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닥쳐오는 멘붕의 파도 –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대학원에서 닥쳐오는 멘붕의 파도

창현의 이야기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한발짝 한발짝 내디딜 때마다 ‘멘탈’이 무너져 내리게 하는 폭탄들이 여기저기 숨겨져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한 번 미리 둘러보자.

멘붕의 파도

이 글에서는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인간관계 문제와, 지도교수의 부당한 처사 혹은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화목한 연구실에서 모범적인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하는 경우에도 ‘멘붕’은 일어난다.

아래의 일 들 중엔 내가 직접 겪어본 일도 있고, 주변에서 일어난 일도 있다.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모든 멘붕에 마찬가지겠지만, 멘붕 극복에서 중요한 것은 (1) 슬퍼할 만큼 슬퍼하고 (2)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3)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본 뒤 (4) 그래도 안 되면 정신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우가 신포도 기술을 시전하였습니다. 순서가 중요한데 4번의 정신승리가 먼저 오면 자기반성이 힘들어진다. 정신승리만 하게 되면 발전할 기회를 놓치기 쉽지만, 적당한 정신승리 없이 버티기는 또 쉽지 않으니 적절한 선에서 잘 승리하자.

대학원 입학 심사에서 떨어졌어요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좋아 대학원 입학을 결정했지만, 입학 심사에서 그만 떨어져 버렸다. 이때야 탈출해 꽤 오래전이지만, 대학원 원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초조했던 마음, 받은편지함을 1분마다 새로고침 하던 마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교수로 지내면서 내 생활도 사실 크게 다르진 않다. 연구제안서든 논문이든 뭔가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느라 초조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합격하지 못 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내가 준비가 부족했거나, 내가 욕심을 부렸거나, 혹은 그저 운이 없었던 거나겠다. 우리가 지금 안 되는 건 두 가지야, 공격과 수비 대학원 입학 심사에 떨어진 뒤에 어떤 마음가짐이면 좋을지 잘 보여주는 예가 가까이에 있다. 같이 글을 쓰고 있는 태웅님의 글을 읽어보자. 절망에 빠지는 대신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음 기회를 준비했다.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대학원에 무사히 입학해서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 갑자기 뭔가 난이도가 뛰어버렸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학부과정에서 배우던 과목들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던 반면, 대학원에 들어와서 배우는 과목들은 갑자기 어려워지고 수업마다 들여야 하는 시간도 많이 증가한다. 학부 때는 한 학기에 보통 대여섯 과목을 들은 데 비해, 대학원에서는 서너 과목만 듣게 된다. 그런데 바쁘다. 온종일 공부만 했는데 아직도 부족하다.

전공을 바꿔서 대학원에 진학했을 경우엔 좀 더 심하다. 교실에 앉아 있는 사람 중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 건 나뿐인 것 같다. 학생이 ‘바보 같은 질문 해서 죄송하지만…’이라며 교수에게 던진 질문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계공학에서 산업공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진학했는데, 확률과 통계에 대한 지식이라곤 동전을 던졌을 때 뒷면이 나올 확률은 이 분의 일이라는 것과, 다 더해서 개수로 나누면 평균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첫 학기에 들었던 수업 중엔 확률과 통계를 이미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진행하는 수업이 있었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잘 할 수 있을까. 다른 수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산업공학이 원래 전공이었던 학생들은 한 번은 들어본 개념이었겠지만, 나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개념들이 기본 개념으로 쓰이고 있었다.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내가 택한 방법은 비슷한 내용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한 책을 찾아서 읽어 보는 것과 배경 지식을 가르치는 학부 과목을 청강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쉽지 않았으나, 시간이 쌓이면서 학기가 마칠 즈음엔 제법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엉덩이가 가벼운 학생이었다. 대학생 시절 공부한답시고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면 10분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산만했다. 10분마다 돌아다니고 10분 공부하고 30분 놀고. 그렇게 해도 어떻게 졸업은 했다. 대학원 와서 놀랐던 건, 세상엔 공부할 게 참 많다는 사실과 내가 3시간 연속으로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다. 학부 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걸이라는 생각도 했다.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면, 결국 공부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공을 바꿔서 일 수도 있고, 학부 때 공부를 게을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대학원 1년차 때 요행으로 어찌어찌 잘 넘겨가며 쌓아놓은 돌무더기는 나중에 결국 무너져서 다시 쌓아야할 날이 온다.

