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구하기

박사과정을 하다 보면,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히 하는 데, 지도교수는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고, 교수가 졸업 준비를 시켜주지 않는다.”

혹은 조금 더 자세히 “나는 교수가 하라는 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교수가 자꾸 논문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기만 하고, 논문 진도는 안 나가고, 도대체 교수는 생각이 있는 건지, 이 교수 밑에서 배울 게 있는 건지, 내가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놀라울정도로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이런 말을 하는 순간을 맞는다. 지도교수가 정상적으로 연구생활을 지속해 나가고 있는 분임에도 그런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 분의 연구 결과물이 세상을 놀래킬만큼 뛰어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교수도 연구 활동을 계속 하고 계신 분이고, 그렇다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흉폭한 ‘갑질’을 일삼는 분도 아니고, 학생은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일단, 교수가 하라는 대로 했기 때문에 문제다. 정확히는 교수가 뭘 하라고 말하게 놔둬서 문제다. 박사 학위 논문은 학생 본인이 쓰는 거다. 물론, 처음에는 지도교수가 이런 거 저런 거 하라고 하는 거 해 보면서, 연습도 하고 실력도 쌓고 논문도 읽으면서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박사 말년차 때 까지 계속 된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 진다. 교수는 일단 기본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면 성과를 내서 졸업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연구해서 졸업할 수 있을만한 (대체로, 출판할 수 있는) 논문을 쓸 수 있는지 안다면, 그건 이미 연구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일단 가슴 속에 명심하자. “교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물론 지도 교수 말고, 다른 교수들도 아무 것도 모르고, 이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모른다. 알기 위해서 연구를 하는 거고, 그래서 박사학위를 주는 거다.

박사 과정에 들어간지 2~3년차가 되면, 일단 어느 정도 연구가 어떤 건지 감은 잡았다고 보고, 그 단계에 들어서면, 더 이상 논문의 주인이 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 본인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이 주인이 되기를 꺼려하고 있다면,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무언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이것 저것 시켜보기 시작한다. 학생이 감을 잡고 연구 주제를 정하고 연구 방향을 정하고 연구 방법을 정하기 어려워 하는 것 같으면, 지도교수는 도와주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이것 저것 시도를 해보게 한다. 그러다가 학생이 언젠가 주인임을 선언하고 나서기를 기다리며. 그런데 이 시도라는 게 그야말로 시도다. 앞서 말했듯이, 교수도 뭔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이는 몇 가지를 시켜볼 거다. 근데 당연히 안 될 가능성도 많다. 그래서 연구하는 거니까.

학생이 이 몇가지 시도를 해 보고 나서, 잘 안 되었을 경우에는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첫번째는, 관련 논문들을 읽어 보고,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보고, 대안을 생각해서 교수에게 말한다. “이렇게 이렇게 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교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아예 말이 안 되는건 아닌지를 따져 줄 거다. 이건 좋은 경우.

두번째는, 교수가 시키는 (사실은 시킨 게 아니고,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를 한 것) 대로 “열심히” 해 보고 안 됐기 때문에, 다시 교수를 만났을 때, “잘 안 되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 본다. 아주 안 좋은 경우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뭔가 질문이 들어오면 대체로 대답을 해 준다. 왜냐하면, 학생의 질문에 답을 주려고 노력 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사 수준의 연구에서 교수의 대답이라는 건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왜냐하면, 교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답이 아니다. 아마 “잘 안 되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보면, 교수는 또 뭔가 이것 저것 말 해 줄꺼다. 그러면 학생은 또 돌아가서 시킨 대로 열심히 해본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당연히 논문은 진도가 안 나갈 것이고, 학생은 초조해 지기 시작할 것이다. 교수가 이런 말을 할 지도 모른다. “이 상태로는 졸업이 어렵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학생은 교수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맨날 했던 말을 “뒤집고”, 방향을 “바꾸고” 했던 것은 교수인데 왜 졸업을 못 시켜주겠다는 건가? 학생은 불평 불만이 아주 많을 것이고, 화도 날 것이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기분일 것 이고,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교수는 “뒤집고”, “바꾸고” 했던 적이 없다. 학생의 도움 요청에 반응을 했을 뿐이다.

학생의 연구 내용은 그 학생이 가장 잘 안다. 연구의 큰 줄기는 지도 교수가 파악하고 있을 수 있으나, 세부적인 사항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향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학생이다. 지도교수는 그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줄 뿐이다.

지도교수가 자기 논문을 쓰게 만들면 안 된다. 자기 논문은 자기가 써야 한다. 물론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고 방향을 정하고 여러가지 결정을 내려도, 졸업 후에 돌아보면, 결국 자기 논문은 지도교수가 기여한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그래도 어쨌든, 학생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자기 논문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졸업할 수 있다. 그렇게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 박사학위 이며,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졸업논문을 완성할 가능성도 매우 낮을 것이다.

