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학생, 나쁜 학생, 이상한 학생 (2편)

지난 글에서는 박사과정 기간을 제법 훌륭히 보낸 학생 A를 만나봤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학생들을 만나보자.

학생 B

학생 B는 지도교수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며 존중할 줄 아는 심성을 가진 학생이었다. 지도교수는 학생보다 대체로 경험이 많고 연구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분명 학생이 지도교수의 말을 존중하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학생 B는 그 정도가 지나쳐서 지도교수가 말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시간을 보내거나 의견을 내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거나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학생은 매주 정해진 미팅시간 이 외에 지도교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서류처리 따위를 위해서 지도교수의 서명이 긴급히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미팅시간에는 주로 학생과 교수가 몇가지 아이디어에 대해서 의논하다가, 그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보고, 한 번 간단히 시도해보고 잘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해보자라는 식으로 마무리짓곤 한다. 학생 B는 ‘그 괜찮아 보이는 한가지 아이디어’에 대해서 ‘미팅 시간에 의논했던 그 간단한 시도’를 적당히 해 본 뒤 그 다음 미팅시간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가 걸렸건, 실패를 했건 성공을 했건 상관없이 말이다. 자신이 직접 판단해서 무언가 모험적인 시도를 하는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 학생과는 2년 정도를 그렇게 보냈다. 연구가 진척이 있었을리 없었고, 학생과 나 모두 지쳤다. 결국 이 학생은 박사과정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둬야했다. 이 학생이 그만두게 되는 과정에서 학과의 대학원생 지도를 총괄하는 교수님과 면담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지도교수의 의견에 ‘아니오’라고 해도 된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놀랐다고 했다.

학생 C

학생 C는 중도에 지도교수에게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중간에 지도교수를 바꿔야 했던 학생이다. 학생 C는 수업 성적도 좋았고, 연구와 관련된 여러가지 일들도 제법 잘 하는 학생이었다. 지도교수와 여러가지 연구 및 개발 프로젝트를 했고, 그 일을 바탕으로 논문도 출판했다. 다만, 중간 중간 갑자기 연락이 안되고 사라지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한 번은 논문 제출 기한을 한 달여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차에 이 학생과 연락이 안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논문 제출 기한을 넘겨서 다시 나타났다. 화가 난 지도교수가 추궁을 하니, 인터넷 및 전화가 되지 않는 산악 지대에 있는 국립공원에서 야영장 관리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고 했다. 학생 C는 더 이상 그 지도교수와 일할 수 없었고, 다른 지도교수를 찾아야했다.

학생 D

학생 D는 수업 성적이 아주 좋은 학생이었다. 학과 내 다른 대학원생들과 비교했을 때 수업 성적으로는 최상위 5% 내에 들어가는 학생이었다. 학부과정과 석사과정을 좋은 대학에서 보내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이 학생이 박사과정 1년차 때 들었던 수업에서는 모두 최고 성적을 받았으며, 이 학생을 가르쳤던 교수들은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이 학생은 무사히 졸업 하긴 했으나, 이 학생과 함께 했던 연구가 썩 즐겁진 않았다. 정해진 연구 회의 시간을 미루는 일이 잦았고, 연구가 진행되는 속도도 더뎠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었겠으나, 내가 의심컨데 학생 D는 전형적으로 ‘강의실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만 연구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답이 있음이 잘 알려진 연습문제를 교수가 알려주는 방법으로 ‘열심히’하기만 하면 잘 되는 수업에서는 정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공부하지만, 연구는 그렇지 않음에 어려움을 느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연구에 집중하지 못 하고 결국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연구에서는 답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다. 동기부여도 부족했고 그로 인해 시간 관리도 잘 하지 못 한 것 같다.

