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교수가 된다

창현의 이야기

교수 생활을 하면서 십여차례 정도에 걸쳐 교수 채용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학과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혹은 교수 채용을 주도하는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사람의 이력서를 보고 면접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후보자가 좋은 평을 받는지, 어떤 후보자가 나쁜 평을 받는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교수 임용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가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나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일하고 있지만, 첫 직장을 구할 무렵,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지역, 그리고 한국에서도 면접을 본 경험이 있는데, 전체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하나빼고 다 떨어짐, 거절의 아이콘

면접

원서를 내고 심사를 거쳐서 학교 방문 면접(campus interview) 초청까지 받았다고 하면, 사실 딱히 준비할 것은 없다. 교수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Be yourself’이기 때문이다. 몇 시간의 준비로 자기 본 모습을 바꿀 수는 없다. 방문 면접은 적어도 하루 종일, 대부분 1박 2일, 어떨 때는 2박 3일처럼 아주 길 기 때문에, 본 모습이 어디에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 보러 갔다가 오면 된다.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다 했으니언제?, 이제 내가 관찰한 바를 이야기 해 보려한다.

나는 내가 교수 후보자가 되어 면접을 보러 다닐 때는, 왜 면접을 보는지 잘 이해하지 못 했었다. 교수가 되고 나서 면접의 반대편에서 관찰해 보고 나서야, 면접이 정말 중요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면접을 보러가서는 모든 후보자가 준비한 것을 잘 이야기 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잘 포장해서 적절히 잘 전달하고, 겸손하면서도 즐거운 모습을 보이고, 멋진 사람 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후보자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루 이상의 면접 일정에서, 후보자는 학과 내의 모든 교수와 개별적으로 30분 이상 면담하게 되고, 학장도 따로 만나고, 학과장도 따로 만난다. 학생들을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고, 학과 내의 직원들도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다. 어떨 때는, 다른 학과의 관련 분야 교수들도 만난다. 아주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후보자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보여준다. 나중에 후보자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학과 내의 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여서 회의 한다. 그 회의에서 각자 그 후보에 대해 받은 느낌과 생각을 서로 교환하고 토의한다. 만약 한 축으로 치우친 의견이 있다면, 다른 교수가 그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그 후보자에 대해 공정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상황 에서, 후보자가 아무리 자신의 장점은 더 내세우고, 단점은 감추려고 노력해 봐야, 결국엔 대부분 본 모습이 다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앞서 말 한 것 처럼, 별로 면접을 준비할 것은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오면 된다.

교수 임용에 성공하려면 우선 운이 좀 좋아야 한다. 운이 더 좋은 사람은 교수 임용에 관심이 없… 아무리 자기가 훌륭한 연구 업적을 쌓았다고 한 들, 연구 분야가 학과에서 채용하고자 하는 분야와 다르다면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비슷한 연구 업적을 쌓은 두 후보자가 있다면, 학과의 발전 방향에 부합하는 후보자를 뽑으려고 할 거다. 그러니까, 이런건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Be yourself’의 범주 안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별로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가 수년간 교수 임용 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점이다. 내가 겪어 본 교수 채용 과정은 대체로 신임 조교수 채용을 위한 것이어서, 교수 임용 면접에 오는 후보자들은 대체로 박사학위를 받은지 2년 이내, 혹은 곧 박사학위를 받을 분들이었다. 박사과정 혹은 박사 후 과정 중이거나, 연구소 같은 곳에 연구원으로 있거나, 학교에 강사로 있는 분들이었다. 경력이 길건 짧건 무관하게 제가 볼 때는 두 부류의 후보자들이 있었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후보자들과 그렇지 않은 후보자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라고 하면, 강압적인 표현을 한다거나 잘난 척 하는 행동을 한다는 식의 뜻으로 받아들일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괴수’아니고 ‘교수’

두 후보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던 채용 과정이 있었다. 두 후보자 모두 아직 박사학위는 없는 박사 마지막 학기 중이던 박사학위 임용 예정자였다. 연구 실적도 비슷 비슷 했고, 학과 입장에서 연구 분야의 호불호도 없었다. 서류 상으로는 두 후보자 모두 학과에 좋은 후보자였다.

한 후보자는 자신이 교수로 만일 임용 되었을 경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인지, 그 연구를 하려면 어떤 실험 장비들이 필요한 것인지, 어떤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찾을 것인지, 어떤 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지, 어떤 연구재단에 어떤 제안서를 제출할 것인지, 어떤 교수들과 협업할 것인지 등에 대한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고 잘 정돈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보자와 대화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꾸린 연구실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고, 우리 학교에서 이미 몇 년 간 지냈던 사람 처럼, 학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단순히 직장이 필요해서 교수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박사과정 학생과 교수는 그저 자기가 하는 연구의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선 위에 있는 다음 단계였던 것 뿐이다. 이 후보자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이미 교수가 된 사람에게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였다.

반면에 다른 후보자는 면접에서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면접에 와서 본인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했다. 앞의 후보자가 가지고 있었던 계획을 이 후보자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이 후보자는 면접에서 깨달았던 것이 많았는지, 집으로 돌아간 뒤 며칠 뒤에, 학과로 전화를 걸어와서는 자기는 지도교수님 밑에서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 지내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아직 마지막 후보자가 면접을 보러 오기도 전의 일이었다.

앞의 잘 준비된 후보자는 결국 학과에서 교수 임용을 제안 했지만,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한 다른 학교에서 교수 생활 중이다.

