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가, 아닌가?

지금 대학원에 와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연구인가, 아닌가?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연구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은 연구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하는지 알아보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If we know what it was we were doing, it would not be called research, would it?”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우리말 부분은 내가 적당히 번역한 것이다. 여러가지로 음미할 수 있는 말이지만, 우선 ‘모른다’에 주목해보자.

다음 어학사전은 ‘연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어떤 일이나 대상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이치나 진리를 밝힘’. 구글과 메리엄-웹스터사전에서는 ‘research’를 각각 ‘the systematic investigation into and study of materials and sources in order to establish facts and reach new conclusions’과 ‘careful study that is done to find and report new knowledge about something’이라고 정의한다. 뭔가 조심스럽고 깊이있게 접근해서 결국 새로운 이치나 진리를 얻는다.

아인슈타인의 말과 한 번 조합해보면, 연구란 뭘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 열심히 하다가,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인 것 같다.

이 정의는 말은 잘 되지만, 조금 뜬구름을 잡는 듯 한 느낌이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연구가 아닌지 알아보자. 좀 더 정확히는 무엇이 연구의 ‘목표’인지 아닌지 알아보자. 내가 연구 제안서를 쓸 때 아주 큰 도움을 받은 글이 있다. 미국 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의 공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신 George Hazelrigg의 ‘Honing Your Proposal Writing Skills’라는 글이다. 구글에서 ‘NSF CAREER Proposal Writing Tips‘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경전처럼 생각하며 종종 다시 읽어보는 문서이다.

이 문서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There are many words that, to reviewers, mean “not research.” These include “develop,” “design,” “optimize,” “control,” “manage,” and so on. If your statement of your research objective includes one of these words, for example,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develop….,” you have just told the reviewers that your objective is not research, and your rating will be lower.

무엇인가를 개발(develop), 설계(design), 최적화(optimize), 제어(control), 관리/조종(manage) 등을 하는 것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거다. 재미있다. 공학 분야에서는 저런 것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하는 논문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고, 심지어 연구 제안서에서도 저런 것이 목표라고 하는 연구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그것이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한다. 순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국과학재단에서 수십년간 일해오신 분께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이 분이 더 재미있고 더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해주신다. 공학 연구의 목표를 기술하는 방법은 자신이 알기로는 단 4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1.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test the hypothesis H.” (가설 검정)
2.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measure parameter P with accuracy A.” (측정)
3.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prove the conjecture C.” (추측 증명)
4.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apply method M from disciplinary area D to solve problem P in disciplinary area E.” (학제간 융합 연구)

사회과학과 공학이 어렴풋이 겹쳐지는 분야를 연구하는 내가 보기에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저 4가지 범주 이 외의 일반화된 연구 목표 기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법도 하다.

내 분야의 NSF 프로그램 담당자께서 해주신 조언이 있다. 어떤 연구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그 결과로, ‘지금은 우리 인류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비교적 명확히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NSF에서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처음의 사전적 정의와 일맥상통한다. 아인슈타인의 말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인슈타인 본인도 연구 제안서를 쓸 때 즈음 되서는 목표가 비교적 명확해졌을것이라 (내 마음대로) 추측해본다.

그럼 위에서 언급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무엇일까? 이런 단어를 언급하는 연구 논문과 연구자들이 아주 많은데,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하니 그 실체가 궁금해진다. 내가 볼 때 이것들은 어떤 연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활동들이다. 언급한 활동들 자체가 연구는 아니지만, 저 활동을 하지 않고 연구를 할 수는 없다. 저런 행위들이 연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작업(task)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박사학위를 받았을 당시만 해도 나는 저런 행위들이 연구 그 자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Hazelrigg의 글을 읽었을 때는 많이 놀랐다.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는 ‘연구’는 지도교수님께서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일을 도우면서 연구에 필요한 여러가지 활동들, 즉 개발, 설계, 최적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구가 뭔지도 모르면서 연구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았던 걸 보면, 나만 그랬던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연구의 목표와 작업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연구에 필요한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었으니,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틀린 말은 아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자. 예를 들어 어떤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을 생각해 보자. Hazelrigg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연구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일 수는 없다.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은 분명 중요한 연구 행위이지만,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연구의 목표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만일 그 알고리즘이 동물 사진 중에서 고양이 사진을 골라내는 알고리즘이라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것이 목표이지, 알고리즘 개발이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차이는 명확하다.