박사 자격 시험에 떨어졌어요

박사과정은 대체로 1년 차 혹은 2년 차 때 자격시험이란 것을 본다. 몇몇 중요한 기초가 되는 수업을 듣고 나면 연구를 할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다. 학교마다 이름이 다른데 영어로는 주로 qualifying exam, candidacy exam, comprehensive exam 따위로 불린다. 보통 두 번 정도의 기회가 주어지며 시험의 형식은 학교, 학과, 전공마다 가지각색이다. 일반적인 시험처럼 보는 곳도 있고, take-home exam 형식도 있으며, 구두시험을 동반하기도 한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이 시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고민거리 하나를 덜어낸 것이다. 하던 공부 계속하고 하던 연구 계속하면 된다.

시험에 한 번 떨어지고 나면, 담당 교수와 면담을 하고, 몇 달 뒤에 재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통과하지 못하면 박사과정을 계속할 수 없고, 대학원을 떠나야 한다.

충격적인 일이다. 큰 꿈을 품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는데,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시험에 떨어져서 중간에 떠나야 한단다. 나는 계속 공부해서 연구하고 싶은데 시작도 제대로 못 해보고 떠나야 한단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것이다. 슬픈 일이다.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일어날 것이고 주변 환경에 대한 원망도 들 것이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박사 자격 시험은 무사히 통과했지만, 유사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조교수일 때 정년 보장 (테뉴어) 심사를 위한 중간 심사 결과를 받아들곤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감정과 고민을 가져본 적이 있다. 연구업적이 부족해 이대로라면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질 확률이 높다는 평가를 손에 받아 들곤 별의 별 생각을 다 했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점은 나는 연구를 즐겁게 하고 있고 좋아서 계속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의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내가 연구하는 것을 그만두게 된다면 앞으로 내가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일이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계속 노력했고 그 뒤에 운이 좋아 연구 업적을 더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테뉴어는 받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박사 자격 시험은 아주 이른 시간에 연구자의 꿈을 꾸고 있는 학생에게 종말을 고한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시험을 보는 이유가 있다. 박사과정을 마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년에서 7년 정도이다. 전공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대학원에서 오랫동안 보내야 하는데, 적성이 맞지 않는 학생을 희망 고문하며 붙잡아 두는 것은 학생에게도 고통스럽고 그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교수에게도 고통이다. 박사과정 자격시험은 마지막으로 이 긴 시간을 인내심을 갖고 보낼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묻는다. 박사과정 자격시험이 지나가면 남은 것은 연구하고 논문 쓰는 길고 긴 과정뿐이다.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이 과정에서는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학생이 타의에 의해서 학교를 떠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박사과정 자격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이 마냥 슬픈 일은 아니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나의 적성과 맞지 않는 진로 계획을 세운 실수를 바로 잡을 기회로 볼 수도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며 진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볼 수 있다.

 

마지막 기회야. 지금 도망쳐…

 

충분히 슬퍼한 뒤, 미래를 위해 고려해볼 가능성은 다음과 같다.
(1) 그동안 수업을 들은 것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할 가능성이 있으면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수업 듣느라 고생한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될 수 있다.
(2) 같은 학교의 다른 학과로 옮긴다. 요즘은 비슷한 연구를 여러 학과에서 한다. 입학 원서를 새로 내야 하지만, 절차가 조금 간소화될 수 있다.
(3) 다른 학교로 옮겨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본다. 원서도 새로 내야 하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들었던 수업도 다시 또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4) 내가 정말 연구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후련하게 학교를 떠난다.

주로 볼 수 있는 선택은 (1) 번과 (4) 번의 조합이지만, (2) 번 혹은 (3) 번의 선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른 학과 및 학교로 옮겨서 다시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번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으로 다른 곳에서 성공적으로 박사과정을 마치는 경우도 많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같이 글을 쓰는 태웅 님과 윤섭 님께서 쓴 다음 글들을 읽어볼 시간이다.

회사냐, 대학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과연 대학원에 가야 하는 걸까
박사 학위라는 것의 의미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연구는 진도가 안 나가고 이대로라면 졸업을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박사과정을 하다 보면,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히 하는 데, 지도교수는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고, 교수가 졸업 준비를 시켜주지 않는다.” 이 고민에 대해선 이미 한번 다룬 바가 있다. ‘내 연구하기’ 페이지를 읽어보자.

