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의 집필 과정 중 절반은 이런 고통 속에서 겨우 글을 짜냈었다. 지금 쓰는 에필로그 역시 마찬가지다. 에필로그로 어떤 글을 써야할 지에 대해 지난 한달을 고민했는데, 결국 좋은 주제를 찾지 못해 쓰는 글이 ‘좀처럼 글이 잘 나오질 않네요’란 글이다. 참으로 한심하다.
근데 어쩌면 이 말이야 말로 나의 지난 3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인생을 표현하는 말 역시 ‘좀처럼 논문이 잘 나오질 않네요’, ‘좀처럼 실험결과가 잘 나오질 않네요’, ‘좀처럼 성적이 잘 나오질 않네요’, ‘좀처럼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질 않네요’ 등, 늘 ‘좀처럼 잘 ㅇㅇ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참으로 답답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한심하고 답답한 상태가 인생의 본성(nature)이고 기본 모드(default mode)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어쩌면 이런 지극히도 자연스런 인생의 본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룰 수 없는 환상만 좇다 보니 이리 불행한 건 아닌가 싶다. 동화 속 신데렐라만 꿈꾸는 소녀가 어찌 현실해서 행복할 수 있겠는가? 신데렐라도 환상이고, 일이 술술 풀리는 인생 역시 환상이다. 하는 일마다 턱턱 막히고,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고꾸라지는 것이 인생의 본성이고 기본 모드다. 그러니 우리가 ‘별일 없이 산다’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
불안정한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이 나를 안정적인 미래로 이끌어 줄 거라 기대한다. 그래서 수많은 청년들이 의대 진학을 희망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안정적인 사람과의 결혼을 꿈꾸나 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인생에 영원한 안정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왜냐하면 불안정이 인생의 본성이고 기본 모드이기 때문이다. 입시경쟁에 고통 받는 고등학생은 좋은 대학만 가면 고민이 다 해결될 거라 믿겠지만, 고민들은 그저 다른 고민들로 대체될 뿐, 대학에 간다고 고민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직장 역시 마찬가지다. 힘겹게 취업의 바늘구멍을 뚫었다 해도 이내 “퇴사”를 꿈꾸는 것이 한국 직장인의 현실이다. 결혼 역시 마찬가지인데, 안정된 삶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결혼은 더 많은 사회적 역할의 저글링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곤 한다. 그 속에서 개인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여럿 봐왔다.
그러니 지금 삶이 불안정하다고, 지금 삶이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좌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소셜미디어 속 사진에 속아 못 느낄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시궁창 같은 현실에 살고 있고, 누구나 불안한 미래와 싸우고 있다. 필자의 삶도 예외가 아니다.
중요한 건 탈출이 아니라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다. 행복한 삶은 안정된 삶,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삶이 아니라, 불행과 함께 공존할 줄 아는 삶이다. 그러한 삶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대학원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행복한 대학원 생활은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이상적인 나날들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꽃을 피울 줄 아는 현명한 처신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괴로운 현실 속에서도 모두 한낱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필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집필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고, 아직까지도 내가 대학원생일 줄 몰랐다. 처음 집필을 시작할 땐 ‘내 주제에 무슨 조언을!’이라며 염치 모르고 글을 쓰는 내 자신을 한없이 부끄러워 했는데, 내 역할이 조언이 아닌 “공감”과 “위로”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의 서두에도 밝혔지만 이 책의 목적은 누군가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것에 있지 않다. 나는 그러한 정답을 알고 있지도 않고, 쓸 자격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공감하고 위로해드리고 싶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면 내겐 그 만큼의 보람이 또 없을 것 같다.
“지금껏 잘 살아오셨고, 지금도 잘 하고 계신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 말고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잘 해 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이 그런 당신께 조그만 응원이 되었으면 한다. 모두 화이팅!”
책은 4월에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엄태웅 드림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무슨 일 하세요?” “아 네. 저 아직 박사과정 공부 중 입니다.” “우와.. 대단하세요. 전 대학교 이후 더는 공부 못하겠던데 ㅎㅎ” (…사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ㅠㅠ)
대학원에 다니시는 분들은 아마 이런 대화를 꽤나 많이 나눠봤을 것 같다. “박사”라는 이름이 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사람들은 박사라고 하면 공부를 엄청 좋아하고 열심히 책상 앞에서 공부만하는 공부벌레를 상상하는 것 같다. 물론 두꺼운 책들이 책상 앞에 꽂혀있는 것도 맞고,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하는 것도 맞지만, 그것이 꼭 내가 두꺼운 책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를 하는 공부벌레란 뜻은 아니다ㅠ 그러니 지금도 필자가 이렇게 딴짓을 하고있지 않은가…
컴퓨터 수업의 현실… 벌써 아비터 체제까지 갖춰졌다.
우리가 막연히 갖고있는 박사, 교수, 학자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이처럼 실제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특히나 그들의 미래 모습을 상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옛날엔 책만 열심히 파면 유능한 박사가 될 수 있었는지 몰라도, 요즘엔 참으로 다양한 덕목들이 박사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이다. 그래서 오늘은 ‘박사는 공부벌레야’가 아닌 그들이 갖추어야 할 추가적인 (어쩌면 의외인) 덕목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세상에 한가지 유형의 사람만 존재하지 않듯, 박사도 정말 다양한 형태로 본인들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고있다. 그러니 본인이 박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말자. 당신만의 개성이 발휘될 수 있는 사회가 왔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공부는 혼자하는가? 보통 그렇다. 물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도 많이 하지만, 최고 퍼포먼스는 역시 시험 전날 독서실에 쳐박혔을 때 나온다. 그렇다면 연구는 혼자하는가? 답은 ‘절대 아니다’. 심지어 독방에 박혀 혼자 연구를 하는 사람마저도 논문과 피어리뷰(논문심사) 과정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팀을 이뤄 연구하는 경우는 더더욱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있고 말이다.