심지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는 분들도 단지 고양이 사진 구분만이 연구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잘 인지하고 있을 거다. 고양이 사진, 개 사진을 넘어선 그 너머 어딘가에 ‘목적’이 향하고 있을 거다. 작업과 목표, 그리고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자.

작업(task): 일정한 목적과 계획 아래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일을 함
목표(objective): 활동을 통하여 이루거나 도달하려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목적(goal): 이루려고 하는 일이나 방향

작업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며, 목표는 그 작업이 이루려는 대상이며, 목적은 궁극적으로 내 연구의 목표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다.

연구에서 처음부터 목적과 목표가 명확한 경우는 잘 없다. 처음부터 목적과 목표가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라면 운이 좋다. 지도교수님이나 연구실의 다른 선배들이 이미 갈 길을 잘 닦아 두었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1단계 ‘문제를 쓴다’ 부분이 해결 되었기 때문에, 이제 다양한 연구활동 및 작업을 하며 ‘진짜 열심히 생각’하면 되겠다.

자신의 연구 방향을 잡고 싶은 학생, 혹은 지도교수님이 하라고 시킨 이 연구의 방향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은 학생은, ‘연구 주제에 대해 삼단계로 말해보기’ 방식을 이용하면 좋겠다. ‘A Manual for Writers of Research Papers, Theses, and Dissertations‘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음의 예를 보자.

(당신은 무엇에 대해 공부하고 있나요?)
1. 저는 X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그 주제를 공부하고 있지요?)
2. 왜냐하면, 저는 왜 Y인지 알고 싶거든요.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3. 그러면, 제가 다른 사람들이 왜 Z인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거든요.

1단계는 연구에 필요한 활동 혹은 작업(task)이다. 개발, 설계, 최적화 같은 것들 말이다. 2단계는 연구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지식이며 연구의 목표(objective)이다. 3단계는 연구의 목표를 이룸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목적(goal)이며 연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대학원생일 때는 주로 1단계에 모든 시간을 쓰고,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하지만, 2단계와 3단계, 그러니까 연구의 목표와 목적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보면서 연구를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에서 묻는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을지 모른다. 대신 내가 하는 연구활동과 내가 세운 연구의 목표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좋은 연구를 하는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학생 시절 그랬듯이, 논문의 다른 부분은 다 잘 쓸 수 있는데, 첫번째 서론(Introduction)부분을 잘 쓰지 못하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연구의 방향을 잘 파악하고 이해한다면 적어도 서론 부분은 조금 더 명확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음 후속연구에서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도 잘 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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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oughts on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가, 아닌가?”

  1. 정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전자공학분야 박사과정에 최근 진학하며 이런 고민들을 종종 했었는데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네요. 분야특성상 개발과 최적화가 주요 일과였는데,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단지 ‘업무’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글이네요.

  2. 그렇다면 보통 세미나나 학회에서 발표할 때 언급하는 ‘연구 목적’은 사실 ‘연구 목표’가 적절한 표현이 되겠네요? 제 연구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 대체로 목표가 더 어울리긴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목적과 목표를 구별 없이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3. 내가 생각하는 박사란 ?
    첫째 학교라는데에 오래 머문 사람.
    둘째 뭔가 남 보다 여유가 (경제적으로 ) 있는 사람.
    세째 아주 작은 부분을 정확히 아는 사람.
    ( ex,성냥갑안에 있는 성냥개비에서 끝에 붙은 검정황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 )
    네째 늦게 출발했는데, 남보다 앞서가는 삶을 살게 되는 사람.
    다섯째 늙으면서 못 배운 늙은이 그룹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사람.

  4. 안녕하세요. 갓 대학원 입학예정인 신입생입니다. 글들이 너~무 유용하고 궁금했던 부분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시니 대학원 생활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ㅎ 제가 글을 스크랩해서 블로그에 두고 보고싶은데, 스크랩부분이 없네요..ㅠ글복사해서 링크/출처남기면 괜찮을까요?^^