학생 E

학생 E도 학생 D와 비슷했다. 수업시간에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었다. 해야 하는 연구가 있음에도 불구 하고, 연구보다는 수업 성적에 더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학생 D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듯 했으나, 그보다는 훨씬 더 좋은 연구를 했고 더 좋은 성과를 냈다. 내가 판단컨데 가장 큰 차이점은 학생 E는 지도교수의 연구실에 자주 찾아와서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의논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학생 D는 연구와 관련된 궁금증으로 지도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학생 A만큼 자주 왔던 것도 아니고 질문이 잘 정리되어 있지도 않았지만, 학생 E는 자주 찾아와서 연구와 관련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면서 자기 연구를 해나갔다. ‘강의실 모드’에서 ‘연구실 모드’로 바뀌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 지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학생 F

학생 F도 중간에 지도교수를 바꿔야했다. 처음 만난 지도교수와는 1년 정도를 같이 보냈는데, 그 지도교수가 불같이 화를 내며 이 학생과는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음을 통보했다고 한다. 상심 끝에 새로운 지도교수를 찾는 과정에서 나와 연락이 되었고 함께 해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학생과의 연구를 굉장히 즐겼다. 학생 A만큼 독립적인 학생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나의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였다. 연구 성과가 나왔을 때면 다음 주의 미팅 시간 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이메일로 소통을 했고, 때로는 내 연구실에 찾아와서 연구 진행 사항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을 내기도 했다. 미팅 시간에 정한 ‘이번주에 해보기로 한 것들’을 마치자마자 그 다음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판단으로 여러가지 실험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또, 내가 ‘참’이라고 믿었던 몇가지 생각의 오류를 발견해 내기도 했다. 물론 자신의 생각에 대한 오류도 자기 스스로 발견해내기도 했다.

이런 학생은 교수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된다. 나는 이 학생을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생각했다. 교수의 의견을 적절한 선에서 존중하여 말을 귀길울여 듣되,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교수의 생각을 의심할 줄 알았다. 내가 제안했던 방법이 잘 되었을 경우에는 그 다음 단계를 미리 보고 자신 만의 로드맵을 만들어 나갔으며, 내가 제안한 방법이 잘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자신만의 대안을 만들고 시험할 줄 알았다. 연구는 그 누구도 답을 갖고 있지 않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교수라고 다 알 수는 없다. 언제나 100% 확신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수도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스스로 오래 반복해서 생각해보거나, 혹은 주위의 동료 연구자의 의견을 물으면서 검증해나간다. 그 ‘동료 연구자’가 내 지도학생이라면 아주 큰 힘이 된다. 나는 학생 F가 굉장히 자랑스럽고, 이 학생을 지도하면서 많은 기쁨을 누렸다.

이 학생이 왜 첫번째 지도교수에게 이별통보를 받아야만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학생이 성장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단지 그 지도교수와 잘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학생 F는 성공적인 박사과정 기간을 보냈다.

내가 바라는 박사과정 학생

내 생각에 박사과정 기간을 가장 훌륭히 보냈던 학생은 학생 A와 학생 F인 것 같다. 다른 학생들이라고 지금 인생을 잘 못 살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박사과정 기간에서만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새로운 박사과정 학생을 뽑을 때 바라는 학생 유형은 역시 학생 A 또는 학생 F이다. 그러면 그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었나를 돌아보면 나는 두 가지로 정리한다. 호기심과 책임감.

교수들마다 박사과정 학생에게서 보고자 하는 점들이 다르겠지만, 나는 ‘호기심’ 있고 ‘책임감’ 있는 학생을 바란다. 글에서 계속해서 학생이 지도교수를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를 강조했다. 연구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지도교수를 찾아오지 않고 무작정 다음 미팅 시간을 기다리는 학생을 볼때면 ‘궁금해서 어떻게 기다리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지도교수가 제안한 방법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이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보지 않는 학생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지도교수의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은 이유가 왜 궁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나는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며 해결책을 찾아내거나 이유를 알아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학생을 바란다. 책임감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자신의 연구는 자신의 것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다 보면 없던 호기심도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은 그 다음 문제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지만, 모든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기는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다른 학생들

위에 소개한 학생들은 내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학생들이다. 다른 분들의 글 속에서도 참고할만한 사례가 있으니 소개한다.

먼저 “Applying to Ph.D. Programs in Computer Science”라는 글에 나오는 사례다.

Student X comes from famous school Y in country Z, where he was ranked 5th out of over hundreds of thousands of students and #1 in his college graduating class. The student comes to graduate school expecting to be the best and starts working very hard on research. By the end of his first or second year, the student realizes that he has not yet published any papers. His friends and family from home start asking what’s wrong with him. He feels frustrated and ashamed. He blames his advisor, he blames his department, he blames his school. Finally, he grows up and accepts the fact that maybe he’s not the best, but he can still do well if he works hard. He starts listening better, works harder, and ends up quite successful.