똑같이 박사학위 임용 예정자일지라도 후보자 마다 보여주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후보자는 누가 봐도 그냥 ‘학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반면에 어떤 후보자는 함께 이야기를 해 보면, 학생과 대화하는 것 같지 않고, 동료 교수와 대화하는 것 같다. 결국 교수로서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본 사람이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고, 교수가 된다. 교수가 하는 여러가지 일들, 즉 연구, 강의, 학생지도, 다른 교수들과 교류 등을 즐길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Be yourself’가 의미하는 것의 범주 안에 들어가고, 결국은 따로 준비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교수가 되는 것이 그냥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거다. 교수라는 직업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너무 잘 맞아서 학생이지만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많이 고민해 본 사람이 있을 거다.

하지만, 모든 교수가 임용 전부터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건 아니다. 분명 어딘가 중간 쯤 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나처럼 헤메고 계실 분들을 위해 교수 면접 준비를 위한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교수 임용 면접을 잘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잘 못 된 질문이다.

‘교수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까?’가 내가 볼 때는 옳은 질문이다.

가장 가깝게는 지도교수님께 여쭤 볼 수 있을 것이고, 다른 멘토 교수님이 있으시다면, 그 분께 여쭤 보아도 좋을 것이다. ‘advice for new assistant professors’ 따위로 검색을 해 보고 여러 글을 읽어 봐도 좋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책을 (미리) 읽어 보고 고민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교수 채용 과정

방문 면접 이전의 절차에 대해 궁금한 분들을 위해 교수 채용 과정을 간략히 소개한다.

예를 들어 2020년 1학기에 강의를 시작하는 교수 자리에 원서를 낸다고 가정하자. 중요한 시기는 2019년이다. 전공과 대학,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수 채용 공고가 일찍 나오는 곳은 2019년 1학기를 시작하자마자 나온다. 물론 아주 늦게 2019년 2학기 중반, 혹은 끝나갈 때 나오는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2019년 1학기 중반 즈음에는 공고가 나온다. 2019년 1학기의 연구 실적을 갖고 평가 받기 되므로, 박사과정 졸업 1년여 전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박사 졸업 후에 바로 교수가 되지 않고 박사후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인 분야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원서를 내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다음과 같다.
1. 커버레터 (Cover Letter)
2. 이력서 (CV)
3. 연구 계획서 (Research Statement)
4. 강의 계획서 (Teaching Statement)
5. 추천인 명단 (List of References)

각각을 준비하는데에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미리미리 알아보고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 여러 정보들이 많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 글에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소개한다.

커버레터는 논문으로 치자면 초록(abstract)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체 원서 패키지의 요약본이라 생각하면 된다. 원서의 다른 부분에서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을 여기서 말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이 교수 자리에 왜 지원을 했으며, 왜 내가 적합한 후보자인지를 아주 직접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교수 채용 공고가 간략하게 나오는 곳도 있지만, 채용 공고가 설명글 형식으로 나오는 곳이라면 그 공고문을 수 차례 읽어보기를 권한다. 학과에서 교수를 채용하기 위해서 공고문을 쓸 때 굉장히 공을 들인다. 원하는 분야에 좋은 사람을 뽑고 싶기 때문에, 우선 공고문에 그 사항을 쓴다. 공고문을 수차례 읽다보면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지 어느 정도 느낌이 온다. 만일 내가 그 분야에 맞는 사람이라 생각되면 그 사항을 강조해서 커버레터를 준비하면 되겠다. 이런 의미에서 커버레터는 일종의 자기 소개서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저는 … 아.. 안돼…

이력서는 학계에서 통용되는 형식을 써야한다. 지도교수님께 보여드리고 조언을 얻자. 연구 계획서는 말 그대로 내가 박사과정 동안 어떤 연구를 해왔으며,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를 쓴다. 강의 계획서에서는 강의와 관련된 경력이 있으면 간략히 쓰고, 강의철학(Teaching Philosophy)을 간략히 쓰기도 한다. 또 어떤 과목을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어떤 과목을 새로 만들어서 강의하고 싶은지도 쓴다. 추천인 명단에는 학과에서 추천서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 근무지, 연락처 등을 쓴다. 추천인은 대체로 3인 이상이어야 한다. 지도교수 이외에 좋은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 사람 2~3명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체로 박사 논문 심사위원들이다.

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혹은 제출하기 전에도, 해당 분야의 큰 학회가 있으면 직접 그 학과의 교수와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학과입장에서 후보자를 학회에서 만나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당연히 후보자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고, 원서에서 알 수 없는 사항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두번째는 학과에서도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지 그리고 학과와 학교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더 자세히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서다. 학과에서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있다면 학과에서도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후보자의 연구 분야에 맞는 공동 연구자를 추천하기도 하고, 관련 연구 시설이 학교에 얼마나 잘 마련 되어 있는지 자랑도 한다.

원서 마감일이 지나면 전화 면접을 하기도 한다. 전화 면접은 대체로 20분 내외로 짧게 진행 된다. 학회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와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오가지만 조금 더 평가의 측면이 강하다. 왜 지원했는지, 향후 계획은 어떤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간략하지만 핵심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후보자가 학과와 학교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물어볼 기회도 있다.

전화 면접이 끝나면 대체로 1~2주 정도 후에 방문 면접(campus interview)이 진행 된다. 대체로 1박2일 혹은 2박3일 정도의 일정이다. 한국에서는 1박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떤 경우에든 하루 이상의 시간을 온전히 면접에 쓰게 된다. 방문 면접에서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서 1시간 정도 세미나 발표를 진행하고, 학과 소속 각 교수들과 따로 30분 정도 시간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고, 학교 캠퍼스의 이곳 저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학과의 대학원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러가지 대화를 하기도 한다. 손님을 모시는 입장이므로 학과에서는 여러가지 일정으로 가득 채워둔다. 맘편히 똥누러 갈 시간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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