결국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지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지식을 발표하는 일 모두 본인과 세상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대화가 안통하는 사람은 어디에 가든 답이 없다…
어떤 연구자들은 본인의 전문분야가 칼 같이 좁고 뾰족해서 자신의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대화가 잘 안통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어떤 연구자들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학습력이 뛰어나, 심지어 그것이 본인과 전혀 다른 분야일지라도 적정수준까지 이해하고 소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은 보통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진다. 생소한 분야의 개념들을 어찌 두꺼운 책을 통해 공부한단 말인가. 대화의 장소가 연구실 내가 되었든, 학회가 되었든, 이메일이 되었든, 온라인 커뮤니티가 되었든 간에, 서로 질문을 주고 받으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지식을 쌓고 교류를 쌓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평소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즐기고 ,이를 통해 많은 정보들을 얻는 편인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연구자는 늘 세상과 소통하고 있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고 많은 것들이 융합하는 시대엔 더더욱 그렇다. “요즘 어떤 연구하고 있어요?”, “그건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핫한 거에요?”, “내가 이런 고민이 있는데 혹시 의견 좀 줄래요?” 등등.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은 책 속에 파묻혀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 시간을, 단 대화 몇마디만으로, 그것도 정확히 핵심을 찔러가며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세상과 함께 고민하자. 그 중심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사업적/정치적 능력
사업질, 정치질만 하는 학자라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사업적 능력에 정치적 능력까지 갖춘 학자라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지 않을까?
사업질, 정치질”만” 하는 학자들이 많은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만 잘해도 잘나가는 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 비정한 현실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것만으로도 잘나가는 학자가 될 수 있는데, “그것마저” 갖춘다면 얼마나 훌륭한 학자가 되겠느냐는 말이다. 학자들도 사업적/정치적 능력을 그저 ‘더럽다’며 경시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능력들도 고루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교수가 연구실을 운영하는 것은 여러모로 스타트업 경영과 비슷한 면이 많다.
투자를 받아야 한다.
인력난이 심하다. (인력들이 2년~4년이면 그만둔다.)
좋은 제품(논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충분한 투자와 양질의 인력이 필요하다.
돈, 돈, 돈….
교수는 잠재력 있는 재원을 받아 그들을 성장시키며 함께 좋은 연구를 수행해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들을 펀딩해주고 좋은 연구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는 “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정부과제나 기업과제를 잘 따와야하는데, 학생들을 귀찮게 하지않는 양질의 프로젝트들(=연구와 관련이 많고 잡일이 적으며 연구비가 큰 것들)를 따오려면 정부, 기업, 학계와의 적절한 관계유지는 필수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만 파묻혀 사는 교수보다는 어쩌면 적절한 사업적 능력, 정치적 능력을 갖춘 교수가 많은 학생들과 함께 더 좋은 연구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덧1: 물론 대가나 훌륭한 인재들에겐 이러한 걱정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사회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대부분에겐 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지만 말이다.) (덧2: 한국에는 사업과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다가 결국엔 여기에 함몰되어 학문의 본질과 학생의 교육으로부터는 멀어지는 교수들도 많이본다. 과유불급이다.)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교수가 아닌 산업계에 있는 박사라면 더더욱 사업적, 정치적 능력이 중요하다. “사업력”이라 함은 기술을 고객의 수요와 마침맞게 연결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정치력”이라 함은 많은 사람과 조직들을 움직여 결국 도전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다. 그 어떤 것도 “기술”만으로는 목표를 완수할 수 없다. 그러니 본인의 기술을 단단하게 갖고있는 것과는 별개로 사업력, 정치력을 갖추는 것 역시 박사에겐 무시하지 말아야 할 능력일 것이다.
본인이 비지니스적인 마인드가 있고 여러사람들과 큰 과제를 도모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마케팅/브랜등 능력
필자가 속해있는 딥러닝 연구분야는 정말 “신세대”들이 모인 연구분야이다. 꼭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렇기도 하지만…) 정말 파격적인 문화들이 급진적으로 학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대부분의 저널은 open access (누구나 무료로 열람이 가능한 방식)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연구자들은 학회나 저널 출판을 기다리지 않고 본인의 성과를 arXiv.org 에 업로드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논문 심사조차도 open review를 통해 “댓글로” 서로 까고 방어하고 점수 주는 오디션형(?) 논문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레터를 보내 기고를 하고, 우편으로 저널을 받아보며 공부하는 시대에 비해 지금은 인터넷 기술이 상전벽해 하였으니,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변화일지 모른다. (그리고 필자는 타 분야도 미래엔 이런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고있다.)
딥러닝 학계에서 발견되는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연구자들이 트위터 계정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하며 “마케팅”을 펼친다는 점이다. 학자의 논문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읽히고 그 기술이 이용되고 인용될 때 더욱 빛난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논문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그렇게 주목받는 논문이 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본인이 정성들여 출판한 논문이 관심받지 못하고 사장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마케팅”. 요즘 딥러닝 연구자들은 단지 논문만 출판하는 것이 아니라 트위터를 통해 독자의 접근성을 높히고, 쉬운 블로그 글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코드 공개를 통해 독자의 사용을 쉽게하는 등, 논문 출판이 끝이 아니라 그것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필자도 이렇게 트위터를 통해 논문 홍보를 하고있다. 그리고 이 첨부사진도 사실 마케팅을 하고 있는거다…
어떤 논문들이 잘 인용되는가를 유심히 살펴보면 주로 “유명인”의 논문들이 많이 인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명인이라 함은 물론 대가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나처럼…. 마치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뜨는게 맞지만 초반엔 홍보를 위해 예능활동도 해야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쏟아지는 논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독자에게 도달율을 높여야하고, 이를 위해선 비록 본인이 대가는 아닐지라도 차곡차곡 개인 브랜드를 쌓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개인 브랜딩이라는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무기로 꾸준히 자신을 세상에 노출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OOO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의 개인 브랜드도 생길 것이며, 본인 논문의 영향력도 점차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실력이 먼저다. 마케팅에 앞서, 먼저 누구에게 팔아도 부끄럽지 않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마케팅은 좋은 상품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팔릴 때 쓰는 수단일 뿐이다. 상품도 좋지않으면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그저 사기꾼이니 주의하도록 하자.
평소에 사람들에게 “너 사기꾼해도 되겠다”라는 말을 듣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
연애 잘하는 능력
‘엥? 무슨 얘기인가?’ 싶으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연애를 잘하는 능력은 박사과정에서 너무나너무나너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수월하게 연애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정말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은 참 기나긴 항해이다. 항해를 하다보면 대부분은 아마도 서른 언저리를 찍을 것이고, 그 사이에 연애와 이별과 연애와 이별을 해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과정 중에 혹은 박사과정을 갓 마치고 결혼을 해야할 것이며, 따라서 연애와 결혼은 박사과정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부분일 것이다. 박사과정의 연애에는 험난한 장벽들도 많다. 어쩌면 돈을 벌지못한다는 사실에 경제적 압박을 받을 수도 있고, 유학을 하는 이들이라면 장거리 연애에 힘들어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필자 주위에선 연인이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각각 박사를 마치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교수임용이 이루어져 네버엔딩 롱디 연애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봤다.