    1. 답글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느낀 것이 정답은 아니겠지요. 분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테구요. 본인만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5. 이 글을 제가 처음 본것이 2015년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만, 어째 2016년 11월로 되어 있네요.
    여튼 게재하시고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이 글을 봤던 것 같습니다만, 사실 저는 아직껏 이 내용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다른 분야, 특히 자연과학 분야 같으면 아마 저러한 프레이밍이 연구의 본질 또한 적절히 나타낼 것이라 보입니다만. 제가 속한 전산학(컴퓨터 사이언스) 분야, 그 중에서도 응용에 가까운 분야에서는 “여태가 가능하지 않았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의 제안=발명”이 사실상 연구의 핵심인듯 합니다. 연구실 내에서 논의하는 내용의 대다수도, 리뷰어들의 지적 중 가장 큰 것도, 덧붙여 직설적인 방문객들이 크게 하는 질문도 결국은 “그게 새로운 거냐”가 핵심같이 느껴집니다. (물론 제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 모르지요)

    이러한 연구목표를 억지로 4가지 형태 중 한 프레임에 넣자면 거의가 “가설검정”의 형태로 구겨넣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써 놓은 것을 정작 읽어보자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지고 낯간지러운 느낌에, 소위 말하는 “개량연구”, 따분한 “small delta incremental research”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할까요.

    일단 위에 말씀하신 고양이 사진 구별의 예를 억지로 구겨 넣자면 다음과 같이 될 듯 한데요;
    본 연구의 목표는 “고양이 사진을 포함한 데이터셋 D1, … Dn 에 대해 제안하는 새로운 알고리즘 A1 이 기존의 알고리즘 A2, … Ak 에 비하여 고양이를 골라내는 데 있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우월한 성능차이를 보일 것이다.” 는 가설을 검정하는 것이다.

    미국쪽 사정도 모르고, 저의 연구경험이 일천하여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제안서에 이런식으로 쓰는 사람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저런 내용을 리뷰한다면 일단 의아할 정도로 생소하게 보이네요. 그리고 더 크게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프레이밍에 아예 기존의 형태로 가능하지 않았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발명) 내용을 서술하자니 더욱 거북해진다는 점입니다. 저기서 말하는 ‘추측’은 수학같은데 쓰이는 추측으로 보여서, 이런 경우에 구겨넣기에 적절하게 보이지도 않고요…

    미국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쪽에서 NSF 펀딩 받는 분들은 대체 어떤식으로 쓰는 걸까요…

    1. 안녕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이 글을 원래 제 블로그에 올렸다가 다시 정리해서 올린 겁니다. http://thoughts.chkwon.net/what-is-research/ 기억하신대로 2015년이 맞습니다.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도 아직 연구 경험이 부족해서 모든 분야를 다 알지는 못 합니다. 그리고 저분의 말씀이 다 맞다는 법도 없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요즘은 새로운 기술 변화로 인해서, 특히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어떤 연구가 말이 되는지 말이 안 되는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딥러닝 방식이 설명이 안되서 어떤 연구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왜 설명을 꼭 해야 하느냐 등의 논쟁이 오간다고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연구 프로포잘을 준비하면서 많이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제 연구의 목적을 위에 나온 네가지 방식으로 꼭 기술할 수 없을 때가 많더라구요. 제가 제 연구의 목적을 분명히 판단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말씀 주신 “여태가 가능하지 않았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의 제안”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려볼게요. 기존의 방식들은 가능하지 않았고, 새로운 방식은 가능하다고 하면, 불가능과 가능을 구분하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고양이 사진을 골라내는 확률이 80%이하이면 불가능이고 이상이면 가능이다라고 하면, 결국 이 연구의 목표는 고양이 사진을 골라내는 확률을 8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연구의 목표는 말씀하신 방식으로 기술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목표 아래, 새로운 방식을 개발했고, 그 방식이 기존과 많이 달라서 틀을 깨는 듯한 신선함이 있으면 더 어필 될 수 있겠죠. 같은 목표라도 기존 방식을 열심히 개량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서 그 목표을 이룰 수도 있겠지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한 것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결국 목표는 고양이 사진 골라내는 확률을 높이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어쩌면 고양이 사진 골라내는 확률을 높이고자 하는 것은 연구 동기의 일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확률을 높이려고 했고, 열심히 노력하여 새로운 방식을 개발했지만, 결국 뒤에 남는 ‘과학적 가치’ 혹은 인류의 지식에 공헌한 바는 A방식이 B방식보다 통계적으로 더 잘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새로운 것이냐”를 물어보는 것은 제가 판단하기에는 ‘본 연구의 특징’을 빠르고 명료하게 알아내기 위함입니다. “새로운 것이냐”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연구가 다른 사람들의 연구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야 하고, 내 방법이 다른 사람의 연구에 비해 어떤 점이 더 나은 점을 설명해야 하며, 왜 더 나은지도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면 ‘연구의 특징과 가치’를 가장 빨리 알아낼 수 있겠습니다. 리뷰어는 논문을 가장 빨리 심사할 수 있고 청중은 가장 빨리 배울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새로운 것이냐”라는 질문은 보통 이런 역할을 했습니다.