이 문서의 두 번째 장은 “Do I really want a Ph.D.? What does a Ph.D. entail?”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박사과정을 고민하거나, 이미 박사과정에 들어온 학생들이라면 꼭 한 번씩 읽어 보길 권한다. 단어 하나 놓칠 것이 없다.

두 번째 참고할만한 사례는 “So long, and thanks for the Ph.D.!”이라는 글에 나온다.

At UNC, there is a famous anecdote about a former UNC graduate student named Joe Capowski. Many years ago, UNC got a pair of force-feedback mechanical arms to use with molecular visualization and docking experiments. The problem was how to move them to UNC. These mechanical arms were large, heavy beasts, and were in Argonne National Labs in Chicago, IL. Unfortunately, there was a trucker’s strike going on at the time. Joe Capowski, on his own initiative (and without telling anyone), flew out to Argonne, rented a truck, drove the mechanical arms all the way back to North Carolina, and then handed the computer science department the bill! Many years later, Joe Capowski ran for the Chapel Hill city council and won a seat. Prof. Fred Brooks gave him an endorsement. I still remember the words Dr. Brooks said: “I may not agree with his politics, but I know he’ll get things done.” (Thanks to Jim Lipscomb for corrections to this anecdote.)

While the Joe Capowski anecdote is perhaps a bit extreme, it does show that it is often better to ask forgiveness than permission, provided you are not becoming a “loose cannon.” Certain universities (e.g. MIT) are good at fostering a “can do” attitude among their graduate students, and therefore they become more assertive and productive. One of the hallmarks of a senior graduate student is that he or she knows the types of tasks that require permission and those that don’t. That knowledge will come with experience. Generally, the senior graduate students have the most freedom to take initiative on projects. This privilege has to be earned. The more that you have proven that you can work independently and initiate and complete appropriate tasks, the more your professors will leave you alone to do what you want to do.

이 문서 역시 읽어보고 음미할 부분들이 많다. 일독을 권한다.



* 이 글들은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이야기들 페이스북 페이지 를 통해 팔로우 하실 수 있습니다.

- 엄태웅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블로그(영문)]
- 최윤섭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브런치(한글)]
- 권창현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홈페이지(영문)]

14 thoughts on “좋은 학생, 나쁜 학생, 이상한 학생 (2편)”

  1. 안녕하세요, 이제 1기를 마치고 막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석사과정생입니다.
    피가되고 살이되는 말이네요…

    처음에 입학할때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도 생각해보게 하고,
    앞으로 어떻게 임해야 될지도… 나태해진 것은 아닌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편감들 때문에 대학원에 온 진짜 목적을 잊고 있는건 아닌지…
    많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래서 조금씩 다시 행동하려 합니다 ^^…

    고맙습니다.

  2. 원래 쓰시던 블로그 글만 봤었는데 우연히 여기서 글 쓰시는걸 보고 반가웠습니다. 더 글 안쓰시나 궁금했었거든요… 다양한 사례들이 제 모습을 반추해 보는데 좋은 기준들이 되네요.
    지금까지는 제 어드바이저랑 두개의 페이퍼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제가 리서치 미팅가면 “이게 재밌니?” 라고 물으시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늘 웃어주시던 이유가 있었던거 같네요. 교수님이 시킨걸 해보고 결과가 이상하면 다른걸 또 해보고, 궁금한게 있으면 그것도 해서 가져갔습니다. 일단 우리가 전에 계획했던 결과 A를 알리고, 혼자 궁금했던 B 도 해봤는데 이건 결과가 이랬다고 보여드리면, 그것도 흥미롭다며 같이 의논하기도 했거든요. 교수님이 C로 해보는건 어떻겠냐고 물으시면 그것도 가지고 오지는 않았지만 혼자 해봤는데 결과가 어땠다고 이야기 해 드리고요.
    초반 3년동안에는 (석사+박사 1년차) 꼬박꼬박 리서치 미팅에만 찾아갔었는데, 학년차 올라가니 그제서야 교수님께 친근감도 생기고 편안해져서 무작정 찾아가서 궁금한걸 질문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교수님이 갑작스런 제 방문을 싫어하시지는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참 걸린거 같아요.

