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교수를 어떻게 골라야 할까

윤섭의 이야기

필자는 후배들의 진로 상담을 꽤 많이 해주는 편이다. 사실 진로 상담을 해준다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과 관련된 진로 상담 요청을 받을 때, 단연 가장 많은 질문은 (앞서 다룬 바 있는), “제가 대학원을 가야 할까요?” 와 함께 “어느 교수님의 연구실로 진학해야 할까요?” 하는 것이다. 오늘은 후자의 질문에 대해서 조금 다뤄보려고 한다.

대학원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역시 그다음 단계는 교수님과 연구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수능을 보고 대학을 진학할 때에는 학교의 네임 밸류가 영향을 크게 미치지만,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선택할 때에는 지도 교수님이 누구인지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박사후연구원을 할 때에는 학교의 네임 밸류보다 오히려 PI (Principal Investigator = 지도교수 = 보스)가 누구인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지도 교수를 정한다는 것은 내가 대학원에서 연구할 세부 분야를 정하는 것과도 맞물리는 결정이다. 지도 교수는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하게 될,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0년에 가까운 세월까지 나의 목숨을 틀어쥐고 있을 절대 권력자이자, 싫든 좋든 평생 나와 때려야 땔 수 없는 나의 학문적 아버지이자, 스승님이다. 그리고 그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분야가 나의 연구 분야가 된다.

단연코 장담하건대, 대학원 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가 지도 교수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그 교수님이 진짜 어떤 분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연구실에 지원하고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 진학하고 보니 (외부에서 봤거나,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얼굴을 한) 지도 교수를 만나서 대학원 내내 시달릴 것인지, 내가 평생 동안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존경하면서 내가 독립적인 또 한 명의 연구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을 만날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지도 교수를 선택할 수는 있다.

기준 1: 나의 열정이 어디에 있는가

지도 교수와 연구실을 고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도 교수와 연구실을 선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연구 분야’라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를 연구할지 먼저 정한 이후에, 그 분야에 어떤 교수님의 어떤 연구실이 있는지 범위를 좁혀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정한 연구 주제는 내가 평생 동안 연구자로서의 뿌리를 내리는 분야가 된다. 추후에 포닥을 하거나 취업을 하면서 세부적인 주제는 바뀌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내가 박사를 했던 분야와 완전히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결국 내가 평생 동안 써먹을 전문성의 근간이 될 분야를 고르는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내가 정말 이것이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인가?” 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원에서 우리는 많은 고생을 할 것이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하고. 연구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많은 고뇌를 겪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이 분야에 종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정말로 연구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주제를 골라야 한다. 이것에 비하면 “지도 교수님이 얼마나 네이처에 논문을 잘 내는 사람인가”, “이 분야의 박사를 하면 얼마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 “이 분야의 전망은 어떠한가” 와 같은 것은 모두 부차적이다. 당신의 열정과 흥미만큼 연구 주제를 고르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는 없다.

문제는 학부생 수준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흥미나 열정도 그 주제에 대한 단순한 이미지나 어깨너머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지를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내가 A라는 분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열정과 흥미가 부족한 정보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나중에 실제로 그 분야를 연구하게 되었을 때, “이건 내가 기대했던 거랑 완전 딴판인데?” 하고 깨닫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정보가 부족하더라도 큰 틀에서 자신에게 맞는 분야의 범위를 좁혀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응용 과학에 관심이 많은지, 아니면 순수 과학에 관심이 많은지는 구분 가능하다. 내가 연구를 한 결과물이 산업에 응용이 되고 머지않은 미래에 사람들에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 혹은 보다 순수하게 나의 지적 호기심을 좇고 학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맞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또는 책상에 앉아서 프로그램을 짜거나 문제를 풀면서 머리를 쓰는 것이 더 맞는지, 몸과 시간을 쓰면서 실험을 하는 것이 더 맞는지를 구분해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구분들은 대학원 생활을 하는 방식에 큰 차이를 만들게 된다.