      저도 연구 제안서에 목표와 목적을 어떤 방식으로 기술하는 것이 가장 나은지 아직 잘 판단이 안 됩니다. 하지만 일단 논문이 억셉되고 안 되고, 제안서가 선정되고 안 되고 따위의 “사소한” 문제를 제쳐두고 생각해봅시다. (전혀 안 사소하지요 ^^;; ㅠㅠ) 아무리 화려한 말로 포장이 가능 연구 목적과 목표도 결국은 듣기에 따분해 보이는 방식으로 기술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화려해 보이는 연구 목적은 잘 뜯어보고 잘 살펴보면 연구 목적이 조금 불명확할 때가 많았습니다. 좋은 연구 목적은 연구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한다고들 합니다. ‘새로나온 요상한 기술로 암 치료를 하겠습니다’라는 목적은 멋지게 들리지만, 과학적인 기준에서는 모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암치료가 목적인 연구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신 ‘새로나온 요상한 기술이 기존 방식보다 특정 암 세포를 죽이는데 기존 기술보다 통계적으로 10%이상 더 훌륭한 점을 검정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좀 재미없어 보여도 좀 더 명확합니다.

      그리고 연구 제안서를 쓰는 것과 연구 논문을 쓰는 것은 ‘화장실 가기 전’과 ‘화장실 다녀온 후’ 만큼 다릅니다. 연구 목표를 기술하는 것과 연구 결과를 기술하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응용 연구와 기초 연구도 다릅니다. NSF에서는 기초 연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위의 네가지 목표 기술 방식 뿐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명확한 과학적 사실이 다 밝혀지기 전에 아이디어를 빠르게 교류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고, 어떤 분야에서는 과학적 사실을 엄밀히하여 모든 것이 명확할 때 논문을 쓰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논문을 쓸 때는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므로 대체로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알고 있는 경우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연구 제안서 쓸 때 마다 항상 헷갈리고 고민하고 있는데,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1. 덜 여문 학생의 댓글에도 대답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결국은 듣기에 따분해 보이는 방식으로 기술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인생에서 재밌는 부분’만’ 하고 살 수 없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종의 삶의 진리가 아닌가 합니다.

        다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점 또한 남아 있습니다. 저 4가지 형태의 서술은 이제부터 무엇인가를 해 나아갈 시점이 아니라, 해온 것이 이미 있고 그것들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나 적절한 서술들이 아닐지라는 의문입니다.

        다시말해, 에 대해 말씀 하셨는데, 이것에 대해 가설을 검정하건, 성능을 측정하건 하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기술이 온전히 내 손에 있을때 성립하는 이야기가 아닐지요? 잘은 몰라도, 대개 연구 시작할 시점에서는 이 요상한 기술 또한 제 손에 없어서 만들어 가야하는 상황이 많을 겁니다 (적어도 전산학 쪽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기술을 만드는 부분은 목표도 아니고, 심지어 연구조차 아니다는 실무자 입장에서의 괴리감이 이러한 의문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6. 덜 여문 학생의 댓글에도 대답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한, 괄호를 이상하게 썼더니 일부가 표시가 안되어 다시 올리게 되어서 양해부탁드립니다.

    > “결국은 듣기에 따분해 보이는 방식으로 기술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인생에서 재밌는 부분’만’ 하고 살 수 없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종의 삶의 진리가 아닌가 합니다.

    다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점 또한 남아 있습니다. 저 4가지 형태의 서술은 이제부터 무엇인가를 해 나아갈 시점이 아니라, 해온 것이 이미 있고 그것들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나 적절한 서술들이 아닐지라는 의문입니다.

