어려운데, 논문 영어면 얼마나 어렵겠어?’라며 지레 겁을 먹는데, 사실 논문 영어는 뉴스 영어나 소설 영어보다 백만 배 쉽다. 왜냐하면 논문은 표현의 간결성(conciseness)과 명료성(clarity)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중언부언 하지도 않고, 괜히 추상적인 말을 쓰거나 모호한 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논문의 영어 구조는 매우 명확하다.

나는 이런 문제를 풀거야 (abstract)
사실 이 문제는 이런 동기에서 연구가 시작된건데 (introduction)
관련해서 이런저런 접근들이 있었지 (related works)
난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려고 하는데 (method)
정말 이게 잘 먹히는지 실험도 해봤어 (experiment)
이를 통해 이런 사실도 알아냈지만 한계점도 있지 (discussion)
마지막으로 귀찮은 너를 위해 요약 (conclusion)

논문은 위의 구조에서 ‘이런, 저런, 어떻게’ 등등이 무엇으로 치환 됐는지만 알면 된다. 수식? 그건 정말 이 논문을 재현할만큼 관심이 있을 때 자세히 들여다 보는거고 (혹은 문장보다는 수식으로 확인하는게 더 명확하기에 들여다 보는거고), 결국 논문의 핵심은 ‘내가 주어진 문제에서 이러한 기여(contribution)를 했다’가 내용의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미리부터 겁먹지 말자. 영어기사는 못 읽어도 논문 영어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다음 섹션부터는 실제 논문 하나를 잡고 읽는 과정을 같이 해보도록 하자. 사실 오늘 논문을 하나도 안읽었기에 1타 2피를 취하려는거다. 필자가 석사를 갓 입학한 학생이라 배경지식이 매우 얕다고 가정해보고 한번 같이 읽어보겠다.

논문 고르기

일단 논문부터 찾아봐야 할텐데, 가장 쉬운 방법은 구글스칼라를 이용하는 것이다. 구글스칼라에서 웹문서를 검색하듯 관심있는 키워드를 넣고 논문을 검색 하면된다. 한번 같이 해보도록 하자.

우선 그 분야의 개략적인 연구들을 훑어보려면 관련 키워드와 함께 ‘review’, ‘survey’, ‘tutorial’ 등을 넣고 함께 검색해보면 좋다. 이들은 특정 문제를 푸는 일반 논문들과 달리, 관련 연구들을 종합하거나 (review), 조사하거나 (survey), 쉽게 설명하고 있다. (tu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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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을 보면 논문의 출판 연도의 범위를 설정해가며 검색할 수 있음을 참고하자. 위의 논문 검색 결과에서 보면 두번째에 나온 deep learning이란 논문이 대가들에 의해 쓰여지고 네이처에도 실렸던 ‘개론적 성격’의 논문인데 매우 쉽게 쓰여졌고,  논문 인용수 (cited by 부분)도 짱인듯 하니 저 논문부터 딥러닝 공부를 시작하면 될 것 같다. 딥러닝 공부 방법도 알려주는 꿀 포스팅

리뷰 논문은 특별한 형식의 논문이니, 이 논문 말고 일반적인 논문을 하나 검색해서 함께 읽어보자. 논문 제목은 “Deep, Convolutional, and Recurrent Models for Human Activity Recognition using Wearables”(2016). 뭔가 웨어러블 장치에서 얻은 데이터를 딥러닝을 이용해 사람 행동 인식에 사용한다는 내용인 것 같다.

초록 읽기 (Abstract)

세상 연구자들 중 99%는 초록(abstract)부터 읽는다. 물론 제목부터 읽고… 초록은 마치 ‘출발 비디오여행’에서 보여주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와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논문들은 ‘초록 읽기’ 단계에서 나머지를 읽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그러니 논문 읽기는 초록의 한문장 한문장을 유심히 뜯어보는 것으로 시작하도록 하자.

Human activity recognition (HAR) in ubiquitous computing is beginning to adopt deep learning to substitute for well-established analysis techniques that rely on hand-crafted feature extraction and classification techniques. (한가한 소리로 시작하고 있네.)

From these isolated applications of custom deep architectures it is, however, difficult to gain an overview of their suitability for problems ranging from the recognition of manipulative gestures to the segmentation and identification of physical activities like running or ascending stairs.(어떤 점들이 어려운 점들이라 하는군... 문제 소개)

In this paper (밑줄 쫙, 이제부터 내가 뭘했다는 얘기다.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겠지?) we rigorously explore deep, convolutional, and recurrent approaches across three representative datasets that contain movement data captured with wearable sensors. (딥러닝을 세가지 웨어러블 센서 데이터셋을 가지고 탐색했군. 탐색이라... 뭐 이런 애매한 단어를...) 

We describe (1) how to train recurrent approaches in this setting, introduce a (2) novel regularisation approach, and illustrate (3) how they outperform the state-of-the-art on a large benchmark dataset. (이런 것들을 했구나... 앞으로 이런거 찾으며 읽으면 되겠다.)

Across thousands of recognition experiments with randomly sampled model configurations we investigate the suitability of each model for different tasks in HAR, explore the impact of hyperparameters using the fANOVA framework, and provide guidelines for the practitioner who wants to apply deep learning in their problem setting. (실험도 했고 파라메터들의 영향도 조사했고, 실험결과에 따른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고 하네.)

영어를 보니까 벌써 졸음이…ㅠ

논문 초록을 다 읽었다면 적어도 이 논문이 ‘무슨 문제’를 풀려고 했고, ‘어떠한 새로운 기여’를 담고 있는지 파악했어야 한다. (만약 이 문제가 내가 관심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논문 패스…)

우리가 선택한 이 논문에서는 애플워치 같은 웨어러블 센서를 이용해 사람의 행동을 인식하는 문제(HAR)를 다루고 있는데,  (1) 웨어러블 센서 데이터는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소개하고, (2) 거기에 적당한 새로운 regularization 방법을 제시했으며, (3) 이것이 어떤 파라메터 세팅 속에서 잘되는건지 실험을 통해 증명한 것 같다.

이정도면 오케이. 혹시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 있으니 결론을 미리 한번 보도록 하자.

결론 읽기 (Conclusion)

논문은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필자 같은 경우엔 내가 초록을 통해 ‘다루는 문제와 이 논문의 기여’를 파악한 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결론을 먼저 읽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왜냐면 나는 나를 못믿으니까…

In this work we explored the performance of state-of-the-art deep learning approaches for Human Activity Recognition using wearable sensors. (아까 사람행동 인식 문제를 푼다고 그랬었지?) 

We described (1) how to train recurrent approaches in this setting and (2) introduced a novel regularisation approach. In thousands of (3) experiments we evaluated the performance of the models with randomly sampled hyperparameters. We found that bi-directional LSTMs outperform the current state-of-the-art on Opportunity, a large benchmark dataset, by a considerable margin. (얘 아무리 귀찮아도 앱스트랙이랑 똑같이 썼네...)

(중략)

We found that models differ in the spread of recognition performance for different parameter settings. Regular DNNs, a model that is probably the most approachable for a practitioner, requires a significant investment in parameter exploration and shows a substantial spread between the peak and median performance. Practitioners should therefore not discard the model even if a preliminary exploration leads to poor recognition performance. More sophisticated approaches like CNNs or RNNs show a much smaller spread of performance, and it is more likely to find a configuration that works well with only a few iterations. (원래 파라메터에 따라 성능이 많이 달라지는데, DNN이 파라메터 찾는데 제일 개고생이고 CNN이나 RNN은 그나마 좀 낫다네... 별 인사이트가 없자나ㅠㅠ 논문 잘못 골랐나..ㅠㅠㅠ)

초록과 결론을 통해 논문이 무슨 문제를 풀려했고, 결국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알았으면 이미 논문의 절반은 읽은거다. 마치 드라마의 인물관계도를 파악하고 나중에 엔딩을 스포일 받은 느낌이랄까?

만약 ‘이 드라마는 이쯤이면 됐어. 그만볼래.’ 싶으면 논문을 그만보면 되는 것이고, ‘우아, 재밌겠다. 도대체 어떻게 한거지?’ 궁금하면 서론부터 더 자세히 읽어나가면 될 것이다.

논문읽기에 지쳤을 땐 이렇게 외쳐보자. '이런 내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
논문읽기에 지쳤을 땐 이렇게 외쳐보자. ‘이런 내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

서론 읽기 (Introduction)

사실 서론이야말로 초짜 대학원생들에겐 가장 보물과 같은 파트이다. 왜냐하면 논문의 본론은 단지 자신의 지엽적인 문제 해결만을 다루고 있지만 (게다가 이해하기도 어렵다!) 서론에서는 주옥같은 주요 연구들을 한줄 요약들과 함께 너무나도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개되는 논문들은 대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연구자라면 꼭 읽어야 하는 논문들이 많다!

그러니 이번 논문은 버리더라도 서론을 통해 다음 논문은 꼭 소개받도록 하자!

한 논문의 서론에선 적게는 한두개, 많게는 대여섯개까지 읽고 싶은 (혹은 읽어야 할)  논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것을 읽으면 또 주렁주렁 다음에 읽어야 할 논문들이 생긴다. 이것이 대학원생들이 논문만 쌓아놓고 안읽는 이유  첫 논문을 읽기가 어렵지 그 다음의 사슬을 따라가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니 다시 강조하지만, 연구 초짜라면 서론을 통해 주옥같은 논문들을 소개받도록 하자.

서론은 (1) 내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2) 관련 연구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왔는지, (3) 마지막으로 나는 그들과 달리 어떤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상대 비교와 함께 설명해준다. 큰 그림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러니 서론을 읽을 때 산만하게 빠져들지 말고 각 연구들을 왜 서론에서 보여주고 있는지 이해하며 읽도록 하자. 모든 내용은 본론을 잘 이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논문의 2/3는 읽은거다! 서론에서 다른 흥미로운 논문을 소개받아 그쪽으로 넘어가고 싶다면 여기서 읽기를 멈춰도 좋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논문 소개만 받다가 소개팅만 백번한 사람으로 끝날 수도 있음에 유념하자. 소개팅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언젠간 사귀어야 한다. A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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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독해를 쉽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앞에 나올 내용을 예상하며 읽는 것’이다. 이제까지 초록, 결론, 서론을 읽었던 것은 모두 본론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잘 예측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또 한가지 본문 이해에 도움을 주는 소재가 있다면 바로 표와 그림들이다. 영어만 남은 사막같은 논문에 한줄기 오아시스와도 같달까?