박사과정이 곧 20대 중후반과 30대 초중반의 삶을 의미하는 만큼, 연구와 함께 다른 인생의 과정들도 순탄하게 진행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순탄하게 연애하고 결혼을 하는 일일 것이다. (모두가 결혼을 해야한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만약 연애를 하는데 매우 많은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야한다면 어떨까? 누구는 소개팅 몇번으로 쉽게 이성친구를 사귀어 오는데 본인은 수십번 소개팅을 해도 생기지 않는다면?(ㅠㅠ) 누구는 헤어져도 금방 ‘사람은 사람으로 잊혀지네’를 실현하는데, 본인은 헤어지고 처절하게 망가져 술만 퍼마시고 있다면?(ㅠㅠ) 누구는 연인이 힘도 되어주고 긴 박사과정을 응원해주는데 본인은 늘 만나면 싸움이고 전쟁같은 사랑을 하고있다면?(ㅠㅠ)
연애를 잘하는 능력은 참으로 중요하다. 좋은 연구도 모든 생활이 순조로이 흘러갈 때 가능하다. 기나긴 박사과정 항해를 하다보면 슬럼프도 빠지고, 괴로운 때도 있고, 현실로부터 도망쳐버리고 싶은 때도 있을텐데, 이러한 희노애락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연인이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니 박사과정을 고민하고 있는 학생이시라면 우선다양한 연애를 통해 연애능력을 길러놓도록 하자. 당장 소개팅 고고
잘생겼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은 농담이고, 여자친구가 있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은 농담이고…
모두들 미안…ㅠㅠ
연구란 원래 상상을 현실로 실현하는 일이다…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논문을 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어로 쓰는 논문은 더더욱 그렇다. 나는 첫 해외학회 논문을 석사과정이 끝나갈 무렵에야 쓸 수 있었는데, 당시엔 영어로 한 문장, 한 문장 쓰는 것 자체가 무척 고역이었던 기억이 난다. Introduction의 첫문장을 시작하는데도 몇날 며칠이 필요했었다.
‘In these days, OOO approaches have been attracted large attentions…. 아냐아냐… OOO approaches have shown a powerful performance in OOO in the last decade… 이게 아냐ㅠㅠ 딴 곳에선 어떻게 썼지…?ㅠㅠㅠ’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그럴듯하게 쓰기 위해 수많은 논문들을 ‘단지 영어 때문에’ 찾아보며 문장들을 따와야 했고, 나의 논문 쓰는 속도는 매우 느릴 수 밖에 없었다. 더 끔찍했던 점은, 교수님께서 내용을 다 바꾸라고 하시면 나는 그렇게 피땀흘려 모은 금쪽같은 문장들을 모두 버려야만 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아직도 논문을 쓰는 것이 어렵다. 지금도 교수님이 달라는 논문 초안을 못드리고 있다ㅠ 매력적인 Abstract과 Introduction을 쓰는 것은 여전히 지상 최대의 과제이고, 나의 어설픈 영어는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필자의 “영어 못해도 논문 잘 읽는 법” 글을 좋아해주셨던 것처럼 “” 역시 필요로 하실 것이라 믿고 글을 시작해본다. 아마 추석이라 아무도 안읽을거야ㅠ
나의 논문은 늘 빨간펜으로 촉촉히 적셔져 돌아온다.
일단 써라
가장 먼저 해드리고 싶은 말씀은, 모든걸 두려워하지 마시고 일단 쓰기부터 시작하시란 것이다. 영어가 어렵다면 한글로라도 좋다. 일단은 뭐라도 그려져 있어야 전체적인 구성이 보이고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그리고 초안이 있어야 그걸 가지고 지도교수님 혹은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가 가능하다.
또한 머리 속의 생각을 논문 글로 정리하다보면 연구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논문조사나 실험의 필요성도 종종 깨닫게 된다. 그리고 본인이 글을 적으며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다보면, 열심히 앞만보고 달렸던 연구 때에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빈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또다른 보완 연구로 이어질 수 있고 말이다.
그러니 일단 쓰시라. 추천하는 방법은 일단 목차를 나누어 놓고 개조식(bullet form)으로 들어가야 할 내용들을 하나씩 적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6페이지짜리 논문이라면 그렇게 개조식으로만 적어도 아마 3페이지 쯤은 찰 것이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어떤 형태의 그림과 표가 들어가면 좋을지 대충 넣어보자 (손으로 그려넣어도 좋다.). 그렇게 내용을 채우고 나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고, 전체적인 윤곽도 보여 좋은 논문으로 개정해 나가는 것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일단 쓰자. 못써서가 아니라 쓰기 싫어서 시작 안하고 있는거니까…
Introduction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추측컨데 90%의 논문은 Abstract과 Introduction을 읽는 단계에서 그 다음을 읽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가 판단되는 것 같다. 논문 심사 때도 마찬가지이다. Introduction이 형편없으면 그 이후 내용에 대한 기대도 사라진다. 그러니 Abstract과 Introduction은 논문을 쓰는데 40~50%의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Introduction을 읽고 난 뒤 독자가 어떤 느낌을 받으면 좋을지를 상상해보면 Introduction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 지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우리는 이런 느낌을 독자가 갖기를 바랄 것이다.
이 논문이 다루는 문제는 정말 꼭 해결해야하는 문제 같아.
하지만 이전 문제들은 아직 한계점들을 갖고있군.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는데, 이 논문은 새로운 기여를 보여주고 있어.
특히 이 논문의 기여 중 OOO이 핵심이군.
앞으로 나머지 논문에선 이런이런 내용이 나올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Introduction까지 읽고 다음을 읽을지 안읽을지를 판단한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저자는 논문의 큰 그림을 Introduction에서 “소개”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Introduction을 읽었는데도 아직 그 내용이 오리무중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저자의 잘못이다. 그리고 그 논문의 퀄리티는 안봐도 뻔하다. “presentation clarity” 차원에서 이미 낙제점이다.
