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가, 아닌가? –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가, 아닌가?

창현의 이야기

지금 대학원에 와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연구인가, 아닌가?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연구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은 연구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하는지 알아보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If we know what it was we were doing, it would not be called research, would it?”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우리말 부분은 내가 적당히 번역한 것이다. 여러가지로 음미할 수 있는 말이지만, 우선 ‘모른다’에 주목해보자.

다음 어학사전은 ‘연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어떤 일이나 대상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이치나 진리를 밝힘’. 구글과 메리엄-웹스터사전에서는 ‘research’를 각각 ‘the systematic investigation into and study of materials and sources in order to establish facts and reach new conclusions’과 ‘careful study that is done to find and report new knowledge about something’이라고 정의한다. 뭔가 조심스럽고 깊이있게 접근해서 결국 새로운 이치나 진리를 얻는다.

아인슈타인의 말과 한 번 조합해보면, 연구란 뭘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 열심히 하다가,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인 것 같다.

이 정의는 말은 잘 되지만, 조금 뜬구름을 잡는 듯 한 느낌이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연구가 아닌지 알아보자. 좀 더 정확히는 무엇이 연구의 ‘목표’인지 아닌지 알아보자. 내가 연구 제안서를 쓸 때 아주 큰 도움을 받은 글이 있다. 미국 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의 공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신 George Hazelrigg의 ‘Honing Your Proposal Writing Skills’라는 글이다. 구글에서 ‘NSF CAREER Proposal Writing Tips‘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경전처럼 생각하며 종종 다시 읽어보는 문서이다.

이 문서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There are many words that, to reviewers, mean “not research.” These include “develop,” “design,” “optimize,” “control,” “manage,” and so on. If your statement of your research objective includes one of these words, for example,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develop….,” you have just told the reviewers that your objective is not research, and your rating will be lower.

무엇인가를 개발(develop), 설계(design), 최적화(optimize), 제어(control), 관리/조종(manage) 등을 하는 것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거다. 재미있다. 공학 분야에서는 저런 것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하는 논문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고, 심지어 연구 제안서에서도 저런 것이 목표라고 하는 연구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그것이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한다. 순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국과학재단에서 수십년간 일해오신 분께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이 분이 더 재미있고 더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해주신다. 공학 연구의 목표를 기술하는 방법은 자신이 알기로는 단 4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1.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test the hypothesis H.” (가설 검정)
2.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measure parameter P with accuracy A.” (측정)
3.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prove the conjecture C.” (추측 증명)
4.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apply method M from disciplinary area D to solve problem P in disciplinary area E.” (학제간 융합 연구)

사회과학과 공학이 어렴풋이 겹쳐지는 분야를 연구하는 내가 보기에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저 4가지 범주 이 외의 일반화된 연구 목표 기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법도 하다.

내 분야의 NSF 프로그램 담당자께서 해주신 조언이 있다. 어떤 연구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그 결과로, ‘지금은 우리 인류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비교적 명확히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NSF에서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처음의 사전적 정의와 일맥상통한다. 아인슈타인의 말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인슈타인 본인도 연구 제안서를 쓸 때 즈음 되서는 목표가 비교적 명확해졌을것이라 (내 마음대로) 추측해본다.

그럼 위에서 언급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무엇일까? 이런 단어를 언급하는 연구 논문과 연구자들이 아주 많은데,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하니 그 실체가 궁금해진다. 내가 볼 때 이것들은 어떤 연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활동들이다. 언급한 활동들 자체가 연구는 아니지만, 저 활동을 하지 않고 연구를 할 수는 없다. 저런 행위들이 연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작업(task)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박사학위를 받았을 당시만 해도 나는 저런 행위들이 연구 그 자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Hazelrigg의 글을 읽었을 때는 많이 놀랐다.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는 ‘연구’는 지도교수님께서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일을 도우면서 연구에 필요한 여러가지 활동들, 즉 개발, 설계, 최적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구가 뭔지도 모르면서 연구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았던 걸 보면, 나만 그랬던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연구의 목표와 작업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연구에 필요한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었으니,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틀린 말은 아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자. 예를 들어 어떤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을 생각해 보자. Hazelrigg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연구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일 수는 없다.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은 분명 중요한 연구 행위이지만,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연구의 목표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만일 그 알고리즘이 동물 사진 중에서 고양이 사진을 골라내는 알고리즘이라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것이 목표이지, 알고리즘 개발이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차이는 명확하다.

심지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는 분들도 단지 고양이 사진 구분만이 연구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잘 인지하고 있을 거다. 고양이 사진, 개 사진을 넘어선 그 너머 어딘가에 ‘목적’이 향하고 있을 거다. 작업과 목표, 그리고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자.

작업(task): 일정한 목적과 계획 아래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일을 함
목표(objective): 활동을 통하여 이루거나 도달하려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목적(goal): 이루려고 하는 일이나 방향

작업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며, 목표는 그 작업이 이루려는 대상이며, 목적은 궁극적으로 내 연구의 목표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다.

연구에서 처음부터 목적과 목표가 명확한 경우는 잘 없다. 처음부터 목적과 목표가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라면 운이 좋다. 지도교수님이나 연구실의 다른 선배들이 이미 갈 길을 잘 닦아 두었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1단계 ‘문제를 쓴다’ 부분이 해결 되었기 때문에, 이제 다양한 연구활동 및 작업을 하며 ‘진짜 열심히 생각’하면 되겠다.

자신의 연구 방향을 잡고 싶은 학생, 혹은 지도교수님이 하라고 시킨 이 연구의 방향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은 학생은, ‘연구 주제에 대해 삼단계로 말해보기’ 방식을 이용하면 좋겠다. ‘A Manual for Writers of Research Papers, Theses, and Dissertations‘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음의 예를 보자.

(당신은 무엇에 대해 공부하고 있나요?)
1. 저는 X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그 주제를 공부하고 있지요?)
2. 왜냐하면, 저는 왜 Y인지 알고 싶거든요.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3. 그러면, 제가 다른 사람들이 왜 Z인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거든요.

1단계는 연구에 필요한 활동 혹은 작업(task)이다. 개발, 설계, 최적화 같은 것들 말이다. 2단계는 연구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지식이며 연구의 목표(objective)이다. 3단계는 연구의 목표를 이룸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목적(goal)이며 연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대학원생일 때는 주로 1단계에 모든 시간을 쓰고,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하지만, 2단계와 3단계, 그러니까 연구의 목표와 목적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보면서 연구를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에서 묻는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을지 모른다. 대신 내가 하는 연구활동과 내가 세운 연구의 목표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좋은 연구를 하는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학생 시절 그랬듯이, 논문의 다른 부분은 다 잘 쓸 수 있는데, 첫번째 서론(Introduction)부분을 잘 쓰지 못하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연구의 방향을 잘 파악하고 이해한다면 적어도 서론 부분은 조금 더 명확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음 후속연구에서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도 잘 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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