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혼자 일하지 마라

윤섭의 이야기

이번에는 대학원생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져야 할 자세와 몇 가지 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특히 이번에 논의하고자 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 즉 협업(collaboration)과 공동연구에 관한 내용이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 일할 수 없다. 이는 일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연구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물리적으로 연구실 내에서 팀을 이루거나, 지도교수-지도학생 혹은 사수-부사수 관계를 맺고 일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연구실 간에 협업을 하거나, 다른 학교 사이에서 혹은 학교와 기업 간 공동 연구를 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 같이 연구 분야별 경계와 장벽이 허물어지는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좋은 저널에 나오는 논문을 몇 개만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논문의 저자가 한 명, 혹은 (교신저자까지 포함하여) 두 명인 경우는 근래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저자의 수가 10명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고, 저자들의 소속을 찾아보면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하나의 논문을 쓰는 경우도 많다.

즉, 좋은 연구는 많은 경우 여러 연구자들의 협업을 통해서 완성된다. 한 명의 연구자가 모든 것에 전문성을 가지기 어렵고, 학제간 연구가 향후 더욱 활발해질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공동연구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공동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려 깊은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다.

자신만의 특기를 개발하라

우선 좋은 공동연구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나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연구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이 가지지 않은 전문성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하는 것보다 상대방과 함께 하는 것에서 무엇인가 나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 즉, 내가 전문성이나 특기를 가지고 연구팀에 기여할 수 있어야만 공동연구라는 것 자체가 성립한다.

대학원생 입장에서 전문성이나 특기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최소한 “이 주제, 이 기술만큼은 내가 국내에서는 최고다” 정도는 되어야 한다. 국내 정상급 실력자가 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인기 있는 분야를 제외한다면) 구체적인 세부적인 주제에 대해서 연구한다면, 좁은 국내 바닥을 통틀어도 연구팀이나 연구자의 총 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인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는 당연히 수위에 있어야 한다.

또한 굳이 ‘세계 최고’를 기준으로 하지 않은 점은 너무 어렵거나 또 막연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서 내가 어느 수준인지는 1년에도 여러 번 열리는 학회나 포스터 발표 정도만 보더라도 감이 오는 경우가 많다. 비교 대상을 보고서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그렇다면 무엇을 특기로 해야 할 것인가? 연구실과 연구 주제를 정할 때에도 필자가 강조했던 것이지만, 무조건 자신이 재미있고, 하고 싶고, 열정이 있고, 평생 공부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주제를 골라야 한다. 그것이 특정 기술이든, 특정 주제이든 장기적으로 본인만의 키워드를 잡고 공부해나가야 한다.

대학원생이 해당 주제에 대해서 처음부터 본인의 논문을 펑펑 써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최신 논문이 어떻게 나왔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 팀은 누가 있고, (논문으로 아직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이 다음번에 연구가 발전되어갈 방향이 어디인지는 맥을 잡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인의 실력도 발전시켜나가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비로소 자신의 논문도 쓸 수 있다.

얼마나 재미있어야 하는가

자신이 ‘재미있는’ 연구 주제를 골라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얼마나’ 재미있어야 할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연구실에 빨리 출근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정도여야 한다. 어제 못 다 읽은 논문이 너무 재미있고, 후속 연구에서 어떤 식으로 해당 주제가 발전되어 갈지 너무도 궁금한 것이다. 내가 어제까지 실험하던 결과가 오늘 어떻게 나올지, 내가 세운 가설을 빨리 검증해보고 싶고, 내가 이 분야에 의미 있는 기여하는 것이 전 세계 연구자 커뮤니티에 속한 일원으로 자랑스러울 수 있는 주제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변태 같은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연구자 생활을 하면서 신기하게도 내가 존경하고 좋은 연구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서 이와 관련된 공통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모교인 포항공대 교수님이나, 잠깐 연구했던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수님들,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에게서도.

나는 200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드릭 맥키넌 교수님께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러 포항공대를 방문하셨을 때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박사 수여식이 끝나고 당돌하게 학생 몇 명이서 “박사님, 포항공대 내에 통나무집이라는 맥주펍이 있는데, 저녁에 시간 되시면 저희 학생 몇 명과 함께 맥주 한잔 하시지 않으시겠어요?” 하고 당돌하게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통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맥키넌 박사님께 ‘위대한 과학(great science)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박사님은 우문에 현답으로 답하셨다. ‘위대한 문제(great problem)를 찾아야 한다’ 는 것이었다. 본인은 자신의 흥미를 찾아서 그 위대한 문제를 찾으셨다고. 내가 ‘박사님은 지금도 연구가 즐거우세요?’ 라고 물었더니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지금도 매일 아침 연구실에 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고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도 그런 문제를 찾아보자.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지 않은가.

