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학도전 실패 이야기

지난 이야기  “회사냐, 대학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에선…

“결국 이 둘 사이의 선택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적성의 문제이다. 아니,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추구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니 회사 대신 대학원으로의 선택이 꼭 본인의 행복한 삶을 찾아줄 것이란 생각은 버리고 올바른 선택을 내리도록 하자.”

“사람마다 정답이 다르기에 제가 정답을 드릴 순 없겠지만,  저의 몇가지 선택 원칙들을 드려보면,”

– 엉덩이가 불편한 쪽으로 선택하라
– 환상을 깨고 선택하라
– 대안이 아닌 최선으로서의 선택을 내려라
–  ‘될놈될’의 교훈을 기억하라                         

유학가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꿈꾼다. 나 역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어떤 사람이든지 유학을 준비하게되면 늘 묻게되는 질문들이 있는 것 같다.

“성적은 얼마나 좋아야 해요?”
“영어성적은 얼마나 중요하나요?”
“지도교수님과 컨택은 어떻게 하죠?”

나도 이러한 질문들을 따라 수많은 글들을 찾아보고 검색해봤던 기억이 난다. 아마 대부분의 질문들과 정보들은 유학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고해커스 사이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엔 어디 토플장이 시험치기 좋은지 등 시시콜콜한 팁들부터 시작하여 본인의 성적과 학교합격여부를 포스팅하는 어드미션 포스팅, 장학금 정보, 각종 공부 팁 등 정말 다양한 자료가 올라와있다.

특히 어드미션 포스팅은 마치 나의 수능 성적과 배치표를 비교하던 고3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곳은 본인이 합격한 학교와 불합격한 학교, 그리고 자신의 성적들을 공개함으로써 대충의 학교별 입학 난이도(?)를 예측할 수 있게끔 하는데, 주로 “저도 드디어 이곳에 합격소식을 올리게 되네요ㅠ”로 시작하는 글들은 유학준비생들에겐 한번쯤 써보고픈 꿈같은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나의 스펙과 대비되는 학생들의 화려한 스펙을 보며 나는 좌절 또 좌절을 겪는 곳이 또 이 게시판이기도 했다.

나는 사실 보통 사람들이 거치는 ‘유학의 정석’에 있어 성공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유학 성공의 팁을 알려드린다는 건 주제넘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실패 이야기는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2012년 유학준비 첫 해에 8개의 대학에 지원하여 모두 불합격 했었다. 그리고 2013년 다시 6개의 대학에 지원했고, 그 중 네 곳에 합격하여 현재의 University of Waterloo에 올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대학들이 날 떨어뜨려줬던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빈 말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왜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이번 글과 다음 글을 통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더불어 나의 부끄러운 실패 스토리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나름 로봇계와 머신러닝계에서 허명이 있는 입장으로서 나의 하찮음을 공개하는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나 스스로도 허명을 좀 벗겨내고, 유학을 준비하는 많은 분들께도 용기를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사를 다니며 처음으로 시작했던 토플 공부. (2012. 4.)
회사를 다니며 처음으로 시작했던 토플 공부. (2012. 4.)

내 성적으로 유학을 갈 수 있을까?

나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석사 학위도 있었고 해회학회 논문도 있었으며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학부 / 대학원 학점   :   3.38  /  3.66
토플 / GRE   :   99   /  153(Verbal), 166(Math)

지금 적으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릴만큼의 부끄러운 성적이다. 각각에 대해 여러가지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냥 내 실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난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영어는 더더욱 아니다. 주위의 서울대 친구들이 발로 풀어도 토플 100~110은 나오기에 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만 내 부족한 실력은 한과목씩 번갈아가며 -10점을 받는 참사를 만들어냈고, 난 그냥 내 실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난 공부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그래도 관악의 물을 먹었는데…’라는 허세가 있었던 것 같다. 주변의 친구들이 다 좋은 학교를 가니 나도 이정도는 가야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마음…? 그래서인지 내가 유학준비를 하며 제일 자주 했던 일은 US News, QS Ranking 등에서 각종 대학랭킹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이 되는지는 자각하지 못한 채, 난 그저 탑 대학들의 연구실 쇼핑만 즐겼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행동이 고등학교 시절 대학 배치표만 바라보던 그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고등학생들에겐 ‘전공이 중요해요’라고 꼰대질을 하면서도, 난 여전히 대학랭킹이나 대학이름이 주는 뽀대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맛봤던 ‘서울대’라는 후광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난 웬만하면 남들이 다 아는 이름의 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래서 2012년 하버드, 카네기멜론, 조지아텍 등등 알만한 이름의 대학들 8곳에 지원했고, 모조리 떨어졌다.