그러니 Introduction에서는 전체 연구의 큰 흐름 속에서 본 논문의 기여를 확실하게 잘 보여주도록 하자. 먼저 Introduction의 시작은 큰 문제제기부터 시작해 본인의 연구 영역까지 점진적으로 스코프를 좁혀오도록 하고, 그런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해 온 방식을 간략해 설명해주자. 그런 뒤 이들의 한계점과 본인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고, 마지막으로 본 논문의 기여를 요약해주면 (그리고 앞으로 나올 내용의 outline을 그려주면) Introduction은 끝이 난다.
우리는 어떤 텍스트북의 Introduction이 아닌 내 논문의 Introduction을 쓰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룰 필요는 없고, 단지 내가 논문에서 발표하는 주제를 둘러싼 여러 생각의 갈래들만 잘 표현해주면 된다. 그리고 Introduction의 가장 큰 목적은 내 논문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위함 임을 다시한번 상기하자.
Introduction을 쓸 땐 두뇌 풀가동 하고 모든 집중력을 쏟아 붓도록 하자.
Related Work
Related work 은 사실 다른 섹션들에 비해선 중요도가 떨어지는 섹션이다. 이미 이 연구분야를 잘 아는 독자들에겐 읽어야 할 동기가 떨어지기도 하고, 내 연구결과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연구결과들을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섹션은 내 연구결과의 상대적인 위치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마치 내 외모를 설명할 때 ‘송승헌보다는 눈썹이 좀 덜 짙고 장동건보다는 피부가 하얀데, 공유에 비해선 좀더 얼굴도 크고 또렷한 편인 것 같아.’라고 막말을 하며 비교 설명하는 것처럼, 결국 Related work이 있는 이유도 내 연구의 위치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비교를 할 때는 ‘B연구는 A연구를 개선하였다’라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B연구는 어떠한 측면에서 이러한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A연구를 정확도 OO%에서 OO%로 개선하였다.’처럼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비교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 논문들에 대한 단순 나열을 피하고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도록 하자. 최악의 Related work은 읽는 사람조차도 ‘얘가 Related work 쓰기 무척 싫었나보군’이라며 느껴지는 글들이다. 본인이 그 섹션이 필요한 이유를 모르니 결과물도 산만하게 논문들만 나열하여 형편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왜 Related work을 쓰는지 알고, 그 목적을 잃지 않으면서 이 부분을 써내려가도록 하자.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Related work은 다른 연구들을 보여주며 역설적으로 나의 위치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논문 속의 모든 요소가 나의 연구를 빛나게 해주기 위함 임을 잊지말자.
(덧: 남의 논문을 깔 때(?)는 주의하도록 하자. 이는 리뷰에서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고, 만에 하나 과하거나 틀린 지적이었다면 ‘본인 논문 띄우기 위해 부풀려 얘기했네’라며 신뢰를 크게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영어 단어의 선택도 중요하다. “no” 보다는 “less”, “shoud”보다는 “need” 등 단정적 표현 대신 완곡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Method / Result
본론에 해당하는 Method와 Result는 논문의 내용에 따라 그 형식이 워낙 다를 수 있으니 구체적인 틀을 말씀드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Method와 Result를 쓸 때 강조하고 싶은 점은 자세하되, 자세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장난하냐. 본론의 내용은 논문을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엽적인 내용의 나열로 인해 논문이 지루해지거나 포커스가 흐트러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강약조절을 통해 글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유를 하자면 쇼미더머니에서 랩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래퍼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랩을 통해 내뱉지만, 잘 쓰여진 펀치라인과 훌륭한 래핑은 이를 지루하지 않게 들리지 않게 한다. 이는 강약조절과 리듬을 갖고 놀기 때문이다. 논문 쓰기도 마찬가지다. 너무 세세한 내용을 알려주느라 글의 포커스가 흐트러질 때면 다시 이들의 목적을 상기시키며 글의 긴장감을 조여주고, 이러한 부분들이 너무 길게 반복된다 싶으면 최대한 정보를 잃지않으면서도 컴팩트함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좋다.
실험결과를 해석할 때는 과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실험에서 “A조건보다 B조건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것과 “그러므로 B조건은 A조건보다 우월하다”의 결론까지는 매우 큰 간극이 존재한다. 수학적인 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실험환경 하나하나가 구속조건이고 가설조건이다. 그러니 실험결과를 일반화해서 말할 때는 그러한 가정들을 염두해두며 조심스럽게 주장을 펼쳐나가도록 하자.
논문에 대한 평가는 연구 내용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이를 연구한 연구자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아무리 논문이 인상적인 연구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들, 결과를 지식으로 도출해내는 과정이 적절한 과학적 사고과정을 수반하지 않았다면 논문 전체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린다. ‘이런 논리적 구멍이 있는 연구자라면, 실험 결과 자체의 신빙성도 떨어지는거 아니야?’라며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잘 세일즈 하되, 허위/과장광고를 경계하자. 그것이 논문 판매(?)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막간 잉글리시 클래스 : buy 에는 ‘믿는다’라는 의미도 있다. 예를 들어 “I don’t buy it”이라고 하면 그 의견을 믿지않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잘 buy할 수 있도록 논문을 쓰도록 하자.)
Conclusion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Conclusion을 Abstract의 반복처럼 쓰는 일이다. Abstract은 논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읽는 글이고 Conclusion은 논문을 모두 읽은 후 전체 내용을 정리하는 글임을 기억하자. 따라서 똑같이 전체 내용의 핵심 요약을 포함하고 있다 할지라도 Abstract은 문제 제기와 연구의 중요성/기여에 조금더 큰 방점을, Conclusion은 실험을 통해 얻어진 지식과 의의에 조금더 큰 방점을 찍어야 한다. Abstract은 손님을 많이 끌어와야 하고, Conclusion은 손님에게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각자의 역할을 견지하도록 하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Conclusion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부적절하다. 본문에서 주장했던 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Conclusion은 약간은 건조한 느낌에서 전체를 되돌아보며 쓸 필요가 있고, 뒤늦게 지식의 샘물이 터지며 막판에 불타오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어떤 사람들은 하지못한 것들을 방어한다며 Future work에 너무 많은 것들을 나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Future work이 그냥 “OOO을 할 것임”이 아니라 “OOO은 안했음”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좋은 방어법이 아니다. 본 연구의 한계는 결과 디스커션의 말미에 솔직히 고백하도록 하고, Future work에는 너무 큰 부분을 할애하지 말도록 하자.