미리 겪어봐야 한다

해당 분야를 알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연구실에서 미리 일해보는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학부생 때 반드시 대학원 연구실에서 미리 연구에 참여해보는 것이 좋다. 이러한 과정은 지도 교수와 연구 주제를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학원에 진학할지 여부 자체를 결정하기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나의 모교 포항공대를 포함한,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학부생들이 졸업 전에 연구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거나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학교마다 그 과정의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흔히 ‘연구 참여 (포항공대)’, ‘학부생 인턴 (서울의대)’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포항공대에서는 학부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3학점짜리 “연구 참여 A”, “연구 참여 B” 두 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학기 중이나 방학 때 연구실에 들어가서 실제 대학원생처럼 스스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야만 졸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학부생 수준에서 한, 두 학기 연구실 생활을 한다고 해서 얼마나 위대한 연구 결과가 나오겠냐만, 이는 진학을 고민하는 학부생의 입장에서는 놓쳐서는 안 될 귀중한 기회가 된다. 내가 정말 대학원에서 잘 버틸 수 있을지, 내가 연구하고 싶어 했던 이 주제가 나의 기대와 일치하는지, 교수님은 어떤 분이고 연구실의 선배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연구실 문화는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 학기 정도의 시간을 써서 대학원이 혹은 이 특정 연구실이 나와는 도저히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큰 이득이다. 더 큰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부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거의 매학기 연구참여를 했다. (복수전공을 해야했기 때문에, 졸업하려면 이수학점 상으로도 다른 학생들의 두 배를 의무적으로 해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구참여를 하면서 그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분야와 대학원생들의 생활을 면밀하게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그 연구참여했던 연구실 중의 하나로 진학하게 되었다.

자신의 학교에서 이러한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없다면, 개인적으로 교수님께 찾아가서 한 학기 정도 미리 연구실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먼저 요청을 하면 된다. 사실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적극적인 학생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교수의 입장에서도 자기 연구실 멤버로 우수한 학생, 적응을 잘할 수 있는 학생을 뽑는 것은 큰 숙제이다. 미리 상호 간의 궁합을 맞춰볼 수 있으므로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더욱이, 자신이 졸업한 학부와 다른 학교의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경우라면, 특히 방학 때 운영하는 해당 학교의 연구 참여 프로그램이나 인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공식 프로그램이 없어도, 그냥 무대뽀로 교수님께 요청드려보는 방법도 있다. 적극적인 학생들의 경우 이런 기회를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의 타대 출신 친구의 경우에도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없음에도 포항공대 교수님에게 ‘겨울 방학 동안 랩에서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하고 무작정 연락하여 성사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타대 대학원 지원 시에, 자대 출신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포항공대 출신의 학생이 카이스트 대학원 연구실에 지원한다면 카이스트 학부 졸업생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동일한 조건이라면 교수는 당연히 카이스트 졸업생을 선호할 것이다.

경쟁에서 밀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성적증명서와 지원서만 봐서는 완전히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교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르쳤고, 몇년 동안 익히 지켜봤던 자대생을 놓고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타대생을 선발하는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미리 방학 때 연구 참여생으로 교수님과 연구실 대학원생과 이미 안면을 트고 좋은 인상을 남겨 놓았다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기준 2.1: 지도 교수의 학문적 역량

내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좁혔다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교수님께 지원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나는 지도 교수에 대해서 두 가지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실력과 인성이다.

실력은 연구에 대한 열정, 연구 성과, 지도 방식 등을 포함한다. 연구에 대해서 얼마나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임하며, 대학원생들을 또 다른 후세대 연구자로서 잘 성장시키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연구 지도 스타일은 어떠한지 하는 것이다. (본인의 연구 역량과 후세대 연구자를 양성하는 역량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단 좋은 대학에서 교수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면 연구에 대한 실력은 어느 정도 검증된 것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판단하려면 최근 연구 실적을 보는 것이 좋다. 연구실 홈페이지나 구글 스칼라, PubMed 등의 검색을 통해서 그 교수가 최근 3년 혹은 5년간 어떠한 논문을 냈는지를 꼭 살펴보도록 하자.