남들과 차별화하라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유니크한 특기를 가지면 좋다. 앞서 ‘국내에서는 최고’ 라는 기준을 제시했고, 세부적인 주제에 대해서라면 국내에서 연구 팀이 사실 몇개 없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만약에 해당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국내에서 본인밖에 없다면, 당연히 내가 국내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다.

사실 이는 연구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직장인이나 기업 수준에서도 통하는 조언이다. 경영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어떻게 하면 자신을 경쟁자와 차별화(differentiation)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역량, 혹은 계발하고 배우고 있는 역량 중에 그런 것이 있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항상 던져야 한다.

유니크한 특기를 가진 사람은 조직에서 대체 불가능(irreplaceable)하다. 그 특기가 조직에서 유용하고 필수적인 요소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유용하고 필수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유니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 대체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저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슬프게도 많은 경우에 전문가들조차도 대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다른 전문가들과 차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별화되는 전문성은 공동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연구실 내에서, 혹은 연구실 간에 차별화된 특기를 저마다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자연스럽게 공동연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진행하는 연구에서 상대방의 특기인 부분이 있다면 그에게 맡기고, 그가 진행하는 연구에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해준다. 그리고 그 과실은 서로가 공유한다. 자신만의 특기가 있다면 이러한 관계가 성립하기가 쉽다. (만약 나와 상대방이 모두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같은 값이라면 후배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이것은 다음 글의 주제이다)

내가 모셨던 PI 중에 한 분은 항상 “두 사람이 각각 논문을 한 편씩 쓰지 말고, 두 명이서 함께 논문을 세 편 써라” 고 강조하셨다. 이것이 바로 시너지 효과이며, 우리가 팀을 이뤄서 연구하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너지 효과는 각자가 서로 차별화된 특기를 가지고 있을 때에 일어날 수 있다.

프로페셔널의 제1원칙: 기브 앤 테이크

자신만의 특기를 바탕으로 공동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공동연구를 이제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필자는 공동연구에 있어서 한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싶다. 바로 “상대에게 어떻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라” 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그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타적인 자세가, 결국 나 자신에게도 더 큰 혜택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프로페셔널의 제1원칙은 바로 기브 앤 테이크이다. 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주고(give), 받는다(take)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에 대해서 “내가 도움을 줬으니, 이제는 당연히 나도 네 도움을 받아야 해”, “지난번에 네가 나한테 빚졌으니, 이번에는 당당히 네 도움을 요구할 권리가 있어” 정도로 이해서는 곤란하다. 프로페셔널들 사이에서 기여는 돈을 빌리고 갚는 것과 같은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기브 앤 테이크’란 상대방에게 먼저, “혹시 뭐 필요한 것 없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줄게” 하고 ‘먼저’ 다가가는 것을 말한다. 즉, 향후에 테이크할 것을 바라지 않고, 우선적으로 먼저 기브하는 것이 프로페셔널의 ‘기브 앤 테이크’이다. 당장은 나에게 과실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어도, 장기간에 그 기여의 고리가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과실이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생각해보라. 모두가 이렇게 “뭐 필요한 것 없니? 내가 도와줄게” 라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연구실, 연구팀, 조직을 생각해보라. 그런 이상적인 조직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그런 연구실에서 연구를 했던 행복한 경험이 있다.

사실 아직 철들지 않은, 연구자로서는 미숙한 대학원생들이 이러한 자세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 못지 않게, 지도 교수나 PI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아기가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듯, 대학원생은 교수의 사소한 모습까지도 보고 배운다. 교수라면 이러한 이타적이고, 기브 앤 테이크가 잘 작동하며, 결과적으로 장기적인 시너지가 창출되는 조직을 목표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좋은 연구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교수 탓만을 해서는 곤란하다)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는 경영학적으로 연구도 많이 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은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책의 일독을 권한다.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주고 싶어 하는 기버(giver)가 왜 ‘주는 만큼 받는’ 매처(matcher)나,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는’ 테이커(taker)보다 왜 더 성공적인지에 대해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오리지널스’로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애덤 그랜트의 전작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오리지널스보다 이 책이 더 좋았다.