학회에 갔더니 제 연구가 제일 허접해요

학회에 참석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내 연구 결과를 자랑스럽게 발표할 수 있고, 다른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 학회에 참석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대신 조금 힘들다. 나 혼자 연구실에서 논문 쓸 때는 내 논문이 그리도 멋져 보이더니, 밖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접하고 나니, 내 논문이 세상에서 제일 못나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중요해 보이는 연구 주제를 잘도 잡았으며,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연구 결과를 그렇게도 쉽게 뚝딱뚝딱 내어놓는지 이해가 잘 되지도 않는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발버둥 쳐서 억지로 힘들게 논문을 썼는데 말이다. 처음엔 멋져 보이던 내 논문이 지금 와서 보니, ‘이런 논문 써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마음도 든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해서 첫 논문을 쓴지 십 년이 지났다. 아직도 이런 감정을 일 년에 서너 번 이상 느끼고 있다. 복잡한 감정이지만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는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실감이고, 두 번째는 연구 자체에서 오는 허무함이다.

학계는 어떻게 보면 특이한 곳이다. 나와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전 세계의 대학원생, 연구원, 교수 등이 발표하는 논문의 내용, 그 사람들의 경력 같은 것을 기관 홈페이지, 개인 홈페이지, 학술지 검색, 구글 스칼라 검색 등의 방법으로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연구에 진척이 있어서 온종일 기분이 좋았는데, 어쩌다가 다른 대학원생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나선 주눅이 들어 내 모든 것이 초라해 보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어두운 우울함이 올라온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남들과의 비교가 너무 쉬운 탓이다.

회복하는데 하루 이틀 혹은 몇 주가 걸린다. 이런 기분 안 가져보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주기적으로 느끼게 되는 이런 기분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바닥으로 떨어져야 한다. 질투, 원망, 자책, 시기 등의 어두운 감정들이 한 번씩 나를 거쳐 가고 나서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때가 중요하다. 남들을 바라보지 말고 나를 바라볼 때다. 내가 한 연구의 결과물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자. 그렇게 초라해 보였던 내 논문이 제법 괜찮은 구석이 있단 것도 발견할 수 있다. 남들의 화려한 연구 결과와 비교해서 화려한 점은 없어도, 구석구석 꼼꼼히 잘 마무리 한 부분도 있다. 내가 이 실험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잘 극복할 수 있었는지, 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떻게 그렇게 참신한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나 자신이 대견해진다.

결국엔 ‘나 정도면 그래도 제법 괜찮은 연구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상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 내 연구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고, 나도 더 채울 곳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많이 노력하고 있고, 즐기고 있다.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배울 부분은 더 배우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다 보면 또 언젠간 지금보다 더 좋은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올라온다. 몇 개월 후엔 다시 또…내가 제일 못났어…

내가 가지고 있는 부분 중에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다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시련이기 때문에 내가 제일 못나 보이는 감정을 잘 관리해야 한다. 회복 탄력성이 중요하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시련을 겪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련을 잘 극복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에게만 오는 못난 감정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만나보는 감정이다. 긍정적인 면을 잘 찾아서 다시 올라와야 한다.

정 안 되겠으면 여우가 되어 포도가 얼마나 시었을 건지 이야기라도 해보자. 이 사람은 그저 운이 좋았을 거라며, 저 사람은 주변에서 남들이 다 해줘서 저런 논문을 쓸 수 있었을 거라며, 그런 기회가 온다면 저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었을거라며 자기 위안을 해보고 다시 감정을 추스르자. 하지만 ‘신포도’ 기술은 자주 쓰면 해롭다. 나를 돌아볼 기회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뒤 다시 올라올 때, 나 자신이 잘 보인다. 내가 잘 하는 것과 내가 부족한 것이 잘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더욱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저 포도는 시었습니다

연구 자체가 허무해질 수도 있다. 이런 연구 해 봐야 뭐하나, 이런 논문 써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내 이력서에 한 줄 더 들어가는 것 말고, 내 논문이 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나. 이와 같은 마음이 수시로 든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 논문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논문을 쓰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도 없고 취직을 할 수도 없으니까 억지로 논문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는 교수로 지낸 지 이제 10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여전히 그런 논문도 쓰고 있다. 더 의미 있는 논문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별 시답지 않은 내용의 논문도 많이 쓰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항상 크고 멋진 논문만 쓰고 싶지만, 학생 지도하는 입장에서 그것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내 연구에서 의미는 찾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작은 아니지만 습작인 것이다. ‘성실한 습작’이라고 하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연구 주제에, 세상을 놀라게 하지 못하는 연구 결론이지만 내가 가졌던 질문에 나는 성실히 고민했고 꼼꼼한 답을 내어놓았다. 습작들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 대작을 쓸 기회가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논문이 거절되었어요

