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이 갖추어야 할 의외의 덕목들 4가지

태웅의 이야기

“무슨 일 하세요?”
“아 네. 저 아직 박사과정 공부 중 입니다.”
“우와.. 대단하세요. 전 대학교 이후 더는 공부 못하겠던데 ㅎㅎ”
(…사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ㅠㅠ)

대학원에 다니시는 분들은 아마 이런 대화를 꽤나 많이 나눠봤을 것 같다. “박사”라는 이름이 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사람들은 박사라고 하면 공부를 엄청 좋아하고 열심히 책상 앞에서 공부만하는 공부벌레를 상상하는 것 같다. 물론 두꺼운 책들이 책상 앞에 꽂혀있는 것도 맞고,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하는 것도 맞지만, 그것이 꼭 내가 두꺼운 책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를 하는 공부벌레란 뜻은 아니다ㅠ 그러니 지금도 필자가 이렇게 딴짓을 하고있지 않은가…

컴퓨터 수업의 현실… 벌써 아비터 체제까지 갖춰졌다.

우리가 막연히 갖고있는 박사, 교수, 학자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이처럼 실제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특히나 그들의 미래 모습을 상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옛날엔 책만 열심히 파면 유능한 박사가 될 수 있었는지 몰라도, 요즘엔 참으로 다양한 덕목들이 박사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이다.  그래서 오늘은 ‘박사는 공부벌레야’가 아닌 그들이 갖추어야 할 추가적인 (어쩌면 의외인) 덕목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세상에 한가지 유형의 사람만 존재하지 않듯, 박사도 정말 다양한 형태로 본인들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고있다. 그러니 본인이  박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말자. 당신만의 개성이 발휘될 수 있는 사회가 왔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공부는 혼자하는가? 보통 그렇다.  물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도 많이 하지만, 최고 퍼포먼스는 역시 시험 전날 독서실에 쳐박혔을 때 나온다. 그렇다면 연구는 혼자하는가? 답은 ‘절대 아니다’. 심지어 독방에 박혀 혼자 연구를 하는 사람마저도 논문과 피어리뷰(논문심사) 과정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팀을 이뤄 연구하는 경우는 더더욱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있고 말이다.

결국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지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지식을 발표하는 일 모두 본인과 세상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대화가 안통하는 사람은 어디에 가든 답이 없다…

어떤 연구자들은 본인의 전문분야가 칼 같이 좁고 뾰족해서 자신의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대화가 잘 안통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어떤 연구자들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학습력이 뛰어나, 심지어 그것이 본인과 전혀 다른 분야일지라도 적정수준까지 이해하고 소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은 보통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진다. 생소한 분야의 개념들을 어찌 두꺼운 책을 통해 공부한단 말인가. 대화의 장소가 연구실 내가 되었든, 학회가 되었든, 이메일이 되었든, 온라인 커뮤니티가 되었든 간에, 서로 질문을 주고 받으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지식을 쌓고 교류를 쌓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평소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즐기고 ,이를 통해 많은 정보들을 얻는 편인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연구자는 늘 세상과 소통하고 있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고 많은 것들이 융합하는 시대엔 더더욱 그렇다. “요즘 어떤 연구하고 있어요?”, “그건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핫한 거에요?”, “내가 이런 고민이 있는데 혹시 의견 좀 줄래요?” 등등.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은 책 속에 파묻혀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 시간을, 단 대화 몇마디만으로, 그것도 정확히 핵심을 찔러가며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세상과 함께 고민하자. 그 중심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사업적/정치적 능력

사업질, 정치질만 하는 학자라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사업적 능력에 정치적 능력까지 갖춘 학자라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지 않을까?

사업질, 정치질”만” 하는 학자들이 많은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만 잘해도 잘나가는 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 비정한 현실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것만으로도 잘나가는 학자가 될 수 있는데, “그것마저” 갖춘다면 얼마나 훌륭한 학자가 되겠느냐는 말이다. 학자들도 사업적/정치적 능력을 그저 ‘더럽다’며 경시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능력들도 고루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교수가 연구실을 운영하는 것은 여러모로 스타트업 경영과 비슷한 면이 많다.

  • 투자를 받아야 한다.
  • 인력난이 심하다. (인력들이 2년~4년이면 그만둔다.)
  • 좋은 제품(논문)을 만들어야 한다.
  • 그러려면 충분한 투자와 양질의 인력이 필요하다.
  • 돈, 돈, 돈….

교수는 잠재력 있는 재원을 받아 그들을 성장시키며 함께 좋은 연구를 수행해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들을 펀딩해주고 좋은 연구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는 “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정부과제나 기업과제를 잘 따와야하는데, 학생들을 귀찮게 하지않는 양질의 프로젝트들(=연구와 관련이 많고 잡일이 적으며 연구비가 큰 것들)를 따오려면 정부, 기업, 학계와의 적절한 관계유지는 필수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만 파묻혀 사는 교수보다는 어쩌면 적절한 사업적 능력, 정치적 능력을 갖춘 교수가 많은 학생들과 함께 더 좋은 연구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덧1: 물론 대가나 훌륭한 인재들에겐 이러한 걱정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사회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대부분에겐 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지만 말이다.)
(덧2: 한국에는 사업과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다가 결국엔 여기에 함몰되어 학문의 본질과 학생의 교육으로부터는 멀어지는 교수들도 많이본다. 과유불급이다.)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교수가 아닌 산업계에 있는 박사라면 더더욱 사업적, 정치적 능력이 중요하다. “사업력”이라 함은 기술을 고객의 수요와 마침맞게 연결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정치력”이라 함은 많은 사람과 조직들을 움직여 결국 도전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다. 그 어떤 것도 “기술”만으로는 목표를 완수할 수 없다. 그러니 본인의 기술을 단단하게 갖고있는 것과는 별개로 사업력, 정치력을 갖추는 것 역시 박사에겐 무시하지 말아야 할 능력일 것이다.