영어
사실 이 글을 읽은 많은 분들이 “영어 못해도”에 낚이셔서 클릭하셨을 것 같다. 그만큼 영어는 신비의 키워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라이팅을 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ㅠ 특히 문법 공부를 충실히 해두는 것이 좋고, 많은 영어 논문을 읽으며 아카데미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본인이 쓴 문장이 논문에 쓰일만한 문장인지에 대한 감이 없으면 그것을 고칠 기회도 오지 않기에 논문들을 많이 읽어 논문 속 문장들의 품격에 익숙해지도록 하자.
단어를 사용할 때는 유의어 사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OO임을 보여준다”라고 이야기 할 때 본인이 show라는 단어밖에 모른다면, ‘show synonym’을 구글에 검색하여 어떤 단어들이 비슷하게 쓰일지를 보며 대체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유의어들이 완벽하게 같은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 유의하자. 예를 들어 use와 exploit은 모두 “활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exploit = make full use of and derive benefit from 이라는 정의에서처럼 exploit은 좀더 적극적으로 착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유의어를 단순히 돌려쓰지 말고, 좀더 정확한 뉘앙스를 표현한다는 차원에서 다양한 유의어를 적절히 사용하도록 하자.
전치사와 관사는 한국인에게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어려운 문법적 부분들이다. 우선 영어 공부를 할 때부터 동사와 전치사의 collocation (궁합)을 같이 알아두는 것이 전치사 실수를 줄이는 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attach to, substitute for 처럼 말이다. ozdic.com은 훌륭한 collocation 사전을 제공하니 참고하도록 하자. 관사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용법은 당연히 알아야 하고, 단어를 쓸 때마다 나의 용도가 그 카테고리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어떤 하나를 끄집어 내 얘기하는 것인지, 특정한 개체 안에서 얘기하는 것인지 구분해가며 신중히 관사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ㅠ 많은 예문 퀴즈를 통해 실제 문장으로부터 관사를 배울 수 있는 anathe라는 좋은 사이트가 있으니 참고하자.
어떤 분들은 영어를 대충 쓰더라도 영어 교정을 맡겨 돌아오면 좋은 영어 글이 되어있을 것이라 믿는 분들이 계신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생전 모르는 분야의 (예를 들면 어려운 화학분야의) 외계어들을 보고있다고 하자. 심지어 그것이 옳은 문장들로 쓰여져 있다 하더라도 쉽게 읽거나 그 문장들을 고쳐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원어민 영어교정이 그렇다. 내용 이해에는 조금도 근접하지 못한채 기계적으로 문법을 고치는데, 만약 그 과정에 “이건 이런 뜻으로 쓴거야?”라고 하는 대화조차 없다면 영어교정은 잘못된 오해들을 만들어내기 일쑤이다. 그러니 본인이 최대한 좋은 영어를 쓰도록 노력하자.
Data가 단수인지 복수인지는 내 마음 속에 있다.
내가 저지른 영어 실수들
이번 기회에 나도 원어민이신 교수님께서 빨간줄로 고쳐주신 영어들을 한번 정리해봤다. 내가 저지른 실수의 오답노트가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 중 일부를 공유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논문 용어 / 형식
Experiment -> Experiments Relate works -> Related work Future works -> Future work Fig. 1. AAA(red) -> AAA (red) (띄어쓰기) OOO[1] -> OOO [1] (띄어쓰기)
관사
– It exploits ( ) inherent properties of ( ) athletic movements : (the), (-) – regardless of ( ) number of ( ) joints or ( ) joint configuration : (the), (-), (the) – It is ( ) same as : (the) – We take ( ) advantage of something : (-) – In ( ) future work : (-) – In ( ) preprocessing : (-)
전치사
– with the learning rate 0.1 → with a learning rate of 0.1 – total 100 samples → a total of 100 samples – evaluated by using OO dataset → evaluated on the OO dataset – They have zero-mean and one-variance → They have zero-mean and a variance of one
단수 / 복수
– several researches → several works / some research – Park et al. introduces → Park et al. introduce – A large amount of data is → A large amount of data are – dataset → a dataset (data는 주로 복수, dataset은 단수) – less number of → fewer number of
주어 바꾸기
– It can be concluded that → We can conclude that – It is required to detect AAA for BBB → AAA are detected for BBB (가급적이면 가주어 It-for-to 구문 삼가기) – It would be able to AAA by BBB → BBB enables AAA – From the result, we can claim that → From these results, it appears that (바로 앞에 나온걸 받을 땐 the 대신 this, 그리고 실험결과가 보여주는건 we show보다는 it appears) – It enables us to access AAA → It provides access to AAA
분사구문/콤마 등으로 문장 간략히 만들기
– It is reduced to three as focusing on → It is reduced to three, focusing on (콤마의 활용) – it means that AAA, thus, implies BBB → it means that AAA, implying BBB – for preventing injuries that can happen during training – The parameters that should be chosen → The parameters to be chosen – the data which have nine features → the data with nine features – The AAA that is used for BBB is
with / using / by 구분하기
– ( ) AAA, it can be expressed : (Using) – They are classified ( ) a AAA : (with)
단어
– The easiest classifiable exercises are → The most easily classifiable exercises are – It exploits the genuine properties of → It exploits the inherent properties of – A is enough small → A is sufficiently small – The dataset has → The dataset includes – 확인할 수 있다. We can assure that → We can observe that – 예상된 바다. This is to be expected – An interesting point is that → An interesting observation is that – They are not ignorable → They should not be ignored
교수님의 교정으로 누더기가 된 나의 논문 초안… 이렇게 누더기를 만들어주시는 교수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진심이다.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라는 소설이 있다. 이는 “과학논문작성 과정에 대한 고찰“이란 글로도 유명한 KAIST 전산과 박사과정 김창대님의 웹 연재소설인데, 대학원생들의 찌질하고 우울한(?) 삶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리고있어 많은 대학원생들에게 공감을 사고있다. 사실 나는 이 연재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글의 제목만으로도 나는 그 이야기가 다루는 고민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이 말은 아마도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을, 또는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절절히 되내였던 물음이었을 것이다. 과연 나는 박사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과연 나는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크고 작은 좌절을 겪을 때마다 대학원생들은 늘 내가 맞지않는 옷을 입으려 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부터 들곤 한다. 내가 박사를 꿈꿔도 되는지, 그것은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한 선택이다.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 듯, 석사 또는 박사에 대한 선택이 결코 “대학 다음에 대학원” 또는 “회사 대신에 대학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대안으로서의 선택도피로서의 선택 이 최악은 막아줄 수 있을지언정 최선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있다. 물론 내 인생이 언제 최선의 길만을 걸었겠냐 만은 – 입시도 실패, 취업도 실패했었는데 말이다 – 그렇다해도 이렇게 똥차만 피하다 인생을 끝낼 순 없다. 지금부터라도 최선의 선택을 해보자. 중고등학교 때 좀 놀고, 대학교 때 좀 덜 성실하게 살았다고 해서 내 남은 인생을 모두 똥빛으로 그릴 이유는 없다. 나도 할 수 있다.