마지막 학교에서 불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던 내가 처음으로 초라한 실패자의 모습을 보인다는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난 보기좋게 실패했고, 날 줄곧 도와주었던 요행은 이번만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년의 도전도 성공이 보장된 것이 아니었기에 그만큼 더 참담했고 불안했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처음으로 나의 실패를 친구들에게 고백해야했다.

2012년, 실패했던 나의 유학준비과정

2012년 당시 나는 석사 병역특례로 월화수목금금금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주말에도 늘 하루 이상은 일을 나가야했고 게다가 회사도 집에서 멀었던지라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면 밤 11시가 넘어야 집에오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특히 답답했던 회사의 조직문화는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들게 했고, 난 유학을 결심하였다.

“팀장님. 저 유학을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곳에선 유학을 준비하기 힘들 것 같아 회사를 옮기려고요.”

이 말을 들은 팀장은 그 날부터 매주 나를 불러내며 각종 회유와 협박(?)을 했다. 예를 들면 ‘너 이 바닥 얼마나 좁은지 아느냐…’와 같은… 좁아도 당신 밑으론 안갈거다 당시 회사는 신입사원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가던 시절이었고, 자기 팀의 인재가 퇴사를 하게되면 팀장이 인사 상으로도, 실무 상으로도 불이익을 받았기에 팀장은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다. 여러차례 면담 끝에 난 퇴직을 연기하는 대신 ‘학원가는 날 칼퇴권‘을 따냈다. 그렇게 4월에 처음으로 해커스 토플 주말반을 등록했고, 4,5,6월 토플반, 7,8월 GRE반을 다니면서 영어시험을 치뤘다.

성적은 아까 말씀드린 그대로다. 실력도 없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안좋은 영어점수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해에 유학을 준비하며 영어시험을 다시 보지 않았다. 그만큼 영어학원에 돈을 버리는게 낭비 같았고 (특히 GRE), 내가 갈 길은 연구로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난 그렇게 5개월을 공부하고 참 별로인 점수를 얻었다. 보통 토플은 105점 (상위권 110점),  GRE Verbal은 155점 (상위권은 160점)은 넘어야 알만한 대학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하는데, 내 성적은 그것에 턱없이 못미치는 영어성적이었다. 그리고 학점 역시 좋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허겁지겁 영어성적을 준비한 뒤 나는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나는 연구가 아닌 축구로 교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었고(;;;) 추천서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공부는 못해도 성격 좋은 애임’과 같은 추천서를 받았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우리 교수님이 워낙 솔직하신 분이시라…) 그렇게 하나는 지도교수님께, 다른 하나는 옆 연구실의 로봇공학 교수님께,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회사의 선임 분께 추천서를 받아 총 3개의 추천서를 제출했고, 그 세 추천서 중 그 어느 것도 인상적이지 않았을거라 확신한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아마 교수님께 추천서를 받는 단계부터 어려워하시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그저 철판을 깔고 교수님 방의 문을 두드리는 수 밖에… 처음엔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그 뒤에도 가끔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찾아뵈어야 한다. (나는 휴가 때 마다 찾아뵀다.) 이 정도 되면 대충 교수님들도 눈치를 챈다. ‘얘 추천서 필요하구나…’. 그래도 다짜고짜 추천서 제출 몇달 전에 ‘교수님 저 좀 추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단 나으니 유학을 생각 중이시라면 우선 교수님과의 불편한 벽부터 깨시길 바란다.

“그는 수학 천재입니다.” 존 내쉬와 같이 내가 이런 추천서를 받을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유학 때문에 고생하지도 않았을거다. #그럴일읎다

10월에 모든 영어성적표를 얻고, 11월부터 허겁지겁 SoP (State of Purpose, 일종의 학업계획서)를 작성, 학교 별로 원서를 작성하여 11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총 8개 학교에 원서를 접수하였다. 바쁜 회사일을 하면서 성적표 떼오랴, 은행 잔고증명하랴, 외국에 우편 보내랴… 참 만만찮은 일이었다. 각각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쁜지라 내 지원서는 ‘완벽’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고, 누가봐도 대충 만든 원서임이 보였을 것 같다.