본인이 비지니스적인 마인드가 있고 여러사람들과 큰 과제를 도모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마케팅/브랜등 능력

필자가 속해있는 딥러닝 연구분야는 정말 “신세대”들이 모인 연구분야이다. 꼭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렇기도 하지만…) 정말 파격적인 문화들이 급진적으로 학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대부분의 저널은 open access (누구나 무료로 열람이 가능한 방식)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연구자들은 학회나 저널 출판을 기다리지 않고 본인의 성과를 arXiv.org 에 업로드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논문 심사조차도 open review를 통해 “댓글로” 서로 까고 방어하고 점수 주는 오디션형(?) 논문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레터를 보내 기고를 하고, 우편으로 저널을 받아보며 공부하는 시대에 비해 지금은 인터넷 기술이 상전벽해 하였으니,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변화일지 모른다. (그리고 필자는 타 분야도 미래엔 이런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고있다.)

딥러닝 학계에서 발견되는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연구자들이 트위터 계정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하며 “마케팅”을 펼친다는 점이다. 학자의 논문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읽히고 그 기술이 이용되고 인용될 때 더욱 빛난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논문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그렇게 주목받는 논문이 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본인이 정성들여 출판한 논문이 관심받지 못하고 사장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마케팅”. 요즘 딥러닝 연구자들은 단지 논문만 출판하는 것이 아니라 트위터를 통해 독자의 접근성을 높히고, 쉬운 블로그 글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코드 공개를 통해 독자의 사용을 쉽게하는 등, 논문 출판이 끝이 아니라 그것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필자도 이렇게 트위터를 통해 논문 홍보를 하고있다. 그리고 이 첨부사진도 사실 마케팅을 하고 있는거다…

어떤 논문들이 잘 인용되는가를 유심히 살펴보면 주로 “유명인”의 논문들이 많이 인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명인이라 함은 물론 대가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나처럼….  마치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뜨는게 맞지만 초반엔 홍보를 위해 예능활동도 해야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쏟아지는 논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독자에게 도달율을 높여야하고, 이를 위해선 비록 본인이 대가는 아닐지라도 차곡차곡 개인 브랜드를 쌓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개인 브랜딩이라는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무기로 꾸준히 자신을 세상에 노출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OOO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의 개인 브랜드도 생길 것이며, 본인 논문의 영향력도 점차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실력이 먼저다. 마케팅에 앞서, 먼저 누구에게 팔아도 부끄럽지 않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마케팅은 좋은 상품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팔릴 때 쓰는 수단일 뿐이다. 상품도 좋지않으면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그저 사기꾼이니 주의하도록 하자.

평소에 사람들에게 “너 사기꾼해도 되겠다”라는 말을 듣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

연애 잘하는 능력

‘엥? 무슨 얘기인가?’ 싶으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연애를 잘하는 능력은 박사과정에서 너무나너무나너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수월하게 연애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정말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은 참 기나긴 항해이다. 항해를 하다보면 대부분은 아마도 서른 언저리를 찍을 것이고, 그 사이에 연애와 이별과 연애와 이별을 해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과정 중에 혹은 박사과정을 갓 마치고 결혼을 해야할 것이며, 따라서 연애와 결혼은 박사과정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부분일 것이다. 박사과정의 연애에는 험난한 장벽들도 많다. 어쩌면 돈을 벌지못한다는 사실에 경제적 압박을 받을 수도 있고, 유학을 하는 이들이라면 장거리 연애에 힘들어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필자 주위에선 연인이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각각 박사를 마치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교수임용이 이루어져 네버엔딩 롱디 연애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봤다.

박사과정이 곧 20대 중후반과 30대 초중반의 삶을 의미하는 만큼, 연구와 함께 다른 인생의 과정들도 순탄하게 진행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순탄하게 연애하고 결혼을 하는 일일 것이다. (모두가 결혼을 해야한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만약 연애를 하는데 매우 많은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야한다면 어떨까? 누구는 소개팅 몇번으로 쉽게 이성친구를 사귀어 오는데 본인은 수십번 소개팅을 해도 생기지 않는다면?(ㅠㅠ) 누구는 헤어져도 금방 ‘사람은 사람으로 잊혀지네’를 실현하는데, 본인은 헤어지고 처절하게 망가져 술만 퍼마시고 있다면?(ㅠㅠ) 누구는 연인이 힘도 되어주고 긴 박사과정을 응원해주는데 본인은 늘 만나면 싸움이고 전쟁같은 사랑을  하고있다면?(ㅠㅠ)

연애를 잘하는 능력은 참으로 중요하다. 좋은 연구도 모든 생활이 순조로이 흘러갈 때 가능하다. 기나긴 박사과정 항해를 하다보면 슬럼프도 빠지고, 괴로운 때도 있고, 현실로부터 도망쳐버리고 싶은 때도 있을텐데, 이러한 희노애락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연인이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니 박사과정을 고민하고 있는 학생이시라면 우선다양한 연애를 통해 연애능력을 길러놓도록 하자. 당장 소개팅 고고

잘생겼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은 농담이고, 여자친구가 있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은 농담이고…

모두들 미안…ㅠㅠ

연구란 원래 상상을 현실로 실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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