논문을 읽기 귀찮다면 초록,서론,결론으로 논문의 개요를 파악한 뒤 표와 그림을 통해 본문을 예측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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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없게도 우리가 선택한 논문은 표가 2개, 그림이 2개 밖에 없다. 저자한테 따지고 싶은 심정ㅠ  Table 1은 실험에 사용된 다섯가지 딥러닝 모델들(행)과 이들의 파라메터값들(열)을 보여주고 있다. 그냥 실험 세팅 이렇다는 것에 대한 디테일. 과감히 패스….

Table 2는 이 논문의 메인 실험결과이다. 5가지 모델을 가지고 3가지 데이터셋에 대해 실험해봤는데 굵게 표시된 성능들이 최고 성능들이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이 논문도 노가다&쇼 논문이구나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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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은 5가지 모델을 설명하기 위한 그림들이다. 처음보면 어려워보이지만 사실 이 분야 사람들에겐 교과서에 적힌 내용을 옮겨온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패스… 난 시험에 안나오는거 팍팍 패쓰해주는 선생님이 좋더라…

마지막으로 Figure 2은 그냥 단순히 Table 2처럼 성능만 보여주면 뭔가 심심하니까 통계적으로 약간의 허세를 부린 것이다;;; 이 그래프를 통해 얻은 특별한 인사이트가 있나해서 본문에서 찾아봤지만 별게 없었으니 이 역시도 과감히 패스. 논문 읽기 싫은지 점점 성의가 없어지는구나…

방법과 실험 (Methods & Experiments)

은 생략하도록 하겠다ㅎㅎㅎ 다들 지치셨을 것 같으니…ㅎㅎㅎ 특히 내가 지쳤다ㅎㅎㅎ

이제까지의 논문읽기가 “무엇을”, “왜”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방법과 실험은 “어떻게”에 대한 본연구의 자세한 설명이다. 이 부분을 읽는데는 왕도가 없다. 수식이 이해가 안되면 글을 뚫어져라 읽고, 글이 이해가 안되면 수식을 뚫어져라 보도록 하자.

“수식이 이해안되면 어쩌나요? 그냥 넘어가나요?”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만약 그 수식의 역할만 이해한다면 디테일을 모르고 넘어가도 상관없다. 중요한건 그 수식이 인풋으로 무엇을 받아 아웃풋으로 무엇을 내놓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이 수식이 필요한지,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만약 이정도까지 이해했다면, 디테일한 수식이 외계어로 써있어 못읽겠다 하더라도 이해한셈 치고 넘어가도 좋다. 전체 논문을 읽는데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수식이 아니라 ‘내가 뭘 읽고 있는지’와 ‘내가 왜 읽고 있는지’의 능동적 이해 자세이다. 혼미해지는 정신 꽉 부여잡고 이 논문의 핵심스토리에 집중하자.

마무리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논문을 함께 읽어봤다. 논문을 다 읽었으면 처음에 시작했던 논문 구조에 맞춰가며 내가 깔끔히 이해했는지 정리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혹자는 노트로 정리하기도 하고, 혹자는 슬라이드로 친구들 앞에 발표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참고로 나의 지도교수님은 LaTeX로 각 논문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풀어 메모해놓더라. 이렇게 하면 논문을 쓸 때도 복붙만 하면 되니 참 편리하다고 한다. 교수님이 원어민이니까 가능한건가…ㅠ

우리가 읽었던 논문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나는 이런 문제를 풀거야 (abstract)
    : 웨어러블센서 데이터를 이용해 사람 행동을 인식하는 문제 (HAR)
  • 사실 이 문제는 이런 동기에서 연구가 시작된건데 (introduction)
    : 보통 데이터와는 다른 웨어러블 센서 데이터의 특징들, 그리고 딥러닝 적용에서의 특별 고려사항들
  • 관련해서 이런저런 접근들이 있었지 (related works)
    : 딥러닝/HAR/딥러닝 모델들에 대한 소개
  • 난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려고 하는데 (method)
    : 새로운 regularization 방법 제시
  • 정말 이게 잘 먹히는지 실험도 해봤어 (experiment)
    : 새로 도입한 regularization 포함, 총 5개 딥러닝 모델의 3가지 데이터에 대한 비교실험
  • 이를 통해 이런 사실도 알아냈지만 한계점도 있지 (discussion)
    : DNN은 파라메터에 따라 성능이 많이 바뀌지만 CNN/RNN은 그나마 덜 바뀐다는 것. 반복적인 운동 인식에는 CNN이 성능이 좋고, bi-RNN은 레이어 수에 따라 성능변화가 심하다는 것 등등
  • 마지막으로 귀찮은 너를 위해 요약 (conclusion)
    : 사실 아주 획기적인 논문은 아니야. 힝 속았지?

여러분들도 이런 식으로 논문 읽기와 논문 요약을 반복해 나가신다면 연구동향 파악과 주제 정하기, 본인의 연구 시작하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덧) 많은 분들께서 페이스북 댓글들을 통해 본인들의 논문읽기 팁을 공유해주셨다. 여러분들도 본인의 논문읽기 초짜 탈출에 도움이 되었던 팁들이 있으시다면 이 글의 댓글로 함께 공유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대.알.좋… 앗.. 어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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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도교수 만나는 법

지난 글 “나의 유학도전 성공 이야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관문”에서 성공과실패가 판가름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고3학생은 대학입시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시공과 실패가, 취업준비생은 취직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공, 실패가 갈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관문”을 통과했다면 그건 “이제 시작이시네요”란 뜻이지, 결코 “성공하셨네요”는 아닐 것이다. 유학도 마찬가지다. 나는 유학에 성공한 사람이 꼭 Winner이고 실패한 사람이 꼭 Loser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일단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합격기술을 연마에 안간힘을 쓰고 계시겠지만, 학교는 수단일 뿐, 진정 성공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내가 가고픈 길부터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유학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점, 영어성적, 자기소개서, 추천서, 지도교수 컨택 등이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게 있고, 그것을 향해 실제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학원 선택, 무엇이 중요한가

대학원을 진학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 학교? 전공? 장학금? 아니면 연구분야?

많은 고려 요소들이 있지만 나는 ‘어떤 지도교수를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고싶은 연구분야’를 선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최악의 지도교수 밑에서 하고싶은 연구를 하는 것과 최고의 지도교수 밑에서 적당한 주제의 연구를 하는 것 중에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의 존재는 마치 아기가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어떤 지도교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학계가 푸르른 바다처럼 보일 수도, 또는 더러운 시궁창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의 푸르른 바다를 만나고 싶다면 좋은 지도교수를 만나는 것은 아마 필수요건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교 이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도교수=연구분야>장학금>학교’이어야 할 선택의 우선순위를 그 반대인 ‘학교>장학금>연구분야=지도교수’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명문대 안좋을 과를 갈래 아니면 후진대 좋은 과를 갈래?’의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대학 입시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얕은 고민으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건 대학입시를 마지막으로 이별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원을 간다는 것은 나의 미래 인생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단순히 스펙에 따른 줄세우기로 결정 되어선 안될 것이다.

물론 좋은 학교의 졸업장으로 받아 취업 만을 목표로 한다면 학교 이름을 우선시하는 선택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석사/박사 졸업장에 새겨진 (학사보다 더) 좋은 학교 이름이 꼭 취직에 ‘효능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을 목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였다면 그것은 그저 취업을 위한 가방 끈 낭비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대학원 생활에 있어 졸업장에 새겨지는 학교 이름은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일 뿐이어야지 그것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그리고 좋은 학교의 졸업장 만을 바라보며 ‘졸업만 시켜주세요’라고 바라는 대학원 생활은 그저 ‘전역만 시켜주세요’라는 군대 생활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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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시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니…

좋은 지도교수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참고로 이 글은 본인의 생각에 의해 쓴 글이지만 최윤섭님의 글 "지도교수는 어떻게 골라야할까"와 배현진님의 글 "지도교수와 학생의 만남은 결혼과 같다."와 유사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들 비슷하나 봅니다. 위의 두 글도 참 좋은 글들이니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도교수를 찾기 앞서 먼저 알아 두어야 할 점은 교수가 학부생을 대하는 모습은 자신의 대학원생들을 대하는 모습과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교수에게 있어 강의는 일종의 쇼와 같다. 그리고 학부생들은 그 쇼에 입장한 관객들이다. 잘 짜여진 각본과 연기력에 의해 좋은 연극을 펼친다고 해서 그 배우가 꼭 가정에서 훌륭한 사람은 아닐 수 있듯, 강의를 잘하는 교수가 꼭 대학원생들에게 좋은 지도교수는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보기 좋은 떡과 먹기 좋은 떡을 구분하자. 정말로 좋은 지도교수는 오히려 대외적인 노출(showing)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교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외부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수일수록 대외 노출(showing)을 위해 대학원생들을 더욱 쥐어짜고 학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학 전 지도교수를 잘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그 연구실에 들어가 인턴으로서 연구에 참여해보는 것이다. 이 때 처음부터 연구의 깊은 부분에 관여해 좋은 논문을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리도록 하자. 처음 부여 받은 일은 아마도 선배 대학원생들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한 단순 조사(survey)나 반복 실험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학문적으로는 얻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지만, 바로 곁에서 대학원생들의 고민과 삶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래 계획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지도교수님이나 연구분야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생각들을 듣다 보면 본인이 이 연구실에 오는게 맞을지에 대한 생각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대학원생들의 엄살에 주의하자. 많은 대학원생들이 본인이 최악의 헬에 살고있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세상에 헬 아닌 곳이 없고 힘들다고 얘기 하지 않는 곳이 없다. 참고로 회사에 간 선배는 회사에 오지 말라고 하고, 대학원에 간 선배는 대학원에 가지 말라고 하는게 보통의 반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연구실 인턴 생활을 하기 쉽지 않단 걸 잘 알고있다. 맘에 드는 교수님의 연구실을 고르는 것도, 교수님을 찾아가 인턴 자리를 요청하는 것도, 방학/계절학기/어학성적을 포기하고 연구실에 나가 무료 봉사를 하는 것도 나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올인할 수 있는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다.

그럴 땐 적어도 그 연구실의 대학원생과 대화라도 나눠보자. 직접 아는 사람이 없다면 아는 사람의 소개라도 받아서 말이다. 타 대학으로의 진학을 목표로 한다면 이러한 대화의 기회를 찾기가 참 힘들 것이란 걸 알고있다. 그래도 꼭 해야한다. 지도교수가 아무 정보가 없는 학생을 뽑을 수 없는 것처럼, 학생 역시도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지도교수와 한 배를 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구실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 연구실 홈페이지에서 구성원 중 가장 인상이 좋아 보이는 몇 명에게 메일을 보내 보거나 아니면 무작정 (타대학이라도) 연구실을 찾아가 그곳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시도해보도록 하자. 그 어떤 행동도 아무 정보없이 내 인생을 맡기는 것보단 낫다.

