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안정적인 삶, 그런 거 없다.

태웅의 이야기

“좀처럼 글이 잘 나오질 않네요…”

지난 3년의 집필 과정 중 절반은 이런 고통 속에서 겨우 글을 짜냈었다. 지금 쓰는 에필로그 역시 마찬가지다. 에필로그로 어떤 글을 써야할 지에 대해 지난 한달을 고민했는데, 결국 좋은 주제를 찾지 못해 쓰는 글이 ‘좀처럼 글이 잘 나오질 않네요’란 글이다. 참으로 한심하다.

근데 어쩌면 이 말이야 말로 나의 지난 3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인생을 표현하는 말 역시 ‘좀처럼 논문이 잘 나오질 않네요’, ‘좀처럼 실험결과가 잘 나오질 않네요’, ‘좀처럼 성적이 잘 나오질 않네요’, ‘좀처럼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질 않네요’ 등, 늘 ‘좀처럼 잘 ㅇㅇ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참으로 답답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한심하고 답답한 상태가 인생의 본성(nature)이고 기본 모드(default mode)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어쩌면 이런 지극히도 자연스런 인생의 본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룰 수 없는 환상만 좇다 보니 이리 불행한 건 아닌가 싶다. 동화 속 신데렐라만 꿈꾸는 소녀가 어찌 현실해서 행복할 수 있겠는가? 신데렐라도 환상이고, 일이 술술 풀리는 인생 역시 환상이다. 하는 일마다 턱턱 막히고,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고꾸라지는 것이 인생의 본성이고 기본 모드다. 그러니 우리가 ‘별일 없이 산다’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

불안정한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이 나를 안정적인 미래로 이끌어 줄 거라 기대한다. 그래서 수많은 청년들이 의대 진학을 희망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안정적인 사람과의 결혼을 꿈꾸나 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인생에 영원한 안정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왜냐하면 불안정이 인생의 본성이고 기본 모드이기 때문이다. 입시경쟁에 고통 받는 고등학생은 좋은 대학만 가면 고민이 다 해결될 거라 믿겠지만, 고민들은 그저 다른 고민들로 대체될 뿐, 대학에 간다고 고민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직장 역시 마찬가지다. 힘겹게 취업의 바늘구멍을 뚫었다 해도 이내 “퇴사”를 꿈꾸는 것이 한국 직장인의 현실이다. 결혼 역시 마찬가지인데, 안정된 삶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결혼은 더 많은 사회적 역할의 저글링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곤 한다. 그 속에서 개인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여럿 봐왔다.

안정은 환상이다. 불안정이 디폴트다.
술술 풀리는 인생은 환상이고, 뭐든 턱턱 막히는 인생이 디폴트다.

그러니 지금 삶이 불안정하다고, 지금 삶이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좌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소셜미디어 속 사진에 속아 못 느낄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시궁창 같은 현실에 살고 있고, 누구나 불안한 미래와 싸우고 있다. 필자의 삶도 예외가 아니다.

중요한 건 탈출이 아니라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다. 행복한 삶은 안정된 삶,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삶이 아니라, 불행과 함께 공존할 줄 아는 삶이다. 그러한 삶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대학원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행복한 대학원 생활은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이상적인 나날들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꽃을 피울 줄 아는 현명한 처신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괴로운 현실 속에서도 모두 한낱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필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집필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고, 아직까지도 내가 대학원생일 줄 몰랐다. 처음 집필을 시작할 땐 ‘내 주제에 무슨 조언을!’이라며 염치 모르고 글을 쓰는 내 자신을 한없이 부끄러워 했는데, 내 역할이 조언이 아닌 “공감”과 “위로”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의 서두에도 밝혔지만 이 책의 목적은 누군가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것에 있지 않다. 나는 그러한 정답을 알고 있지도 않고, 쓸 자격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공감하고 위로해드리고 싶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면 내겐 그 만큼의 보람이 또 없을 것 같다.

“지금껏 잘 살아오셨고, 지금도 잘 하고 계신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 말고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잘 해 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이 그런 당신께 조그만 응원이 되었으면 한다. 모두 화이팅!”

 

책은 4월에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엄태웅 드림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 이 글들은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이야기들 페이스북 페이지 를 통해 팔로우 하실 수 있습니다.

– 엄태웅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블로그(영문)]
– 최윤섭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브런치(한글)]
– 권창현님의 [페이스북], [블로그(한글)], [홈페이지(영문)]

댓글

タイトルとURLをコピーし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