학술지에 출판하기 위해서 혹은 학회에 참가하여 발표하기 위해서 제출한 논문이 거절되는 일은 아주 흔하다. 흔하지만 거절될 때마다 가슴이 쓰라린 다. 대학원생으로 처음 제출한 논문이 거절된다면 그 아픔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지난 몇 개월 혹은 몇 년간 공들여 작업한 결과물이 거절당한다면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거절된 사유와 논문 심사자들의 비평을 읽어보면 큰 분노가 일어나거나 큰 슬픔이 일어나거나 혹은 분노와 슬픔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심사를 맡은 사람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것처럼 보이고 비평이 전혀 말도 안 될 경우가 있을 것이고, 내가 분명히 논문에 써놓은 중요한 사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며 혹독한 비평을 한 심사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엔 분명히 화가 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심사자의 비평이 매우 정확하고 내 연구의 약점에 대한 지적이 칼날 같을 때도 있다. 내가 읽어봐도 거절의 사유가 분명해서 할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의 능력 부족에 슬퍼지고 나의 노력 부족에 화가 날 수도 있다.

일단 며칠 슬퍼하자. 단것도 좀 먹고 술도 좀 마시자. 재미있는 드라마도 좀 보고 만화책도 좀 읽자. 게임도 좀 하고 건담이나 레고도 좀 조립하자. 컬링 대표팀의 ‘안경선배’도 올림픽 출전권을 놓친 후에 건담을 조립하며 마음을 추슬렀다고 하지 않나. 그동안 논문 심사 결과는 생각도 하지 말고 비평을 다시 읽어 보지도 말자.

 

내가 논문이 리젝될 때 마다 건담을 조립했으면, 건담 박물관…

 

며칠 지난 후에 충분히 슬퍼했다 생각되면, 비평을 다시 꺼내서 읽어 보자.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읽힐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비평은 다시 곰곰이 곱씹어 보니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의미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수도 있고, 내가 분명히 논문에 써놓은 것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써놓지 않았다고 혹평한 것은 내가 글을 충분히 다듬어서 잘 쓰지 않았음을 반성하게 될 수도 있다.

내 연구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날카로운 비평은 다시 읽어 보니, 내 연구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고수의 조언임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내 연구의 약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던 비평은 내 연구를 근본부터 무너뜨리는 지적인 줄 알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논문을 쓸 때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쉽게 해결이 가능한 부분임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쓴 논문을 시간을 들여 읽어 주고 비평을 해 준, 심사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공들여서 수정한 다음 다른 학술지나 학회에 다시 제출하면 된다. 내가 쓴 논문을 출판해 줄 학술지는 어딘가에는 있다. 아무렇게나 대충 휘갈겨 쓴 논문도 출판해주는 이상한 학술지도 많다. 그런 곳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고 싶으니까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공을 들여야 한다. 처음 제출에서 받은 비평을 바탕으로 내 연구의 약점을 보완하고 글을 다듬는다면, 어쩌면 처음 제출한 학술지/학회보다 더 좋은 곳에서 출판해 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렸다.

직장이 잡히지 않아요

박사과정 졸업의 마지막 관문 중의 하나는 취직이다. 취직 잘 안 된다.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안 됨. 박사 학위자가 필요한 직장은 많지만, 내 전공의 내 연구 분야가 필요한 직장은 또 별로 없다. 내 박사 학위의 의미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직장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고 넓어질 수도 있다.

내가 박사과정에서 진행했던 연구 분야의 연구를 그대로 이어서 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자 한다면, 선택의 폭은 굉장히 좁다. 박사 후 연구원이나 교수, 혹은 큰 정부 연구소 및 대기업 연구소의 특정 부서 이외엔 갈 곳이 없을 지도 모른다. 반면에, 박사학위의 의미를 새로운 문제에 논리적인 답을 내어놓을 수 있도록 독립적인 연구자의 소양을 갖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의 종류는 조금 더 많아진다. 어느 것이 자신에게 옳은 답인가 하는 것은 자신만이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박사 마지막 해 직장을 구하면서 내 연구는 기업에서는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내 박사학위의 의미를 좁게 해석했다. 선생님, 산업공학 박사학위가 기업에 필요가 없다니 무슨 말입니까… 그래서 원서를 내볼 수 있는 곳은 대학교나 연구소뿐이었다. 전 세계 50여 군데 원서를 냈다. 3개 대륙에 있는 5개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갔고 성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잡마켓이 닫힐 때가 다 되어 가는데 아무 곳에서도 나를 원하지 않았다. 심각한 우울감에 빠졌다.