대학원을 가려할 때 가장 먼저드는 생각은 아마 ‘내가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공부를 더 해볼까 생각하니 갑자기 고등학교 때부터 날고기던 공부머신의 얼굴이 떠오르고, ‘넌 정말 공부로 밀고 나가야 해’라고 믿고 있었던 우리과 과탑 친구가 갑자기 취업 스터디로 돌아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에 비해 내가 시험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얼른 공부를 때려쳐야겠다’는 괴로움 뿐이었고, 성적은 받았으되 그 과목을 내가 잘 알게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보다 성적 좋은 애들이 다 취업준비 한다는데… 내가 어떻게…
십수년 간 상대평가의 프레임에서 배워온 우리들에게 이러한 비교 판단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건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기억하도록 하자. 우리과 과탑이 대학원에 가건 안가건, 옆집 순이가 박사를 하건 안하건, 그건 내 인생의 선택에 아무 상관없는 일들일 뿐이다. 어차피 경쟁 아니냐고? 아니다. 대학원은 이제껏 봐왔던 ‘동일한 문제를 동일한 시간에 풀어 제출하는 것’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과정들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꼭 연구를 잘하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고 희망을 갖도록 하자.
석사/박사과정을 한다는 건 ‘공부를 하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연구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내가 석사/박사과정을 통해 얻는 가장 소중한 경험은 그 기간 중 공부를 했던 내용들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세우고 그것을 해결해갔던 일련의 과정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부’는 그 과정 중 아마 (논문으로 따지자면) introduction(도입)이나 related work(관련 연구조사) 부분일 뿐일 것이다. 물론 훌륭한 introduction과 related work 조사는 연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훌륭한 논문을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보단 problem formulation(문제 정의), method(방법론), experiment/evaluation(실험)이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연구의 본질은 제대로 된 문제를 제대로 된 접근으로 푸는 것이다. 그러니 단지 학습을 대학원 생활의 전부로 생각하진 말자. 학부 때 학습에 대한 비중이 어림잡아 80% 였다고 한다면, 석사 때는 40%, 박사 때는 아마 20%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밤을 새는 일은 많을 수도 있지만, 공부 때문에 밤을 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습력” 말고 진학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적호기심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그것을 이론적/실험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꼭 가야할 사람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면,
나는 로봇을 보고 ‘로봇(인공지능)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을 수 밖에 없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고, (문제 제기)
단순히 수많은 “if-else”로 해결하기보단, 진정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으며, (기술적 난이도)
이를 위해 학자들은 어떤 고민들을 해왔는지 알고 싶었고 내 아이디어와 수학적 배경으로 이 분야에 기여를 하고 싶었다. (지적호기심과 기여 욕구)
그래서 나는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도 없는데 석사/박사과정 내내 교수님이 던져준 주제에 대해 ‘이건 내가 흥미로워야 하는 학문이다’라며 최면을 걸고 있어야한다면 당신은 아마 대학원에서도 성공적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타의에 의한 행동은 늘 자의에 의한 행동에 하위한다. 그렇기에 성공적인 연구생활을 위해선 강한 동기(motivation)가 필수적이며, 이것이 석사/박사과정 모집글에 “self-motivated”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욱 강렬하게 궁금해하고 파고들어라. 그 호기심 만이 당신에게 의미있는 경험과 좋은 성과를 가져다 줄테니 말이다.
A self-motivated person.
환상
마음 같아선 ‘돈을 벌고 싶은 사람 모두 OUT’, ‘취업이 목적인 사람 모두 OUT’ 등 학문적 목적 외에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분들은 모두 부적격자로 몰고싶은 맘도 있다. 올 단두대. 하지만 ‘석사 학위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회사가 연구진은 모두 석사 이상을 요구한대서…’ 등의 현실적 부름을 모두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위에 대학원 진학을 위한 이상적인 조건들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자신의 지적호기심을 탐색할만한 “낭만적” 생각을 학부 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성적관리하기 바쁘고, 스펙 관리하기 바빴을텐데 말이다.
대부분은 어영부영 지내다보니 벌써 3, 4학년이 되었고, 갑자기 맞딱뜨린 사회의 거대한 벽 앞에서 이리저리 찾아본 돌파구 중 하나로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3 때도 학과선택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했듯, 대학원 진학에 있어서도 많은 고민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환상’에 기반하여 선택을 내리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CEO가 되고싶어 경영학과를 간다든지… CEO의 조건은 경영학과가 아니라 회장님 아빠가 아니던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데 있을 수 있는 몇가지 환상이나 오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학부 공부로 뭘 알겠어. 석사 정도는 해야 뭘 아는거지…
전혀 아니다. 석사를 해도 모른다. 박사를 하면 아냐고? 사실 박사를 해도 모른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담아야 할 그릇의 크기는 점점 커지는데 반해, 내가 채우는 속도는 좀처럼 빨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망각 속도는 위대하다. 박사과정 쯤 하고있으면 아마 학부 때 배웠던 과목들은 거의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말해 만약 당신이 막연한 일반 지식의 전체적 향상을 위해 대학원을 택했다면, 그 목적은 쉬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원은 표족한 침을 만드는 곳이지 넓은 바다를 만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교수되고 테뉴어 받은 뒤 해보시라능…
석사나 박사하면 아마 취직은 더 잘될거야
전혀 아니다. 내가 전문분야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많은 기업들과는 업무 적합성(fit)이 어긋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괜히 대기업에서 학부졸업생들 뽑아다가 재교육 시키는 것이 아니다. 석사/박사는 각자의 전문 분야가 생기기에 그것을 살리기 위한 길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으며, 여기엔 바늘구멍 같은 경쟁이 기다릴 수도 있다. 특히 박사 학위 후 ‘포닥’이라 쓰고 일용연구직이라 읽는다을 떠돌며 고용불안에 떨고있는 이들 중에는 ‘차라리 박사하지말고 취업을 할 걸’이라며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석사나 박사 학위가 취업에 꼭 악영향만 주는건 아닐테지만, 이것이 진학의 큰 이유가 되는 건 위험한 일일 것이다.
