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창현의 이야기

프로 학회러의 길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다 보면 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생긴다. 학회는 뭐 하는 곳인가? 학회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회’라고 하면 두 가지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대한산업공학회’나 ‘한국고고학회’처럼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 혹은 기관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보통 society라고 한다. ‘Society of Industrial and Applied Mathematics’나 ‘The Royal Statistical Society’처럼 말이다. ‘American Economic Association’이나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처럼 association이나 institute를 학회 이름에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학회에서는 연구 분야와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을 조직하고 관리한다. 학술지(academic journal)를 출판하고, 관련 서적을 출판하거나 관련 분야의 표준안을 정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구성원들의 모임을 주관한다. ‘학술회의’라고 하는 것이다.

학술회의에 참여할 때 보통 ‘나 학회 간다’라고 말한다. 학술회의를 줄여서 학회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학회도 바로 이 학술회의이다. 학회의 형식과 규모에 따라 conference, workshop, symposium 등의 이름으로 달리 불린다.

학회는 왜 열리나?

평소에 멀리 떨어져서 각자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의 연구를 소개하고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 만들어졌다. 학회에서는 아주 다양한 형태의 행사가 준비되어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일은 구성원들이 연구 활동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학회는 왜 참석하나?

사람마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학회에 참석하겠지만, 내가 학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내 연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고, 내 연구에 일부 자랑스러운 면이 있어서 남들에게 알리고 싶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을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해서 연구하여 결과가 나왔다.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고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점도 있고 풀리지 않은 고민도 있다. 학회에 가면 내 논문을 읽을 사람도 있고, 심사했던 혹은 앞으로 심사를 할 사람도 있으며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두 모인다. 그분들 모두가 내 발표를 들으러 오진 않겠지만, 한두 명만이라도 와서 내 발표를 들어주고 같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앞으로 내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었다면 관련 분야의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도 있다.

2. 다른 사람들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엿보러 간다. 그러니까, 최신 연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간다. 내 전공 분야의 다른 연구자들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방법으로 답을 구하고 있는지 전체적인 방향도 파악하고 새롭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주제, 방법론들에 대해서 배우러 간다. 나와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방법을 썼지만, 더 나은 결과를 얻은 연구자에겐 부러운 마음과 질투도 생기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주제이지만 전혀 다른 방법을 써서 놀라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연구에서 내 연구에 도움이 될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3.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간다. 연구한다는 거, 때로는 굉장히 외로운 일이다. 대학원에 와서 한 주제에 골몰하다 보면, 내가 관심 있어 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대상과 내가 현재 가진 어려움과 고민은 내 친구들의 그것과 굉장히 달라진다. 연구하다가 뭐가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해진 것이 있어서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곳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동료 대학원생들과도 다른 점을 고민할 때도 있고, 심지어 내 지도교수님도 답을 줄 수 없는 경우도 많으며, 같은 학교 안에서도 물어볼 곳이 없는 경우도 생긴다. 나를 아껴주는 가족, 내가 사랑하는 연인과 유머코드가 안 맞아서 타박받는 일도 잦아진다. 학회에 가면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 나랑 말이 통하는 사람,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 도움이 되는 실마리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유머코드도 대충 비슷하다.

미리 준비하기

학회에 가면 결국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연을 맺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모두에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대학원생에겐 특히 어렵다. 학회에 가면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학회에 가서 외로움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학회에 막상 가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이는데, 나만 외롭다. 새로운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말을 건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대화를 하는데, 나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고, 딱히 할 일도 없고, 심지어 같이 밥 먹을 사람조차 없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연구 이야기를 하든 그냥 수다를 떨든 학회 참석 전에 준비가 좀 필요하다. 나는 처음에 학회에 가면 멋진 만남과 기회가 저절로 생겨날 것으로만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결국 내가 준비하고 노력해야 중요한 만남도 새로운 기회도 생기는 것이더라. 내 이상형이 코너를 급히 돌다가 나와 부딪혀서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떨어트리고 도와주던 나와 눈을 맞추게 되는 일은 여러분에겐 생기지 않아. 안 생겨요.

학회 참석 2-3주 전에 준비할 것들

학회에 자주 참석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숙련된 프로 학회러들 보통 참석 전에 많은 약속과 학회에서 할 일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다. 학회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과 미리 시간 약속을 잡는다. 차 한잔도 좋고 식사도 좋고 그냥 학회장 한구석에서 잠깐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학회 참석 한 달 전 혹은 그 이전부터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는 시간 약속을 잡는다. 학회 기간 동안 정해진 시간에 내가 누군가 만나서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은 학회 참석 기간 내내 큰 안정감을 준다. 갈 곳을 잃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방황하는 일이 줄어든다. 같은 학회에 참석하는 옆 연구실 학생들과 같이 점심식사 약속을 잡는다던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다른 학교의 연구자들과 저녁에 맥주 한잔할 계획을 잡는 것도 좋다. 같은 세션에서 발표하는 연구자에게 차 한잔 함께할 것을 제안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읽고 있던 논문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혹시 그 논문의 저자 혹은 관련 분야의 전공자가 학회에 참석하는지도 확인해보자. 혹시 잠깐 만나서 몇 가지 물어볼 수 있을지 용감하게 이메일을 보내보자. 답장이 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자신의 연구에 관해서 관심이 있고 궁금한 것이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만나줄 연구자들도 아주 많다. 대가일수록, 좋은 연구자일수록 빨리 답장이 오고 더 잘 만나준다는 말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학회 스케줄을 미리 확인하고, 어떤 발표들이 있는지 미리 둘러보고, 어떤 발표를 들으러 갈 것인지 미리 정해두자. 어떤 재미있는 주제가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학회에 참석하는지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주제의 연구가 있다면 미리 관련 논문을 읽고 가자. 학회에서 발표되는 논문이 저자의 웹페이지나 다른 곳에 이미 올려져 있을 가능성도 굉장히 크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발표 도중에 혹은 발표 후에 저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