내가 지난 5년여간 노력한 연구는 결국 나를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5년이 헛되어 보였고 허무했다. 지도교수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앞으로 1년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대학원에서 시간을 더 보낼 자신이 없었다. 삶의 의욕이 없어지는 것 같았고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몇 주 뒤에, 운이 좋게도 한 곳에서 극적으로 일할 기회를 받았고, 모든 고민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취직이 안돼서 얻은 병에는 취직이 약…

나는 부족한 실력에 비해 운이 좋은 경우다. 나는 2008년 여름이 시작될 때 즈음 직장을 구할 수 있었는데, 그해 여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며 찾아온 금융 위기로 그다음 해부터 대부분의 학교에서 신임 교수를 채용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1년만 더 늦게 졸업했더라면, 학계에서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학위 과정 중간에 석사 과정을 마치고 좀 더 명성이 좋은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싶은 욕심에 학교를 옮겨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다 떨어졌다. 올리젝 뙇! 만약 한 군데에서라도 합격했더라면 학교를 옮겼을 것이고 일이 년은 졸업이 늦어졌을 거다. 그러면 졸업할 때 직장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다.

학계에선 나보다 운이 좋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훌륭한 연구를 했지만, 내가 졸업하는 해에 내 연구 분야를 채용하는 학교나 연구소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신임교수 채용이 비교적 활발한 공학분야는 조금 사정이 낫지만, 신임교수 채용 속도가 비교적 더딘 인문학 분야에서는 자기 전공 분야를 뽑는 학교가 거의 없는 일이 자주 있다.

어느 순간에는 결정해야 한다. ‘고학력 실업자’가 될 수는 없다. 용기를 가지고 내 박사학위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던가, 한두 학기 단기 계약을 하는 강사 자리를 찾아가며 전 세계를 유랑할지라도 학계에서 끈을 놓지 않을만큼 연구자 혹은 교육자의 꿈이 큰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전자를 택해서 학계에선 불가능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분도 많고, 후자를 택해서 몇 년의 고생 끝에 결국엔 학계에 자리 잡은 분도 많다. 물론 전자를 택했다가 연구자/교육자의 꿈을 버리지 못해 다시 학계로 돌아오는 분도 많고, 후자를 택했다가 결국엔 연구자/교육자의 꿈을 이어가지 못한 분도 많다.

교수로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다른 학교로 이직하거나, 학계를 떠나기도 한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행복도를 측정하고 비교해보았는데, 테뉴어 심사 직후에는 당연하게도 행복도에 큰 차이가 있지만, 5년 정도 후에는 행복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직장을 얻고 거기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경력을 이어나가는지는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에 큰 영향은 없다는 말인 것 같다. 그깟 연구 따위…

내가 기대고 있는 말들

세상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학계에 있으면 항상 실패를 겪는다.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는데 퇴짜 맞고, 논문을 제출했는데 혹독한 비평을 받는다. 자기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해서 높은 질의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뒤에 오는 절망과 상실감을 잘 극복하기 위해선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어떤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해보고, 안 되면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안 해보면 되는지 안 되는지 알 방법도 없고, 안 되는데 그게 또 안 되었다고 슬퍼하기만 하면 우울증에 걸리는 결말밖엔 없다. 평균 채택률이 20% 정도 되는 연구재단에 연구계획서를 내면, 평범한 연구자인 내가 제출한 연구계획서가 반려될 확률은 80%라는 이야기다. 내가 제출하는 연구계획서 심사 결과의 기대값은 ‘채택’이 아니라 ‘반려’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보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해보는 수 밖에 없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 늘려서는 안 되겠지만.

내 논문/연구제안서의 운명

몇년 전 내 아내가 어디에선가 운세를 보고 와선 내가 ‘대기만성’형이라고 했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내 나름대로는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 했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그럭저럭 졸업도 했고,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어서, 여러 부침이 있긴 했지만, 어찌 됐든 테뉴어도 받았는데, 대기만성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했다. 내가 무슨 노벨상이라도 받는다는 말이냐며 웃고 넘어갔다. 안 돼 돌아가. 노벨 산업공학상은 없어.

“대기만성”

지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말이 아주 큰 힘이 된다. 내가 실제로 대기만성형 운세를 타고 났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이 보잘것없어 보이고, 잘 안 될 때마다 ‘대기만성’이라는 네 글자가 나에게 큰 힘을 준다. 오늘도 이렇게 정신승리를… 계속해보는 수 밖에 없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결과가 생긴다. 작아도 의미 있는 결과물이 쌓이다 보면 큰 결과물도 생긴다. 그렇게 믿는다.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 이 글들은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이야기들 페이스북 페이지 를 통해 팔로우 하실 수 있습니다.

– 엄태웅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블로그(영문)]
– 최윤섭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브런치(한글)]
– 권창현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홈페이지(영문)]

댓글

Exit mobile version
タイトルとURLをコピーし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