최종발표 때 지도교수를 놀라게 하지 말자.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지도교수를 연구에서 배제하고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지도교수는 학생이 어떤 주제의 연구를 어떤 흐름을 가지고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지도교수를 주기적으로 만나서, 자기가 어떤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연구를 하고 있고, 지금 상황은 어떤 상황이며, 졸업 논문 전체의 구성은 어떻게 될 것이며, 앞으로 시간 계획은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업데이트를 시켜줘야 한다. 만일 교수가 생각하기에 문제가 될법한 것들이 있다면, 조금 더 자세히 물어 볼 것이며, 그것이 정말로 문제가 된다면, 교수가 지적을 해 줄 것이고, 어쩌면 해결 방법이 될 수도 있는 여러가지 대안들을 알려줄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교수는 학생의 연구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지도교수가 학생의 연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면, 당연하게도, 학생 본인이 준비가 되었다 안 되었다를 어떻게 판단하든, 지도교수는 학생이 졸업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 할 것이고, 아마 뭐가 잘 못 됐다면서 연구를 다시 하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끊임 없이 업데이트를 시키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최종발표를 하려고 하는 내용에 지도교수가 놀랄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안 된다.

간단하게만 업데이트 시키는 경우에도, 만날 때 마다 했던 이야기 또 해야 한다. 매주 혹은 2주마다 지도 교수를 주기적으로 만나는 학생의 경우에도 이런 불만을 터트릴 수 있다. 교수가 지난 미팅 때 했던 이야기를 전혀 기억 못 하고, 했던 이야기 또 해야 한다. 당연하다. 교수는 원래 학생 연구를 자세히 기억하지 못 한다. 학생은 교수랑 일대일로 만나는 거지만, 교수는 만나야 할 학생도 많고, 자기 연구 생각하는 것만 해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교수가 학생 연구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면, 아마 그건 학생 연구가 아닐 거다. 교수 연구를 학생이 도와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 연구하기

많은 경우에, 특히 이공계 그 중에서도 생물학과 관련이 있는 분야에서, 지도교수가 전체 연구를 지휘하고 있는 가운데, 포닥과 박사과정 학생들이 어우러져서 몇 몇 부분의 실험과 분석을 맡아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도교수와 박사과정 학생이 일대일로 연구할 때도, 지도교수가 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에 박사과정 학생이 그 연구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지도교수가 잘 알고 관심있는 분야의 연구 주제로 연구 제안서를 써서 연구재단 등으로 부터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하고 있는 경우다. 그야말로, 위에서 말한 교수 연구를 학생이 도와주고 있는 경우다. 이 상황에서 학생이 자신의 연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지도교수가 지난 수년간의 연구해온 분야이니 이 연구 주제에 대해서 만큼은 지도교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을터이니 지도교수가 시키는대로 실험해보고 그 결과를 보고 하는 것 이 외에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있으니까 묻겠지…

실제로 내가 ‘교수’로써 겪은 경험도 대체로 비슷하다. 내가 직접 연구 제안서를 써보니, 제안서가 완성이 되고 연구비를 받게 될 때 즈음이면, 이미 내 머리 속에서는 대체로 그 연구의 결말이 보인다. 제안서가 자꾸 떨어지다 보니 제안서 수정해서 반복해서 제출하는 시간 동안 연구가 끝났… 이런 문제를 이렇게 저렇게 해서 풀면 흥미로운 연구가 되겠지.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직접 조금 해보기도 하고 그 방향이 희망적으로 보이면 제안서를 쓰게 되고, 그 제안서를 읽는 사람들도 방향이 희망적이라고 생각되면 연구비를 주기로 결정하는 것이니, 내가 제안서에 써 놓은 그 방법대로 열심히 실험하고 분석하면 끝날 일이 아닌가. 교수가 모든 부분을 다 할 수 없으니, 연구비로 학생을 고용하는 것이고, 그 학생이 내가 제안한 방법을 열심히 실행하면 되는 것이겠지.

그런데 왠 걸, 연구비를 받고 실제로 연구를 진행 해 보니, 생각지 못 했던 문제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마 전체적인 연구방향은 잘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충분히 경험 있는 교수가 A->B 라는 길이 되는 길이다 라고 생각했고 심사하는 사람들도 그 길이 말이 된다라고 동의했으면 웬만하면 그 길이 되는 길이리라. 하지만 B라는 최종 목적지에는 예상했던대로 도착하더라도, 실제로 A에서 B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다를 수 있다. 그 길을 찾아가는 동안 학생이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심지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아주 새로운 연구가 탄생하기도 해서 A에서 출발했더니 B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M에 도착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A라는 조건 아래에서 B라는 가설이 옳음을 보이는 것이 연구 프로젝트의 방향이라고 하자.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교수는 아마 제안서에 여러가지 가능한 방법을 제시했거나, 그 가설이 옳다는 신호를 보내는 몇 몇 선행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방법을 적용해서 실제로 연구를 해 보면, 그 방법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했더니 그 생각대로 다 잘 되는 연구는 아마 ‘뻔한 연구’일 수도 있고, 누군가 이미 다 해서 새로운 것이 별로 없는 연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재밌는’ 연구는 대체로 생각했던 대로 잘 안 된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면, B라는 가설을 세운 것은 교수의 연구이지만, 그 가설을 실제로 테스트하는 것은 학생의 연구일 수 있다.