한가지 질문에 집중하기

학회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한 가지 목표를 정해서 그 목표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체적인 트렌드 파악을 목표로 다양한 발표 세션에 참석해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배운다는 마음으로 관련 주제에 관한 세션만 집중적으로 참석하는 방법도 있겠다. 논문을 읽으면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지고 있던 질문 한 가지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방법도 있다.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연구자의 발표에 들어가서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찾아본다거나, 그런 사람에게 직접 질문을 하고 도움을 요청해서 답을 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학회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유명 연구자와 인사하기

연구를 하다 보면 자신의 관심사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연구자가 보인다.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 연구자이든, 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가이든,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결과를 내어 놓는 연구자들이 있다. 젊은 연구자들에겐 그런 사람들과 학회에서 만나서 인사말 한마디 나누고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더라도 왠지 그런 사람들과 말 몇 마디 나누고 싶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인사하고 싸인 받고 싶은 그런 마음처럼. 학회에서 네트워킹한다고 하면 꼭 그런 유명 연구자들과 인사하고 인연을 만들어야만 할 것 같고, 그래야지 내가 학계에서 성공적으로 연구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하고 스트레스받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용기를 내서 접근해서 그런 분들과 가벼운 인사말 몇 마디 나눈다고 해서 그분들이 나를 기억해 주지도 않을뿐더러 내 연구 경력에 도움이 될 일도 없다.

유명 연구자와 친해지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내 동료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유명 연구자와 내가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친한 연구자가 유명해지는 것이다.” 백번 동감한다. 내가 아이돌로 여기는 유명 연구자와 스스럼없이 인사말을 나누는 다른 학교의 대학원생들이 조금 부럽긴 하지만, 내 아이돌과 꼭 친해져야 할 이유는 없다. 나보다 한세대 혹은 두세대 앞선 연구자들과 꼭 친해져야만 할 이유는 없다. 내가 내 연구를 열심히 하다 보면 친해지려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시간이 온다. 대학원생이라면 유명 연구자들보다는 나와 같은 세대의 대학원생들이나 나보다 한 발 정도 앞서서 학계에서 자리 잡은 젊은 연구자들과 친해지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일 학계에 남을 거라면 앞으로 30년 혹은 40년은 얼굴 보고 부대끼며 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여러 동료 연구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협업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다 보면 나와 친한 사람들이 유명 연구자 그룹이 될 것이다.

다시, 네트워킹

학회에 가면 여러 종류의 네트워킹 기회가 있다. 학회마다 네트워킹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여러 가지 기회를 일부러 만든다. 학생들끼리 모아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특정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만 따로 모아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다. 저녁 시간에 간단한 다과와 마실 거리를 가져다 놓고 마치 스탠딩 파티를 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런 기회가 있으면 꼭 참석하자. 물론 어색하다. 나는 나 혼자 와서 아는 사람도 없는데 누가 나에게 말 걸어 주지도 않는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 많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참석했는데 뭔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가 어색해서 쭈뼛쭈뼛거리며 가장자리를 맴도는 사람들이 나뿐만은 아니다.

좀 어색하더라도 일단 그냥 말 걸어보자. 잘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사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 처음에 나누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날씨 이야기, 학회가 열리는 도시 이야기, 현재 소속 대학 이야기 등 약간 궁금하고 흥미롭긴 하지만 그렇게까진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중간중간 어색한 침묵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대화를 이어 나간다. 뛰어난 대화 기술의 소유자라면 이런 고민이 필요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겐 출신 지역, 국가, 문화에 상관없이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마법의 질문

어느 정도 이야기가 주고받다가, 말할 거리가 떨어져서 더 할 이야기가 없어져 가는 시점에 진짜 멋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마법의 질문이 있다. 바로 ‘요즘 어떤 연구 하세요?’이다. 결국, 학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연구 발표하러 온 사람들이고 내 관심사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고 연구를 지속해서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요즘 어떤 연구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서로 물어보는 것보다 더 좋은 질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수많은 대화 주제 중에 결국 연구 이야기 주고받는 것이 가장 쉽다. 관심사가 비슷하다면 연구 이야기가 심지어 즐거울 수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질문은 없다. 연구가 잘되면 잘되는 대로, 잘 안 되면 잘 안 되는대로 할 이야기가 많다. 혹시 또 모른다. 상대방의 연구 이야기를 듣다가 내 연구에 도움이 되는 멋진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혹은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학회 참석 1년 전부터 준비할 것들

약속을 잡고 학회 참석 목적을 세분화시킨다던가 하는 것 따위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좋은 연구를 하는 일이다. 학회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연구를 해서 여러 동료 연구자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이다. 결국, 학회 참석 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물로 만들어서 학회에 가져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좋은 연구를 발표하는 것이 역시 또 가장 멋진 네트워킹 방법이다. 내 연구가 흥미롭고 좋아 보인다면, 관심 있는 여러 사람이 내게 질문을 하고 흥미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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