    저는 수업에서 딱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게 쉽지 않은 학생이었어요. 시험에 정말 소질이 없더라고요. 시험 질문에 대한 제 해석과 질문자의 의도가 다를때가 있(많)고, 그러다보니 제가 생각하는 답과 그 문제가 정한 답이 다르더라고요. ㅠㅠ 왜 제 답이 틀렸는가를 물으러 갔다가 늘 깨닫고 나오는건, 질문의 의도는 다른거였다는게 주였거든요 (그때마다 나는 정말 멍청한가보다 많이 생각했었는데….). 근데 연구는 리서치 퀘스천도 의논하면서 만들어 가고, 정해진 답이 없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물론 처음 만들어 제시하는 답은 성글수밖에 없고 부족할 수 밖에 없지만, “틀린”게 아니라 더 좋은, 맞는, 합당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보람있고 좋더라고요.

    한동안 두번째 페이퍼가 생각보다 진행이 잘 안되서 마음에 “난 연구도 자질이 없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슬럼프처럼 시간이 흘렀는데.. 이 글을 보니까, 아직도 갈길이 멀었고 이렇게 슬럼프에 늘어져있을 여유따위 없다는 생각이 반짝 드네요. 제가 뭘 재밌어 했는지, 원하는게 뭔지, 다시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 감사합니다^^ 많이 올려주세요!

    1.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구의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고 계신 것 같아 좋습니다. 좋은 연구 많이 하시고, 종종 또 소식 남겨주세요.

  3. 안녕하세요~ 저도 오리지널 블로그때 부터 포스트를 즐겨 읽던 현직 Ph.D. student 입니다.

    박사과정 입학하기 전이었던 2013년에 처음 박사과정생들에게 주는 조언을 읽었고, 2014년에 North Carolina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고나서 복습을 했습니다. 학부생때는 잘 이해는 못했던 부분들이 지금은 구구절절 제 마음에 와 닿고 있습니다. 피가되고 살이 되는 글을 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통해 교수님께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질문 드리고 싶은 부분은 “지도교수가 (지식적으로) 아는 부분을 넘어서는 연구를 하고 싶을 때 학생 입장에서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가?” 입니다.

    제가 있는 전공의 경우에는 학생 한 명 당 지도교수가 2명 배정 되는데요, 제 지도교수님들은 학과의 펀딩을 따오는 분들이라 정말 바쁘고ㅠㅠ 워크홀릭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이 그럴 것이라고도 생각 하지만) 저 역시 연구의 큰 테두리는 지도교수님들이 잡아 줬지만, 많은 부분에서 저 스스로 배우고 수업들으면서 끙끙 거렸고, 고생 고생하면서 2년의 시간을 마쳤습니다 (세부 연구 분야는 carbon material 쪽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서울대 학부를 마치고 미국으로 나오면서, 학부 때 전공 이외에 도움이 될만한 과목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온 이후로는 실험 및 제게 도움이 될만한 심화된 내용을 다루는 타과 전공을 열심히 찾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제외한 저희과 대학생들은 biomass와 관련된 chemistry, polymer science, energy 관련 실험을 하기에 core course+몇 개의 화학과나 화공과 수업을 듣는 정도인데, 저는 제 관심이 가는대로 양자화학, 전기화학, 분광학, 포토닉스, 일렉트로닉스, 옵틱스 등 당장의 실험과는 거리가 있는 기초과학 수업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미국 대학원에서 PI들은 학생들이 연구 대신에 많은 수업을 듣는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연구와 글쓰기가 병행 되는 수준에서는 공부의 끈을 놓치지 않고 싶다는게 제 생각이기도 하고요 (+화학과 재료공학을 부전공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 번째 학기 까지는 지도교수님들이 저에대해 많이 걱정했습니다. 제가 실험 보다는 공부 쪽에 더 마음이 가 있는거 같아 보인다고 말이죠. 그래도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실험의 끈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데이터도 상당히 모았는데, 다만 초짜 박사과정 학생 때라 지도교수와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정리해서 토의 하는게 상당히 미숙했습니다. 이에 지도교수님들이 오해했던 부분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여름 방학 동안 제 첫 번째 논문 드래프트를 작성해서 지도 교수님들께 드렸습니다. 그래도 외부로 나가서 끙끙 거리며 배웠던 것을 우리 분야에 도입할 수 있었기에, 비교적 참신한 논문을 쓸 수 있었습니다. 지도교수님들도 제 첫 번째 드래프트를 정말 좋아하셨고, 이제서야 제가 수업 많이 듣고 공부하는 거에 대해 안심하시는 눈치였습니다. 지도 교수님 중 한 분은 남은 박사기간 동안에도 저를 Free-roll 로 남겨두어 제가 리딩하는 대로 연구를 하도록 돕겠다고 하셨고요.