특히, 어느 저널에 논문이 나갔는지, 출판 빈도는 어떠한지, 예전보다 지금 논문이 더 잘 나오는지, 과거에는 네이처, 사이언스에 많이 나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지… 등등을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저자 목록에서 지도교수가 단순히 공저자(co-author: 저자 목록 중간에 이름만 들어간 것)인 논문은 제외하고, 연구에 전반적으로 책임을 지는 교신저자(corresponding author)인 것들만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냉정하게 말해서 교수들 간에도, 연구실 간에도 연구 역량에 차이가 존재한다. 나라는 개인이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그 연구실의 역량을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네이처 논문도 내본 놈이 계속 내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만약에 그 연구실로 진학한다면, 그 연구실 홈페이지의 연구 성과 목록에 수록된 저널 중의 하나에 내 졸업 논문도 나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년간 네이처, 사이언스 논문을 하나도 못 낸 연구실이라면, 내가 졸업할 때가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과거에 비해 최근에 나온 논문이 없거나, 연구 실적이 현저하게 좋지 않다면 그 이유를 조금 더 알아보는 것이 좋다.

교수님의 지도 스타일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매니징(micro-managing), 즉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지시하고 지도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그냥 학생을 믿고 자유방임을 하는 분도 있다.

전자는 피곤하고 짜증 나지만, 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연구나 논문 작성의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역시 연구 자율성은 현격하게 떨어지고, 삶의 질도 나빠진다. 후자는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이 적으니 편하고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의 연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독려하고 세세하게 지시해야만 움직이는 스타일의 학생의 경우라면, 방임하는 교수 아래에서 넋 놓고 있다가 영원히 졸업을 못하게 되는 수도 있다.

훌륭한 리더라고 하더라도 세부적으로 리더십의 스타일은 다르듯이 훌륭한 지도 교수의 경우에도 스타일은 상반되는 경우가 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 것처럼, 어떤 스타일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스타일과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지도 교수님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세세하게 간섭하거나, 학생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매우 싫어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스타일을 가진 보스 아래에서 일할 때가 더 편했고 연구 성과도 좋았다.

00PItype2참고로, 매우 현실적인 그림이다.. (출처 1, 2)

기준 2.2: 지도 교수의 인성과 태도

지도 교수를 고르기 위한 두 번째 기준은 바로 인성과 태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실력보다도 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좋은 대학에 교수로 자리를 잡고, 연구실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실력은 보장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성은 그렇지 않다.

언론에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인격적인 장애가 있는 소위 ‘또라이’ 교수나, 연구비 횡령 등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수, 데이터 조작 등 연구 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교수 등의 예시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인격적으로도 내가 존경할 수 있고, 더욱 중요하게는 나를 한 사람의 인간이자 연구자로서 (존경이 아니라) 존중해주는 스승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 정신 건강과 자의식에도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내가 나중에 한 사람의 독립된 연구자로서 어떠한 스타일의 교수/보스/리더가 될 것인지”에 지도교수의 지도 방식과 태도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새내기 대학원생으로서는 지도교수가 실질적인 인생 최초의 보스가 된다. 그 지도교수는 내가 싫든 좋든 수년 동안 매일매일 내가 보고 들으며 참고할 수밖에 없는 롤모델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은 대학원을 그만두는 것보다 더 어렵다.

대학원생으로서 연구실에서 한 해, 두 해를 보낼수록 자신도 모르게 지도 교수와 닮아가는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연구실 선배들 중에서 지도 교수의 지도 방식에 대해서 그렇게 비판하면서도, 본인도 어느새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곁에 있는 사람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고, 연구실에서 보고 배울 것이 지도 교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그렇게 되지 않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지도 교수를 잘 골라야 한다.