연구자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라

어른들은 흔히 ‘일만 잘하면 뭐하냐,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말을 하시곤 한다. 필자는 이 말씀이 공동연구에 있어서는 핵심을 꿰뚫는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수정하자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공동연구도 잘할 수 있다’ 정도로 이야기 하고 싶다.

연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공동연구는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가장 큰 기쁨도, 가장 큰 아픔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온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업무적으로도 그렇다. 공동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실력이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가진, 인간적으로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인성이 실력보다도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다른 사람들이 같이 일해보고 싶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좋은 공동연구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실력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같이 일하기에 즐겁고, 유쾌하며, 서로 학문적으로 토론하기에 좋은 상대이며,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함께 일하고 싶지 않겠는가.

반대를 생각해보자. 주위에는 왠지 좀 재수 없고,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즐겨하는 인간은 실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함께 일하기가 꺼려지게 된다. 나는 특히 뒷담화를 즐겨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뒷담화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그 대상이 되는 것도 싫다. 연구하는 바닥은 매우 좁기 때문에 동료들에 대한 험담은 결국에 그 사람의 귀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에게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자리에 가서 내 험담을 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과 공동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함과 동시에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품평을 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도록 하자.

결국 평판(reputation)의 관리가 핵심이다. 평판은 연구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하다. 사회 생활에서는 이런 평판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만약 나에게 누가 A라는 사람을 소개해줬거나, 나에게 무엇인가 요청하는 콜드콜을 보냈을 때, 나는 이 A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만한 사람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먼저 한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좋은 사람인지를 내가 신뢰하는 분께 여쭤보는 것이다.

만약에 제 3자가 나를 아는 사람에게 ‘이 사람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물어보았을 때 나에 대해서 어떤 평이 나올지를 한번 더올려보라. 이때 “그 사람 한번 만나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예요”, “그 사람 함께 일하기에 좋은 분이예요” 하는 평판이 나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좋은 평판은 억지로 만들거나 관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모습에서 배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평판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며, 이는 매우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나쁜 평판을 만드는 일은 매우 쉽다. 그리고 한 번 쌓인 나쁜 평판을 없애기란 정말 어렵다.

의도와 범위, 보상을 명확히 하라

연구 초심자로서 공동연구를 시작할 때 조언해주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의도와 범위, 그리고 보상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다. 흔히 한국의 연구실에서는 상하관계가 있고, 교수나 선배들이 소위 ‘까라면 까야하는’ 문화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공동연구에 있어서는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고, 부려먹는다기 보다는 서로 평등한 연구자로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인이 그럴 마음이 있다면, 공동연구자에게 자신이 공동 연구가 필요한 이유와 이 일을 당신에게 요청하는 이유, 요청하는 일의 범위, 그리고 이를 통한 어떤 보상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하고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일을 진행할 때 공동연구자가 이에 대해서 명확히 알지 못하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면 그냥 ‘상대가 나를 부려먹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실 간의 공동연구에서는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는 사람과 실제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이 다르게 된다. 이런 경우에 연구의 초기 제안자와 실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과가 잘 나올 경우에, 논문의 저작권(authorship) 등을 공유할 것임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공동연구가 수월하게 진행되는 경우, 그리고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는 바로 공동연구자가 이 연구에 얼마나 흥미를 가지며 주인의식을 가지느냐에 달려있다. 즉, 내가 제안한 주제라면 나는 당연히 이 연구가 중요하고, ‘내 연구’ 라고 여기게 되지만, 공동연구를 제안받은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동연구자가 이 연구가 (비록 다른 사람에게서 처음 나온 아이디어지만) ‘내 연구’ 라고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절대 acknowledgement를 잊지 마라