    서론이 길었는데, 이제 권창현 교수님께 PI의 입장에서 어떤 의견을 가지시는지 한 가지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모아놓은 데이터 중에서 제 전공을 많이 벗어난, 외도? 아닌 외도를 해보고 싶은 논문 주제가 있습니다. 이 쪽으로 논문을 쓰고 싶은데, 지도교수님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지 막막 하기에 조언을 구하고자 질문 드립니다.
    박사 입학 전 부터 개인적으로 물질의 양자 구조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제가 현재 사용하는 analytical instruments로 부터 제 샘플의 양자 구조 관련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주변에 이와 관련된 전문가가 없다는 겁니다. 레퍼런스 삼을 만한 논문은 몇 편 있는 상태이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텍스트북에 있는 간단한 구조 모델 (수학공식)을 도입하고 레퍼런스를 따라 복잡하지 않은 분석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다만 지도교수님들은 이 분야가 수학과 물리 쪽이고, 도와줄 전문가가 부재한 상황이다 보니 “흥미롭긴” 하지만 논문 구성을 짜는데 상당히 난색을 표하십니다.
    저도 상황은 십 분 이해하는데, 양자물리, 양자화학 관점에서 논문 한 편 써보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로망이다 보니 박사를 마무리 짓는 순간 까지라도 시도는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일렉트로닉스 수업 하시는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합니다).

    만약에 권창현 교수님 본인께서 이런 상황에 처하신다면 학생을 어떻게 지도 하시겠습니까? 원래의 연구 분야보다 지나치게 멀리 나간 부분이기에 제가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주저리 주저리 잡담이 길었는데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릴게요! 블로그에 자주 찾아 오겠습니다~

    1.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물어보신 점에 대해 답을 드리자면, 개인의 선택입니다 🙂 제가 뭐라고 뭐라고 조언드릴만한 사항은 아닐 것 같네요. 여러가지 조언 — 모두 일리 있는 — 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 정도…

      1. 일단 한 번 해보시는건 어떨까요? 그래서 작은 근거, 이렇게 하면 어떤 연구가 가능할지를 보여주는 작은 결과물을 한 번 만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과정에서 수도 없는 어려움이 있을겁니다. Troy님께서도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구요. 수업도 많이 들으셨고, 이제 박사과정 3년차라고 하시니 주변에 전문가가 없다는 이유로 연구를 하지 못한다는 건 좋은 핑계거리는 아닙니다. 조금 해보고 나서 정말로 거기에 매진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지도교수님들을 설득시키거나, 지도교수를 바꾸거나 하는 방법이 있겠죠.

      2. 하고 싶은 연구를 꼭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지도교수님들께서 잘 알고 계시는 분야의 연구를 계속 해 나가면서 ‘연구’라는 것 자체에 조금 더 익숙해지고, 또 계속해서 문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연구는 졸업 후에도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죠. 크게 연구 방향을 바꾸는 것보다는 지도교수님이 익숙한 분야 내에서 Troy님이 외부에서 익혀온 기술과 지식을 조금씩 접목시켜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훌륭한 연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관련 전공이 전혀 아니라 세부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텍스트북에 있는 간단한 구조 모델 (수학공식)을 도입하고 레퍼런스를 따라 복잡하지 않은 분석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 정도면 ‘흥미로운’ 연구가 가능한가요? 지도교수님들의 ‘흥미롭긴 하나’ 라는 말씀은 실제로는 ‘흥미롭지 않다’라는 말씀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런 문제는 학생이 관심있어하는 분야과 그 실제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정을 하고 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PI의 입장에서는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학생을 서포트하고 있는 펀딩 소스와도 관련이 많을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에서 학생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고, 그 일을 그 학생이 해줘야만 하니까요.

