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대학원에 가야 하는 걸까

윤섭의 이야기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삶과 연구의 노하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대학원을 꼭 가야만 하는 걸까? 어떤 사람이 대학원에 가야하고, 대학원에는 대체 왜 가야 하는 것일까.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특히 내가 어떤 분야를 전공하고, 어느 학교의 어떤 교수님의 연구실에 지원할 것인지에 앞서, 가장 먼저 근본적으로 해야 할 질문이다.

형, 저 대학원 가야 할까요?

필자는 예전부터 후배들에게 진로 상담 요청을 자주 받는 편이었다. 특히 학부생들이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면 누구든지 취업 등의 여러 옵션과 함께 대학원 진학에 대해서 한 번쯤은 고민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요즘과 같이 취업이 잘 되지 않는 시대에는 말이다.

후배에게 대학원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곧바로 되묻는 질문이 있다. 바로, “네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뭔데?”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후배들은 당황한다. 자신이 (대학원 진학과는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아래의 유명한 구절을 좋아한다.

앨리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알려 줄래?
고양이: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렸지.
앨리스: 난 어디든 상관 없어.
고양이: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상관 없잖아?

대학원은 결코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박사를 딴다고 해서 인생이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며,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취업의 문은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솔직히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해서 모두가 박사학위를 따는 것도 아니다. 내 주위에도 많은 동기와 선후배들이 박사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더 행복한 삶을 위한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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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더 행복하지도, 더 많은 돈을 번다는 보장은 없다. (출처: Nature 2011)

나는 결코 모든 사람에게 박사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고,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하며, 큰 기회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본인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목표에 박사 학위가 꼭 필요하다면 당연히 대학원을 가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그 목표가 박사 학위를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라면 굳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박사 학위는 그 자체로 숭고한 목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수단으로써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평생 학문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에게는 박사 학위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박사 학위는 끝없는 진리 탐구의 길에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내가 교수가 되거나, 국책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 (적어도 그 자리에 지원을 하기 위해서), 혹은 특정 업계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적인 원칙은 그러하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보자. 내가 이루고자 하는 직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누구도 대신해줄 수는 없다.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도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막연히 주위 친구들이 대학원에 가니까 나도 따라서 간다거나 (실제로 이런 학생들이 꽤 많다), 넋 놓고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군대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해서 간다거나, 취업이 되지 않아서 좀 더 시간을 벌기 위해 별다른 고민 없이 진학한다면 필연적으로 불행한 대학원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내렸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니면 이 지옥 같은 대학원 생활을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말이다.

나 자신만의 굳건한 이유가 필요하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 목표를 위해 박사 학위가 꼭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다면 대학원을 가는 자신만의 명확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 이유는 결코 거창할 필요도 없고, 굳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 스스로가 굳게 믿고 있으며,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이면 된다.

필자의 경우에는 “IT 분야와 생명과학 분야를 융합한 유니크한 전문성을 가지고 싶다” 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전문가로 살아가고 싶었다. 학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전공했지만, 그것만으로 융합적인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라고 하기는 부족했다.

특히 신약 개발이나 헬스케어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 받으며 연구하고 이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박사가 필요했다. 대학원 진학하기 전에 내가 만나고 조언을 구했던 선배들, 전문가들은 대부분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문가가 되어서 이 바닥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누가봐도 박사는 최소한의 입장권처럼 느껴졌다. 매우 막연한 이유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 자신은 굳게 믿고 있는 이유였다.

대학원에 가기 위해 그런 굳건한 이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대학원에서 끝까지 버텨내고 살아남기 위함이다. 앞으로 대학원에서 얻게 될 많은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결코, 결코 쉽지 않다.

이 부분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언급하겠다.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과 외국을 막론하고 정말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당신이 한국에서 초중고를 거치고,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여태껏 겪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종류 조직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며 새로운 종류의 어려움과 고난, 고뇌를 겪게 될 것이다.