필자가 서울대에 있을 떄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교수의 성격이 괴팍해 자대생이 잘 가지 않는 연구실이 주로 아무 정보가 없는 타대생 출신으로 채워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리고 이 학생들은 ‘그 랩에 누가 가’라는 곳에서 고생이 참 많은 것 같았다. 그러니 타대생 출신 멤버가 너무 많은 연구실을 기회의 땅으로만 보지 말고, 안좋은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의심해보자. (반면 타대생 출신 구성원이 많은 이유가 교수가 신임교수여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학교에 대한 편견이 적은 교수여서 그런 것이었다면 이러한 연구실들은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 교수가 어떠한 사람인지 말로 잘 설명하기 힘들다면 아래의 그림을 해당 연구실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교수가 어떤 유형인지 물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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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가지 유형의 지도교수의 모습

어떤 유형의 지도교수가 좋을까?

말 나온 김에 위의 유형들에 대해 좀더 깊은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위 그림에 나온 아홉가지 교수 유형 중 최선의 지도교수는 어떤 타입이고, 최악의 지도교수는 어떤 타입일까? 그래서 나름대로 순위를 한번 매겨봤다. 참고로 교수와 제자의 궁합은 제자의 성향과도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래의 순위는 활발하고 주도적인 편인 필자의 입장에서 작성된 것임을 밝혀둔다.

9위 – 사이코

나는 일단 어느 유형이든 인간적 측면에서 실망을 안겨주는 지도교수는 실력과 상관없이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아동학대를 당하며 자란 아이가 나중에 부모가 되어 아동을 학대할 가능성이 크듯, 계속 실망스러운 지도교수의 모습을 통해 학계를 바라보다보면 본인도 그 모습을 닮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지도교수는 대학원 생활 또는 그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더라도 선택하지 않는 쪽이 좋다.

6위 – 노예주인, 구멍가게 주인, 느긋한 교수

세상 어느 일이든 그것들에 맞는 적정선이 있다. 내 생각에 노예주인은 대학원생에 대한 강요가 과해서, 반면 구멍가게 주인과 느긋한 교수는 의무를 다 하지않는 일종의 태업과 같아서 두 경우 모두 나쁜 케이스들인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노예주인이 조금더 나쁘다. 실제로 한국에는 이렇게 대학원생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교수들이 종종 있는데, 문제는 그들의 지도 방향조차도 틀릴 때가 많은 채 학생들을 이리로 저리로 휘두른다는 것이다. 이런 교수 밑에서 있다보면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은 채 퇴근만을 바라보며 살기 쉽다. 그러니 이런 지도교수들은 피하도록 하자.

구멍가게 주인과 느긋한 교수는 노예주인처럼 학생을 괴롭히지는 않는데, 반면 학생의 열정을 자연스레 소멸시키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다른 곳에 진학해 정상적인 지도교수를 만나고 나면 ‘연구가 이런거였어?’라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저 시간만 떼우려고 대학원에 간 것이 아니고, 또한 지도교수가 안빈낙도하는 모습을 보기위해 대학원에 간 것도 아니니 이런 교수들은 피하도록 하자.

5위 – 달변가

이 교수들의 장점은 본인의 연구를 아름답게 포장해줘 중요한 연구처럼 보이게하며, 이런 능력들을 바탕으로 과제비를 잘 따와 풍족한 연구실을 만든다는 것이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이 자식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듯, 지도교수의 과제 획득 역량 역시 무시할 것이 되지 못한다.

반면 이런 교수들을 보고 배우다보면 진정한 학문의 길을 걷지 못하게될 때가 많다. 나도 어느새 ‘발표할 때 잘 포장하면 되지’라며 노력보다는 포장의 힘을 더욱 믿게되며, 쇼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연구로 본인의 연구가 격하될 수도 있다. 결국 그리 좋은 타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4위 – 반쯤 신

반쯤 신은 매우 좋은 교수일 수도, 매우 나쁜 교수일 수도 있다. 만약 교수의 얼굴을 거의 볼 수 없다면, 그리고 나의 팀 리더(예를 들면 프로젝트를 같이하는 포닥)마저 그리 배울 점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는 ‘구멍가게 주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유명한 랩의 일원으로서만 그냥 방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레벨이 된다면, 반쯤 신의 심오한 학문적 깊이를 이해하고, 그가 전세계에 걸쳐놓은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을만큼 본인이 실력자 레벨로 들어선다면 반쯤 신은 매우 좋은 유형의 교수 타입이 된다. 보통 학회를 가거나 졸업 후 취직시장에 나가면 지도교수의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기 마련인데, 이 때 반쯤 신의 이름은 본인을 알리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2위 – 통제광, 과학 오타쿠

나는 석사생이라면 태업을 일삼는 교수보다는 오히려 통제광이나 과학 오타쿠를 추천하고 싶다. 교수는 분명 대학원생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통제광/과학오타쿠가 하는 이야기들이 때론 성가시게 들릴 때도 많겠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사소한 디테일들이 때론 연구결과에 큰 차이를 가져올 때가 많으며 그러한 배움은 논문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나는 통제광/과학오타쿠가 주니어 연구자들에겐 좋은 습관을 몸에 베게하는 좋은 지도교수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노예주인과는 구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통제광의 통제가 본인의 연구에 국한되어야지 사생활까지 넘어오면 안된다. 또한 많은 부분들에 대해 지도교수가 의견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왜 해야하는지 교수가 친절히 설명해주며 학생의 의견도 경청해주는 교수라면 이보다 금상첨화일 수는 없을 것이다.

1위 – 떠오르는 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실력만 된다면 떠오르는 별이 쏘는 로켓에 탑승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다만 떠오르는 별은 매우 바쁘기에 정신차리고 따라가지 않으면 낙오되기 쉬우며, 주변의 많은 실력자들을 보면서 좌절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떠오르는 별의 꼬랑지를 잡아보도록 하자. 만약 본인의 실력이 아직 떠오르는 별을 쫒기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나는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통제광/과학오타쿠가 더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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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학도전 성공 이야기

지난 이야기  “나의 유학도전 실패 이야기”에선…

“난 5개월을 공부하고 참 별로인 영어점수를 얻었다. 학점 역시 좋지 않았고 말이다. (중략) 난 그렇게 허겁지겁 영어성적, 추천서, SoP를 만들어 ‘이름이 맘에드는’ 학교 8곳에 원서를 제출했고 보기좋게 떨어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실 문제가 아닌 점을 찾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내 지원서는 그 어느 것도 뛰어난 점이 없었다. 사실 유명대학의 교수들은 이미 알고있는 지원자들 중에서만 뽑아도 신입생 자리가 부족할 것인데 굳이 나를 뽑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013년 5월 마지막 불합격 소식을 들음과 동시에 나는 또다른 입시를 6개월 후에 앞두게 되었다. 그 사이 나는 과연 지원서의 어느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영어성적? 학업계획서? 그런다고 내가 붙을 수 있을까? 처음 맛본 실패에 나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나는 왜 유학을 가고 싶었던걸까?

유학에 실패하고나니 나는 근본적으로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지 깊은 회의가 들었다. 이미 나는 유학준비를 위해 1년을 허비했다. 그리고 또 한번 준비한다 한들 내겐 합격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아마 그 때 내 심정은 재수를 하게된 수험생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그렇게 나이 꽉찬 서른살에 유학 재수생이 되었다.

실제로 유학도전 실패 후 깔끔히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는 친구들을 종종 봐왔기에 나 역시도 포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 공부보다는 잡기에 능하고 이리저리 나대기만 하던 내가, 진득히 책상 앞에 앉아 학문에 정진하는 학자의 길을 간다는 건 무언가 잘못된 선택처럼 보였다. (주 – 학자의 모습이 꼭 이런 모습만 있는건 아니라는 것을 박사과정에 들어와 알게되었다.)

사실 내가 유학을 가려던 이유는 본질적 이유보다는 부차적인 이유가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러한 것들이었다.

  • 한국에서만 30년을 살았는데 외국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미래엔 컴맹만큼이나 영맹(=영어 문맹)이 바보취급 받을 것이다. 외국에 나가서 영어를 배우자.
  • 게다가 공대 유학은 (펀딩을 받으면) 돈이 들지 않는다. 이건 마치 무료 해외체험과 같지 아니한가!
  • 답답한 회사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난 자유를 원한다. 박사가 되면 좀더 독립적인 주체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 인생 길다. 4년의 투자 정도는 그리 큰 부담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나중에 다시 공부를 해로야한다면 많은 희생이 따를지도 모른다.
  • 그리고 난 아직 많이 부족하다. 로봇 분야에서 석사도 하고 관련 회사에서 일도 해봤지만, 난 아직도 할줄 아는게 별로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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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서른살에 다시 이런 모습을 꿈꿨던 것 같다. (근데 왜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거야..?;;)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이유들로 유학을 고려하시는지 모르겠다. 물론 위의 이유들이 틀린 말들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유학을 온다고해서 꼭 위의 문제들이 해결되는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연구실에만 쳐박혀 있기에 영어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유학 준비할 때가 더 잘했던듯…, 나이는 한살한살 먹어가기에 미래에 대한 부담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공부를 통해 내 분야에 대해 좀더 많이 알게된 것 같긴 하지만, 또다른 헬게이트(=새로운 분야)를 탐구해야 했기에 앎의 농도(=아는 양/알아야 하는 양)는 점점 옅어지는 느낌이고 자신감은 점점 줄어만 간다.

결국 유학을 온다고 해서 위의 문제들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리고 우린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함을 익히 들어 잘 알고있다. 위의 이유들은 ‘박사가 되면 얻어질 결과’들에 대한 기대였지만, ‘결과에 대한 기대’는 부차적인 것이고 선택의 이유는 박사 공부를 하는 ‘과정’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바로 “지적 호기심”이라는 본질적 이유였다.

‘나는 4~5년을 투자해 도대체 무얼 알고 싶은거지? 내게 그런 호기심이 있긴한가?’

이 질문에 대한 긴 고민 끝에 나는 나의 연구분야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석사 때 연구하던 Robot motion planning도 아니고, 회사 때 담당업무였던 exoskeleton (일명 아이언맨)도 아닌, 새로운 분야 Machine learning 으로의 도전이었다.

2013년 5월, 모든 학교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고 새로운 입시를 단지 6개월 앞에 남겨놓은 그 때,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내가 그동안 알고 싶었던 분야로 내 전공을 옮겼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로운 분야로의 이동, 불안한 상태에서 더 불안한 상태로의 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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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걸까… 유학을 갈 수는 있는걸까…?