필자가 즐겨보는 JTBC 썰전에서 여러 번 나온 말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즉, 견제 세력이 없는 권력은 결국에는 어디엔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연구실의 교수들은 견제 세력이 없는 절대 권력자이다. 연구실은 그들의 왕국이고 지도 교수는 연구실의 학생들과 연구원 위에 군림하는 절대 군주이다. 교수가 혼자서 폭주하더라도 연구실의 학생이나 다른 동료 교수들이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전무하다.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현명하고 어질게 나라를 다스리는 성군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권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정을 휘두르는 폭군도 있다. 나는 슬프게도 주위에서 후자에 해당하는 교수를 적지 않게 보았다.

좋은 대학에서, 학문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루고, 존경받는 학자인 분들이 연구실 내에서는 학생들에게 인간다운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적인 업무를 시키거나, 입에 담지 못할 쌍욕과 폭언을 하거나, 학생들을 인격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가혹하게 대하거나, 연구비 운용에 문제가 있는 경우다. 학문적으로는 존경하고 싶은 분들 일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결코 상종하고 싶지 않은 분들이다.

반드시 교수와 학생들을 미리 만나봐라

문제는 교수의 인성이나 태도는 연구실의 내부인이 되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외부 활동을 하거나 학부 강의에 들어올 때는 어느 교수나 멋지고 쿨한 척이라도 하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서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앞서 관심 있는 연구실이 있으면 진학 전에 잠깐이라도 미리 일해보라고 한 이유는 사실 이런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한 번이라도 그 연구실을 방문해서 교수님을 만나보자. 만약 기회가 된다면 랩 미팅에도 들어가서 참관을 해볼 수 있으면 좋다. 랩 미팅에서 교수가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연구 결과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코멘트,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어떤 식으로 질책을 하는지 주의 깊게 잘 살펴보자.

결과에 관한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프로페셔널한 비판과 토론이라면, 연구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혹은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 학생에 대한 비난이나 인격 비하, 폭언, 비이성적이거나 감정적인 지적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외부인이 참관할 때 또라이짓을 할 교수는 없을테니, 행간을 잘 읽어야 할 것이다)

이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대학원생들의 표정이다. 랩 미팅에서 다들 주눅이 들어있고, 교수의 코멘트에 수동적으로 무조건 수긍하기만 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교수의 지적이나 지시에 ‘예, 예’ 만 반복한다면, 아마도 그동안 교수가 디스커션에 응하지 않거나, 학생의 반론을 허용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스타일일 가능성이 있다. (이런 환경이라면 대학원생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교수님과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서로 수평적으로 질문과 답이 이어진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좋다. 교수와 대학원생이 서로 학문적인 동료로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보자. 연구실에 앉아 있는 대학원생에게 “이 연구실에 지원을 고민하고 있는데, 혹시 잠깐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하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대학원생에게 “만약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이 연구실에 진학하겠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YES/NO 답변이 아니라, 그 답변의 이유이다. 그 이유에서 묻어 나오는 교수의 실력, 인성, 연구실 분위기 등등이 나에게는 어떻게 해당될지를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