사실 대학원생은 사회 전반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매우 특수하고도 어정쩡한 역할을 하는 중간인과 같다.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며, 교수도 아니고 정식 연구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대기업처럼 잘 만들어진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잘은 몰라도) 노동법에 의해서 보호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도 많으며, 역할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어떤 역할이라도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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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왜 힘든지는 대부분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되기도 한 이야기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목표로 연구한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빨라도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4-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길게는 8-9년이 걸리기도 한다. 어느 연구실에 가더라도 박사 학위를 제때 따지 못해서 연구실에서 거의 화석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초 고년차 대학원생을 한 두 명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연구를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실력이 없어서, 혹은 게을러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대학원에서 보낸다고 할 수도 없다. 바로 당신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 터널을 빠져나오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터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불확실한 미래: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마찬가지다.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의사 면허, 약사 면허, 변호사 자격증, 회계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게 되면 그런 자격이 없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이 생기게 된다. 하물며 운전면허를 따도 보장되는 것이 생긴다. 박사 학위를 한다는 것이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 등의 자격을 가지는 것보다 결코 노력과 시간이 적게 들어간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고 해서, 박사만이 할 수 있다고 보장되는 것은 없다. 교수 등 특정 포지션에 지원할 수 있는 최소 요건 정도를 충족시키는 것 밖에는 말이다.

월화수목금금금: 황우석 박사가 써서 유명해진 말로 알고 있다. 대학원에 가게 되면 수업, 과제, 연구, 조교와 그 외 잡일 등으로 쉴 새 없이 바쁘게 된다. 특히 온갖 잡무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실험하고 논문 쓰면서 내 연구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주말에도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게으르거나, 워커홀릭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여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한국의 많은 연구실에서 랩미팅은 토요일 오전에 한다 (내가 스탠퍼드에 있을 때 친구들에게 한국에서는 토요일 아침에 랩미팅을 한다고 하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탠퍼드의 우리 연구실이 금요일 오후에 랩미팅을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상황이었다) 한국의 대학원생은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주말이 있는 삶을 살기도 쉽지 않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연구: 우리 지도 교수님이 실험이 잘 풀리지 않아서 좌절하고 있는 나를 위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실험은 원래 디폴트가 꽝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연구라고 하는 것은 결코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연구 과정에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항상 더 많은 시간이 (보통 두 배 이상) 들어간다. 그렇게 연구가 풀리지 않는 과정이 한 달, 두 달… 1년, 2년이 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8년, 9년씩 연구실에서 썩는 초 고년차가 되는 것이다.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도 교수: 존경할만한 지도 교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아마 3대에 걸쳐서 (혹은 30대에 걸쳐서) 덕을 쌓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뛰어난 학문적 실력과 리더로서 존경할만한 인성을 모두 갖춘 지도 교수는 불행하게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도 교수는 대학원생들의 삶과 미래, 월급을 모두 틀어쥐고 있는 절대 권력자이다. 하지만 학문적 역량 이외에, 여러 사람들을 이끌 리더로서의 자격이 있는지는 검증 받지 못한 사람들이며 (교수 채용과 테뉴어 심사에서 인성이나 리더십의 검증은 없다) 연구실 내의 절대 권력에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싫든 좋든 대학원 생활을 하는 내내, 그리고 어떤 경우는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대학원생들은 지도 교수의 절대적인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다. 장담하건대 지도 교수를 잘못 만나거나, 지도 교수와 궁합이 맞지 않거나,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문자 그대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쥐꼬리만한 월급: 사실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많은 경우 대학원생은 학부생 수업 조교를 겸하기 때문에 장학금 형식의 월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월급이라고 하더라도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하고, 별도로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30대 초반을 여유 자금 없이, 저축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박사를 받게 되는 30대 초중반에 모아놓은 돈이 천만원도 없으면 참 암울하다. (따로 과외 알바라도 뛰지 않고 연구만 열심히 한다면 천만원 모으기 쉽지 않다) 더 운이 나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면서 대학원 생활을 해야할 수도 있다. 이는 대학원에 가지 않고 취직한 주위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큰 격차를 실감하게 된다.

기회비용: 사실 위의 모든 이유를 합한 것이 바로 기회비용에 관한 것이다. 기회비용은 내가 대학원 진학이라는 선택을 함으로써 잃어버리게 되는 많은 기회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업에 취업해서 벌 수 있었던 (상대적으로) 많은 경제적 수입을 대학원에 진학하면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직업 전선에 먼저 뛰어들어서 경력을 쌓아 나가거나, 사회 생활을 일찍부터 시작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인맥 역시 대학원 생활의 기회 비용이다.

 

대학원 생활과 연구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 겁을 주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면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 중의 몇 가지는 반드시 겪게 될 것이다. ….좋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당신은 이 어려움의 대부분을 (많은 경우에는 전부) 겪게 될 것이다. 이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서라도 박사 학위를 반드시 따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던져야 한다는 그 질문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대학원에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사실 그렇게 험난한 과정과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고 얻은 박사학위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끝까지 견뎌내고, 도중에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서 누누이 강조한 자신만의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어둠 속에서 당신에게 한 줄기 빛이자, 마지막까지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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