머신러닝으로의 도전

정말 한가한 발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입시가 6개월 남았는데 아무 경력도 없는 곳으로 분야를 바꾸다니… 하지만 나는 그 분야가 아니면 박사 공부를 할 의미가 없다고 느꼈었다. 내가 정말 알고싶은 것이 머신러닝이었고, 그 분야라면 박사과정 내내 정말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이라는 나의 어렸을 적 꿈과도 맞닿아 있었다.

문제는 내가 머신러닝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재활치료용 exoskeleton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연구실을 이끄시는 김박사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분야를 옮길까 말까 갈등하는 내게 김박사님은 ‘태웅씨, 인생 짧은데 하고싶은거 해야지’라며 용기를 주셨고, 나는 그렇게 김박사님 연구실을 떠나 머신러닝을 연구하시던 박박사님의 연구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박박사님은 바로 나를 멤버로 받아들이는 대신 2주 후 나의 연구계획 발표를 들은 후 나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2주간 유투브에 있는 머신러닝 강좌머신러닝에 관한 책을 놓고 열공했고, 내가 관심있어 하던 연구자들의 논문들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가 하고픈 분야와 가장 가까운 연구를 찾았고, 이 연구의 단점을 파고들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리고 2주 후,

“음… 빈 곳들이 많아보이긴 하지만… 한번 그 주제로 학회 논문을 하나 내보도록 합시다, 태웅씨.”

그렇게 나는 새로운 분야에서 새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록 새로운 분야는 낯설었지만,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던 배경지식이 그 분야의 공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머신러닝을 공부한지 4개월 만인 2013년 9월에 아이디어를 짜내어 메이저 로봇학회인 ICRA에 관련 논문을 낼 수 있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논문을 낼 수 있을지 몰랐는데, 평소 알고싶던 분야였고 연구를 하는 재미가 있다보니 학습이든 연구든 속도가 매우 빨랐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았다.

새로운 분야에 논문을 내는 여정은 내 유학 분야 결정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공부를 통해 다음의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가
  • 관련해서 어떠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가
  • 이 분야의 주요 연구자들은 누구인가
  • 현재의 연구엔 어떠한 한계점이 있는가
  • 나는 그곳에서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더이상 나는 US News Ranking에서 학교 랭킹으로 쇼핑을 하며 그럴듯한 연구실에 지원서를 내는 학생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무얼 연구하고 싶은지 알았고, 어떤 연구자와 함께 일하고 싶은지 알았다. 이제 남은건 그 연구자들에게 지원서를 내고 그들이 나를 학생으로 받아주기만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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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팝니다

하지만 지원서 상에서 작년과 다른 점은 단지 논문 한 줄 뿐이었다. 그동안 연구에만 집중했기에 영어성적도 그대로였고, 자기소개서도 그대로였다. 이제 원서 제출까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는데 나는 무얼해야할까? 토플, GRE 시험을 다시 치기에도 빠듯한 시간일텐데…

나는 영어성적을 올리기보다 연구자들과 직접 부딪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일단 나를 소개하는 슬라이드를 만들어 관심있는 연구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당연히 대부분 답장이 없었다(…) 혹시 그 연구실에 한국인 학생이라도 있으면 그에게 메일을 보내 교수님께 나의 존재를 알려달라 부탁도 했었지만 그 역시도 녹록치 않은 과정이었다.

온라인에서 한계를 느낀 나는 쌩돈을 들여 로봇연구자들이 많이 모이는 학회에 참석하기로 한다.

교수는 잘 모르는 사람을 뽑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직접 가서 나를 알려야겠다.

11월 도쿄에서 열리는 IROS, 장소도 그리 멀지 않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서울대 연구실 후배들의 호텔방 바닥에서 잤고, 학회장에도 등록없이 몰래 들어갔다. 여러분 이러시면 안됩니다ㅠ 학회에 참석한 나의 목적은 분명했다. Sell myself.

내 메일 씹은 사람들… I’ll find you, and I’ll sell myself…

학회 중간에 커피브레이크 때가 되면 내가 관심있는 연구자들을 찾아가 말을 걸었다. (보통 이런 유명 연구자들은 주위 다른 연구자들에 둘러싸여있어 말을 걸 타이밍을 잡기도 쉽지가 않다ㅠ) 꾸역꾸역 빈틈을 찾아 말을 끼어들 틈을 캐치한 후,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당신의 연구실에 지원을 하려고 하는 학생이에요. 예전에 메일도 보냈었는데… 혹시 보셨나요? 못보셨다고요? 그럼 잠깐 제 연구분야를 소개해도 될까요?”  (물론 나의 짧은 영어로…)

그렇게 연구자들을 찾아 내 소개를 하고 다녔다. 절반 정도의 반응은 마치 길거리에서 원치않는 전단지를 받는 사람들의 반응과 비슷했다.

“혹시 가져오는 장학금 있나요? 없으면 아마 쉽지 않을텐데… 그래도 한번 정식 루트를 통해 지원해봐요.” (떫떠름….)

하지만 일부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오… 메일을 보냈었다고요? 미안해요 워낙 메일들을 많이 받아서… 혹시 오늘 다시 메일을 보내줄 수 있나요? 확인해보고 연락줄게요.”

그렇게 나는 University of Waterloo의 교수님과 Imperial College London의 교수님에게 다시 메일을 보낼 기회를 잡았고, 교수님들은 내 자료를 본 뒤 다음날 인터뷰를 하자고 하셨다.

다음날, 나는 다음날 학회장 한켠에서 각각의 교수님들과 한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눴다. 질문의 대부분은 그동안 내가 어떤 연구를 했는지, 연구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박사과정 동안 하려는 연구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이었다. 아마도 내가 말하는 내용 뿐만 아니라내가 연구를 설명하는 모습을 통해 나의 연구 이해도나 열정, 나의 인성 등을 알아보셨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지난 5월부터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박사과정 때 무얼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묻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전공으로 박사를 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저 ‘그 분야가 핫하니까’나 ‘배우고 싶어서’라는 이유만으론 교수를 설득할 수 없다. 내가 왜 그 분야에 도전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연구로서 보여주어야 하고, 미래의 연구계획에 대해서도 충분히 충분한 동기부여(self-motivated)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시간의 인터뷰 끝에 나는 기쁘게도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 지원을 하면 합격을 시켜주시겠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다시 말하는데도 가슴 떨리고 기뻤던 감정이 살아나는 것 같다. 아마도 한번의 큰 실패를 겪어봤기에 그 기쁨이 두배로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직접 부딪쳐 나의 목적을 달성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Screenshot from 2016-09-06 20:25:40

2013년 말, 나는 인터뷰를 했던 두 곳을 포함해 연구 과정 중에 관심있게 지켜보던 논문들의 저자가 있는 연구실 여섯 곳에 지원서를 냈고, 그 중 세 곳으로부터 합격 소식을 받았다. 합격 후 어떤 곳에 갈지 선택을 위해 그곳의 학생들에게 메일로 ‘교수님은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물어봤는데, U. Waterloo 교수님의 학생으로부터 “Dana Kulic 교수님은 연구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존경할 수 있는 분이다.”라는 메일을 받아 감탄했다. 한국에서는 교수님 욕 밖에 다들 안하던데… 나는 그 메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세 곳의 학교 중 지금의 U. Waterloo로 오게되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나의 지도교수님에 대해 너무나 만족하고 있다. 정말로 연구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존경할 수 있는 분이다. 사람은 직접 부딪쳐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건 교수가 학생을 선발할 때도 마찬가지고, 학생이 지도교수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만약 아직도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이 연구실에 지원을 해도 될까?’ 고민을 하고 있다면, 교수는 아마 그것의 1/10도 안되는 관심으로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유학도전의 성공 방정식?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관문”에서 성공/실패가 판가름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고3학생은 대학입시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시공과 실패가, 취업준비생은 취직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공, 실패가 갈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맞지않는 전공으로 끊임없이 방황하는 경우도 많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이 길이 내 길이 아닌데…’라며 끊임없이 퇴사를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군가 “관문”을 통과했다면 그건 “이제 시작이시네요”란 뜻이지, 결코 “성공하셨네요”는 아닐 것이다. (이것이 좋은 학벌이 성공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학도 마찬가지다. 유학에 성공한 사람이 꼭 Winner이고 실패한 사람이 꼭 Loser인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민 끝에 유학을 포기한 사람이 더 좋은 길을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입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유학준비생 분들께 다시 한 번 유학을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시란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정말 의미있게 보낼 자신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다.

당신은 왜 유학을 가려 하시나요? 당신은 왜 박사를 꿈꾸시는건가요?

요즘에도 가끔 ‘내가 첫 해에 유학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연구경력 상 강점이 있던 exoskeleton 분야로 말이다.

물론 그 분야로 유학을 갔더라도 나는 그 분야에서 나름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호기심은 영원히 풀지 못한 채 큰 응어리처럼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남들이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재미난거 하고싶은데…’라며 부러워만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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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학교를 선택할지 고민하던 시절, 박사과정 중이던 외국인 친구 중 한명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학교 이름이 뭐가 중요해? 난 이름 없는 학교라도 내가 하고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면, 이름 있는 학교에서 하기싫은 연구를 하는 것보다 백배 좋을 것 같아. 그게 하버드이든 MIT이든 말이야.”

참으로 맞는 말이다.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아마 일단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합격기술을 연마에 안간힘을 쓰고 계시겠지만, 학교는 수단일 뿐, 진정 성공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내가 가고픈 길부터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대학 전공도 단 몇 일만에 결정했는데, 박사과정마저 그럴 순 없지 않은가. 

유학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점, 영어성적, 자기소개서, 추천서, 지도교수 컨택 등이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게 있고, 그것을 향해 실제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관심있는 연구실에 찾아가 6개월 정도 연구 기회를 얻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열심히 그 분야를 파고든다면 나의 열정이 지구 어느 한 편의 교수에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학교만 쇼핑하는 유학준비생은 결코 지원서들 속에서 학생을 쇼핑하는 교수의 눈에 들지 못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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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학도전 실패 이야기

지난 이야기  “회사냐, 대학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에선…

“결국 이 둘 사이의 선택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적성의 문제이다. 아니,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추구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니 회사 대신 대학원으로의 선택이 꼭 본인의 행복한 삶을 찾아줄 것이란 생각은 버리고 올바른 선택을 내리도록 하자.”

“사람마다 정답이 다르기에 제가 정답을 드릴 순 없겠지만,  저의 몇가지 선택 원칙들을 드려보면,”

– 엉덩이가 불편한 쪽으로 선택하라
– 환상을 깨고 선택하라
– 대안이 아닌 최선으로서의 선택을 내려라
–  ‘될놈될’의 교훈을 기억하라                         

유학가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꿈꾼다. 나 역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어떤 사람이든지 유학을 준비하게되면 늘 묻게되는 질문들이 있는 것 같다.

