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가 곧 내 삶이 되는 ‘굿 라이프’의 길

태웅의 이야기

최근 ‘굿 라이프’라는 행복에 관한 교양서를 읽었다. 연구에 바쁜 나날에 이 책을 꺼내든 이유는, 첫째, 좀더 행복해지고 싶어서였고, 둘째, 저자인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이 내가 너무나 존경하는 은사님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위의 권유로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으나 결국 본인이 하고싶은 심리학을 하기위해 서울대 심리학과로 재입학을 하셨던 최인철 교수님. 본인이 원하는 심리학 공부를 시작한 교수님은 이후 사회과학대 전체 수석 졸업에 이어 훌륭한 학문적 성과를 이어 가셨고, 결국 서울대 교수가 되어 지금까지도 연구와 강의, 인품까지 완벽한 나의 워너비 롤모델로 활약 중이시다.

(여담이지만, 원래 고등학교 시절 심리학과 진학을 고민했던 나는 1학년 때 심리학개론 첫 수업에서 이 얘기를 듣고 ‘교수님 저도 자퇴할래요’라며 상담을 자처했고, 교수님은 내게 ‘공대 내에서도 인공지능과 같은 학문으로 충분히 심리학을 연구할 수 있다’라며 치기어린 나를 돌려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현재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11년 만에 책을 출간한 교수님은 서문에서 “2007년에 쓴 ‘프레임’이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재해석한 ‘리메이크 노래’였다면 ‘굿 라이프’는 저자가 지난 10년간 한 연구에 기초한 ‘자작곡’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남의 연구결과로 강의를 하고있는 연구자들 대부분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 아닐까 싶다. 나도 남의 연구만 번지르르 늘어놓는 사람이 아닌, ‘자작곡’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리라…  대중서 역시도 누구처럼 강의로 밥 벌어먹기 위한 얕은 계략이 아닌, 10년의 연구로부터 얻은 지혜들을 세상과 나누고자 하는 학자적 행위로서 하고 계신데, 필자 역시도 그렇게 소통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본다.

서론이 좀 길었는데, 오늘은 저자가 책에서 제시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 중 대학원생의 행복에도 적용할 말들이 있는 것 같아 그 중 몇몇 구절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대학원 생활도 소중한 인생의 나날들인만큼 부디 행복 안에서 함께 해 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많은 좋은 것 중에 행복처럼 갈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계와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드물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너무 행복할까 봐’ 걱정한다. 너무 창의적이 될까 봐 걱정하지 않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대학원생들은 참 걱정이 많다. 할 일이 많으면 너무 많아서 걱정, 할 일 없이 놀고 있으면 ‘너무 나태한거 아닌가’라며 무능감과 죄책감에 몹시 불안해 한다. 내 삶과 남의 일의 구분이 확실한 직장생활과는 달리 대학원 생활은 그 경계가 모호하여 일상이 무너지기 쉽기에, 늘 할 일을 집에 가져오고,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이 구분 없는 생활을 하지만, 늘 해야할 만큼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정말로 낭비하고 있는 시간들은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 시간도, 너무 열심히 놀고 있는 시간도 아닌, 연구해야 하면서도 놀고싶고, 놀면서도 연구걱정을 하고 있는 그런 시간들이 아닌가 싶다. 늘 ‘바쁘고 시간없다’ 말하지만 정말로 부족한건 시간이 아닌 나의 성실함과 집중력이다. 지금 연구 안하고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죄책감 갖지 마시라. 밀도있게 행복했다면 그건 밀도있게 연구한 것만큼 가치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니까. 탓해야 할 것은 모니터 앞에서 걱정만 하다 날려버린 아까운 시간들이다.

[관련 글] 내게 뒤쳐질 수 있는 행복을 하락하라

 

행복감이 낮은 학생들이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보다 자신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했다.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은 그 일을 자신이 좋아하면, 잘하는지 여부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 일을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는 애초부터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고민은 짬뽕과 자장면 사이의 고민만큼이나 해묵은 고민거리이다. 정답은 없다. 아니, 모두에게 적용되는 공통된 정답은 없고, 개인마다 다른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어떤 optimal point들만이 존재한다. 대체적인 의견은, ‘좋아하는 쪽’을 선택한 이들이 행복감이 높고, 일에 대한 몰입도가 좋으며, 그것이 결국 ‘잘하는 쪽’만큼 혹은 그 이상의 성과물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성공한 재능러들의 꿈같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필자는 ‘결과에서의 승리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과정에서의 승리를 만끽하는 건 자기 하기 나름이다’ 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연구 주제에 대해서도 ‘내가 잘하는 것을 쫓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궁금해하고 하고싶은 것을 쫓고 있는 것인지’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책에서도 밝혔듯,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그 일을 좋아하면 잘하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반면,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그 일을 잘하는지에 과도하게 매달린다고 한다. 혹시 본인의 연구에 있어서도 즐거움은 잊고 잘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내가 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연구주제는 내가 즐기고 몰두 할 수 있는 주제인가? 만약 이제껏 잘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연구방향을 잡고 있었다면 약간은 본인이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자. 내 연구는 내 행복 속에서 꽃 피워야 하니까.

“정말 좋아하는 연구 하고 계신가요?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보다 얼마나 하고싶었던 주제인지가 더 중요한거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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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즐기는 자가 쓴 논문은 그 즐거움이 논문에서 묻어난다. 즐기자.

 

인간은 의미를 향한 의지가 충만한 존재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주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중략)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좋은 일이란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해답을 제공해주는 일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는 삶, 즉 소명이 이끄는 삶이 굿 라이프다.