이 부분은 사소한 팁이지만, 매우 중요하다. 학회 등 외부 발표에서 뿐만이 아니라, 랩미팅 등 연구실 내부 발표 등 결과 공유를 하는 자리에서 공동연구자 등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은 분들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이러한 도움과 기여에 대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acknowledgement는 발표자료의 가장 마지막 장에 모두 몰아넣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과 더불어서 필자는 해당 슬라이드에 (슬라이드의 오른쪽 하단에) 명시적으로 누구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기록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의 실험 결과를 도출할 때에나, 이 데이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누구에게 받은 것이 있다면, 해당 부분의 발표자료에 (주로 슬라이드의 오른쪽 하단에) 명시적으로 누구의 도움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발표 중에 “이 아이디어는 A가 가장 먼저 제시해주셨습니다.”, “이 실험은 B 연구실의 C 박사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고 밝히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동연구는 결코 나 혼자 진행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에서도 나 혼자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이 부분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만, 또한 흔하게 잊어먹는 일이기도 하다. 의도적이든, 혹은 실수이든 공동연구자의 기여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면, 윤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피해를 본인이 입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유의하지 않으면, 의도치 않게 본인이 나쁜 평판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연구실 내부적으로 랩미팅하는 것이고, 모든 구성원들이 내가 A라는 사람과 공동연구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말 안해도 다들 잘 알고 있겠지…” 하고 그냥 넘어가다가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A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한 실험의 결과를 보면서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면, 마치 성과를 도둑맞은 것처럼 느끼 수 있다.

“내가 기껏 시간을 내어서 도와줬더니, 자기가 연구 다 한 것처럼 이야기하네? 내가 다시는 저 인간을 도와주나 봐라.” 하면서 속으로 화를 낼 수도 있다.

절대 acknowledgement를 잊지 마라: 나의 경험

이 부분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서 필자 본인의 부끄러운 기억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이 내용은 필자가 슬라이드쉐어에 올린 “내가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연구 노하우” 초판본 때부터 들어 있던 내용이다. 필자 본인도 그 중요성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후 시간이 흘러서 필자가 대기업에서 팀장으로 일할 때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우리 팀의 사업기획에 대해서 몇 달간 작업을 하였고, 그 계획에 대해서 처음으로 필자가 팀을 대표하여 임원 보고를 하는 날이었다. 특히 그 사업 계획을 세우는 것과 발표 슬라이드 제작은 기획 전문가인 팀원 한 분께서 담당 하셨다.

내가 대표로 상무님께 슬라이드를 보여드리며 발표를 하였고, 팀원들도 함께 그 발표를 들었다. 몇 달간 준비한 발표이고, 나도 많이 긴장했지만 다행히 나름대로 발표가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표 후 그 기획 전문가께서 “팀장님, 잠깐 이야기 좀 따로 나누실 수 있을까요?” 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나에게 무거운 표정으로 “팀장님, 어떻게 그 발표를 팀장님 혼자 준비하신 것처럼 말씀하실 수가 있으신가요? 그 슬라이드의 내용은 대부분 제가 만든 것이지 않나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내가 기억을 되살려보니, 내가 발표에서 팀원들이 이러저러한 기여를 했고, 특히 기획안 작성 전체에서 그 기획 전문가 팀원의 기여가 컸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내가 너무 긴장을 했기 때문이든, 연습이 부족했든, 그냥 까먹었든지 간에 그 발표에서 그 팀원은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 지적은 매우 타당했다.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을 깨달은 나는 그 팀원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결코 공을 내가 독차지하거나, 그분께서 기여한 바를 내가 사소하게 생각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서. 결국 내가 진심으로 거듭 사과하자 그 팀원께서도 오해를 풀고 화를 거두시기는 하셨지만, 이 실수에 대한 교훈은 지금까지도 내게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내가 나의 부끄러운 경험까지 공개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공동연구자의 기여를 acknowledge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과,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그 노력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감사를 표하는 것을 잊어버리기가 쉽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부디 나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프로페셔널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팁을 몇 가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리는 프로페셔널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동연구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 중의 하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프로젝트 진행과 시간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프로젝트 진행과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시간을 아껴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방해가 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메일을 보낼 때에 대해서 강조하고 싶다. 상대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에는 단순히 안부 인사가 아니라, 어떤 문제나 이슈에 대해서 나의 의견이나 답을 듣기 위해서 보낸다. 이러한 메일에 대해서 가능한 빨리 답장을 해주자. 내가 답장을 보내줘야만 상대방이 그 답에 근거하여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만약에 내가 답장을 해주지 않고 질질 끌게 되면 그 시간 동안 상대방은 답장을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고, 이는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차질로 이어진다.

만약에 내가 메일로 받은 내용이 바로 답변을 해주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최소한 언제까지 답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먼저 알려주기만 해도, 상대방에게는 크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이 요청에 대한 실험은 제가 다음주 목요일까지 끝내고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만 보내주면, 상대방이 프로젝트 진행 계획을 세우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만약 이런 말도 없이 그냥 나 혼자 ‘다음주 목요일까지 기다렸다가 메일을 줘야지’ 하게 되면 상대방은 그저 하염 없이 기다리거나, 메일을 못 받은 것은 아닌지 재차 확인을 할 수밖에 없다.