“성적은 얼마나 좋아야 해요?”
“영어성적은 얼마나 중요하나요?”
“지도교수님과 컨택은 어떻게 하죠?”

나도 이러한 질문들을 따라 수많은 글들을 찾아보고 검색해봤던 기억이 난다. 아마 대부분의 질문들과 정보들은 유학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고해커스 사이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엔 어디 토플장이 시험치기 좋은지 등 시시콜콜한 팁들부터 시작하여 본인의 성적과 학교합격여부를 포스팅하는 어드미션 포스팅, 장학금 정보, 각종 공부 팁 등 정말 다양한 자료가 올라와있다.

특히 어드미션 포스팅은 마치 나의 수능 성적과 배치표를 비교하던 고3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곳은 본인이 합격한 학교와 불합격한 학교, 그리고 자신의 성적들을 공개함으로써 대충의 학교별 입학 난이도(?)를 예측할 수 있게끔 하는데, 주로 “저도 드디어 이곳에 합격소식을 올리게 되네요ㅠ”로 시작하는 글들은 유학준비생들에겐 한번쯤 써보고픈 꿈같은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나의 스펙과 대비되는 학생들의 화려한 스펙을 보며 나는 좌절 또 좌절을 겪는 곳이 또 이 게시판이기도 했다.

나는 사실 보통 사람들이 거치는 ‘유학의 정석’에 있어 성공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유학 성공의 팁을 알려드린다는 건 주제넘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실패 이야기는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2012년 유학준비 첫 해에 8개의 대학에 지원하여 모두 불합격 했었다. 그리고 2013년 다시 6개의 대학에 지원했고, 그 중 네 곳에 합격하여 현재의 University of Waterloo에 올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대학들이 날 떨어뜨려줬던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빈 말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왜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이번 글과 다음 글을 통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더불어 나의 부끄러운 실패 스토리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나름 로봇계와 머신러닝계에서 허명이 있는 입장으로서 나의 하찮음을 공개하는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나 스스로도 허명을 좀 벗겨내고, 유학을 준비하는 많은 분들께도 용기를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사를 다니며 처음으로 시작했던 토플 공부. (2012. 4.)
회사를 다니며 처음으로 시작했던 토플 공부. (2012. 4.)

내 성적으로 유학을 갈 수 있을까?

나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석사 학위도 있었고 해회학회 논문도 있었으며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학부 / 대학원 학점   :   3.38  /  3.66
토플 / GRE   :   99   /  153(Verbal), 166(Math)

지금 적으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릴만큼의 부끄러운 성적이다. 각각에 대해 여러가지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냥 내 실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난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영어는 더더욱 아니다. 주위의 서울대 친구들이 발로 풀어도 토플 100~110은 나오기에 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만 내 부족한 실력은 한과목씩 번갈아가며 -10점을 받는 참사를 만들어냈고, 난 그냥 내 실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난 공부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그래도 관악의 물을 먹었는데…’라는 허세가 있었던 것 같다. 주변의 친구들이 다 좋은 학교를 가니 나도 이정도는 가야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마음…? 그래서인지 내가 유학준비를 하며 제일 자주 했던 일은 US News, QS Ranking 등에서 각종 대학랭킹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이 되는지는 자각하지 못한 채, 난 그저 탑 대학들의 연구실 쇼핑만 즐겼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행동이 고등학교 시절 대학 배치표만 바라보던 그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고등학생들에겐 ‘전공이 중요해요’라고 꼰대질을 하면서도, 난 여전히 대학랭킹이나 대학이름이 주는 뽀대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맛봤던 ‘서울대’라는 후광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난 웬만하면 남들이 다 아는 이름의 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래서 2012년 하버드, 카네기멜론, 조지아텍 등등 알만한 이름의 대학들 8곳에 지원했고, 모조리 떨어졌다.

마지막 학교에서 불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던 내가 처음으로 초라한 실패자의 모습을 보인다는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난 보기좋게 실패했고, 날 줄곧 도와주었던 요행은 이번만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년의 도전도 성공이 보장된 것이 아니었기에 그만큼 더 참담했고 불안했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처음으로 나의 실패를 친구들에게 고백해야했다.

2012년, 실패했던 나의 유학준비과정

2012년 당시 나는 석사 병역특례로 월화수목금금금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주말에도 늘 하루 이상은 일을 나가야했고 게다가 회사도 집에서 멀었던지라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면 밤 11시가 넘어야 집에오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특히 답답했던 회사의 조직문화는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들게 했고, 난 유학을 결심하였다.

“팀장님. 저 유학을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곳에선 유학을 준비하기 힘들 것 같아 회사를 옮기려고요.”

이 말을 들은 팀장은 그 날부터 매주 나를 불러내며 각종 회유와 협박(?)을 했다. 예를 들면 ‘너 이 바닥 얼마나 좁은지 아느냐…’와 같은… 좁아도 당신 밑으론 안갈거다 당시 회사는 신입사원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가던 시절이었고, 자기 팀의 인재가 퇴사를 하게되면 팀장이 인사 상으로도, 실무 상으로도 불이익을 받았기에 팀장은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다. 여러차례 면담 끝에 난 퇴직을 연기하는 대신 ‘학원가는 날 칼퇴권‘을 따냈다. 그렇게 4월에 처음으로 해커스 토플 주말반을 등록했고, 4,5,6월 토플반, 7,8월 GRE반을 다니면서 영어시험을 치뤘다.

성적은 아까 말씀드린 그대로다. 실력도 없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안좋은 영어점수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해에 유학을 준비하며 영어시험을 다시 보지 않았다. 그만큼 영어학원에 돈을 버리는게 낭비 같았고 (특히 GRE), 내가 갈 길은 연구로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난 그렇게 5개월을 공부하고 참 별로인 점수를 얻었다. 보통 토플은 105점 (상위권 110점),  GRE Verbal은 155점 (상위권은 160점)은 넘어야 알만한 대학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하는데, 내 성적은 그것에 턱없이 못미치는 영어성적이었다. 그리고 학점 역시 좋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허겁지겁 영어성적을 준비한 뒤 나는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나는 연구가 아닌 축구로 교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었고(;;;) 추천서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공부는 못해도 성격 좋은 애임’과 같은 추천서를 받았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우리 교수님이 워낙 솔직하신 분이시라…) 그렇게 하나는 지도교수님께, 다른 하나는 옆 연구실의 로봇공학 교수님께,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회사의 선임 분께 추천서를 받아 총 3개의 추천서를 제출했고, 그 세 추천서 중 그 어느 것도 인상적이지 않았을거라 확신한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아마 교수님께 추천서를 받는 단계부터 어려워하시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그저 철판을 깔고 교수님 방의 문을 두드리는 수 밖에… 처음엔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그 뒤에도 가끔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찾아뵈어야 한다. (나는 휴가 때 마다 찾아뵀다.) 이 정도 되면 대충 교수님들도 눈치를 챈다. ‘얘 추천서 필요하구나…’. 그래도 다짜고짜 추천서 제출 몇달 전에 ‘교수님 저 좀 추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단 나으니 유학을 생각 중이시라면 우선 교수님과의 불편한 벽부터 깨시길 바란다.

“그는 수학 천재입니다.” 존 내쉬와 같이 내가 이런 추천서를 받을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유학 때문에 고생하지도 않았을거다. #그럴일읎다

10월에 모든 영어성적표를 얻고, 11월부터 허겁지겁 SoP (State of Purpose, 일종의 학업계획서)를 작성, 학교 별로 원서를 작성하여 11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총 8개 학교에 원서를 접수하였다. 바쁜 회사일을 하면서 성적표 떼오랴, 은행 잔고증명하랴, 외국에 우편 보내랴… 참 만만찮은 일이었다. 각각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쁜지라 내 지원서는 ‘완벽’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고, 누가봐도 대충 만든 원서임이 보였을 것 같다.

난 그렇게 허겁지겁 영어성적, 추천서, SoP를 만들어 ‘이름이 맘에드는’ 학교 8곳에 원서를 제출했고 보기좋게 떨어졌다. 평범한 학점, 영어성적, 추천서, SoP 등 내가 봐도 뽑힐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난 그래도 내 연구경력에 기대를 걸었었다. 나는 석사 때 Robot Motion Planning 쪽으로 해외학회 논문들이 있었고, 회사에서도 실제 exoskeleton(착용로봇)을 개발하고 있어서 관련 경험들이 내 성적을 만회해 줄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었는데, 결국 내 기대는 기대일 뿐이었다.

고해커스에서 하라는 팁은 다 따라했던 것 같다. 교수와의 컨택이 중요하다기에 원서를 다 제출한 후 나는 내 연구를 정리한 슬라이드를 만들어 교수들에게 뿌리기도 했었고 (대부분 답장을 받지 못했긴 했었지만…), 그 랩의 아는 사람을 통해 내가 지원했다는 사실을 교수에게 알리는 등 나는 지원서 외적인 면에서도 발버둥을 쳤었다.

누나  :  “태웅아. 너 하버드에서 우편왔더라? 이거 뭐야?”
나      :  “봉투가 얇아 두꺼워?”
누나  :  “얇은데?”
나      :  “그럼 그냥 떨어진거야… 찢어버려…”

아직도 제일 싫어하는 영어문장은 “We regret to inform you…”로 시작하는 문장들이다. 하나하나 불합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희망은 점점 무너져갔고, 2013년 5월, 나는 모든 곳에서 최종 불합격 소식을 들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문장, We regret to inform you...
내가 제일 싫어하는 문장, We regret to inform you… (출처: PhD Comics)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실 문제가 아닌 점을 찾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내 지원서는 그 어느 것도 뛰어난 점이 없었다. 사실 유명대학의 교수들은 이미 알고있는 지원자들 중에서만 뽑아도 신입생 자리가 부족할 것이다. 같은 학부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온 학생, 자기와 친한 다른학교 교수가 추천한 학생, 처음 받아본 지원서지만 성적과 논문실적이 인상적인 학생 등등… 그런 학생만으로도 신입생 정원을 채울 수 있는데 굳이 내 지원서를 뽑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박사생을 선발한다는 것은 교수로서도 매우 신중해야하는 선택이다. 석사생이 본인이 1년 쯤 가르쳐야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유소년과 같다면, 박사생은 바로 자신을 대신에 연구성과를 내줄 제자이자 동료와도 같다. 따라서 교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그만큼 실력도 검증되어 있어야하고 믿을 수 있어야할텐데, 익명의 평범한 지원서는 그만큼 큰 믿음을 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박사는 최소 4년이다! 박사생 만큼이나 교수 역시도 악몽같은 학생과 4년을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교수가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넌 그리고 가져오는 장학금도 없고 게다가 영어도 못하자나ㅠ

2013년 5월 마지막 불합격 소식을 들음과 동시에 나는 또다른 입시를 6개월 후에 앞두게 되었다. 그 사이 나는 과연 지원서의 어느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영어성적? 학업계획서? 그런다고 내가 붙을 수 있을까? 처음 맛본 실패에 나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다시 도전한다고 내가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영어시험을 다시 보지도 않았고, 학업계획서에 크게 매달리지도 않았다. 6개월 후 나는 총 여섯 곳에 지원했고 네 곳에서 합격을 받아 지금의 University of Waterloo로 오게되었다.