일단 버티다보면 학위는 나올거야
석사는 ‘…그럴지도…’, 박사는 ‘전혀 아니다’. 석사는 학교에 따라 물렁하게 봐주는 곳도 있는 것 같다. 현대 들어 학생들의 교육기간이 점점 늘어나며 석사과정을 학부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도 많이 늘고 있기에, 수업을 듣고 형식을 갖춘 논문을 제출하면 다들 졸업을 시켜주는 것으로 알고있다. 또한 유럽의 경우엔 논문을 써야하는 석사학위와 수업만 들어도 되는 석사학위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물렁하게 얻은 학위는 내게 물렁한 연장책 만을 쥐어줄 뿐 내게 큰 발전을 안겨다줄 순 없기에, 그러한 ‘무사안일’이 내 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박사학위는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박사학위는 논문자격시험(일명 퀄, qualifying exam)을 통과해야하고, 박사 학위논문 제출과 이에 대한 디펜스 과정을 거쳐야하며, 졸업 요건으로서 SCI 저널논문을 요구하는 등 그놈의 SCI 시간만 버틴다고 박사학위를 주지는 않는다. 박사과정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다 이수할 경우 이를 “박사 수료”했다고 보는데, 사실 이 이후의 과정이 험난해 박사 수료 후 중도 포기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주변에서 “박사수료”란 경력을 많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간만 버티다 보면 학위가 나온다’라는 오해는 하지 말도록 하자.
이 외에도 사실 석사/박사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풀어보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20대 중반, 여러분의 소중한 2년 또는 4년을 도피로서의 선택이나 환상에 기반한 선택으로 결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선택에는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대학원 생활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연재들이 그러한 탐색의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 나눈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공부와 연구는 다르다.
그러니 공부 못한다고 쫄지마라.
근데 공부 못한다고 연구를 잘한다는건 아니잖니;;;
중요한건 지적 호기심이다.
궁금하냐? 그럼 해라. 안궁금하냐? 그럼 하지마라.
환상만 갖고 결혼하지마라 대학원에 가지마라
석사/박사가 보장해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줄 수 있는 건 이 노래밖에 없다 문제해결 경험이다.
풀고자 하는 문제가 있다면 대학원에 도전하라.
그렇다고 꼭 성공한단 뜻은 아니고…;;;
기승전 나도몰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이시간에 하기로 한다. 주간 폭탄 돌리기, 다음 글은 윤섭님께로~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대학원에 가려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은 ‘이제야 내가 하고싶은 전공을 찾았다’며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제가 가려는 분야 쪽으론 아는 것도 거의 없고 논문 실적 등은 당연히 없는데, 어떻게하면 전공을 바꿔 그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을까요?’
이쯤되면 당신은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교수는 자신의 전공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석사로 뽑고 싶어하지 않는다. 반면 본인은 다른 전공에 속해 있었기에 가려고 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교수님, 경력이 없는 나, 과연 나는 새로운 전공에 도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새로운 전공에 도전하는게 과연 맞는 선택일까…?
잠깐, 근데 전공을 왜 바꾸려고 하시는데요?
전공을 바꾸려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음의 두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1) 지금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가려고 하는 전공이 좋아보인다.
먼저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본인의 몇년의 시간을 재투자해야하는 매우 비싼 선택이라는 점을 유념하자. 따라서 그 비용이 큰 만큼 전공을 바꾼다는 선택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혀 상관없는 전공으로 변신을 꿈꿀 땐 말이다.
(1) 나는 왜 지금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마 ‘애초에 선택이 잘못됐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고3 때 진로탐색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했고, 점수에 따라 학교를 맞춰가다보니 지금의 전공에 오게되었다는, 그런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스토리.
하지만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전공이 나중에 다시 꼭 만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점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데, 여러분의 전공은 적어도 개똥보다는 더욱 자주, 그것도 더욱 심각하게 그 필요와 함께 미래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전공을 떠날 결심을 하셨다 하더라도 절대 현재의 전공을 헛것으로 만들지는 말자. 만약 지금의 전공을 헛것으로 만들었다가 두번째 전공마저 헛것이 되어버린다면 그땐 정말 멘붕에 빠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캘리그래피로 뭔가 쓸모 있는 것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당시의 경험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캘리그래피 기술을 적극 활용했으니 매킨토시는 그 기술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셈이죠. 만약 그 때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이처럼 다양하고 독특한 서체(font)를 개발해 내지 못했을 겁니다.” –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리드대학의 캘리그래피 수업
우리의 인생은 생각지도 못했던 A와 B가 만나고 이를 예상치 못했던 C가 도와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A,B,C 모두를 내 것으로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버리려고 하는 자신의 전공이 바로 그 A,B,C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니 현재의 전공을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거나 불성실한 태도로 낭비해 버리지 말고, 잘 갈무리 하셔서 미래의 무기로 가지고 있으셨으면 좋겠다. 당신의 지금 그 전공이 미래 스티브잡스의 ‘캘리그래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99.999%로 당신은 스티브 잡스가 되지 못할 것이다ㅠㅠ
(2) 나는 왜 옮기려는 전공이 좋아보이는가?
여기선 다음 두가지의 바이어스(bias, 편향)에 대해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게 내 적성처럼 느껴진다‘라는 바이어스와 ‘이 분야가 유망하다‘라는 바이어스.