난 그렇게 허겁지겁 영어성적, 추천서, SoP를 만들어 ‘이름이 맘에드는’ 학교 8곳에 원서를 제출했고 보기좋게 떨어졌다. 평범한 학점, 영어성적, 추천서, SoP 등 내가 봐도 뽑힐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난 그래도 내 연구경력에 기대를 걸었었다. 나는 석사 때 Robot Motion Planning 쪽으로 해외학회 논문들이 있었고, 회사에서도 실제 exoskeleton(착용로봇)을 개발하고 있어서 관련 경험들이 내 성적을 만회해 줄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었는데, 결국 내 기대는 기대일 뿐이었다.

고해커스에서 하라는 팁은 다 따라했던 것 같다. 교수와의 컨택이 중요하다기에 원서를 다 제출한 후 나는 내 연구를 정리한 슬라이드를 만들어 교수들에게 뿌리기도 했었고 (대부분 답장을 받지 못했긴 했었지만…), 그 랩의 아는 사람을 통해 내가 지원했다는 사실을 교수에게 알리는 등 나는 지원서 외적인 면에서도 발버둥을 쳤었다.

누나  :  “태웅아. 너 하버드에서 우편왔더라? 이거 뭐야?”
나      :  “봉투가 얇아 두꺼워?”
누나  :  “얇은데?”
나      :  “그럼 그냥 떨어진거야… 찢어버려…”

아직도 제일 싫어하는 영어문장은 “We regret to inform you…”로 시작하는 문장들이다. 하나하나 불합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희망은 점점 무너져갔고, 2013년 5월, 나는 모든 곳에서 최종 불합격 소식을 들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문장, We regret to inform you...
내가 제일 싫어하는 문장, We regret to inform you… (출처: PhD Comics)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실 문제가 아닌 점을 찾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내 지원서는 그 어느 것도 뛰어난 점이 없었다. 사실 유명대학의 교수들은 이미 알고있는 지원자들 중에서만 뽑아도 신입생 자리가 부족할 것이다. 같은 학부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온 학생, 자기와 친한 다른학교 교수가 추천한 학생, 처음 받아본 지원서지만 성적과 논문실적이 인상적인 학생 등등… 그런 학생만으로도 신입생 정원을 채울 수 있는데 굳이 내 지원서를 뽑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박사생을 선발한다는 것은 교수로서도 매우 신중해야하는 선택이다. 석사생이 본인이 1년 쯤 가르쳐야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유소년과 같다면, 박사생은 바로 자신을 대신에 연구성과를 내줄 제자이자 동료와도 같다. 따라서 교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그만큼 실력도 검증되어 있어야하고 믿을 수 있어야할텐데, 익명의 평범한 지원서는 그만큼 큰 믿음을 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박사는 최소 4년이다! 박사생 만큼이나 교수 역시도 악몽같은 학생과 4년을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교수가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넌 그리고 가져오는 장학금도 없고 게다가 영어도 못하자나ㅠ

2013년 5월 마지막 불합격 소식을 들음과 동시에 나는 또다른 입시를 6개월 후에 앞두게 되었다. 그 사이 나는 과연 지원서의 어느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영어성적? 학업계획서? 그런다고 내가 붙을 수 있을까? 처음 맛본 실패에 나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다시 도전한다고 내가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영어시험을 다시 보지도 않았고, 학업계획서에 크게 매달리지도 않았다. 6개월 후 나는 총 여섯 곳에 지원했고 네 곳에서 합격을 받아 지금의 University of Waterloo로 오게되었다.

준비하는 6개월 동안 내가 고민했던건 영어성적이나 학업계획서와 같은 합격 기술이 아니었다. 그동안 고민했던건 나 자신에 대한 탐구였다.

나는 과연 무얼 연구하고 싶은 사람일까…?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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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나의 유학도전 실패 이야기”

  1. 글 재밌게 읽고 갑니다. 뭔가 웹툰을 보는 느낌이네요.
    스스로에 대한 인정하는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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