제안된 방법으로 연구를 하다가 잘 안 되었을 이 때가,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학생에게는 자신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좀 더 정확히는 자신만의 연구 문제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이다. “(지도교수가 제안서를 쓸 때도 고민을 했었고, 제안서를 심사했던 전문가들도 그에 대체로 동의를 했으니) 잘 될 것 같아 보이는 이 방법이 실제로는 왜 잘 안 될까?”를 묻고 그 이유를 알아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보고 테스트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굉장히 흔하게 발생한다. 이 전까지는 지도교수의 연구를 학생이 도와주고 있었지만, 이제는 역전이다. 학생의 연구를 지도교수가 도와줄 차례이다.

내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혹은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이 단계에서는 말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답을 준 적이 없는 물음에 내가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니 그 자체로 중요하다. 행여나 답을 찾아내는 데 성공이라도 했다하면,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달라 보일 것이다. 나의 작은 꺠달음이 이 세상을 달라 보이게 한다. 나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이 그 얼마나 흥분되는 순간인가!

물론 잘 안 된다. 연구에서는 잘 되는 경우보다 잘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한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고 나면, ‘안 되는 것’ 혹은 새로운 문제점들이 몇 개는 더 생긴다. 아우 썅, 내가 진짜 한 번에 되는 꼬라지를 못 봤다.

잘 안 되면 지도교수와 의논하자. 지도교수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지도교수에게 물어보면 아마 또 몇가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방안을 말해주겠지.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당연히 논문은 진도가 안 나갈 것이고, 학생은 초조해 지기 시작할 것이다. [무한반복] 지도교수가 ‘시키는’ 일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시키는 것 이 외의 길을 찾지 않을 때와, 나의 작은 연구 주제를 찾아서 그 연구를 하기 위해 지도교수에게 조언을 구해 ‘제안받은’ 일을 해보는 것은 모든 것이 전혀 다르다.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를 해 나가는 동반자가 된 것이고, 이 때 지도교수와 학생의 차이는 경험 말고는 없다.

이런 식으로 ‘내 연구’가 쌓이면 지도교수와 만나는 면담 혹은 회의 시간은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아니라, 학생이 지도교수를 ‘개인교습’하는 시간으로 점점 바뀌게 된다. 교수는 몰랐던 문제에 대한 답을 학생이 알아내는 게 많아진다. 하산할 때가, 졸업할 때가 다가 온 것이다.

내가 길게 말 한 것이 정리가 잘 안 된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교수도 잘 모른다.” 교수가 멍청해서 잘 모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잘 모른다. 그래서 연구다. 한 가지를 더 기억할 수 있다면, 이 점을 명심하자. “그런데, 교수가 잘 알게 돼야, 학생이 졸업한다.”

이 글은 제가 이전에 썼던 글, “박사과정 학생이 유의해야 하는 점”“박사과정… 교수… 덧붙이는 글”을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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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내 연구하기”

  1. 인문학 계통 전공자입니다. 내일 학위를 받습니다. 공부를 시작할 때 봤던 선생님의 글을 다시 찾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아직 멀고 부족하게만 보입니다. 그래도 가끔 자신이 없어질 때 선생님의 글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1. 반갑습니다. 인문학 전공자라시니 더욱 반갑네요. 제가 인문학 분야에서는 어떤식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지 익숙치 않습니다. 그래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비롯한 다른 연구자들도 자신이 없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도 제 글에 힘을 얻었다는 댓글을 보며 다시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위 마치신 것 축하드립니다!!! 시작해서 마쳤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입니다!!!

  2. 음, 사실 환자를 보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듭니다.
    결국 자신의 몸(증상)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은 환자이고,
    또 자신이 어떻게 치료받는게 좋은 것인지는 결국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거든요.
    (물론, 뭔 헛소리인가 할 수도 있지만 어느 의사에게 물어보든 수술이 정답이 맹장염 정도를 제외하면 정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결국 환자 본인의 삶의 철학이랄지 preference가 그래서 중요하거든요..)

    따라서, 그냥 가만히 있지만 말고 학생이 그러해야 하듯이 이것저것 자기도 노력하고 자신의 의사를 많이 전달하려고 해야 합니다.
    물론, 학생이든 환자든지 어려운 점은 교수 또는 의사가 시간이 없어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울 수도 있고 커뮤니케이션을 싫어할 수도 있고 그 방식이 본인과는 안 맞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만, 본인이 할 수 있는 한에서나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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