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가고 싶어요

태웅의 이야기

대학원에 가려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은 ‘이제야 내가 하고싶은 전공을 찾았다’며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제가 가려는 분야 쪽으론 아는 것도 거의 없고 논문 실적 등은 당연히 없는데, 어떻게하면 전공을 바꿔 그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을까요?’

이쯤되면 당신은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교수는 자신의 전공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석사로 뽑고 싶어하지 않는다. 반면 본인은 다른 전공에 속해 있었기에 가려고 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교수님, 경력이 없는 나, 과연 나는 새로운 전공에 도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새로운 전공에 도전하는게 과연 맞는 선택일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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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근데 전공을 왜 바꾸려고 하시는데요?

전공을 바꾸려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음의 두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1) 지금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가려고 하는 전공이 좋아보인다.

먼저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본인의 몇년의 시간을 재투자해야하는 매우 비싼 선택이라는 점을 유념하자. 따라서 그 비용이 큰 만큼 전공을 바꾼다는 선택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혀 상관없는 전공으로 변신을 꿈꿀 땐 말이다.

(1) 나는 왜 지금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마 ‘애초에 선택이 잘못됐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고3 때 진로탐색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했고, 점수에 따라 학교를 맞춰가다보니 지금의 전공에 오게되었다는, 그런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스토리.

하지만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전공이 나중에 다시 꼭 만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점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데, 여러분의 전공은 적어도 개똥보다는 더욱 자주, 그것도 더욱 심각하게 그 필요와 함께 미래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전공을 떠날 결심을 하셨다 하더라도 절대 현재의 전공을 헛것으로 만들지는 말자. 만약 지금의 전공을 헛것으로 만들었다가 두번째 전공마저 헛것이 되어버린다면 그땐 정말 멘붕에 빠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캘리그래피로 뭔가 쓸모 있는 것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당시의 경험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캘리그래피 기술을 적극 활용했으니 매킨토시는 그 기술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셈이죠. 만약 그 때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이처럼 다양하고 독특한 서체(font)를 개발해 내지 못했을 겁니다.” –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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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리드대학의 캘리그래피 수업

우리의 인생은 생각지도 못했던 A와 B가 만나고 이를 예상치 못했던 C가 도와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A,B,C 모두를 내 것으로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버리려고 하는 자신의 전공이 바로 그 A,B,C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니 현재의 전공을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거나 불성실한 태도로 낭비해 버리지 말고, 잘 갈무리 하셔서 미래의 무기로 가지고 있으셨으면 좋겠다. 당신의 지금 그 전공이 미래 스티브잡스의 ‘캘리그래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99.999%로 당신은 스티브 잡스가 되지 못할 것이다ㅠㅠ

(2) 나는 왜 옮기려는 전공이 좋아보이는가?

여기선 다음 두가지의 바이어스(bias, 편향)에 대해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게 내 적성처럼 느껴진다‘라는 바이어스와 ‘이 분야가 유망하다‘라는 바이어스.

먼저, 가려는 전공이 내 적성처럼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현재 내 상태가 매우 불만스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새로운 전공에 돌입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즐겁진 않을 수도 있다. 어떠한 취미도 본업이 되면 스트레스가 되고만다고 했던가. 곁다리로 introduction 강좌들을 들을 땐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던 새로운 전공도, 막상 전문적으로 파고들다보면 이곳 역시 노잼의 벽과 난이도의 벽, 그리고 극한 노가다 노력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이전 전공이든, 새로운 전공이든, 많은 인내로 배움의 과정을 견뎌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6개월만 배우면 프로그래머로 일할 수 있다.’, ‘1년 코스로 전공을 세탁한다.’ 등에 혹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단기코스도 오랜 기간의 학습결과를 따라잡을 순 없다. 그러니 허니문에 빠져 금사빠처럼 새 전공에  마음을 뺏기기보단, 새로운 전공에서도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존재할 것이란 예측 하에 전공 전환의 판단을 고심하셨으면 좋겠다.

노오오력을 하란말야 (출처)

그리고 ‘유망하다’라는 전망도 사실 ‘나에게 유망하다’ 혹은 ‘미래에도 유망하다’란 말은 절대 아니란 점을 명심하자. 비유를 하자면, 지금 유망하다는 전공을 쫓아가는 것은 주식을 살 때 오늘 뉴스에서 ‘이런 종목이 유망합니다’란 소식을 보고 묻지마 주식구매를 하여 10년 뒤 그 결과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다. 이미 현재 레드오션이고, 그 미래는 알 수 없으며, 사실 ‘유망하다’는 정보의 신뢰성마저 의심스럽다.

그러니 ‘유망하다’라는 전망은 철저히 무시하셔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전공을 선택한다면 아마도 10~15년 뒤에나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가 열릴텐데, 그 때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참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 땐 내가 페북 중독이 될 줄 몰랐지. 10년전인 2007년, 미국 US News에서 뽑은 최고 유망직종은 다음과 같았다.

