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태웅의 이야기

““라는 소설이 있다. 이는 “과학논문작성 과정에 대한 고찰“이란 글로도 유명한 KAIST 전산과 박사과정 김창대님의 웹 연재소설인데, 대학원생들의 찌질하고 우울한(?) 삶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리고있어 많은 대학원생들에게 공감을 사고있다. 사실 나는 이 연재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글의 제목만으로도 나는 그 이야기가 다루는 고민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말은 아마도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을, 또는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절절히 되내였던 물음이었을 것이다. 과연 나는 박사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과연 나는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크고 작은 좌절을 겪을 때마다 대학원생들은 늘 내가 맞지않는 옷을 입으려 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부터 들곤 한다. 내가 박사를 꿈꿔도 되는지, 그것은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한 선택이다.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 듯, 석사 또는 박사에 대한 선택이 결코 “대학 다음에 대학원” 또는 “회사 대신에 대학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대안으로서의 선택 도피로서의 선택 이 최악은 막아줄 수 있을지언정 최선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있다. 물론 내 인생이 언제 최선의 길만을 걸었겠냐 만은 – 입시도 실패, 취업도 실패했었는데 말이다 – 그렇다해도 이렇게 똥차만 피하다 인생을 끝낼 순 없다. 지금부터라도 최선의 선택을 해보자. 중고등학교 때 좀 놀고, 대학교 때 좀 덜 성실하게 살았다고 해서 내 남은 인생을 모두 똥빛으로 그릴 이유는 없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는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요

대학원을 가려할 때 가장 먼저드는 생각은 아마 ‘내가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공부를 더 해볼까 생각하니 갑자기 고등학교 때부터 날고기던 공부머신의 얼굴이 떠오르고, ‘넌 정말 공부로 밀고 나가야 해’라고 믿고 있었던 우리과 과탑 친구가 갑자기 취업 스터디로 돌아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에 비해 내가 시험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얼른 공부를 때려쳐야겠다’는 괴로움 뿐이었고, 성적은 받았으되 그 과목을 내가 잘 알게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보다 성적 좋은 애들이 다 취업준비 한다는데… 내가 어떻게…

십수년 간 상대평가의 프레임에서 배워온 우리들에게 이러한 비교 판단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건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기억하도록 하자. 우리과 과탑이 대학원에 가건 안가건, 옆집 순이가 박사를 하건 안하건, 그건 내 인생의 선택에 아무 상관없는 일들일 뿐이다. 어차피 경쟁 아니냐고? 아니다. 대학원은 이제껏 봐왔던 ‘동일한 문제를 동일한 시간에 풀어 제출하는 것’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과정들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꼭 연구를 잘하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고 희망을 갖도록 하자.

석사/박사과정을 한다는 건 ‘공부를 하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연구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내가 석사/박사과정을 통해 얻는 가장 소중한 경험은 그 기간 중 공부를 했던 내용들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세우고 그것을 해결해갔던 일련의 과정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부’는 그 과정 중 아마 (논문으로 따지자면) introduction(도입)이나 related work(관련 연구조사) 부분일 뿐일 것이다. 물론 훌륭한 introduction과 related work 조사는 연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훌륭한 논문을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보단 problem formulation(문제 정의), method(방법론), experiment/evaluation(실험)이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연구의 본질은 제대로 된 문제를 제대로 된 접근으로 푸는 것이다. 그러니 단지 학습을 대학원 생활의 전부로 생각하진 말자. 학부 때 학습에 대한 비중이 어림잡아 80% 였다고 한다면, 석사 때는 40%, 박사 때는 아마 20%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밤을 새는 일은 많을 수도 있지만, 공부 때문에 밤을 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습력” 말고 진학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적호기심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그것을 이론적/실험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꼭 가야할 사람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면,

  • 나는 로봇을 보고 ‘로봇(인공지능)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을 수 밖에 없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고, (문제 제기)
  • 단순히 수많은 “if-else”로 해결하기보단, 진정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으며, (기술적 난이도)
  • 이를 위해 학자들은 어떤 고민들을 해왔는지 알고 싶었고 내 아이디어와 수학적 배경으로 이 분야에 기여를 하고 싶었다. (지적호기심과 기여 욕구)

그래서 나는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도 없는데 석사/박사과정 내내 교수님이 던져준 주제에 대해 ‘이건 내가 흥미로워야 하는 학문이다’라며 최면을 걸고 있어야한다면 당신은 아마 대학원에서도 성공적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타의에 의한 행동은 늘 자의에 의한 행동에 하위한다.  그렇기에 성공적인 연구생활을 위해선 강한 동기(motivation)가 필수적이며, 이것이 석사/박사과정 모집글에 “self-motivated”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욱 강렬하게 궁금해하고 파고들어라. 그 호기심 만이 당신에게 의미있는 경험과 좋은 성과를 가져다 줄테니 말이다.

Self-motivated
A self-motivated person.