준비하는 6개월 동안 내가 고민했던건 영어성적이나 학업계획서와 같은 합격 기술이 아니었다. 그동안 고민했던건 나 자신에 대한 탐구였다.

나는 과연 무얼 연구하고 싶은 사람일까…?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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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냐, 대학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난 이야기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에선…

“그렇다면 학습력 말고 진학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적호기심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그것을 이론적,실험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꼭 가야할 사람이다.”

“석사 또는 박사에 대한 선택이 결코 대학 다음에 대학원 또는 회사 대신에 대학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중략) 중요한 것은 20대 중반, 여러분의 소중한 2년 또는 4년을 도피로서의 선택이나 환상에 기반한 선택으로 결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학원 생활은 좀더 낫지 않나요?

사람의 성향이 모두 같을 순 없다. 진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대학원이 더 적성에 맞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직장생활이 천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헬조선에서 꿀보직이 아닌 이상 도대체 어떤 사람이 헬조선 직장생활과 맞겠느냐만은, 툴툴 거리면서도 매달 따박따박 월급 들어오고, 그 돈으로 배고픈 대학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럭셔리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직장생활의 매력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학을 가지 않는 이상 당신은 여전히 헬조선의 대학원생이란 점이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할 유학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내가 회사에 다닐 시절,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넌 그래도 돈이라도 받지. 난 과제하랴 보고서 쓰랴… 일은 일대로 하는데 돈은 최저시급 수준이야. 6년 동안 남들 1억원 전세값 모을 때, 서른이 넘어서도 돈 한푼 없는게 대학원생의 처지다.  대학원생이 부럽다고? 넌 그래도 돈 받으면서 노예 생활 하는걸 다행으로 알아.

또다른 내 후배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우리 대학원은 9am to 9pm이에요. 방장인 박사과정 언니는 벌써 박사 6년차인데, 졸업을 못해서인지 히스테리가 정말 쩔죠. 연구실 분위기가 꼭 그 년 여인 한 명 때문에 작살이 난다니까요…할 일도 없는데 금요일 저녁까지 연구실을 지키고 있노라면  정말 ‘내가 여기서 뭐하는건가…’란 생각이 든다니까요. 회사는 그래도 휴가라도 있자나요..ㅠ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한국의 직장생활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직장생활을 ‘돈을 위해 내 자유가 뺏기는 선택’이라고 여기는 반면, 대학원 진학을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주변 환경이 어떠하냐에 따라 당신의 대학원 생활은 헬이 될 수도 있고, 신의 한수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둘 사이의 선택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적성의 문제이다. 아니,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추구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니 회사 대신 대학원으로의 선택이 꼭 본인의 행복한 삶을 찾아줄 것이란 생각은 버리고 올바른 선택을 내리도록 하자.

결국 어떠한 선택 자체가 당신을 확 바꿔주지는 못한다. 그저 그런 사람이 회사 대신 대학원을 선택했다고, 또는 회사 대신 대학원을 선택했다고 갑자기 막 잘나가고 그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선택”이 당신의 성공을 좌지우지 한다고 생각하면 한번 생각을 다시해보시라. 다시 말하지만 대학원과 회사 사이의 선택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적성의 문제, 아니,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추구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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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야 비로소, 대학 바깥에 더욱 큰 대학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대학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그저 일부일 뿐입니다. 인문학은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모든 이들은 존중할 만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고, 누구라도 내 인생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각, 이러한 삶의 태도를 얻었기에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中

회사 경험과 대학원 경험의 장단점

개인적으로 나는 회사 경험과 대학원 경험 모두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회사경험 없이 학교에만 쭈욱 있다가 교수가 된 사람, 또는 대학원에 가지 않고 회사에서 평생을 회사원으로 살다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많았을테지만, 수명은 길어지고 명퇴는 짧아진 만큼(ㅠ) 앞으로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게 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회사에 가도 언젠가는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학계이 있더라도 창업을 하거나 회사에 합류할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둘 중에 무얼할까’에 대해 너무 큰 고민하지 말도록 하자. 앞으로 회사를 다니다가 대학원에 가게되든, 아니면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를 가게되든, 길게 봤을 때 두 가지 모두 경험해 볼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그러니 ‘둘 중에 무얼할까’ 보단 ‘둘 중에 무얼 먼저 해볼까’란 고민으로 바꿔 생각해본다면 조금은 선택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석사 진학에 대한 고민은 말이다.

그래도 각각 선택에 대한 장단점은 알고 선택을 해야할 것이다. 회사 생활과 대학원 생활, 각각의 경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점들은 과연 무엇일까?

회사생활로부터는…

내가 느꼈던 회사생활 경험의 가장 큰 소득은 다양한 어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들 아마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중 스스로 공간을 독립하여 독립경제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않고, 또 부모님의 그늘에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선택을 하며 인생을 꾸려가는 이들은 더더욱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고, 대학원보다는 회사가 본인을 더욱 빠르게 “어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어른이 되는 과정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헬조선의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눈에 담게될 것이다. 그리고 본인 역시 하나씩 그러한 루트를 하나하나 밟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인생에 꼭 필요하다. 학생으로만 살고, 비슷한 환경의 동년배들에게만 둘러싸여 살다보면 그만큼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좁아진다. 그러다보면 마치 꼰대 어른들이 “요즘 젊은 것들이 뭐가 힘들다고 그래. 우리 때엔 말야…”라며 이해가 부족한 이야기들을 하듯, 우리 역시도 “아니, 공부하고 경쟁해서 취직하면 되지… 왜 이렇게 앓는 소리만 하는거야?”라며 또다른 꼰대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또한 회사에 가면 가뭄에 콩나듯 존경할만한 인물을 찾을 수 있게되고, 그리고 ‘저 사람 반대로만 살면 되겠다’ 싶은 수많은 counter examples 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거울처럼 타인의 모습을 통해 비친 내 모습을 통해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나 스스로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먹기도 한다. (물론 악랄한 군대 선임처럼 본인이 또다른 사회 암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좀더 나은 사람, 좀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분들이라고 믿겠다.)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 꼭 남을 짓밟고 올라가 나만 편하게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나는 수많은 example과 counter example들을 보며 자신의 태도를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회사에 가면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다. 아 참, 시간의 소중함!을 빼먹을 뻔 했다. 젊었을 땐 그렇게 펑펑 남아돌던 시간이었지만, 회사에 종속된 이후로는 2~3일 휴가 붙이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워진다. (방학은 꿈도 못꾸고 말이다..ㅠ) 그렇게 시간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다보면 더욱 부지런하게 살게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쪼개 취미를 키우고, 어떤 사람은 시간을 쪼개 사회 봉사를 한다. 이 모든게 의미없는 시간 블랙홀 속에 의미있게 살아보려는 발버둥들이다.

이 외에도, 회사를 다니면 기업들이 어떻게 조직을 꾸려 어떠한 포지션에서 돈을 벌고있고 있는지도 알 수 있고, 직장 내에선 누가 뼈 빠지게 일을 하며 누가 무전취식을 하고있는지도 알 수 있으며, 팀플레이란 무엇인지, 갑을관계란 무엇인지, 착취란 무엇인지,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등등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해보시기 위해 회사로 가는 것을 추천해드리고 싶다. 꼭 ‘너도 한번 당해봐라’란 심정은 아니다…;;

너무나 암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 긍정적 측면도 이야기 해야겠다.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회사를(조직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회사를 통해 개인으로서는 하지 못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 개인 아무개였으면 못했을 거대한 프로젝트를 대기업 OOO팀이란 이름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프로젝트를 위해 대학원에선 다루기 힘든만큼의 예산을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아실현에 덧붙여지는 윤택한 경제생활과 높아지는 사회적 지위는 매력적인 덤이다. 그러니 회사에 간다면 회사를 본인의 꿈을 위해 적극적으로 이용하라! 나는 개인과 회사의 성장그래프만 맞아 떨어진다면, 회사야말로 돈도 벌고 자기계발도 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정장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멋있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겨드랑이에 땀차고, 앉아있기 불편하고 갑갑하고...ㅠ 자율복장 출근이 최고다ㅠ
정장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멋있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겨드랑이에 땀차고, 앉아있기 불편하고 갑갑하고…ㅠ 자율복장 출근이 최고다ㅠ

대학원으로부터는…

한편 대학원(석사) 생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아마도 “논문을 읽는 습관“이 아닐까싶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대학원 생활을 통해 본인의 일반적인 지식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해당 분야 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될 확률이 더욱 크다. 결국 대학원의 장점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닌, 바로 지식을 얻는 방법에 있다. 그리고 어떠한 학문적 문제가 주어졌을 때 문제를 정의하고, 조사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적용하는 문제해결 방법에 있다.

처음에 대학원에 들어가면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연구라는게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몰라 그저 ‘수업을 들으면 되는건가?’라며 어리둥절해 있기 쉽다. 하지만 대학원 과정을 거의 마칠 때 쯤이 되면 ‘OOO에 대해선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즉각 관련 연구를 조사하고, 연구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아닐 수도 있다…;; 이를 습관으로 잘 체화시키면 남들은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할 때, 여러분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논문을 통해 지식을 접할 능력을 갖추게 될 지도 모르겠다.

대학원 생활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한가지 더 꼽자면 “본인이 주도하는 삶”을 꼽고싶다. 물론 이 역시 개인차가 크다. 어떤 사람은 회사를 다녀도 본인이 주도하는 삶을 사는 반면, 어떤 사람은 대학원에서도 지도교수나 사수의 명령에 이끌려 살곤 한다. 하지만 경향으로 봤을 때 대학원이 조금더 넓은 자유와 선택의 폭이 주어지며,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에 따른 편차가 큰 것이 사실이다.

필자의 케이스가 약간 극단적인데, 필자는 석사(서울대) 시절과 박사(워털루대) 시절을 통틀어 단 한번도 출퇴근 시간을 강요당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저녁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기도 하고, 굳이 연구실에 나갈 이유가 없다면 집에서 논문을 보기도 했다. 근데 사실 당연한거다. 어차피 이 과정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고 그 결과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누구의 눈치를 본단 말인가. 그렇기에 내가 시간과 장소를 어떻게 보내든, 내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평가한다. 다만 나태해질 위험도 있고, 일 중독이 될 위험도 있으니 이를 잘 조절해야하며, 그렇게 본인이 주도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대학원 생활이다.