내과의사 보조, 공인 간호사, 펀드레이저, 직업관리사, 교육심리학자, 시스템분석가

위의 리스트가 10년 뒤인 2017년 최고의 직종이라는 것에 과연 동의하는가? 예를 들어 ‘직업관리사’는 2000년대 꾸준히 유망직종이라며 리스트에 올랐던 직업인데, 10년이 지난 지금 ‘직업관리사’는 과연 모두의 예상만큼 유망직종이 되어있는가? 그렇다면 현재 유망직종이라 불리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나 ‘인공지능 전문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 10년 뒤에도 여전히 유망할까? 안돼 내 직업..ㅠㅠ

미국 유망 직종들의 연평균 수입
2007년 US News가 꼽은 미국 유망직종들 (출처)

이제껏 여러분들의 ‘새로운 전공 세탁에 대한 환상’을 깨려 여러 각도로 말씀드려봤다. 요약하자면,

  •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비싼 선택이기에 신중해야한다.
  • 현재의 전공도 미래의 무기가 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
  • 재밌을 것만 같던 새 전공 역시 고생길과 노오력이 함께할 것이다.
  • 새 전공이 미래에 유망하다는 썰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결국, 전공을 바꾸든 안바꾸든, 나를 성공으로 이끌 키워드는 “HOW”이지 “WHAT”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보통 ‘저 사람은 뭐를 했어도 잘했을거야’란 생각을 종종 갖게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훌륭한 사람에겐 주제를 가리지 않고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태도가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공 바꾸길 포기하란 얘기?

전혀 그런 말씀이 아니다. 사실 필자는 오히려 ‘현재의 전공에 얽매이지 말고 본인이 하고픈 길을 선택하세요’란 조언을 많이드리는 편인데, 미래에 지나고보면 현재까지 배웠던 지식이란게 참 보잘 것 없었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현재까지 뭘 배웠든 그것은 단지 “교양”일 뿐이기에 미래 선택에 영향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고등학교 때 단지 OO 과목을 조금더 잘했단 이유로 가고픈 학과 대신 현재의 학과를 선택해 후회했던 분들이라면 이 말 뜻을 잘 이해하실 것 같다. 내 선택은 내가 하고픈대로 하는 것이다. 컨설팅 결과처럼 하는게 아니라 말이다.

다만,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현재 전공을 실패로 규정해 버리기 앞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고, 새로운 곳에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자감을 경계하며, ‘유망하다’와 같은 근거없는 말들에 흔들리지 않는 선택을 하시라는 바람에서 드려본 말씀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으시다면 하시라. 방법에 있어 현실에 발을 딛고 위대한 꿈을 꾸는 것만이 여러분의 가랭이를 찢어줄 것이다 포부를 실현시켜 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여러분은 지금의 전공 말고도 두세개의 “전공”을 더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전공 전환 고민 역시 이러한 필요에 따라 느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 버리려는(?) 현재의 전공, 새롭게 시작하려는 미래의 전공 모두 내가 인생을 살면서 어차피 정복해야할 몇가지 전공 분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또하나의 전공을 배우는데 너무 주저하지 마라. 드디어 글에 모순 발견. 새 전공으로의 도전은 너무 주저하지도, 너무 성급하지도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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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기하면 편해’란 짤도 있지요…(…)

이 글을 제목을 보고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합격하는 팁’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많이들 실망하셨을 것 같다. (사실 이 블로그의 취지가 얕은 팁을 공유에 있진 않다.)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대학원 선발의 딜레마를 깰 방법은 사실 많지 않다. 학부 때 필요한 관련 “경력”을 쌓지 못했다면, MOOC(온라인 공개강좌)가 되었든, 개인적인 GitHub 프로젝트가 되었든, 연구실 인턴이 되었든, 회사 경력이 되었든, 다양한 방법으로 관련 연구 경력을 쌓고 기록을 남기는 방법 외엔 뚜렷한 왕도가 없다.

그래도 한가지 기억하셔야 할 점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준비해야할 것은 다양한 입시조건 충족이 아니라 실제 그 일을 하는 것이란 점이다. 예를 들어 딥러닝과 관련하여 대학원을 진학하고 싶다면 경쟁자들보다 더 높은 학점, 더 높은 영어점수, 더 훌륭한 인터뷰 스킬에 신경쓰기보다, 실제 딥러닝을 공부해보고 이에 대해 호기심을 키워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준비 방법이다. 시간을 투자해 실제 이론들을 공부해보고, 그것을 텐서플로우 등을 가지고 구현해보며, 이러한 공부 과정을 블로그든 GitHub든 기록을 통해 잘 보여줄 수 있다면, 해당분야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일 역시 크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여러분이 실제 그 일을 해본적이 없다는 점이다.

“전공을 바꾸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하시라. 다만 새 분야에 대해 그만큼의 열정을  보여주시라. 당신을 빛나게 하는 것은 당신의 조건이 아닌, 당신의 의지와 노력과 열정이다.”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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