창작물에선 늘 창작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고흐의 그림에선 고흐를 느낄 수 있고, 김동률의 노래에선 김동률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창작물에서 창작자의 향기를 느낄 수 없다면 그건 창작물이 아니라 공산품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연구자들의 연구에선 늘 그들이 믿고있는 철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이들에게 살아온 인생 얘기를 해보라고 하면 본인의 연구 스토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왜냐하면 그들의 연구가 곧 본인들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연구자들의 연구는 스토리가 있고, 자기다움이 느껴지며, 이러한 연속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논문을 위한 논문이 아닌 ‘의미를 쫓는 연구’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 하고있는 연구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번 자문해보자.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과 내 연구가 가는 길은 얼마나 닮아있는가? 나는 어떤 의미에서 이 연구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 연구를 하는 의미가 분명하고, 그래서 그 연구들이 ‘자기다움’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될 때, 비로소 나도 행복하고 결과물도 훌륭해지는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의미다.

 

품격 있는 사람은 비판적 사고와 냉소적 불신의 미묘한 차이를 아는 사람이다. 비판적 사고라는 이름으로 냉소 어린 독기를 뿜어내지 않는 사람이다. 건설적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기를 꺾는 사람이 아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스스로 똑똑하다고 느낄지는 몰라도 이런 반응이 습관이 되면 곤란하다. (중략) 자신의 전문 분야든 아니든 모든 문제에 대해서 늘 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우리가 경계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자신의 지적 한계를 인정하는 격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을 오래한 세월만큼 함께 늘어나는 것이 바로 ‘냉소’다. 대학원 생활에서 너무나 많은 헛짓거리들을 봐왔기 때문일까? 박사들은 마치 칭찬하면 자존감이라도 잃는 마냥 누가 무얼 발표하더라도 좀처럼 놀라지 않고, 오히려 불신과 반례를 찾아내기 바쁘다.

‘그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실제론 아마 잘 안될꺼야.’
‘이게 뭐야. 그냥 A에다가 B를 가져와서 조합한 것 뿐이잖아. 별거 아니네.’
‘저 사람 또 전문가랍시고 나대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비판적 사고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냉소적 불신과는 철저히 구분되어야 한다. 상대를 냉소하는 순간 어쩌면 자신은 비판의 대상에서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개선의 기회를 잃고 배움의 기회를 걷어차 버리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의 목적은 남을 깎아내리는데 있지않고 내가 제대로 배울점을 찾기 위함에 있다. 그러니 전체를 싸잡아 냉소하는 태도는 이미 비판에 실패한 모습이다. 냉소하지 말자. 대신 배울 점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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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를 할 땐 한없이 초라하다가도 남을 까내릴 땐 무한한 자존감이 솟는다.

 

아무리 확신에 찬 주장이라 할지라도, 더 나은 주장이 존재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인 경우에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의식의 편협함을 드러낼 뿐이다. (중략) 유연한 삶이 곧 타협하는 삶은 아니다. 삶의 복잡성에 대한 겸허한 인식이고, 생각의 다양성에 대한 쿨한 인정이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이다.

사람의 말투를 보면 대게 그 사람의 과학적 사고역량을 알 수 있다. 확신의 찬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은 대게 지식에 대한 확신 정도(uncertainty)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에겐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은 말, 어디 매체에서 전문가란 사람이 한 말, 친구가 한 말 중 너무 뜻밖이어서 뇌리에 박힌 말들이 모두 과학적 검증없이 지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본인이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uncertainty 개념이 없었던만큼, 남들에게도 확신이 가득찬 말들로 내용을 전달한다.

하지만 과학적 사고가 충실히 내면화된 사람은 그렇게 확신에 찬 말들을 쏟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많이 아는 분야는 많이 아는만큼 다양한 예외들도 많이 알기에 흑백으로 속 시원히 얘기할 수가 없고, 모르는 분야는 모르는 만큼이나 uncertainty를 화법에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지식인들을 보면 늘 말투가 조심스럽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며, 혹시라도 내가 틀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말투를 사용한다.

본인의 주장을 더욱 설득력있게 만드는 것은 강한 어조나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닌, 논리적인 근거들의 긴밀한 징검다리일 뿐이다. 초보 연구자들의 논문에선 대게 불필요한 부사의 사용이나 본인이 발견한 지식의 정도보다도 훨씬 과한 표현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를 시니어 연구자나 지도교수님이 종종 고쳐주기도 한다. 그들은 그만큼이나 더 uncertainty를 확실히 measure 할  능력이 축척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인의 언어습관을 한번 돌아보자. 언어가 곧 우리의 사고 방식이다.

결론

‘나는 얼마나 훌륭한 연구자인가’는 결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삶에 시간을 쏟고 있는가’와 반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니 행복을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고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고 충분히 즐기며 대학원 생활을 하자. 유능함에 대한 욕구와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우리가 대학원 생활을 하는 근본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건 ‘얼마나 자신의 연구 속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가’이고, ‘그들이 의미있게 엮여 곧 나 자신이 될 수 있는가’이다.

내가 나의 연구를 즐기고, 그것을 통해 더욱 나 다워질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점점 더 좋은 연구, 나 다운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는 결국 ‘나’라는 창을 통한 결과물이기에 좋은 태도를 내재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냉소’와 ‘무분별한 확신’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적인 반면, ‘비판적 배움’과 ‘겸허하게 열린 자세’는 우리를 더욱 넓은 지평으로 이끌어 줄 원동력이다. 좋은 태도를 가진 연구자는 말투에서도 그 태도가 묻어난다.

연구와 행복, 연구와 인생은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부디 본인의 행복과 본인의 인생 안에서 연구를 녹여내실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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