먼저, 가려는 전공이 내 적성처럼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현재 내 상태가 매우 불만스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새로운 전공에 돌입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즐겁진 않을 수도 있다. 어떠한 취미도 본업이 되면 스트레스가 되고만다고 했던가. 곁다리로 introduction 강좌들을 들을 땐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던 새로운 전공도, 막상 전문적으로 파고들다보면 이곳 역시 노잼의 벽과 난이도의 벽, 그리고 극한 노가다 노력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이전 전공이든, 새로운 전공이든, 많은 인내로 배움의 과정을 견뎌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6개월만 배우면 프로그래머로 일할 수 있다.’, ‘1년 코스로 전공을 세탁한다.’ 등에 혹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단기코스도 오랜 기간의 학습결과를 따라잡을 순 없다. 그러니 허니문에 빠져 금사빠처럼 새 전공에 마음을 뺏기기보단, 새로운 전공에서도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존재할 것이란 예측 하에 전공 전환의 판단을 고심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망하다’라는 전망도 사실 ‘나에게 유망하다’ 혹은 ‘미래에도 유망하다’란 말은 절대 아니란 점을 명심하자. 비유를 하자면, 지금 유망하다는 전공을 쫓아가는 것은 주식을 살 때 오늘 뉴스에서 ‘이런 종목이 유망합니다’란 소식을 보고 묻지마 주식구매를 하여 10년 뒤 그 결과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다. 이미 현재 레드오션이고, 그 미래는 알 수 없으며, 사실 ‘유망하다’는 정보의 신뢰성마저 의심스럽다.
그러니 ‘유망하다’라는 전망은 철저히 무시하셔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전공을 선택한다면 아마도 10~15년 뒤에나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가 열릴텐데, 그 때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참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 땐 내가 페북 중독이 될 줄 몰랐지. 10년전인 2007년, 미국 US News에서 뽑은 최고 유망직종은 다음과 같았다.
내과의사 보조, 공인 간호사, 펀드레이저, 직업관리사, 교육심리학자, 시스템분석가
위의 리스트가 10년 뒤인 2017년 최고의 직종이라는 것에 과연 동의하는가? 예를 들어 ‘직업관리사’는 2000년대 꾸준히 유망직종이라며 리스트에 올랐던 직업인데, 10년이 지난 지금 ‘직업관리사’는 과연 모두의 예상만큼 유망직종이 되어있는가? 그렇다면 현재 유망직종이라 불리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나 ‘인공지능 전문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 10년 뒤에도 여전히 유망할까? 안돼 내 직업..ㅠㅠ
이제껏 여러분들의 ‘새로운 전공 세탁에 대한 환상’을 깨려 여러 각도로 말씀드려봤다. 요약하자면,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비싼 선택이기에 신중해야한다.
현재의 전공도 미래의 무기가 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
재밌을 것만 같던 새 전공 역시 고생길과 노오력이 함께할 것이다.
새 전공이 미래에 유망하다는 썰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결국, 전공을 바꾸든 안바꾸든, 나를 성공으로 이끌 키워드는 “HOW”이지 “WHAT”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보통 ‘저 사람은 뭐를 했어도 잘했을거야’란 생각을 종종 갖게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훌륭한 사람에겐 주제를 가리지 않고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태도가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공 바꾸길 포기하란 얘기?
전혀 그런 말씀이 아니다. 사실 필자는 오히려 ‘현재의 전공에 얽매이지 말고 본인이 하고픈 길을 선택하세요’란 조언을 많이드리는 편인데, 미래에 지나고보면 현재까지 배웠던 지식이란게 참 보잘 것 없었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현재까지 뭘 배웠든 그것은 단지 “교양”일 뿐이기에 미래 선택에 영향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고등학교 때 단지 OO 과목을 조금더 잘했단 이유로 가고픈 학과 대신 현재의 학과를 선택해 후회했던 분들이라면 이 말 뜻을 잘 이해하실 것 같다. 내 선택은 내가 하고픈대로 하는 것이다.컨설팅 결과처럼 하는게 아니라 말이다.
다만,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현재 전공을 실패로 규정해 버리기 앞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고, 새로운 곳에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자감을 경계하며, ‘유망하다’와 같은 근거없는 말들에 흔들리지 않는 선택을 하시라는 바람에서 드려본 말씀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으시다면 하시라. 방법에 있어 현실에 발을 딛고 위대한 꿈을 꾸는 것만이 여러분의 가랭이를 찢어줄 것이다 포부를 실현시켜 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여러분은 지금의 전공 말고도 두세개의 “전공”을 더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전공 전환 고민 역시 이러한 필요에 따라 느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 버리려는(?) 현재의 전공, 새롭게 시작하려는 미래의 전공 모두 내가 인생을 살면서 어차피 정복해야할 몇가지 전공 분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또하나의 전공을 배우는데 너무 주저하지 마라. 드디어 글에 모순 발견. 새 전공으로의 도전은 너무 주저하지도, 너무 성급하지도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포기하면 편해’란 짤도 있지요…(…)
이 글을 제목을 보고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합격하는 팁’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많이들 실망하셨을 것 같다. (사실 이 블로그의 취지가 얕은 팁을 공유에 있진 않다.)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대학원 선발의 딜레마를 깰 방법은 사실 많지 않다. 학부 때 필요한 관련 “경력”을 쌓지 못했다면, MOOC(온라인 공개강좌)가 되었든, 개인적인 GitHub 프로젝트가 되었든, 연구실 인턴이 되었든, 회사 경력이 되었든, 다양한 방법으로 관련 연구 경력을 쌓고 기록을 남기는 방법 외엔 뚜렷한 왕도가 없다.
그래도 한가지 기억하셔야 할 점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준비해야할 것은 다양한 입시조건 충족이 아니라 실제 그 일을 하는 것이란 점이다. 예를 들어 딥러닝과 관련하여 대학원을 진학하고 싶다면 경쟁자들보다 더 높은 학점, 더 높은 영어점수, 더 훌륭한 인터뷰 스킬에 신경쓰기보다, 실제 딥러닝을 공부해보고 이에 대해 호기심을 키워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준비 방법이다. 시간을 투자해 실제 이론들을 공부해보고, 그것을 텐서플로우 등을 가지고 구현해보며, 이러한 공부 과정을 블로그든 GitHub든 기록을 통해 잘 보여줄 수 있다면, 해당분야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일 역시 크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여러분이 실제 그 일을 해본적이 없다는 점이다.
“전공을 바꾸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하시라. 다만 새 분야에 대해 그만큼의 열정을 보여주시라. 당신을 빛나게 하는 것은 당신의 조건이 아닌, 당신의 의지와 노력과 열정이다.”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