공동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흐르게 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가장 힘든 공동연구자는 ‘묵묵부답’인 연구자였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답장을 주지 않는다. 그저 본인의 스케쥴대로 (그리고 이 스케쥴에 대해서는 본인만 알고 있다) 연구를 진행한다. 때가 되면 답장과 데이터를 보내주지만, 그 답이 언제 올지에 대해서 나는 알 수 없다. 이런 경우는 공동연구를 진행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이메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자

사실 공동연구에서 이메일만큼 커뮤니케이션에 중요한 것도 없다. 조금 더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메일에 대한 팁도 몇 가지 주려고 한다. 경쟁력은 작은 부분에서 판가름 나고, 악마는 디테일에 살고 있다. 보통 상대방이 보내온 메일만 딱 보더라도, 이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많은 부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니 이메일 한 통을 보낼 때에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 부분은 연구자뿐만이 아니라, 일반 직장인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이메일의 제목만 보고서도 메일을 보내는 명확한 의도, 결론, 정보가 담겨져 있도록 쓰자. 연구를 활발히 하는 사람일수록 하루에도 수많은 메일을 받는다. 그 쏟아지는 메일 중에서 중요한 정보를 쉽게 가려낼 수 있고, 또 시간이 흐른 뒤에 상대가 이메일 검색으로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려면 제목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의 예시를 참고하자. 좋은 예시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겠지만, 제목만 보고서 판단할 수 있는 정보, 의도, 목적 등에 크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나쁜 예: “데이터입니다” (무슨 데이터인지 알 수 없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목적을 알 수 없다)
  • 좋은 예” “7월 17일 최윤섭 랩미팅 슬라이드 보내드립니다”, “A연구실 정기 미팅 공지 (7/17 @대회의실)”

또한 첨부파일 제목과 양식에도 신경을 쓰자. 실험 결과나 데이터를 보낼 때에는 첨부파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이 첨부파일을 받았을 때 어떤 상황이 될지를 상상해보면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데이터가 무슨 실험에서 나온 데이터인지, 누구의 데이터인지, 언제 나온 데이터인지가 파일에 들어 있어야 한다. 메일에는 해당 내용이 있어도, 첨부된 파일의 제목에 그 내용이 없으면, 수신자가 또 그 파일을 찾아서 직접 제목을 고치는 수고를 해야 한다.

  • 나쁜 예: “data.xlsx” , “제목없음.txt” (무슨 데이터이며, 누가 언제 만든 것이 알 수 없다)
  • 좋은 예: “digital_health_global_trends_2017_2Q_최윤섭_170717.pdf”

마지막으로 메일에 답장을 보낼 때에는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체크해라. 특히 참조 수신인(cc)이 있는 메일인지를 확인해라. ‘참조’라는 것은 해당 메일의 직접적인 수신자는 아니지만, 메일의 내용이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 되는지를 알 필요가 있는 관계자들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전체 답장’으로 답장을 보내야 한다.

예를 들어, 공동연구하는 연구실의 학생 A가 나를 수신인으로 메일을 보냈는데, 그 연구실의 교수님 B와 우리 연구실의 교수님 C 를 참조로 하여 메일을 보냈다고 해보자. A는 이 메일의 내용과 그 답장에 대해서 교수님 B, C도 알아야 한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메일에 대해서 ‘전체 답장’을 해서 A뿐만 아니라, 교수님 B, C 에게도 역시 참조로 답장의 내용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답장’을 보내면 A에게만 메일이 가기 때문에, 교수님 B, C 는 해당 내용에 대해서 팔로업을 하지 못하게 된다.

 

PS.
쑥스럽지만, 이번에 제가 책을 한 권 출판하게 되어서 이 자리를 빌어 홍보(?)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연재하는 글을 읽으면서 ‘근데 저 인간은 뭐하는 사람이지?’ 하고 궁금해하신 분도 계실텐데요. 저는 의과대학 연구소, 대기업, 대학병원 등을 거쳐서 지금은 독립하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라는 1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과 철학,독립하게 된 과정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정리하여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 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생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지만, (책의 본문에 언급되듯) 저는 대학원생일 때부터 저 스스로를 하나의 기업, 혹은 연구소로 여기면서 연구해왔습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독립적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러한 삶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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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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