Choice

 

선택하자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대학원 3~4학년이 되었든, 아니면 현재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든, 아마도 회사와 대학원 사이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으실 것이다. 여러분께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본인의 행선지는 회사인가, 아니면 대학원인가?

사람마다 정답이 다르기에 제가 정답을 드릴 순 없겠지만, 선택에 있어 조금의 편견 깨고 선택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아래와 같이 몇가지 선택 원칙들을 적어봤다.

  • 엉덩이가 불편한 쪽으로 선택하라.

모두들 본인이 선택해서 현재 상태까지 왔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선택하지 않아서 default(기본 선택옵션)를 따라가다보니 현재에 와있는 경우가 더욱 많을 것 같다. 관성을 이기시라. 다시말해, 현재 본인이 학교에 있다면 “학교”라는 선택이 더 쉬울 것이고, 회사에 있다면 “회사”라는 선택이 더 쉬울 것이지만, 이러한 편향(bias)을 없앤 상태에서 선택하시란 말씀이다. 이러려면 약간은 엉덩이가 더 불편한 쪽으로 선택해야 공정한 선택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 환상을 깨고 선택하라

위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라는 대학원에 대한 환상을 깨고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다. 석사, 박사 타이틀을 달면 삶이 더욱 윤택해질 것이란 환상 역시 마찬가지다. 기회비용만 계산해보더라도 대학원 생활이 꼭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으며, 큰 뜻 없이 대학원에 갔다간 몇년 후 ‘내가 왜 이걸 전공했을까’라는 후회가 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환상을 깨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선택하자. 본인은 진짜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 싶은가?

  • 대안이 아닌 최선으로서의 선택을 내려라

어떤 회사원이 창업을 결심했다고 하자. 그런데 결심의 이유가 ‘회사 생활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 과연 이 회사원이 창업한 회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선택의 동기나 목표가 강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대한 선택 역시 마찬가지이다. ‘회사생활이 싫어서…’라거나 ‘난 아직 준비안된 것 같아서…’와 같은 이유는 기피의 이유이지 선택의 이유가 아니다. 기피의 이유 말고 진짜 이유를 찾아봐라. 아마 진짜 이유를 찾으려면 정말 내면을 깊게깊게깊게 성찰해야할지도 모를 것이다.

  • ‘될놈될’의 교훈을 기억하라

환경이 나의 전부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현재의 환경에서도 잘 해나갈 수 없다면, 새로운 환경에서도 잘 해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무언가를 해나가는 주최는 본인 자신이다. 그러니 지금 진로에 변화를 꾀하려는게 혹시 ‘환경 탓’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보자. 내가 ‘될놈될'(=될놈은 뭘해도 된다.) 중 한 명이라면 지금의 환경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하고, 더 좋은 선택에선 더 크게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환경은 거들 뿐’ 이란 것을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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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라는 소설이 있다. 이는 “과학논문작성 과정에 대한 고찰“이란 글로도 유명한 KAIST 전산과 박사과정 김창대님의 웹 연재소설인데, 대학원생들의 찌질하고 우울한(?) 삶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리고있어 많은 대학원생들에게 공감을 사고있다. 사실 나는 이 연재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글의 제목만으로도 나는 그 이야기가 다루는 고민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이 말은 아마도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을, 또는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절절히 되내였던 물음이었을 것이다. 과연 나는 박사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과연 나는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크고 작은 좌절을 겪을 때마다 대학원생들은 늘 내가 맞지않는 옷을 입으려 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부터 들곤 한다. 내가 박사를 꿈꿔도 되는지, 그것은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한 선택이다.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 듯, 석사 또는 박사에 대한 선택이 결코 “대학 다음에 대학원” 또는 “회사 대신에 대학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대안으로서의 선택 도피로서의 선택 이 최악은 막아줄 수 있을지언정 최선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있다. 물론 내 인생이 언제 최선의 길만을 걸었겠냐 만은 – 입시도 실패, 취업도 실패했었는데 말이다 – 그렇다해도 이렇게 똥차만 피하다 인생을 끝낼 순 없다. 지금부터라도 최선의 선택을 해보자. 중고등학교 때 좀 놀고, 대학교 때 좀 덜 성실하게 살았다고 해서 내 남은 인생을 모두 똥빛으로 그릴 이유는 없다. 나도 할 수 있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출처)

나는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요

대학원을 가려할 때 가장 먼저드는 생각은 아마 ‘내가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공부를 더 해볼까 생각하니 갑자기 고등학교 때부터 날고기던 공부머신의 얼굴이 떠오르고, ‘넌 정말 공부로 밀고 나가야 해’라고 믿고 있었던 우리과 과탑 친구가 갑자기 취업 스터디로 돌아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에 비해 내가 시험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얼른 공부를 때려쳐야겠다’는 괴로움 뿐이었고, 성적은 받았으되 그 과목을 내가 잘 알게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보다 성적 좋은 애들이 다 취업준비 한다는데… 내가 어떻게…

십수년 간 상대평가의 프레임에서 배워온 우리들에게 이러한 비교 판단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건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기억하도록 하자. 우리과 과탑이 대학원에 가건 안가건, 옆집 순이가 박사를 하건 안하건, 그건 내 인생의 선택에 아무 상관없는 일들일 뿐이다. 어차피 경쟁 아니냐고? 아니다. 대학원은 이제껏 봐왔던 ‘동일한 문제를 동일한 시간에 풀어 제출하는 것’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과정들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꼭 연구를 잘하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고 희망을 갖도록 하자.

석사/박사과정을 한다는 건 ‘공부를 하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연구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내가 석사/박사과정을 통해 얻는 가장 소중한 경험은 그 기간 중 공부를 했던 내용들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세우고 그것을 해결해갔던 일련의 과정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부’는 그 과정 중 아마 (논문으로 따지자면) introduction(도입)이나 related work(관련 연구조사) 부분일 뿐일 것이다. 물론 훌륭한 introduction과 related work 조사는 연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훌륭한 논문을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보단 problem formulation(문제 정의), method(방법론), experiment/evaluation(실험)이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연구의 본질은 제대로 된 문제를 제대로 된 접근으로 푸는 것이다. 그러니 단지 학습을 대학원 생활의 전부로 생각하진 말자. 학부 때 학습에 대한 비중이 어림잡아 80% 였다고 한다면, 석사 때는 40%, 박사 때는 아마 20%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밤을 새는 일은 많을 수도 있지만, 공부 때문에 밤을 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밤을 새는 일은 많을 수도 있지만, 공부 때문에 밤을 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습력” 말고 진학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적호기심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그것을 이론적/실험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꼭 가야할 사람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면,

  • 나는 로봇을 보고 ‘로봇(인공지능)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을 수 밖에 없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고, (문제 제기)
  • 단순히 수많은 “if-else”로 해결하기보단, 진정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으며, (기술적 난이도)
  • 이를 위해 학자들은 어떤 고민들을 해왔는지 알고 싶었고 내 아이디어와 수학적 배경으로 이 분야에 기여를 하고 싶었다. (지적호기심과 기여 욕구)

그래서 나는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도 없는데 석사/박사과정 내내 교수님이 던져준 주제에 대해 ‘이건 내가 흥미로워야 하는 학문이다’라며 최면을 걸고 있어야한다면 당신은 아마 대학원에서도 성공적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타의에 의한 행동은 늘 자의에 의한 행동에 하위한다.  그렇기에 성공적인 연구생활을 위해선 강한 동기(motivation)가 필수적이며, 이것이 석사/박사과정 모집글에 “self-motivated”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욱 강렬하게 궁금해하고 파고들어라. 그 호기심 만이 당신에게 의미있는 경험과 좋은 성과를 가져다 줄테니 말이다.

Self-motivated
A self-motivated person.

환상

마음 같아선 ‘돈을 벌고 싶은 사람 모두 OUT’, ‘취업이 목적인 사람 모두 OUT’ 등 학문적 목적 외에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분들은 모두 부적격자로 몰고싶은 맘도 있다. 올 단두대. 하지만 ‘석사 학위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회사가 연구진은 모두 석사 이상을 요구한대서…’ 등의 현실적 부름을 모두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위에 대학원 진학을 위한 이상적인 조건들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자신의 지적호기심을 탐색할만한 “낭만적” 생각을 학부 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성적관리하기 바쁘고, 스펙 관리하기 바빴을텐데 말이다.

대부분은 어영부영 지내다보니 벌써 3, 4학년이 되었고, 갑자기 맞딱뜨린 사회의 거대한 벽 앞에서 이리저리 찾아본 돌파구 중 하나로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3 때도 학과선택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했듯, 대학원 진학에 있어서도 많은 고민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환상’에 기반하여 선택을 내리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CEO가 되고싶어 경영학과를 간다든지… CEO의 조건은 경영학과가 아니라 회장님 아빠가 아니던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데 있을 수 있는 몇가지 환상이나 오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학부 공부로 뭘 알겠어. 석사 정도는 해야 뭘 아는거지…

전혀 아니다. 석사를 해도 모른다. 박사를 하면 아냐고? 사실 박사를 해도 모른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담아야 할 그릇의 크기는 점점 커지는데 반해, 내가 채우는 속도는 좀처럼 빨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망각 속도는 위대하다. 박사과정 쯤 하고있으면 아마 학부 때 배웠던 과목들은 거의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말해 만약 당신이 막연한 일반 지식의 전체적 향상을 위해 대학원을 택했다면, 그 목적은 쉬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원은 표족한 침을 만드는 곳이지 넓은 바다를 만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교수되고 테뉴어 받은 뒤 해보시라능… 

석사나 박사하면 아마 취직은 더 잘될거야

전혀 아니다. 내가 전문분야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많은 기업들과는 업무 적합성(fit)이 어긋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괜히 대기업에서 학부졸업생들 뽑아다가 재교육 시키는 것이 아니다. 석사/박사는 각자의 전문 분야가 생기기에 그것을 살리기 위한 길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으며, 여기엔 바늘구멍 같은 경쟁이 기다릴 수도 있다. 특히 박사 학위 후 ‘포닥’이라 쓰고 일용연구직이라 읽는다을 떠돌며 고용불안에 떨고있는 이들 중에는 ‘차라리 박사하지말고 취업을 할 걸’이라며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석사나 박사 학위가 취업에 꼭 악영향만 주는건 아닐테지만, 이것이 진학의 큰 이유가 되는 건 위험한 일일 것이다.