환상

마음 같아선 ‘돈을 벌고 싶은 사람 모두 OUT’, ‘취업이 목적인 사람 모두 OUT’ 등 학문적 목적 외에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분들은 모두 부적격자로 몰고싶은 맘도 있다. 올 단두대. 하지만 ‘석사 학위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회사가 연구진은 모두 석사 이상을 요구한대서…’ 등의 현실적 부름을 모두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위에 대학원 진학을 위한 이상적인 조건들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자신의 지적호기심을 탐색할만한 “낭만적” 생각을 학부 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성적관리하기 바쁘고, 스펙 관리하기 바빴을텐데 말이다.

대부분은 어영부영 지내다보니 벌써 3, 4학년이 되었고, 갑자기 맞딱뜨린 사회의 거대한 벽 앞에서 이리저리 찾아본 돌파구 중 하나로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3 때도 학과선택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했듯, 대학원 진학에 있어서도 많은 고민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환상’에 기반하여 선택을 내리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CEO가 되고싶어 경영학과를 간다든지… CEO의 조건은 경영학과가 아니라 회장님 아빠가 아니던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데 있을 수 있는 몇가지 환상이나 오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학부 공부로 뭘 알겠어. 석사 정도는 해야 뭘 아는거지…

전혀 아니다. 석사를 해도 모른다. 박사를 하면 아냐고? 사실 박사를 해도 모른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담아야 할 그릇의 크기는 점점 커지는데 반해, 내가 채우는 속도는 좀처럼 빨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망각 속도는 위대하다. 박사과정 쯤 하고있으면 아마 학부 때 배웠던 과목들은 거의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말해 만약 당신이 막연한 일반 지식의 전체적 향상을 위해 대학원을 택했다면, 그 목적은 쉬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원은 표족한 침을 만드는 곳이지 넓은 바다를 만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교수되고 테뉴어 받은 뒤 해보시라능… 

석사나 박사하면 아마 취직은 더 잘될거야

전혀 아니다. 내가 전문분야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많은 기업들과는 업무 적합성(fit)이 어긋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괜히 대기업에서 학부졸업생들 뽑아다가 재교육 시키는 것이 아니다. 석사/박사는 각자의 전문 분야가 생기기에 그것을 살리기 위한 길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으며, 여기엔 바늘구멍 같은 경쟁이 기다릴 수도 있다. 특히 박사 학위 후 ‘포닥’이라 쓰고 일용연구직이라 읽는다을 떠돌며 고용불안에 떨고있는 이들 중에는 ‘차라리 박사하지말고 취업을 할 걸’이라며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석사나 박사 학위가 취업에 꼭 악영향만 주는건 아닐테지만, 이것이 진학의 큰 이유가 되는 건 위험한 일일 것이다.

일단 버티다보면 학위는 나올거야

석사는 ‘…그럴지도…’, 박사는 ‘전혀 아니다’. 석사는 학교에 따라 물렁하게 봐주는 곳도 있는 것 같다. 현대 들어 학생들의 교육기간이 점점 늘어나며 석사과정을 학부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도 많이 늘고 있기에, 수업을 듣고 형식을 갖춘 논문을 제출하면 다들 졸업을 시켜주는 것으로 알고있다. 또한 유럽의 경우엔 논문을 써야하는 석사학위와 수업만 들어도 되는 석사학위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물렁하게 얻은 학위는 내게 물렁한 연장책 만을 쥐어줄 뿐 내게 큰 발전을 안겨다줄 순 없기에, 그러한 ‘무사안일’이 내 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박사학위는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박사학위는 논문자격시험(일명 퀄, qualifying exam)을 통과해야하고, 박사 학위논문 제출과 이에 대한 디펜스 과정을 거쳐야하며,  졸업 요건으로서 SCI 저널논문을 요구하는 등 그놈의 SCI 시간만 버틴다고 박사학위를 주지는 않는다. 박사과정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다 이수할 경우 이를 “박사 수료”했다고 보는데, 사실 이 이후의 과정이 험난해 박사 수료 후 중도 포기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주변에서 “박사수료”란 경력을 많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간만 버티다 보면 학위가 나온다’라는 오해는 하지 말도록 하자.


이 외에도 사실 석사/박사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풀어보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20대 중반, 여러분의 소중한 2년 또는 4년을 도피로서의 선택이나 환상에 기반한 선택으로 결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선택에는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대학원 생활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연재들이 그러한 탐색의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 나눈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공부와 연구는 다르다.
  • 그러니 공부 못한다고 쫄지마라.
  • 근데 공부 못한다고 연구를 잘한다는건 아니잖니;;;
  • 중요한건 지적 호기심이다.
  • 궁금하냐? 그럼 해라. 안궁금하냐? 그럼 하지마라.
  • 환상만 갖고 결혼하지마라 대학원에 가지마라
  • 석사/박사가 보장해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
  • 줄 수 있는 건 이 노래밖에 없다 문제해결 경험이다.
  • 풀고자 하는 문제가 있다면 대학원에 도전하라.
  • 그렇다고 꼭 성공한단 뜻은 아니고…;;;

기승전 나도몰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이시간에 하기로 한다. 주간 폭탄 돌리기, 다음 글은 윤섭님께로~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 이 글들은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이야기들 페이스북 페이지 를 통해 팔로우 하실 수 있습니다.

– 엄태웅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블로그(영문)]
– 최윤섭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브런치(한글)]
– 권창현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홈페이지(영문)]

댓글

タイトルとURLをコピーし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