      학생이 너무 멀리 벗어난 연구 주제를 하고자 할 때,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해서 해보기를 격려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은 근거’를 찾아보길 권하겠죠. 제가 관심이 없는 분야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생각이긴 하나, 지금은 이 연구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Troy님의 지도교수님들께서 같은 생각으로 ‘흥미롭다’라는 표현을 쓰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튼 Troy님께서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는 답이 없습니다. 🙂

      1. 아 알겠습니다 교수님. 교수님들이 하신 말에서도 생각해볼 부분들이 있었군요.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남은 박사기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4. 석사마치고 이번학기에 바로 박사를 시작하게된 학생입니다. 저는 인문교육계열 전공이고요. 박사과정에 대한 선생님 여러가지의 글을 읽으면서 항상 초심을 잃지 말고 연구에 대한 즐거움을 잊지 말자 다짐하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 넘치던 패기와 열정은 어디로 갔는지 한동안 박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결혼 앞둔 신부마냥 잠시 phD blue에 빠져 있었거든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5.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사례를 보면서 앞으로 많이 깨달았네요.
    다만, 제가 조금 궁금해 하는 부분은 바로 “다음 미팅 까지 기다리지 않고 교수님께 연락을 취하는 학생 = 훌륭한 학생” 이런식으로 글을 쓰셨는데 조금 의아하네요.
    왜냐하면 미팅이 일주일에 한번이라면 그 시간동안 충분히 혼자서 생각도 해보고 자기주도적으로 알아가봐야 하지 않나요? 조금만 막히고 하면 “아, 교수님 찾아가야지! 이메일 보내야지!” 이거는 결국 본인이 충분히 생각해보고 스스로 깨닫기 전에 너무 교수에게 의존하는건 아닌가 해요. 그리고 꼭 교수님에게만 가야 할까요? 포닥분들도 계시고 다른 박사과정 분들도 계십니다. 꼭 지도교수님을 안 거쳐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하나씩 깨달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학생이 “go get it” 같이 적극적인 마인드는 정말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금 하다가 막히면 바로 찾아가고 궁금증이 생긴다고 메일 보내고 바로 또 연락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해답을 찾아가는게 맞는게 아닌가 생각해요.

    1.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바가 맞습니다.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고 무조건 교수에게 달려가서 답을 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답을 찾기 위해서 치열하게 혼자서 고민해볼 때와, 교수와 의논 혹은 교수의 의견이 필요 할 때를 적절히 잘 구분해야 하겠지요. 제가 겪은 ‘다음 미팅 시간 때 까지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고 기다리는 학생’의 경우는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기다리는 경우였습니다.

      교수에게 얼마나 자주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으냐하는 것은 어쩌면 교수와 학생의 취향, 일하는 방식, 또는 지도하는 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박사과정 중에는 학생이 얼마나 효과적이며 지속적으로 교수를 귀찮게 하느냐 하는 것이 성패를 가른다는 것입니다. (너무 자주 귀찮게하다가 교수가 싫어하면 관계가 안 좋아질 수 있으니 이것은 지속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교수가 말한 것만 해보고 다음 시간 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학생은 절대로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없습니다.

  6. 저도 중간에 지도교수님을 바꿨습니다. 그 과정 속에 성장한 것도 있고, 새로 만난 지도교수님이 언제든 찾아 와서 무엇이든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셨습니다. 좋은 대화의 기억들이 하나 둘씩 제 안에 쌓이자 더 자주 찾아가게 되고 결국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교수님 입장에서 경험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1. 그리고 하나 덧붙이면, 새 지도교수님을 선택할 때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인가?’ 를 많이 생각하고 선택한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다루는 연구 주제 자체에 재미를 느끼다보니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고요.

    2. 연구를 즐기고 계신다니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연구 주제와 좋은 (혹은 잘 맞는) 지도교수님을 만나게 되셨으니 즐거운 연구만 남았네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