일단 버티다보면 학위는 나올거야

석사는 ‘…그럴지도…’, 박사는 ‘전혀 아니다’. 석사는 학교에 따라 물렁하게 봐주는 곳도 있는 것 같다. 현대 들어 학생들의 교육기간이 점점 늘어나며 석사과정을 학부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도 많이 늘고 있기에, 수업을 듣고 형식을 갖춘 논문을 제출하면 다들 졸업을 시켜주는 것으로 알고있다. 또한 유럽의 경우엔 논문을 써야하는 석사학위와 수업만 들어도 되는 석사학위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물렁하게 얻은 학위는 내게 물렁한 연장책 만을 쥐어줄 뿐 내게 큰 발전을 안겨다줄 순 없기에, 그러한 ‘무사안일’이 내 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박사학위는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박사학위는 논문자격시험(일명 퀄, qualifying exam)을 통과해야하고, 박사 학위논문 제출과 이에 대한 디펜스 과정을 거쳐야하며,  졸업 요건으로서 SCI 저널논문을 요구하는 등 그놈의 SCI 시간만 버틴다고 박사학위를 주지는 않는다. 박사과정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다 이수할 경우 이를 “박사 수료”했다고 보는데, 사실 이 이후의 과정이 험난해 박사 수료 후 중도 포기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주변에서 “박사수료”란 경력을 많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간만 버티다 보면 학위가 나온다’라는 오해는 하지 말도록 하자.


이 외에도 사실 석사/박사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풀어보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20대 중반, 여러분의 소중한 2년 또는 4년을 도피로서의 선택이나 환상에 기반한 선택으로 결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선택에는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대학원 생활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연재들이 그러한 탐색의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 나눈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공부와 연구는 다르다.
  • 그러니 공부 못한다고 쫄지마라.
  • 근데 공부 못한다고 연구를 잘한다는건 아니잖니;;;
  • 중요한건 지적 호기심이다.
  • 궁금하냐? 그럼 해라. 안궁금하냐? 그럼 하지마라.
  • 환상만 갖고 결혼하지마라 대학원에 가지마라
  • 석사/박사가 보장해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
  • 줄 수 있는 건 이 노래밖에 없다 문제해결 경험이다.
  • 풀고자 하는 문제가 있다면 대학원에 도전하라.
  • 그렇다고 꼭 성공한단 뜻은 아니고…;;;

기승전 나도몰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이시간에 하기로 한다. 주간 폭탄 돌리기, 다음 글은 윤섭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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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거창한 이야기의 시작

우리는 인생을 산다.

하지만 그 인생이 온전히 자기의 것이 되기까진 참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만약 흔히 말하는 “어른”의 정의가 “우리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고 책임지는 단계”를 뜻하는 말이라면, 아마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분들은 아직 어른이 되지못한 미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아직 우린 어른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쓰려는 글은, 바로 그 어른이 되기위해, 다시말해 독립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이끌어 갈 주체가 되기위한 한 과정으로서 대학원 생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하는 것이다.

사뭇 거창했던 도입부에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이런 글을 시작한 이유는 단지 사람들에게 ‘좋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팁’ 또는 ‘석사/박사 학위를 잘 받는 팁’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이 글들을 모두 읽고난 뒤엔 당신이 좋은 대학원에 진학할 팁을 얻었을 수도 또는 수월하게 석사/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팁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이 글을 읽으며 스스로 고민하던 과정 중에 얻었을 부산물일 뿐, 그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님을 밝혀둔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물론 그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주제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며 그 부담과 한번도 정면으로 맞서서 질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남들이 세워놓은 “통과의례”의 관문에만 허덕이다 늙어버릴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후엔 대학교를 가고, 대학교 후엔 대학원을 가고, 대학원 후엔 회사를 가고, 입사 후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자녀를 입학시키고….. 이렇게 눈 앞에 펼쳐진 통과의례만 해결하다보면 도대체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난 사회가 살아가라는 답안에 떠밀려 살기 바빴단 생각에 든다. 내가 떠밀려 갔던 곳엔 나처럼 떠밀려 온 남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늘 기다리고 있었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느라 나는 나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우리는 적어도 여러분의 연구 인생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구 생활은 사실 인생의 축소판이다. (사실 연구 생활도 인생의 일부이니 굳이 구분지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인생에서도 그렇듯 대학원 생활에서도 수많은 모습의 선택, 갈등, 도전, 성공, 실패와 마주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대학원생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대학원 생활을 해가는 모습이 그들이 삶을 대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많은 학생들은 “대학 다음에 대학원” 또는 “회사 대신에 대학원”의 통과의례로서 떠밀려 왔으며, 대학원 생활 속에서도, 그리고 대학원 생활이 끝난 이 후에도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대부분 그들은 불안함에 스스로를 또다른 통과의례에 몰아넣곤 하는데, 나는 이러한 쳇바퀴가 인생을 주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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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삶이 끝이 없다…

누가 이렇게 살라고 시켰을까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엔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가 우릴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고, 이후엔 치열한 경쟁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사회는 줄에서 이탈한 자들을 낙오자라 불렀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달콤한 빵을 나눠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학원에 와서까지 우리가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늘 떠밀려왔던 과거와는 달리, 나는 언젠가는 어른으로 거듭나야 했으며, 독립적인 주체로서 내 삶을 장악하고 컨트롤해야 했다. 나는 대학원 속에서의 삶의 변화가 그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진 누군가가 내주는 문제를 열심히 풀어 누군가가 평가해주길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턴 다르다. 스스로 문제를 찾고 스스로 푼 뒤 그것을 스스로 평가하는 삶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이 문제를 풀어야하는가’이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이 문제를 풀면 남들에게 고용당하기 쉬울까봐…? 그 이유만으론 충분치 않은 것 같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대학원 생활이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그래야 내가 늘 재미있게 연구에 달려들 수 있을 것 같고(self-motivated), 그래야 더 좋은 성과도 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인생이 그렇다. 내 인생의 미션을 내가 스스로 주지않는다면 또 누가 줄 수 있으랴. 만약에 우리의 미션을 남들이 주고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세상의 부속품, 회사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탈피하기 위해 대학원에 온 것이라면 부디 주체적인 대학원 생활 하루하루를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글이 그러한 변화에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우리는 대학원 진학부터 졸업까지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될텐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원 생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역시 대학원 생활의 꿀팁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세를 이야기해보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거창한 제목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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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년 만에 학사모를 쓰던 날

나에 대하여…

함께 글을 쓰시는 다른 두 분(최윤섭님, 권창현님)은 각자 소개할 것이라고 믿고 내 소개를 해보려고 한다. 소개는 셀프. #살아나는_드립력

나는 2002년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아서 입학했다. 겸손의 말이 아니다. 나는 내 스스로 가장 밑바닥 성적으로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대학교 1학년 생활을 하며 학생들의 높은 수준에, 그리고 나의 저급한 수준에 수많은 좌절을 해야만 했다. 미적분학 드랍은 기본. 우여곡절 끝에 돌고돌고돌고돌아 결국 6년 만인 2008년에 졸업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땐 이미 재수강으로 1학년 성적표가 갈아 엎어진 후 였다.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가만히 앉아 책 읽는 것을 매우 싫어했고 (‘내가 학교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도 억울한데, 집에 와서까지 왜?’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지금도 책 읽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지금도 늘 ‘나는 과연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공부는 나의 취미도, 특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과정의 길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텅 빈 채로 떠벌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떠벌리고 있다. 지금도 떠벌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공부마저 안하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텅빈 깡통으로서 내 스스로를 사기꾼이라며 자학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2008년부터는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시작했다. 공대에서 수학을 가장 잘한다고 알려진 서울대 박종우 교수님 (일명 Frank Park)의 지도 하에 공부를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수학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수학 잘하는 사람들을 동경 하기에 계속 수학책을 붙잡고 있어보려 했다. 그러나 역시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지 나는 늘 책의 앞페이지만 뒤적이고 있었다. 석사 때의 연구주제는 로봇의 모션 계획(motion planning)에 관한 연구였다. 이 주제는 외국에선 컴퓨터공학과(CS)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주제인데, 그래서 나는 기계과도 아니고 컴퓨터과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 되어 졸업을 하였다. (참고로 난 컴공을 부전공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난 ‘왜 vim 같은 걸 쓰라고 하는거야?’라는 푸념 외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메멘토)

2010년부터는 LIG넥스원에 전문연구요원으로 입사해 국방로봇을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말이 대기업이고 말이 신사업이지, 선임 한 분과 박사님 한 분, 그리고 신입사원 두 명이 이끌어가는 로봇팀은 새로 생긴 구멍가게와 다름 없었다. 그 “일당백”의 조직에서 나는 끊임없는 야근과 특근을 반복해야 했는데, 덕분에 그 때가 바로 내 삶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 회사는 내 길이 아니구나…. 이후 나는 2012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으로 자리를 옮겼고, 회사에서 하던 외골격로봇(exoskeleton, 일명 아이언맨) 연구를 벗어나 내가 늘 공부하고 싶던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현재의 워털루 대학(University of Waterloo)에 입학을 하였다. 나폴레옹이 죽었던 그 워털루 전투의 그곳이 아니라, 그냥 캐나다의 토론토 옆 소도시 워털루이다. 참 더럽게 재미없는 도시다.

내가 걸어온 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나는 기계공학과에선 컴퓨터공학에서 다루어지는 연구를 했고, 회사에선 다시 기계설계를 맡았으며 현재는 전기공학부에서 기계학습을 하고있다.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안에선 일관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믿는 철학을 향해 연구를 해왔고, 비록 지금까지의 성과는 미미하지만(ㅠㅠ) 곧 폭발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쯤 되면 의심해 볼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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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세 명의 저자가 처음으로 책 출판에 대한 얘기를 나눴던 모습.

사실 고작 박사과정생인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지 많이 조심스러웠었다. 왜냐하면 내가 느껴왔던 것들이 편협한 시각일 수도 있고, 또 난 아직 대학원 생활 중이기에 내 대학원 생활의 끝이 안좋은 결과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리 없어ㅠㅠㅠㅠ 그렇기에 내가 앞으로 할 이야기는 정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 주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애초부터 정답을 말하려 했다거나 또는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느 위치에서든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라고 믿는데, 나 역시도 현재 박사과정의 위치에서 분명 기여할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아마 그 중 하나는 내가 청년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도 아재는 아재) 따라서 나는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며, 비록 나의 생각이 조금은 부족해보이고 조금은 틀린 지점이 있더라도, 부디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생각 중 하나로서 너그러이 받아들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디어 긴 항해를 시작한다. 거창한 시작이다. 비록 쉽지않은 여정이 되겠지만 기나긴 여정 끝엔 나도 성장해 있고, 다른 작가님들(=박사님들)도 성장해있고,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도 성큼 성장해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드디어 시작.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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