    다시말해, “암을 치료하는 새로나온 요상한 기술”에 대해 말씀 하셨는데, 이것에 대해 가설을 검정하건, 성능을 측정하건 하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기술이 온전히 내 손에 있을때 성립하는 이야기가 아닐지요? 잘은 몰라도, 대개 연구 시작할 시점에서는 이 요상한 기술 또한 제 손에 없어서 만들어 가야하는 상황이 많을 겁니다 (적어도 전산학 쪽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기술을 만드는 부분은 목표도 아니고, 심지어 연구조차 아니다는 실무자 입장에서의 괴리감이 이러한 의문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1.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내 손에 넣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적어도 인류의 지식 진보를 위해 필요한 연구는 아니겠지요. 전산학에서는 아마 기술 선도 기업들과 경쟁해야하는 부분이 있어서, ‘존재하지만 공개되지 않은’ 기술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산업계와 학계가 경쟁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 같네요.

      기술 개발 자체가 연구가 전혀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위의 글에서 말한 1단계 혹은 작업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작업이 없으면 연구도 없습니다. 제 글에서 몇 부분 발췌합니다.

      그럼 위에서 언급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무엇일까? 이런 단어를 언급하는 연구 논문과 연구자들이 아주 많은데,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하니 그 실체가 궁금해진다. 내가 볼 때 이것들은 어떤 연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활동들이다. 언급한 활동들 자체가 연구는 아니지만, 저 활동을 하지 않고 연구를 할 수는 없다. 저런 행위들이 연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작업(task)일 수 있다는 말이다.

      1단계는 연구에 필요한 활동 혹은 작업(task)이다. 개발, 설계, 최적화 같은 것들 말이다. 2단계는 연구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지식이며 연구의 목표(objective)이다. 3단계는 연구의 목표를 이룸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목적(goal)이며 연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대학원생일 때는 주로 1단계에 모든 시간을 쓰고,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하지만, 2단계와 3단계, 그러니까 연구의 목표와 목적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보면서 연구를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에서 묻는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을지 모른다. 대신 내가 하는 연구활동과 내가 세운 연구의 목표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좋은 연구를 하는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학생 시절 그랬듯이, 논문의 다른 부분은 다 잘 쓸 수 있는데, 첫번째 서론(Introduction)부분을 잘 쓰지 못하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연구의 방향을 잘 파악하고 이해한다면 적어도 서론 부분은 조금 더 명확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음 후속연구에서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도 잘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글 “연구와 장비병“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기교가 끝나는 순간 예술이 시작된다.”

      클래식 음악 예술계의 누군가가 한 말인 것 같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대체로 기교를 익히고 익혀서 완전히 능숙하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예술을 표현할 준비가 되었다라고 이해한다. 기교를 완전히 마스터 하지 않고서는 예술가가 될 준비도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연구에도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연구 방법을 확실히 마스터 해야 한다.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필요한 기초 수업들에 나오는 내용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진다.

      기교를 마스터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한 위의 말은,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기교 자체가 예술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을 위해서는 기교가 필요하지만, 기교가 예술의 본질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물음에 답을 하고자 하는 지이지, 어떤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썼다는 사실이 아니다. 최신 기술을 사용해서 연구를 하는 경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이지 최신 기술을 사용해 봤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기술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기술이 연구의 본질이 아님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요상한 암 치료 기술”을 주제로 연구 제안서를 쓴다면 아마 대충 다음과 같은 구조로 쓸 수 있겠죠.

      1. 새로나온 요상한 기술가 암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2. 새로나온 요상한 기술이 암 치료에 적절히 적용될 수 있도록 기술을 변형하고 필요에 따라 추가 기술을 개발하겠습니다.
      3. 요상한 기술이 다른 기존 기술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지 실험 환경 셋팅은 이렇게 저렇게 하고 분석은 이러이러하게 해서 1번에서 제시한 제 가설을 검정하겠습니다.

      2번 항목에서처럼 기술 개발 자체가 연구의 목표는 아니지만, 당연히 연구의 일부분입니다. 다만, 기술 개발 자체가 연구의 ‘목표’는 아니란 거지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이 그 기술이 다른 기술보다 더 뛰어남을 ‘증명’ 혹은 ‘검증’ 했다는 의미라면, 그건 3번의 내용을 포함하겠네요.

      연구, 특히 순수 연구는 ‘인류 지식의 진보’가 최종 목적입니다. 내가 기술 개발을 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그 기술에 대해 어떤 지식을 얻어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겠습니다. 최윤섭 박사님의 글 “박사 학위라는 것의 의미“를 보시면 관련 내용이 나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없습니다 🙂 같이 고민해보시지요.

  7. 최근에 과학 철학에 관심이 생겨서 과학 연구와 달리 공학 연구의 목표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있었는데, 정말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시간 내서 링크 걸어주신 텍스트는 무조건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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