유학을 고려하는 경우도 이 원칙은 그대로 해당된다. 약간의 돈과 시간이 들겠지만, 가능하면 직접 한 번 가서 교수와 학생을 직접 만나보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더 큰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의치 않으면 홈페이지에 나오는 학생들에게 무작정 이메일이라도 보내서 교수의 스타일과 연구실 분위기에 대해서 물어봐야 한다. 만약 한국인 유학생이 있으면, 특히 친절하게 답해줄 것이다. 역시 외부인에게 이메일로 답변하는 것은 상당히 유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니, 행간을 잘 읽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반드시 파악해보아야 할 것은 연구실 내의 자대생 비율이다. 연구실에 유난히 자대 출신의 대학원생이 적다면, 지도 교수의 인성이나 주변 평판에 대해서 한 번쯤 심각하게 의심을 해봐야 한다. 자대 졸업생들은 교수들의 평판을 직간접적으로 익히 알고 있다. 인성이 X 같은 교수의 연구실에는 자대생들은 진학을 꺼리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타대 출신의 대학원생으로 채워지게 된다. 반대로 자대 출신이 많은 연구실이라면 지도 교수의 인성 및 평판에 대해서 평균은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주: 이 단락은 태웅님의 페북글을 보고 추가한 것입니다. 저도 평소에 생각해오던 것인데 처음 글에는 빠뜨렸네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가면 대학원 생활 내내 몸과 마음이 고달프다. 더 큰 문제는 그 사람들을 내가 닮아갈 수도 있다는 것에 있다. 물론, 개인의 감수성이나 비합리적인 상황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분이라도 인격적으로 내가 존경할 수 없고, 나를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지 않는 보스 아래에서는 일하기 싫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하는 주된 원인이 바로 이 것인 경우가 많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반드시 팩트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내가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굴 속에 호랑이가 있는지, 몇 마리가 있는지, 얼마나 또라이 호랑이인지는 미리 파악해놓아야 한다. 그냥 ‘굴이 뭐 거기서 거기겠지…’ 하고 아무 굴에나 들어갔는데 갑자기 미친 호랑이와 마주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기준 3: 분야의 전망

마지막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분야의 전망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개인적인 열정이나 지도 교수님의 스타일이라는 요소와 비교했을 때에 분야의 전망이라는 요소의 중요도는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보통 후배들이 질문을 할 때에는 ‘A 분야가 앞으로 유망해질까’, ‘B 분야의 박사를 하면 취업이 잘 될까’라는 것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큰 의미를 두기가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과 같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연구 성과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는 어떤 분야가 유망할지, 혹은 아예 분야 자체가 사라져 버릴지에 대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를 하고, 포닥까지 마친 후라면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경기장의 본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아득한 세월 이후에 어느 분야가 뜰지, 어느 분야가 연봉이 높을지 예측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보더라도 내가 대학원 시절에 핫하다고 했던 분야들 중에 지금까지 유망한 분야는 사실 별로 없다.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인 인공지능과 같은 분야도 흔히 ‘AI winter’라고 불리는 오랜 암흑기를 겪었다. 지금 인공지능 전문가로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은 그 인공지능의 암흑기에도 묵묵하게 자신의 열정에 따라서 연구를 지속했던 사람들이다. 지금 인공지능 혹은 딥러닝 분야의 호황’만을’ 보고 진학한 사람이라면, 10년 뒤에 이 분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앞서 강조한 나의 흥미와 열정을 따라가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분야의 전망이 좋지 않아도, 그 분야가 아예 통째로 사라져 버리지 않는 이상은 실력이 좋은 전문가라면 입에 풀칠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 분야가 아무리 주목받고 연구비가 많이 몰린다고 하더라도, 실력이 없는 사람까지 몸값이 높아지라는 법은 없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특정 분야에 몸담은 이후라면, 그 분야의 흥망성쇠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도 일부분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세계적인 천재라서 그 분야를 혼자서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적어도 해당 분야의 발전에 대한 1/n 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대학원에서 혹은 졸업한 이후에 내가 좋은 연구를 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낸다면 나라고 그 분야의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나라고 선도적인 연구자와 오피니언 리더가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뜻을 품은 연구자라면 이 정도의 자각과 자신감은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내가 즐겁고 흥미 있는 분야를 연구한다면 설사 그 분야가 아주 핫하거나 촉망받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나는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흥미도 없는 분야를 장래에 유망한 분야라는 이유만으로 전공했다가, 그 예측이 빗나가면 무척 암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전망은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나 자신의 소리에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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